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균노


제 4 장

9


어느덧 선기가 났다. 지겨운 복더위가 쫓겨가고 가을이 찾아온것이였다.

박원작은 날로 여위여갔지만 일하는 정신에 아픔을 이겨내고있었다.

반묘는 그에게 있어서 불사약과도 같은 효험이 있었다.

반묘를 보았을 때 그의 눈은 머루알같이 새까만 아이들 눈처럼 생기를 내뿜었고 웃음이 가득하였다.

박원작은 지체없이 반묘를 가지고 새 화약을 만드는 일에 달라붙었다.

이미 그는 종전의 화약은 그 량이 늘어날수록 불심지에서 퍼지는 불을 고르게 받지 못할뿐더러 먼저 타는 화약의 터지는 힘에 의해 적지 않은 량의 화약을 뿌려버림으로써 자기 위력을 다 낼수 없다는것을 밝혀내였다.

염초를 단번에 태우려면 숯가루와 반묘가루가 조화를 부려야 함을 그는 잘 알고있었다.

박원작은 지루한 장마기간 락심하지 않고 그것들의 제일 적합한 배합비률을 밝혀내기 위한 묘안을 짜놓았다.

첫째로는 염초 7할(70%)에 버드나무숯과 반묘를 각각 1. 5할, 둘째로는 염초 8할에 버드나무숯과 반묘를 각각 1할, 세번째로는 염초 7할에 버드나무숯 2할, 반묘 1할 그리고 마감으로 염초 8할에 버드나무숯을 1. 5할, 반묘 0. 5할로 섞어 시험할 생각을 굳히였다.

박원작의 일손을 남권부와 돌석이 곁에서 거들어주었다. 그들의 도움으로 박원작은 하루만에 네가지 화약을 한섬씩 만들수 있었다.

박원작은 돌석이의 의견을 받아들여 새로 만든 화약의 비방을 엄수하기 위하여 네가지 화약에 차례로 《갑》, 《을》, 《병》, 《정》의 이름을 붙였다.

그는 네가지 화약의 위력을 뢰등석포로 시험할 생각이였다. 시험을 조용히 치르고싶어서보다 아버지의 죽음을 참작해서였다.

만일 수십근이나 되는 화약을 천균노에 넣고 불을 달았다가 뜻대로 화약의 위력이 커지는 경우 어떤 봉변을 당할지 어이 알랴.

아버지는 새로 만든 화약의 위력을 타산하지 못한탓에 참변을 당했다고 할수 있다. 또다시 피를 흘려서야 되겠는가.

박원작은 극히 제한된 사람들만 모여 새로 만든 화약의 시험을 하기로 하였다.

가을은 천고마비의 계절이라더니 시험 당일날의 가을하늘은 동전만한 구름 한점 찾아볼수 없이 맑고 창창하였다.

박원작은 부축하려는 돌석이를 먼저 병마도감의 뒤골안으로 떠나보내고 지팽이에 의지하여 천천히 걸었다.

몸은 비록 병이 들어 발걸음마저 천근만근처럼 무거웠지만 마음만은 날아갈듯 가벼웠다.

마음이 가벼운데 어찌 남에게 부축되여 더우기 뜻을 펴게 될지도 모르는 그곳으로 이끌려가겠는가.

오늘의 순간순간을 몇순간 맞잡이로 여겨 숨도 쉬고 걸음도 옮겨야 한다.

뒤골안에 이르니 남권부와 돌석이 벌써 만단의 차비를 다 갖춰놓고있었다.

남권부는 보건대 그도 오늘만큼 기쁜 날이 없는것 같았다. 너무 기뻐서인지 그의 얼굴이 웃는 상인지 울상인지 알수 없었다.

사실 그랬다.

남권부는 중병을 앓는 박원작 앞에서 내놓고 웃을수가 없어 그렇지 속으로는 배꼽을 오르내리며 흐드러지게 웃고있었다.

이제는 박원작이 성쌓고 남은 돌 신세가 되고말았다. 남권부는 그토록 나라의 제일가는 보배라 할수 있는 화약을 만드는 비방을 이젠 다 알아냈다고 할수 있다.

그렇게 가지고싶었던 화약의 비방을 송두리채 움켜잡았으니 병마도감사정도가 아니라 군기감, 더 나아가서는 나라의 병권까지도 한손아귀에 거머쥘수 있을것이다 하고 남권부는 생각하였다.

《남공! 시작해보는게 어떻소?》

남권부는 박원작의 물음에 흐뭇한 심정을 누를길 없었다.

박원작이 나를 둘도 없는 친구로 믿는게 틀림없다. 하긴 그러니까 그전같으면 생각할수도 없었던 염초장을 제집 드나들듯 하게 해주었겠지.

오늘일이 순조롭게 된다면 래달에는 리자연이한테로 돌아가리라.

남권부는 속심과는 달리 박원작에게 친절히 평상을 권하고 근달에게 분부했다.

《련장행수가 일을 주관하게.》

근달은 병마도감사랍시고 박원작의 앞에서 행세를 하려는 남권부를 보기 쓰거웠지만 감정을 누르고 장공인들에게 소리쳤다.

《〈갑〉과 〈을〉을 각기 뢰등석포들에 재우라!》

돌석이 주동이 되여 두문의 뢰등석포에 《갑》과 《을》이라 부르는 화약을 따로따로 장약했다.

박원작은 돌탄을 밀어넣은 뢰등석포들에 불을 달려는 돌석이를 제지시켰다.

《가만!》

남권부는 웬일인가 하여 박원작을 바라보았다.

《불을 달면 다들 멀찌감치 뢰등석포에서 물러나야겠네.》

그의 뜻을 알아차린 돌석이 장공인들에게 알렸다.

《다들 몇십보 뒤로 물러나시오!―》

돌석은 장공인들이 멀리 물러나서야 불심지에 화심을 가져다댔다.

뒤로 멀찌기 물러앉은 박원작의 긴장한 시선이 불심지들을 지켜보고있었다.

과연 《갑》, 《을》, 《병》, 《정》의 네 처방중에서 뜻을 이루어줄 명처방이 나오겠는지…

불심지에 불을 단 남권부가 종주먹을 쥐고 뒤로 달아나는데 거의 동시에 꽈―꽝!― 하는 요란한 포성이 울렸다.

그 순간 번개치듯 번쩍 불을 토하며 아름드리돌탄들이 하늘로 솟구쳐올랐다. 하늘로 솟구쳐오른 두개의 돌탄은 쏜살같이 골안으로 날아갔다.

골안을 따라 들어가며 백보간격으로 회가루를 뿌려놓아 누구나 돌탄이 날아가는 거리를 어렵지 않게 가려볼수 있었다.

두개의 돌탄은 허공을 헤가르며 여러개의 표식선을 날아넘었다.

마침내 골안의 막바지에서 두개의 흙먼지기둥이 솟구쳤다.

그 순간 와― 하는 환성이 터져올랐다.

박원작은 평상에서 벌떡 일어나 장공인들처럼 환성을 질렀다.

이거야말로 성공이 아닌가. 성공이 이렇게 빨리 올줄 어이 알았으랴.

반묘야말로 화약의 비방이라고 할수 있었다. 부모님들이 아니였다면 꿈같은 오늘을 볼수나 있었겠는가.

남권부는 새로 만든 화약의 위력앞에 입을 딱 벌렸다.

이전의 화약으로 뢰등석포를 쏘았을 때는 오륙백보를 날아넘은 돌탄이 지금은 골안의 막장에까지 가닿았다. 그러니 팔백보는 넉근하다.

남권부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박공! 어떻소? 뜻대로 되였소?》

박원작은 가슴이 터질것만 같은 흥분을 애써 누르며 겨우 입을 열었다.

《〈병〉과 〈정〉을 마저 보고…》

《암, 그래야지.》

남권부는 사기가 나서 목청을 돋구었다.

《다들 뢰등석포에롯! 〈병〉과 〈정〉을 재우라!》

돌석이 장공인들을 이끌고 달려나가 뢰등석포들에 달라붙었다.

이번에도 돌석이가 화심을 집어들고 뢰등석포들에 불을 달았다.

박원작은 가슴을 조이며 불심지가 타드는 뢰등석포를 지켜보았다.

이번엔 어떤 결과를 가져올런지…

꽈―꽝!―

번개처럼 날아오른 두개의 돌탄은 바람을 짓부시며 공중에 포물선을 그었다.

이번에도 골안의 막바지에서 두개의 흙먼지기둥이 솟구쳤는데 하나는 좀더 뒤쪽에서 치솟았다. 《병》을 재워 쏜 돌탄같았다.

박원작은 누구에게라 없이 물었다.

《저게 분명 〈병〉이지? 더 멀리 앞에서 솟구친것 말이요?》

환성을 올리던 장공인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옳소이다. 〈병〉이 틀림없소이다.》

박원작은 주먹을 내휘두르며 소리쳤다.

《〈병〉이 바로 우리가 바라는 화약인것 같애.》

또다시 장공인들이 환성을 터치였다.

박원작의 두눈에 핑그르르 눈물이 돌았다.

아버님! 이젠 됐소이다. 염초 7할에 버드나무 숯 2할 거기에 반묘 1할을 섞은 화약을 드디여 만들어냈소이다.

이것이면 얼마든지 천균노의 위력을 보여줄수 있소이다.…

박원작의 눈길이 뢰등석포곁에서 웅장한 몸집을 자랑하는듯한 천균노에로 옮겨졌다. 먼저번 사격시험에서 실패한 후 그냥 그자리에 놓아두고 파수를 세운 천균노였다.

그는 지금 당장 천균노를 쏘지 않고서는 견딜것 같지 못했다.

하루를 몇달맞잡이로 아껴야 할 오늘이고 보면 어찌 한시인들 시간을 허비할수 있으랴.

《남공! 천균노를 쏘았으면 하네.》

그렇지 않아도 천균노를 곁눈질하며 저것도 쏘아보았으면 하던 남권부는 자기 마음을 알아주는 그 말에 입이 가로 돌아갔다.

남권부는 화약이 담긴 요자를 안아들며 소리쳤다.

《다들 못들었나? 〈갑〉부터 천균노에 재워야겠어.》

장공인들이 사기가 나서 천균노에 달라붙었다.

돌석은 제가 직접 긴 장대모양의 화약다지개를 포아가리로 들여밀어 화약을 꼼꼼히 다져넣었다.

격목을 맞춘 천균노에 300근짜리 돌탄이 재워졌다.

박원작은 화로에서 시뻘겋게 단 화심을 집어들었다.

《불은 내가 달겠네.》

남권부는 병든 몸으로 천균노에 불을 달겠다는 박원작이 마음에 놓이지 않아 고개를 저었다.

《박공! 그저 지켜만 보게.》

《아니, 이제 내가 몇번이나 이렇게 할수 있겠나. 그러니 날 말리지 말게. 자 어서들 물러나게. 빨리!》

사람들이 뒤로 물러서자 박원작은 천균노에 불을 달았다.

치익―

박원작은 불심지에 불이 타드는 소리를 들으며 장공인들쪽으로 물러섰다.

이어 땅이 움씰하는 순간 지동을 치는 요란한 포성이 울렸다.

박원작은 골안을 뒤흔드는 포성에 귀가 멍멍했지만 두눈을 똑바로 뜨고 하늘을 물어뜯으며 짓쳐나는 거대한 돌탄을 바라보았다.

돌탄을 쳐다보는 순간순간이 그대로 온몸이 쫄아드는듯 하였다.

제발 좀더 좀더…

너무 흥분한탓인지 갑자기 눈앞이 뿌잇해지며 돌탄이 보이지 않았다.

(?!…)

와!―

박원작은 장공인들의 격찬 환호성에 돌탄이 멀리 날았음을 직감했다.

그러니 뜻대로란 말이지.

박원작은 너무 큰 기쁨이 갈마들어 가슴이 두방망이질을 했다.

중심을 잃은 그는 휘청거렸다.

돌석이 제꺽 박원작을 부축했다.

《보셨지요? 칠백보를 넘었소이다.》

남권부도 박원작을 부축하며 부르짖었다.

《박공! 끝내 해냈어. 해냈단 말일세!》

박원작은 눈물을 글썽대는 남권부를 마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나 좋은 벗인가. 뜻을 같이하는 이런 벗이 있기에 오늘이 있는것이다.

눈물을 흘리며 느끼는 남권부의 기쁨은 박원작이 생각하는 그런 기쁨이 아니였다.

남권부는 서경살이 여러해에 처음으로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있었다.

그는 자기의 신상에 찾아든 행운이 너무도 커서 하루종일이라도 울고싶었다.

그는 이어 《을》의 화약을 넣고 다음사격준비를 서두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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