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균노


제 4 장

7


가물끝에 큰비가 온다고 이해가 그러했다. 올해는 봄내 가물고도 부족하여 보리장마까지 지지 않았다.

사방에서 비를 내려달라고 기우제를 지냈더니 실컷 먹어라 하는듯 폭우가 들씌워졌다. 련 사흘째 줄곧 퍼붓는 폭우에 사람들은 아우성을 쳤다.

대동강은 범람하는 강물로 하여 날바다를 련상시켰다.

나흘만에 잠시 비구름이 걷혔던 하늘은 또다시 심술궂은 먹장구름으로 뒤덮였고 이어 쏟아지는 대줄기같은 무더기비에 천하는 몸부림을 쳤다.

박원작은 매일같이 밖을 내다보며 가슴을 조이였다.

제발이지 그만 비질을 끝내주렴.

그의 간절한 마음을 느끼였는지 장마비는 열흘이 지나서 기세를 숙이더니 마침내는 구멍이 펑 뚫린 구름사이로 파아란 하늘이 드러났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기뻐들 하였다.

해를 보고 제일 반가와하는 사람은 박원작이라고 해야 옳을것이다.

비가 멎었으니 경주에 간 군사들이 마음놓고 귀로에 올랐을게다.

박원작은 가벼운 마음으로 염초장으로 나갔다.

오늘은 날이 들었으니 염초를 달여내기에는 그저그만이다.

박원작이 염초장에 들어서니 염초를 달여낼 차비를 하던 장공인들이 일손을 멈추고 인사를 차렸다.

《병마도감사님! 밤새 편안하셨소이까?》

박원작은 매번 그러했듯 장공인들에게 깍듯이 맞절을 하였다.

《그대들도 밤새 편안하셨소?》

《고맙소이다.》

《오늘은 한바탕 땀을 내여봅시다.》

박원작은 장공인들에 이어 뜨락을 둘러보았다. 뜨락의 한켠에는 어른들의 키만한 큰 독들이 수십개나 놓여있었다.

그 독들마다에는 구재처럼 맵거나 쓴 흙들과 벼짚재를 섞고 그속에 맹물을 넣어 받아낸 염수(염초물)가 가득가득 차있을것이다.

그동안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속에서도 뜨락에 비가림을 해놓고 마련한 염수였다.

큰 독들앞에는 열댓말들이의 큰 가마가 여러개 걸려있었다.

돌석이 말했다.

《병마도감사님! 일을 시작하겠소이다.》

박원작이 고개를 끄덕여보이자 그는 큰 독으로 가면서 소리쳤다.

《자, 다들 달라붙어 제꺽 〈안부〉부터 해놓고 〈기화〉를 합시다.》

《안부》란 독에 받아놓은 염수를 가마에 넣으라는것이고 《기화》란 소리는 가마에 불을 지피라는 뜻이다.

장공인들이 독들에서 목통에 염수를 퍼담아 가마에 쏟아붓고있는데 그제서야 남권부가 나타났다.

그는 미안한 기색을 지으며 박원작에게 말했다.

《박공, 늦어 안됐소. 아침밥이 늦어지는 바람에 그만…》

박원작은 웃음을 지었다.

《장공인들처럼 일찍 나오기가 힘들지. 오늘은 독에 받아두었던 염수를 달여 염초를 얻어내는 날이니 여느날보다 주의깊게 살펴야겠소.》

《알겠네.》

남권부는 뜨락에 우뚝 서서 장공인들을 지켜보기만 하였다.

그는 요즘에 와서 날마다 염초장에 나오기는 하지만 언제한번 팔소매를 걷어붙이고 장공인들과 휩쓸려 일한적 없었다.

아무일이나 눈에는 익어도 손에는 설다는 말이 있다.

박원작은 굳이 남권부가 일손을 잡도록 요구하지 않았다.

지금껏 손가락 하나 까딱치 않고 살아온 그가 갑자기 일을 할리 만무였다. 염초를 만드는 일이 몸에 배인 돌석이가 있으니 남권부는 눈으로만 익혀도 별일없을것이다. 염초의 질을 높이려면 염수를 달여 얻은 염초를 두번 더 물에 타서 달여야 한다.

처음 염수를 달여 거친 염초를 얻어내는것을 《초련》이라고 하며 그다음은 《재련》, 마지막 세번째 달이는것은 《삼련》이라고 한다.

벌써 불을 지핀 가마들에서는 김을 뿜기 시작했다. 그러자 좀 지린듯한 냄새가 났다.

박원작은 그 냄새가 구수한 냄새처럼 느껴졌다.

세상에 땀흘려 일하고난 자기의 몸에서 나는 땀내에 얼굴을 찡그릴 사람은 없을것이다.

하듯이 선조들의 슬기와 지혜가 깃들어있는 염초를 달여내느라 풍기는 그 냄새를 어찌 지리다고 할수 있겠는가.

가마에서 물이 끓기 시작해서 그 물이 다 줄 때까지 반나절이 잘 걸린다.

박원작은 돌석이에게 일렀다.

《이보게, 행수! 아궁에 장작을 넣을 사람만 남기고 다른 사람들은 좀 쉬우게.》

《예.》

돌석은 뜨락 한켠에 높이 솟은 버드나무아래에 멍석을 가져다펴고 소리쳤다.

《남돌이 아버지만 남아서 아궁에 나무를 넣고 다들 여기에 와 쉬우다.》

장공인들이 이마에 난 땀을 문대며 멍석우에 둘러앉았다.

박원작이도 남권부를 데리고 멍석의 한켠에 자리를 잡았다.

박원작은 돌석이의 온곱지 않은 눈길이 남권부를 스치는것을 감촉했다.

남권부를 대하는 돌석이의 눈길이 온곱지 않다고 그를 나무랄것도 못된다.

박원작이 돌석이의 온곱지 않은 눈길을 모르쇠하는데 그는 옆에 앉은 텁석부리에게 말했다.

《〈좌상어른!〉 언제부터 재미나는 이야기를 들려주겠다고 했는데 오늘을 넘기지 않으면 좋겠소이다.》

《좌상어른》이라고 불리우는 텁석부리는 갓 마흔살인데 염초장에서는 나이가 제일 많아 그렇게 불리운다. 텁석부리는 대번에 얼굴이 시뻘개가지고 돌석이에게 눈을 흘겼다.

그러자 돌석이 웃으며 말했다.

《없는 이야길 꾸미지 말고 〈좌상어른〉이 아버지를 중매서느라 오해를 받았다는데 그걸 들려주시우다.》

《형님! 거 뭘 비싸게 구시우?》

장공인들이 한마디씩 보채자 텁석부리는 언성을 높였다.

《하라면 못할줄 알아?》하더니 텁석부리는 구수한 이야기판을 펼쳐놓았다.

박원작은 곧 같은 해에 홀아비들이 된 《좌상어른》의 아버지와 그 아들이 한날한시에 장가들었다는 이야기에 심취되였다.

아버지는 한 과부가 소개하는 처녀를 며느리로 맞으려 왼심쓰고 아들은 그 과부를 후어머니로 모셔오려고 애쓰다가 함께 장가든 이야기를 들으며 박원작은 속으로 탄식해마지않았다.

과연 이 박원작이는 언제 가야 자식된 도리를 지켜 어머니를 모시겠는지…

한편으로는 장공인들의 재미난 이야기를 이제 몇번이나 더 듣게 될런지 하는 서글픈 생각도 갈마들었다.

CAPTCHA Image
가+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