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균노


제 4 장

8


김충지는 아침부터 대동문앞의 강가를 거닐고있었다. 오늘 오전 이곳에서 리순일과 만나기로 약속되여있다.

김충지가 약속된 시간보다 먼저 나와 대동강가를 거니는것은 그동안 심국종을 살피면서 걷어쥔 단서들을 돌이켜보고싶어서였다.

어제밤에도 김충지는 요 며칠새 그러하듯 피에 주린 모기떼의 성화도 마다하고 보통문근처에 있는 심국종의 거처지를 살피였다.

자루속의 송곳은 감출수 없고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분명 속에 딴마음을 품은 심국종의 정체는 한겹한겹 벗겨졌다.

심국종이 저는 밤이슬에 흥미가 없는듯 부처처럼 골방에 공손히 들어앉아있다지만 그의 심부름군은 사방에 빚받으러 다니는 빚놓이군처럼 밤이면 장안의 골목들을 개싸다니듯 하였다.

늘 검은 옷을 입고 두눈알만 내놓은 검은 복면을 쓴 그놈은 도적고양이처럼 어찌나 날랜지 매번 종적을 놓치군 하였다. 대개는 경상골에서 때로는 고리문근처에서 꼬리를 사리는 그놈이 도대체 무슨짓을 하려는것일가.

매번 그놈의 종적을 놓치긴 하였지만 그놈의 체격만은 눈을 감고도 그려낼수 있다. 키는 심국종이만한 난쟁이인데 어찌 보면 몸집이나 행동거지가 그와 비슷했다.

혹시 심국종이 제 동생을 심부름군으로 달고온것은 아닌지…

그 의문은 이제 곧 리순일이 나타나면 깨끗이 풀릴것이다.

리순일은 이번에 만날 때까지 심국종의 래력을 알아오겠다고 하였다.

심국종에겐 또 다른 심부름군도 있다.

리순일의 친구라는 서경류수부의 판관이 남권부네 집 사환군을 문초하여 알아낸것인데 중차림을 한 사람이 언제인가 심국종의 심부름으로 한낮에 남권부를 찾아왔다고 한다.

그래서 눈을 밝혔더니 아니나다를가 전번 병마도감이 쉬는 날 심국종의 집에서 키작은 갓쓴 중이 나와 남권부의 집을 찾아갔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그 중이 남권부의 집에 무엇인지를 전하고 심국종의 집으로 되돌아갔는데 다시는 집밖으로 나오지 않은것이였다.

이야말로 수수께끼가 아닐수 없다.

하여간 심국종이 그자가 구미여우 한가지로 교활하기 짝이 없다.

심국종의 뒤를 밟으면서 아직도 풀지 못한 의문은 그자가 돈이 어데서 나기에 장공인들에게 쌀이며 닭같은것을 때없이 부조할수 있겠는가 하는 그것이다. 심국종이 병마도감에서 타는 돈만으로는 어림도 없다.

그것도 이제 리순일을 만나보면 어느 정도 알아낼수 있을것이다.

심국종의 정체를 밝혀내는데서 절령의 역관지기가 한몫했다.

보름전 절령역관지기의 아들 일랑이 구리방울이 세개 달린 공문서를 가져왔는데 뜯어보니 뜻밖에도 이런 글이 씌여있었다.

《주인님이 관심을 가진 서경물산을 만드는 비방을 곧 살수 있다고 봅니다. 〈대동관〉의 주인이 중병에 걸려서 남에게 서경물산을 만드는 일을 맡아보게 했습니다. 불원간 남이 그 비방을 물려받아가지고 서경물산을 만들것입니다. 그러면 일은 뜻대로 될수 있을겁니다. 인차 기쁜 소식을 보내겠습니다.》

김충지는 아리숭한 글이 씌여진 공문서를 들고 리순일병마부사를 찾아갔었다.

두사람의 지혜를 합치니 글뜻을 어렵지 않게 풀어낼수 있었다.

《대동관》의 주인이란 박원작이였고 남이란 곧 남권부를 가리키는것이니 《서경물산》은 화약으로, 《서경물산》을 만드는 비방은 화약을 만드는 비방으로 통했다.

주인님이란 곧 리자봉을 의미했다.

공문서를 해득하니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나왔다.

리자봉은 화약을 만드는 비방을 손에 넣으려고 하고있으며 남권부는 중병에 든 박원작이 자기에게 화약의 비방을 배우게 한 이 기회를 절호의 기회로 여긴다는것이였다.

리자봉이 화약의 비방을 뽑아서는 무엇을 하려는가. 병마부사가 그에 대한 답을 주었다.

판북계병마사의 말에 의하면 개경에서 어떤자들이 남몰래 나라의 병기고에서 화약과 《신기한 병기》를 뽑아내여 다른 나라 장사군들에게 팔아먹고있다.

김충지도 최충에게서 그런 말을 들은적 있었다.

그러고보면 저희들의 치부를 위해 나라의 중요한 병기를 뽑아내여 팔아먹는자들은 권세도 있고 다른 나라 장사군들과 거래도 할수 있는 벼슬아치들이다.

례빈성의 판사인 리자봉이라면 얼마든지 그런짓을 꾸밀수 있을것이다.

리자봉이 어벌차게도 화약의 비방까지 뽑아내여 다른 나라에 팔아먹자는건 반역에 속하는 큰 죄가 아닐수 없다.

그의 형인 리자연은 조정대신으로서 임금의 총애를 받고있는데 그런 집안에서 역적이 나오다니…

하긴 한집안에서 충신도 역적도 나올수 있다는 말도 있다.

김충지는 공문서를 통하여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는 처음 밀봉한 공문서를 뜯어볼 때 그 글을 남권부가 썼음을 믿어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다시한번 글줄을 뜯어보니 남권부의 글체가 아니였다.

김충지는 각성을 가지고 남권부를 대하다보니 그의 필적까지 알고있었다.

남권부의 글체는 늘 오른쪽으로 누운데다 활달한데 왜서인지 《날 일》자를 《말할 왈》자처럼 썼다. 그런 습관은 못고치는 법이다. 허나 공문서의 글들은 정자이고 《날 일》자도 정바르게 썼던것이다.

병마도감에 돌아와 은밀히 사람들의 필적을 조사하니 심국종이 걸려들었다. 공문서를 꾸민 장본인은 심국종이였다.

김충지는 가짜 공문서를 꾸민 심국종이 제가 직접 역참에 부쳤는가를 확인하기 위하여 병마도감에서 가까운 운봉역참에 나가보았다.

운봉역참은 병마도감에서 공문서를 부치는 역이였다.

운봉역참의 역관지기는 키가 작달막하고 얼굴이 가무잡잡한 사람이 병마도감사의 인장이 박혀있는 공문서를 띄우라는 문서를 들고와 공문서를 부치군 하였다고 증언했다.

심국종 그놈이 공문서를 띄우는 나라의 법을 무시하고 그런 망탕짓을 하다니…

공문서를 띄우는 절차는 엄격했다.

개경의 관청들에서 지방고을들에 공문서를 띄우려면 작성한 공문서를 먼저 백관을 통솔하는 상서도성에 보내야 한다.

상서도성에서는 공문서가 조정의 뜻에 맞게 작성되였는가를 따져보고 바로 되였을 경우에만 아래에 내려보내도록 허락한다.

고을들에서는 고을원이 공문서를 작성하여 가까운 역참에 띄워 개경에 올려보낸다.

병마도감에서는 병마도감사가 부재중인 경우에만 그를 대리하는 소감이 공문서를 작성하여 우에 보낼수 있다.

그런데 일개 장공인에 지나지 않는 심국종이 공문서를 띄웠으니 이런 무법불법이 어데 있단 말인가.

그 죄만 따져도 심국종은 정배살이를 면할수 없다.

이제는 심국종의 정체를 어느 정도 짐작할수 있다. 그놈은 리자봉의 끄나불로서 화약의 비방을 뽑아내여 다른 나라에 팔아먹으려 하는 상전과 공범하는자이다.

바로 그 본색을 가리려고 심국종은 잠입한 녀진사람들속에 천균노를 해치려는 나쁜 놈이 배겨있다고 말했을것이다.

김충지가 수일내로 심국종을 붙잡아치워야겠다고 벼르고있는데 등뒤에서 리순일의 목소리가 울렸다.

《김공! 오래 기다렸나?》

김충지는 너무도 반가와 리순일의 손을 덥석 잡았다.

하루만 만나보지 못해도 열스무날 헤여져 산 사람처럼 그리워지는 그였다.

《심가놈의 래력을 알아왔소이까?》

리순일은 너부죽한 얼굴에 미소를 담고 김충지의 손을 흔들었다.

《원, 성미두. 우물에 가서 숭늉 찾겠는걸!》

《어디 급하지 않게 됐소이까. 그놈이 무슨 일을 칠지 모르겠는데.》

《허― 자네 줌안에 들어있는 놈이 무슨 일을 치겠나. 그건 그렇고. 개경에서 그놈의 래력을 적은 공문서를 보내왔네.

심가 그놈은 개경태생이 아니고 명주(강릉)에서 일여덟살때 홀아비인 애비의 등에 업혀왔다는거요. 그놈한테는 후에미도 다른 형제들도 없소.》

김충지는 밤에 복면을 쓰고다니는 그자가 심국종의 동생이 아님을 확신했다. 그렇다면 심가 그놈이 변신술을 쓰는건 아닐가.

《그놈의 애비는 등치고 간빼먹을만치 간사한자인데 개경에 올라와 어느 재상집 사환자릴 얻어가지고 상전을 등대고 갖은 못된질로 재물을 긁어들였다고 하오.》

김충지는 또 한가지 심국종이 물쓰듯 하는 돈이 죄다 아비의 돈주머니에서 흘러나왔음을 짐작했다.

심국종은 바로 자기의 진속을 숨기려고 장공인들에게 인심을 썼을것이다.

《제 애비를 꼭 게워놓은 심가놈은 능갈치고 둘러맞추는 재간이 신통해서 일찌기 리자봉의 눈에 들어 그 집에서 사환질을 했다고 하오. 그후 놈은 리자봉의 주선으로 군기감의 리속으로 들어갔다가 여기 병마도감으로 왔소.》

《아, 알만 하오이다. 심가놈은 아마 군기감에서 화약이며 〈신기한 병기〉들을 빼내다 리자봉이한테 바쳤을겁니다.》

《옳게 봤소. 그건 그렇고, 자넨 천균노를 어느 놈이 해쳤다고 생각하오?》

김충지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그는 이전부터 천균노를 해친 놈이 숯고간에도 불을 지르고 메득이도 죽였다고 생각하고있었다. 그렇지만 그놈을 밝혀내는 그 어떤 실마리도 가지고있지 못했다.

《아직은… 모르겠소이다.》

《내 생각엔… 화약의 비방을 노리는 놈과 천균노를 해친 놈을 갈라보아선 안되겠다는거요.》

그 말에 김충지의 두눈에서 번쩍 불이 일었다.

화약을 노리는 심가 그놈이 왜 없는 열성을 부렸겠는가. 그때 그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나무토막쯤은 거푸집에 집어넣을수 있다.

리순일은 고개를 수그리고 이를 가는 김충지의 어깨우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자네 여우가 개울을 거의다 건너가서 꼬리를 적신다는 말 알지?》

동서고금의 숱한 책을 읽은 김충지가 그 말뜻을 어찌 모르랴.

세상에 여우만큼 꼬리를 귀히 여기는 짐승도 쉽지 않을것이다. 하기에 여우는 개울과 맞다들리면 꼬리가 젖을세라 잔뜩 꼬리를 쳐들고 헤염을 치는데 그래서 곧 힘이 빠지고만다. 힘이 빠지게 되니 그리도 아끼는 꼬리라지만 물에 떨구고만다.

하듯이 나쁜짓을 꾸미는자들은 꼬리를 밟힐가 무진애를 쓰지만 종당에는 맥을 잃고 본색을 드러내기마련이라는것을 여우꼬리에 비유한것이였다.

《자네가 그 말뜻을 모를리 없지. 깊이 숨어 못된짓을 꾀하는 나쁜 놈들을 잡아내자면 그놈들이 생각할수 없는 구석을 알아야 하네.》

김충지는 고개를 쳐들었다.

《한가지 의문스러운것은 만일 심가놈이 천균노를 해쳤다고 가정한다면… 화약의 비방이나 조용히 뽑아가면 되겠는데 무엇때문에 천균노를 해치는 무모한짓을 저질렀는가 하는 그것입니다.》

리순일이 무릎을 쳤다.

《바로 그거요. 그걸 풀어내야 심가놈의 정체를 다 밝혀냈다고 할수가 있소.》

김충지는 다시 고개를 떨구고 생각을 더듬었다.

이윽고 그는 머리를 들었다.

《병마부사님! 제 생각엔 그걸 풀어내자면 두가지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보오이다.

하나는 심가놈의 모든 움직임을 놓치지 말고 살피는것이고 다른 하나는 개경에 사람을 파해 심가놈의 애비에 대해서 더 깊이 파고들어야 하오이다.》

리순일은 김충지의 손을 꼭 잡아쥐였다.

《배짱이 맞아. 바로 그거요, 그것! 그래서 난 오늘아침 개경에 남아있는 북계병마판관에게 급히 심국종의 애비를 건드려보라는 공문서를 띄워보냈소. 방울을 세개씩이나 달아서 말이요.》

김충지는 앞질러 일처리를 한 리순일을 존경어린 눈길로 쳐다보았다.

이런 사람과 손을 잡았으니 무슨 수수께끼인들 풀어내지 못하겠는가.

《어참, 이 정신 보지. 간밤에 말이요. 군사들이 반묘를 실어왔소.》

《그렇소이까?》

김충지는 환성을 올렸다. 그는 밤새 심국종의 집가까이에서 그자를 살피다보니 그 일을 알수 없었다.

《이젠 됐소이다. 반묘때문에 박공이 그토록 근심했는데…》

《김공! 자네의 싸움은 이제부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요. 반묘가 왔으니 심가놈이 크게 움직일거요.

난 심가 그놈이 결코 리자봉이만을 위해서 그런짓을 한다고 생각지 않소. 그놈은 나라에 몹시 위험한 놈이요.》

김충지의 두주먹이 불끈거렸다.

《념려마시오이다. 제 꼭 그놈의 덜미를 잡아내서 화약의 비방도 천균노도 지켜내겠소이다.》

《그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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