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균노


제 3 장

16


천균노를 지체말고 만들어내라는 임금의 어지를 받은 다음날 병마도감의 뒤골안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황보영류수가 서경류수부의 관원들까지 거의다 거느리고 나와서 더욱 흥성거렸다.

박원작이 선발한 열댓명의 장공인들이 천균노앞에 나와서자 관중은 숨을 죽였다.

박원작의 눈길은 이전과 달리 몹시 긴장되여있었다. 세상에서 처음으로 되는 거대한 화포의 첫 포성을 울려야 하니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박공! 침착하라구.》

최충의 일깨움에 박원작은 숨을 크게 들이켰다.

그래서인지 마음이 한결 가라앉았다.

박원작은 숨을 크게 내쉬고 최충에게로 돌아섰다.

《사부님! 그럼 시작하겠소이다.》

《시작하게.》

박원작은 근달이네들에게 돌아섰다.

《드디여 천균노의 포성을 울릴 때가 왔소. 솜씨를 보여주소.》

《알겠소이다!》

박원작은 최충을 부축하여 천균노에서 멀찌감치 물러섰다.

천균노를 둘러싼 장공인들이 재치있게 일손을 놀렸다.

군만이 날래게 요자를 들어 천균노의 포아가리에 화약을 쏟아부었다.

그러자 김충지가 고무래처럼 생긴 화약다지개를 포아가리속으로 들이밀었다. 그는 꼼꼼히 화약을 다져넣고 화약다지개를 뽑아냈다.

이번에는 심국종이 절구통같이 생긴 큰 격목을 안아다 포아가리속으로 밀어넣었다.

근달은 격목이 격목통에 바로맞추어졌음을 확인하고는 웨쳤다.

《돌탄을 넣게!》

천균노의 곁에 삼백근짜리 돌탄이 몇개 있었다. 노통장에서 깎은것인데 두아름이 잘되였다.

여러 장공인들이 멍석에 둥근 돌탄을 담아들고 천균노의 아가리에 들이밀었다.

매끈하게 잘 다듬은 둥근돌탄은 제자리인듯 포아가리로 깊숙이 들어갔다.

근달은 포아가리를 들여다보고서야 박원작을 쳐다보았다.

박원작은 근달의 눈길에서 천번중 한번의 실수라도 있을가봐 우려하는 그의 마음을 읽을수 있었다.

《별일 없을테니 마음놓고 불을 다시오이다.》

박원작의 자신있는 어조에서 힘을 얻은 근달은 불화로에서 시뻘겋게 단 화심을 집어들었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오로지 근달의 한몸에 쏠려들었다.

근달은 이를 사려물고 화심을 천균노에 가져다댔다.

치익―

불심지에서 짙은 연기가 타래쳐올랐다.

긴장한 시선들이 불심지를 지켜본다.

박원작은 한치한치 타드는 불심지를 지켜보느라니 가슴이 빠질빠질 타는듯 하였다.

근달에게는 선뜻 불을 달라는 분부를 내렸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불안의 그림자가 고개를 쳐들었다.

일이란 생각대로만 되는것이 아니다. 미끈하게 빚은 천균노가 몇십보밖에 돌탄을 날리지 못하거나 터지는 화약의 힘에 견디지 못하고 깨져버린다면?… 아, 이 무슨 망녕된 생각이람.

품들인것만큼 결과를 이룬다는데 천균노는 마땅히 자기의 세찬 위력을 보여줄것이다.

별안간 땅이 움씰하며 지축을 울리는 굉장한 포성이 울렸다.

꽝!―

골안이 함몰되는듯한 느낌에 박원작은 가슴이 후두둑 높뛰였다.

화포와 함께 늙어가는 박원작이조차 포성에 깜짝 놀랐으니 다른 사람들이야 더 말해 무엇하랴.

사내들이 겁결에 몸을 떨었다면 아녀자들은 혼비백산하여 비명을 질렀다.

삽시에 관중들은 서로 몸을 기대며 갈팡질팡하였다.

최충도 황보영도 혼겁하여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온 골안이 떠나갈듯 요란한 포성을 울린 천균노의 포아가리에서 황룡이 하늘로 날아오른듯 자욱한 안개가 구름처럼 피여올랐다. 그것은 매캐한 화약내를 풍기는 내굴이였다.

천균노에서 솟구쳐오른 수백근짜리 큰 돌탄은 백여보앞에서 떨어졌다.

돌탄이 떨어지면서 타래쳐올린 요란한 흙먼지기둥을 본 사람들은 너무 좋아 환성을 올렸다.

박원작도 몇길높이로 타래쳐오르는 흙먼지기둥을 보았다.

허나 그는 천균노의 몸체가 무사한지 그것부터 몹시 알고싶어 앞으로 달려나갔다.

천균노에 다가가서 보니 그것에는 아무런 흠집도 없었다.

《됐구나, 됐어!》

박원작은 더할나위없는 기쁨에 사로잡혀 《보라, 우린 해냈단 말이요. 다들 보시오이다.》라고 소리치고싶었다.

지금껏 숱한 병기를 만들어냈지만 이렇게까지 흥분한적이 없는 박원작이였다.

근달이며 장공인들이 와― 소리치며 천균노를 둘러쌌다. 그들은 천균노를 부둥켜도 안아보고 어루만져도 보면서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이젠 됐소이다.》

근달은 고랑진 얼굴에 눈물을 흘리며 박원작의 팔을 부둥켜잡았다.

최충은 기쁨속에 우는 장공인들을 보며 마침내 천균노가 성공했음을 믿어마지 않았다.

이런 때는 무슨 말로 장공인들을 칭찬해야 하는가.

최충은 박원작의 어깨를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끝내 해냈구만!》

그순간 박원작은 돌탄이 분명 백여보앞에 떨어졌다는것이 생각났다. 그는 방금전과 달리 랭정해졌다.

다른 사람들은 돌탄을 백보정도 날린 천균노를 보고도 대단하다고 여길지 몰라도 박원작이로서는 기뻐할것이 못되였다.

그는 천균노를 다시 부어내면서 그것으로 적의 충차만을 족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보다는 천보 아니 수천보 멀리로 돌탄을 날려보내 먼곳의 적진까지도 송두리채 들부시려고 하였다.

천여보 멀리에 진을 친 적진에 아름드리 돌탄이 날아드는 광경을 상상해보라. 그야말로 온 적진을 혼비백산케 하는 일대 장거로 될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천균노로는 기껏 백여보정도밖에 돌탄을 날릴수 없다. 물론 그것으로도 성가까이 달려드는 적의 충차쯤은 묵사발낼수 있다.

왜서 천균노가 포성에 비해 힘을 쓰지 못하는걸가.

박원작은 지금껏 다진 학식과 경험을 다해 그 까닭을 파고들었다.

그대로 순간순간이 하루맞잡이였다. 천균노에 다져넣은 수십근의 화약이면 수백근짜리 돌탄을 얼마든지 천보이상 날려보내야 한다.

그는 곧 천균노에 문제점이 있는것이 아니라 화약에 무슨 쪼간이 있겠다는 결말에 이르렀다. 그것을 확신하려면 천균노를 또 쏘아보아야 했다.

박원작은 입술을 깨물고 돌아섰다.

《천균노를 다시 쏘겠소.》

박원작의 분부에 술렁대던 사람들이 조용해서 제자리를 차지했다.

장공인들이 다시금 천균노에 달라붙었다. 장약을 한 천균노에 돌탄이 재워졌다.

근달은 몇번이나 천균노를 들여다보며 이상이 없는가를 확인하고서야 웨쳤다.

《불을 달겠소이다.》

《가만!》

근달을 제지시킨 박원작은 제가 직접 화로에서 화심을 집어들었다.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화심을 불심지에 가져다대는 박원작을 지켜보았다.

과연 이번에는 어떻게 되겠는지…

꽝―

골안을 태질하는듯 요란한 포성이 지축을 때렸다.

거대한 포아가리를 크게 벌린 천균노에서 육중한 돌탄이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사람들의 틀어쥔 주먹마다에 땀이 내배였다.

요란한 포성에 이어 불과 백보정도앞에서 흙기둥이 타래쳐올랐다.

이번에도 천균노는 끄떡없었다.

아직도 천균노의 결함을 알리없는 사람들은 또다시 기쁨에 넘쳐 환성을 올렸다.

박원작은 터벅터벅 걸어 땅바닥에 구겨박힌 돌탄앞에 나가섰다.

완전한 성공이 아니며 그 원인은 천균노가 아니라 화약에 문제점이 있는것 같았다. 그래서 자기도모르게 두손으로 배를 그러안았다.

박원작의 모습에서 불길한 예감을 느낀 최충이 급히 그에게로 다가갔다.

《이 사람, 박공! 웬일인가?》

최충을 향해 돌아선 박원작은 배아픔을 감추고 대꾸했다.

《선생님! 면목이 없소이다. 이 골안 끝까지 돌탄을 날리는 천균노의 장쾌한 모습을 보여드리자고 했는데…》

최충은 병색이 짙은 박원작의 얼굴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니 랑패라는건가? 아니, 자넨 랑패보지 않았어. 보다싶이 천균노는 무거운 돌탄을 허공으로 날려보냈네. 무엇보다 자네가 무사하고 천균노도 무사하니 이 골안 끝까지 돌탄을 날려보내는건 어렵지 않네. 난 웃으며 장성쌓으러 돌아가려네. 그러나 자넨 그 어느때보다도 몸을 잘 돌봐야겠네.》

박원작은 나무랄대신 신심과 용기를 북돋아주는 최충의 손을 부둥켜잡고 눈물을 머금었다.

《사부님! 제 기어이 천균노를 뜻대로 만들어내겠소이다.》

《암, 그래야지. 난 자네를 믿네. 자 오늘은 절반쯤 뜻을 성취한 날인즉 풍악을 울려야지.》

《사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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