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균노


제 3 장

15


박원작의 삭탈관직으로 하여 나갔던 집같았던 병마도감이 최충의 행차로 다시 흥성거렸다. 최충은 삭탈관직된 박원작이 용기를 가지고 새롭게 천균노를 부어내서 그 위력사격을 치를 때까지 병마도감에 묵을 작정이였다.

병마도감을 일일이 돌아보고난 최충이 먼저 벌려놓은 일은 큰 철덕에 불을 지피는 일이 아니라 닭싸움놀이였다.

사기가 저락된 사람들을 일에 성수가 나게 하자면 우선 그들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어야 한다는것이 그의 지론이였다.

병마도감의 넓은 마당에 벌려놓은 수닭들의 싸움을 구경하려 장공인들만 아니고 그들의 식솔까지 모여들어 사람사태가 났다.

죽을둥살둥 모르고 맞붙어 싸우는 닭싸움놀이에 이어 씨름이 벌어졌다.

이로써 장공인들은 활기를 되찾게 되였다.

최충은 리자연의 모함으로 박원작이 비록 삭탈관직은 당했지만 그가 천균노를 만드는 일에서 그 누구에게도 구애됨이 없이 일할수 있도록 내세워주었다.

워낙 장공인들속에서 인망이 컸던 박원작인데다가 판북계병마사의 막강한 권한을 가진 최충이 힘껏 떠밀어주니 그의 분부를 온 병마도감이 이전처럼 받들었다.

박원작은 큰 철덕들에 불을 지피고 잘못된 천균노를 깨여두었던 놋쇠를 녹이도록 하였다.

최충이 지켜보는 속에서 온 병마도감이 달라붙어 천균노를 새롭게 부어냈다.

그리고 다음날에는 온 병마도감이 모여들어 천균노의 거푸집을 뜯어냈다.

우람찬 동체를 드러낸 천균노는 티끌만한 흠집 하나 없었다.

그야말로 만사 뜻대로 된 일대 거사였다.

누런빛을 번쩍거리는 천균노를 둘러싸고 춤바다가 펼쳐졌다.

박원작은 천하가 아직 모르는 거대한 화포를 보란듯이 당장 대동강변으로 끌고나가 서경땅이 들썩하게 포성을 울리고싶었다.

그러나 시험사격의 관례를 지켜야 했다.

하여 박원작은 천균노를 병마도감의 뒤골안에 있는 사격장으로 옮겨가도록 하였다.

천균노를 사격장으로 실어가는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였다.

이미 3만근의 무게에 견딜수 있는 든든한 수레를 만들어놓았기에 즉시로 천균노를 실어갈수 있었던것이다.

박원작은 천균노를 만들면서 그 명중률을 높이기 위한 생각을 했었다. 화포의 명중률을 높이자면 화포를 바른자세로 앉혀놓아야 한다.

천균노는 뢰등석포와는 비길수 없는 대단한 거물이다. 단번에 수십근이나 되는 화약을 재워야 하니 화약 터지는 힘을 헤아리기 어렵다. 나무로 만든 포가는 그런 충격에 견디지 못할것이다.

하긴 천균노란게 명실공히 이 땅을 침노하는 외적을 단숨에 제압하고저 만든 화포이니 바위돌로 든든히 축대를 쌓고 거기에 올려놓으면 좋을것이다.

박원작의 분부에 따라 장공인들은 미리 천균노의 포가를 바위돌로 쌓아놓았다.

든든한 포가우에 천균노를 차려놓으니 그 웅자가 더욱 볼만하였다.

천균노를 뒤골안으로 옮겨놓은 그 이튿날 천균노를 만드는 일을 중단말라는 임금의 어지가 내려왔다.

어지를 받은 박원작은 너무도 감격하여 눈물을 걷잡지 못하였다.

비록 삭탈관직은 바로잡히지 않았지만 천균노를 만들어내라는 어지까지 받았으니 뜻을 이룰수 있게 되였다. 이게 다 스승이 힘써준 덕이다.

최충은 서눌시중이 써보낸 글도 받았다.

글에서 시중은 박원작을 복직시키는 일을 반드시 성사시키겠으니 그가 주저앉지 않도록 내세워주라고 당부하였다.

이쯤 되였으면 박원작은 스승이 곁에 없어도 이전처럼 하고싶은 일을 마음대로 내밀수 있다.

병마도감에 나와서 별로 하는 일없이 박원작의 뒤를 따라다니는 남권부는 줄타기를 하는듯한 심정이였다.

보름안팎에 자기 신세가 이렇게까지 뒤집혀질줄은 몰랐다.

이제 와서 병마도감사 자리는 그에게 거치장스러울뿐더러 살을 슬슬 내리게 하는 말썽거리였다.

만나는 장공인들마다 더러운것을 보는듯 고개를 외로 트는데 그게 다 남의 자리를 앗아가졌다는 말을 못해 그러는게 아니고 뭔가.

행수들의 눈길도 곱지 못하다. 돌석이는 더 심하다. 화약의 비방을 내놓으라고 강박했던 일로 해서 그는 멀리서 보기만 해도 매섭게 눈을 치뜨는데 그 눈길에서 불찌가 튀는것 같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고 자칫하다가는 장공인들에게 뭇매 맞아 병신이 될수 있다.

그것도 그것이지만 화약이며 《신기한 병기》들을 몰래 빼여다 조득국이한테 팔아먹은 사실이 탄로날가봐 두려웠다.

괜히 남모르는 그 일을 박원작이에게 들씌워가지고 최충을 성나게 하였으니 그가 나서면 진상은 백일하에 드러나고말것이다.

이럴줄 알았으면 어지를 받던 날 박원작이한테 못되게 굴지 않는건데… 이제 와서 눈물을 흘리며 한탄할게 없다. 앞으로 무사하자면 낯 간지럽다고 해도 박원작이에게 낮추붙는 수다.

남권부는 해질녘에 최충을 찾아가서 병마도감사자리를 내놓겠다고 아뢰였다.

《아직은 그대로 있소. 재삼 당부하건대 박공이 하는 일에 자그마한 훼방도 있어서는 안되겠소. 내가 지켜보고있다는걸 한시도 잊지 마오.》

최충의 말에 남권부는 등골이 서늘해져 몸을 떨었다.

CAPTCHA Image
가+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