천균노


제 4 장

14


며칠후, 병마도감의 서기산골안은 아침부터 인파로 설레이고있었다. 온 병마도감의 장공인들뿐아니라 그들의 식솔까지 천균노의 위력사격을 구경하러 모여든것이였다.

불치의 병으로 병석에 누워있던 박원작은 깡그리 기력을 모아 서기산골안으로 나왔다.

다들 그러하듯 판북계병마사 최충과 서경류수 황보영도 눈물을 머금고 뼈만 남았으나 거포를 틀어잡은 전복차림의 박원작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하였다.

박원작은 자꾸만 눈앞에서 별찌가 일고 때로는 세상이 온통 암흑인듯 캄캄해지군 하였지만 휘청거리는 몸을 초인간적인 힘으로 지탱하며 천균노곁에 다가섰다.

이제는 배가 아프다 못해 얼얼하다.

손에 잡은 거포는 천근인듯 무거운데 그는 그 무게를 나라의 중임을 맡고있다는 느낌으로 받아들이였다.

성돌같이 잘 다듬어진 큰 돌로 든든하게 쌓은 포가우에 틀지게 실려있는 두문의 천균노를 지켜보는 그의 눈에서는 고요히 눈물이 흐르고있었다.

얼마나 많고많은 사연을 안고있는 천균노인가. 천균노를 위해서 메득이는 젊은 목숨까지 바쳤다.

황금빛을 머금은 웅자스러운 천균노는 오늘만이 아닌 후세들에게도 이렇게 깨우칠것이다. 강력한 병기를 만들어내는 일이자 그것을 지켜내기 위한 싸움이라고…

박원작은 눈길을 들어 앞쪽을 바라보았다.

골안의 막바지중턱에 아름드리 바위돌들로 길높은 성벽을 몇십보길이로 쌓아놓았다. 성벽이 끝나는 한켠에는 적군이 성을 칠때면 흔히 쓴다는 집채같은 충차 두대가 서있다.

바로 그것들이 오늘 두문의 천균노가 일격에 짓부셔버려야 하는 과녁물이다.

이제는 고구려의 천균노가 어떤 위력한 병기인지 잘 안겨온다.

고구려군은 천균노로 적의 성루보다도 적의 병기(기마전차)를 요정냈을것이다.

그때의 오랑캐군은 단숨에 상대의 진을 기습할수 있는 병기를 제일가는 병기라고 뽐냈다. 하기에 적군은 고구려를 치는데 수백수천개의 병기를 들이밀었다.

고구려는 적이 뽐내는 병기를 단매에 짓부셔버릴수 있는 천균노가 소용되였을것이다.

하여 그 시절의 천균노는 3만근의 무게를 가진 거대한 화포였지만 염초를 쓰다보니 그 위력이 화약을 쓰는것만 못해 백근정도의 돌탄밖에 날리지 못했을것이다. 그때의 천균노가 백근정도의 돌탄을 수백보 멀리로 날려보냈으면 적의 병기를 단매에 짓부셔버릴수 있다.

그러나 고려의 천균노는 염초가 아니라 화약을 쓰는 우점으로 하여 고구려때의 천균노보다 그 위력이 비할바없이 크다. 고려의 천균노는 수백근짜리 돌탄을 무려 천보나 멀리 날릴수 있어 적의 병기나 충차정도가 아니라 그 어떤 성루라도 짓부셔버릴수 있다.

이제 우리가 만든 고려의 천균노가 어떤 병기인지 천하가 알게 될것이다.

박원작의 눈길은 천균노를 지켜보는 사람들에게로 옮겨졌다.

스승 최충과 서경류수 황보영, 김충지와 리순일병마부사… 근달이네 부자며 번기, 능산이, 군만이, 텁석부리 같은 장공인들… 아들을 업고나온 해연이, 메득이의 안해 설영이, 향분이같은 녀인들… 이름은 알수 없으나 낯익은 얼굴들이 보였다.

반가운 얼굴들이 또 있다. 그들은 절령역관지기와 그의 아들 일랑이의 얼굴들이다.

서경에서 홀로 살던 녀인이 절령역관지기와 한생을 같이하기로 마음을 먹고 그 험한 곳으로 자진하여 갔다니 정말 아름다운 소행이 아닐수 없다.

그들에 이어 뜻을 이루고 돌아올 이 아들을 기다리고계실 어머니와 딸 죽화의 얼굴도 보이였고 천균노가 성공했다는 표문을 받아보고 기뻐할 임금과 태제전하 그리고 서눌시중과 황주량평장사들의 얼굴들도 떠올랐다.

어찌 그들뿐이랴.

형체를 모르는 천균노는 만들수 없다고 임금앞에서까지 반기를 들었던 리자연의 얼굴도 보였다. 그가 뒤늦게나마 자기의 잘못된 생각을 깨닫고 천균노를 빨리 만들어내라고 병마도감에 적지 않은 쌀과 천을 보내주었으니 실로 다행스런 일이 아닐수 없다.

용서받을수 없는자가 있다면 그놈은 이미 지은 죄로 하여 천벌을 받은 남권부이며 또한 그를 죄악의 길로 떠민 리자봉이다.

이제 리자봉의 죄행이 조정에 알려진다면 누구보다도 그의 형인 리자연이 동생을 가만두자 안할것이다.

아, 나라의 리익보다 제집의 리익을 앞세우는 그런 추물들이 더는 생겨나지 말아야겠는데…

이윽고 그는 뭉게뭉게 흰구름이 떠도는 북쪽의 하늘을 쳐다보았다.

머지않아 이 나라의 북방에 천리장성이 자기의 완성된 모습을 드러낸다니 고려의 국력은 무궁무진하다고 할수 있으리라.

박원작은 다시한번 주위를 둘러보고나서 골안을 향해 웅장한 포신을 쳐든 두문의 천균노에서 시선을 멈추었다.

그의 손에 쥔 거포가 서서히 우로 솟구쳤다.

그를 신호로 하여 십여명의 장공인들이 달려나와 천균노들에 달라붙었다.

그들은 여느때와 달리 근엄한 안색으로 조심스럽게 화약을 다져넣고 수백근짜리 돌탄을 재웠다.

그들을 주시하던 박원작은 거포를 내리휘두르며 목청껏 웨쳤다.

《쏘앗!―》

비록 그의 웨침은 이전과 달리 크지 못했지만 장공인들은 골안이 떠나갈듯한 벽력소리로 느끼였다.

꽝― 꽝―

두방의 포성이 천지를 진감하며 골안에 메아리쳤다.

손에 땀을 쥔 사람들은 지심을 울리며 가을하늘로 날아오르는 돌탄에로 일제히 눈길을 주었다.

하늘을 물어뜯을듯 무서운 기세로 날아오른 두개의 돌탄은 순식간에 골안의 막바지중턱에서 요란한 굉음을 일으키면서 먼지기둥을 공중으로 타래쳐올렸다.

사람들은 곧 먼지기둥이 사라진 그곳에서 길높은 성벽이 물먹은 담벽마냥 땅바닥에 주저앉은것을 볼수 있었다.

순간 사람들은 《와―》 환성을 지르며 어깨들을 으쓱했다.

최충은 너무 기뻐 앞을 가리는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보오, 박공은 해냈소. 해냈단 말이요!》

황보영도 눈굽을 문대며 대꾸했다.

《난 대단하다는 말밖에는 더 적중한 말이 떠오르지 않소이다.》

최충은 여전히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

《이로써 우리 고려는 이 세상 그 어느 나라도 가져보지 못한, 아니 꿈도 꾸지 못하는 천균노를 가진 강국이 되였소. 이젠 그 어떤 적이 달려든대도 두렵지 않소.》

《옳소이다. 내 한생에서 서경류수로 있는 오늘처럼 뜻깊은 날은 없을거외다. 난 우리 나라에서 제일먼저 천균노의 위력을 본 그 한사람이 되였소이다.》

최충과 황보영이 서로 손을 잡고 기뻐할적에 박원작은 비오듯 눈물을 흘리며 다시금 있는 힘을 다해 거포를 추켜들었다.

《적의 충차를 향하여!―》

장공인들이 잽싸게 손을 놀려 천균노들에 돌탄을 재워넣었다.

《쐇!―》

박원작의 구령에 이어 또다시 두문의 천균노가 골안을 우뢰쳤다.

꽝― 꽝!―

쏜살같이 허공으로 날아오른 두개의 돌탄이 어느새 골안의 막바지로 팔매선을 그었다.

사람들은 곧 두개의 충차가 단숨에 형체마저 없어지는 장쾌한 모습을 볼수 있었다.

와― 와―

인파는 기쁨과 흥분으로 마냥 설레이고 골안이 떠나갈듯 환호성이 울렸다.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박원작을 바라보는 최충의 얼굴에서도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고있었다.

다년간의 쌓이고쌓인 과로로 하여 골병에 든 박원작은 며칠 더 살지 못할것이다.

비록 그의 한생은 길지 않지만 나라를 위해 쌓아올린 공적은 영원할것이다.

그가 어떻게 남다른 장거를 이룰수 있었던가.

그것은 단지 아버지가 못다한 일을 끝까지 다하려는 효도의 마음만이 분출해서가 아니다. 바로 전란을 미리 막고 겨레를 흥하게 하려면 평온한 시기에도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있기에 아버지처럼 살수 있은것이리라.

장하도다. 애국충신 박원작아!…

길이길이 전해져갈것이다.

CAPTCHA Image
가+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