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균노


제 3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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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지는 오늘아침 병마도감이 아니라 서경류수부를 찾아떠났다.

요즘 그는 남들이 알아서는 안되는 일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있었다. 처음에는 막연하게만 여겼던 그 일이 서경류수부에서 류숙하는 병마부사와 손을 잡은 다음부터 한고리, 한고리씩 풀려나가는것이 일하는 재미를 느꼈다.

그게 다 스승의 덕분이기도 하다.

요새 병마도감에 머물러있으면서 천균노를 만드는 일을 돌보고있는 최충은 리순일에게 김충지가 하는 일을 도와주라는 분부를 내리였다.

그래서 며칠전 그를 찾아가 병마도감에서 누가 잠입한 녀진인이고 특히는 남권부와 가까운 녀진사람이 누구인지 알아줄것을 부탁했다.

김충지가 남권부와 가까운 녀진사람들을 의심하게 된것은 그들속에 나쁜놈이 배겨있을수 있다고 한 심국종의 말을 새겨들은 다음부터였다.

리순일은 그날로 서경류수부의 호적을 뒤져 김충지가 알고저하는 사람들을 찾아냈다.

그들속에서 김충지의 주목을 끄는 사람은 남권부와 친교가 이만저만 아니라는 조득국이였다. 서경류수부의 사록참군사로서 진상품을 떼먹고 파직되기까지의 그의 래력이며 그이후로는 사냥을 한답시고 청새진의 이북으로 드나든다는 자료는 김충지의 의심을 부쩍 돋구었다.

그렇다면 조득국이 변방너머의 녀진부락들과 아니 접촉했다고 장담할수 없지 않은가.

김충지는 조득국을 과녁으로 정하고 그에게 의심이 가니 보다 더 그자를 구체적으로 파헤쳐달라는 부탁을 리순일에게 하였다.

그는 며칠만 말미를 달라고 하였다.

그래서 오늘 그를 찾아떠난 김충지였다.

류수부의 객관에 이르니 마침 버드나무가 서있는 마당을 거닐던 리순일이 김충지를 알아보고 반겨주었다.

《김공! 그렇지 않아도 공을 찾아가려고 했소.》

리순일은 김충지를 마당 한켠의 조용한 곳으로 이끌었다.

《그동안 내 좀 알아낸것이 있소.》하고 허두를 뗀 리순일은 진지한 태도로 말을 이었다.

《남권부가 쓰고사는 집말이요. 그 집이 글쎄 조득국이 준 집이라누만.》

《그게 참말이오이까?》

《그쯤에 놀라긴, 남권부의 집사람도 조득국이 소개해주었다고 하오.》

그 소리에 김충지는 께름하게 여겨지며 안개속의 인물이라 밉게 보던 남권부가 마침내 걸려들었다는 생각으로 가슴이 후두둑 높뛰였다.

이모저모로 사람들의 뒤손가락질을 받는자치고 뒤가 깨끗한자 어디 있겠는가.

《김공! 이번 새해때 남권부가 병마도감사네 집에 보내주었다는 그 노루와 사슴말일세. 그것도 다 조득국이 남가한테 가져다준거라오.》

김충지는 중요한 단서들이 련이어 풀려나오자 기쁨을 감추지 못하였다.

《김공! 놀라지 말게. 그때 짐작이 맞는것 같아. 조득국은 남권부와 사귀게 되면서부터 지금까지 루차에 걸쳐 적지 않은 은붙이를 안겨주었소.… 이번에 남권부가 어떤 장사치한테서 사다바쳤다고 하는 놋쇠도 기실은 조득국이 안북부에서 실어온것이라오.》

김충지는 그 말이 믿어지지 않아 웃음어린 리순일의 얼굴을 한동안 쳐다보았다.

《그… 그걸 어떻게 알아냈소이까?》

《허― 뭐 별루 신기한건 아니요. 서경류수부에서 판관(4품~6품관)을 하는 사람이 내 친구인데 그한테 신세를 졌소. 그가 남권부네집 사환군을 남몰래 끌어다 엄하게 문초했소. 그자는 원래 조득국이네 집에서 사환질을 해먹댔는데 남가가 고리문곁의 큰집에다 살림을 펴자 조득국이 그한테 주었다누만.》

《아, 그렇게 됐구만요. 이젠 눈앞이 밝아지는것 같소이다. 조득국이 뭣때문에 친혈육도 아닌 남권부한테 집도 재물도 계집까지 안겨주었겠소이까.

분명 남가는 조가한테 신세갚음으로 뭔가 큼직한걸 주었을겁니다.》

《그건 명백하오. 제 잘못으로 해서 벼슬길이 막혀버린 조가는 변방너머의 녀진과 손을 잡았을것이고 그것들이 주는 재물로 남가를 매수하여 〈신기한 병기〉들을 뽑아갔을거요.》

김충지의 두눈이 번쩍했다.

《이번에 조득국 그놈이 3만근의 놋쇠를 남가한테 준걸보면 화약의 비방이나 천균노를 만드는 비방을 노리는것 같소이다. 일이 이쯤 되였으니 빨리 손을 써야겠소이다. 그놈을 잡아치웁시다.》

리순일은 급히 손을 쳐들었다.

《김공! 덤비지 마오. 옛말에 도적을 잡으려거든 놀래우지 말라고 했소.》

《그러다 그놈이 무슨 낌새를 채고 달아나버리면 나무아미타불이오이다.》

리순일은 김충지의 손을 잡으며 웃었다.

《이런 일에선 조급함은 금물이요. 근거가 좀 있대서 의심스런 놈들을 붙잡아치우면 다른 놈들은 다 숨어버릴거란 말이요. 이런 일은 네놈들이 뛰여야 벼룩이라는 배심을 가지고 배포유하게 그물을 든든히 친 다음 일격에 그물질을 해야 랑패가 없소.》

김충지는 그의 말이 옳게 여겨져 달아오른 가슴을 가라앉히였다.

《참, 남권부집 사환군의 말에 의하면 개경에서 왔다는 심국종이란 사람이 그의 집을 찾아왔댔다고 하오.》

김충지는 심국종이 한 말이 생각나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저도 아오이다. 심국종은 남권부와 한고향내기라고 하며 또 그의 연줄로 병마도감에 들어왔으니 그의 집을 찾아가는거야 당연하지요.》

리순일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만 생각할게 아닌것 같소. 사환군이 토설한데 의하면 심국종이 자주 남가한테 심부름군을 보내 뭔가 전했다고 하오. 일개 장공인이 심부름군까지 부릴수 있겠소?》

그 말에 김충지는 고개를 숙이고 침묵을 지켰다.

병마부사의 말에 일리가 있다. 심국종이 돈이나 벌자고 왔다는데 무슨 돈이 많아서 장공인들에게 재물로 인심을 쓰고 지어는 독집까지 마련할수 있겠는가.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 병마도감에 새 사람이 들어온 다음부터 불상사가 일어나고있다는 소문을 탓할수도 없다.

심국종의 언행들을 곰곰히 따져보니 그가 표리부동하고 염통을 두개 찬듯한 생각이 들었다.

《병마부사님! 전 오늘부터 심국종의 일거일동을 살피겠으니 병마부사님은 개경에 알려 그 사람의 래력을 캐보아주소이다.》

《아주 잘 생각했소. 이제야 김공이 제곬을 탄것 같소.》

김충지는 호탕한 웃음을 터치는 리순일을 새로운 눈길로 쳐다보았다. 40대의 리순일이 평범하게 생겼다지만 여간 학식과 견문이 넓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윽고 김충지는 시장기를 느꼈다. 그는 리순일을 만나려고 서두르다보니 아침끼식을 건넜던것이였다.

김충지는 정오가 다 되여오는데 함께 점심을 하자는 리순일의 권고를 마다하고 부지런히 거처지로 향했다.

집에 들어선 그가 아침겸 점심으로 밥을 먹고났는데 밖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주인 계시오?》

방에 누워 눈을 좀 붙이려 하던 김충지는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게 누구요?》

《옳거니! 〈황도친구〉의 목소리가 옳다니까.》

《황도친구》라는 소리에 김충지는 무릎을 쳤다.

김충지를 개경에서 왔다고 해서 《황도친구》라고 부르는 사람은 오직 한사람이 있을뿐이였다.

(절령역관지기로구나!)

김충지는 반가움에 사로잡혀 방문을 열어제꼈다.

정말 사립문밖에 절령역관지기가 서있었다.

김충지는 뜨락으로 뛰쳐나가 사립문을 열고 그의 손을 덥석 잡았다.

《여길 찾아오다니… 어서 안으로!》

김충지에게 이끌려 뜨락에 들어선 역관지기는 등에 진 짐을 토방에 내려놓았다.

김충지는 의아해서 물었다.

《이건 뭐요?》

역관지기는 소리없이 웃으며 대꾸했다.

《노루네.》

《노루라니요?》

역관지기는 짐을 풀어보이며 자랑조로 말했다.

《언제인가 병마도감사어른이 심심풀이로 사냥을 하라면서 활을 하나 가져다주었네. 그 활이 얼마나 좋은지… 글쎄 쏘면 쏘는대로 명중이네. 그 활로 아들녀석이 사흘이 멀다하게 산짐승을 잡아오는데 어젠 이걸, 노루를 잡아오지 않았겠나.》

역관지기가 풀어보이는 보짐속에 정말 노루다리가 두짝이나 있었다.

김충지는 마음이 통쾌해서 소리쳤다.

《거 정말 대단하오이다. 산중에서 명궁이 났구만요.》

《명궁까지야 뭘…》

《헌데 고기는 집에서나 먹을것이지 왜 가져왔소이까?》

《우린 실컷 먹었네. 사실 이 노루다리는 활을 주신 병마도감사어른에게 인사차림을 하자고 가져온건데… 그 어른은 집떠나온 〈황도친구〉가 고생한다면서 여기로 가져다주라고 하더군.》

김충지는 속에서 뜨거운것이 치밀어오름을 느꼈다.

어쩜 박원작은 마음이 그리도 어질가. 골병든 몸에 억울한 죄까지 쓰고 천균노를 만들어내느라 고생이 많은데 어쩌다 차례진 색다른 음식감을 다른 사람에게 가져다주게 하다니…

지내볼수록 박원작이 천금같은 사람이라는것을 알수가 있다.

방에 들어선 역관지기는 찾아온 용건을 털어놓았다.

《내가 오늘 자네를 찾아온건 다름이 아니라 자네가 부탁했던 그일때문일세.》

김충지는 긴장해졌다.

김충지는 박원작이와 함께 절령역참에 들렸을적에 역관지기를 남모르게 따로 만나 긴한 부탁을 했었다.

북계병마도감에서 소감벼슬을 하는 사람이 개경에 보내는 공문서가 있거들랑 날자들을 적어놓으라고 하였다.

이미 개경에서부터 리자연과 학우인 남권부를 의심하고있던 그는 어느 역참이든 마음에 드는 사람을 사귀여서 그런 부탁을 하려했다.

서경을 가까이했건만 그 적임자는 물색하지 못해 안타까와했는데 박원작과 가까운 절령역관지기를 보니 마음에 든것이였다.

역관지기는 박원작의 수하인 김충지의 부탁을 쾌히 들어주었다.

그렇지 않아도 역참에 들려갈 때면 괜히 우쭐해서 생트집을 잡아 역졸들을 들볶던 남권부를 좋지 않게 여겼댔는데 그의 뒤를 파는 기미를 느끼자 김충지를 돕고싶은 마음이 우러난것이였다.

김충지는 그런 부탁을 하였으나 절령역참에 가보지는 못하였다. 한것은 그만 남권부를 살펴보는 눈이 어두워져 그를 성실한 사람으로 잘못 알고 절령역관지기에게 부탁했던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때문이였다. 그런데 지금 역관지기가 일부터 찾아왔으니 필경 무슨 단서로 될만한것을 가져왔을것이였다.

《어서 말씀하시오이다.》

《그동안 병마도감의 소감이란 사람의 이름으로 례빈성에 보낸 공문서가 몇장 되네.》

《례빈성에요?》

이건 무슨 놈의 감투끈같은 소리인가. 남권부가 례빈성에다 공문서를 띄우다니… 그가 무엇때문에 하등 저와는 관계가 없는 례빈성으로 공문서를 보낸단 말인가.

《례빈성이 적실하오이까?》

《적실하지 않구. 례빈성판사앞으로 보냈네. 믿어지질 않으면 이걸 보게나.》

역관지기는 허리춤을 뒤지더니 염낭에서 종이쪽지를 꺼내주었다.

종이에는 남권부가 례빈성에 보낸 공문서들이 절령역에 당도한 날자가 적혀있었는데 매번 례빈성판사 리공에게 올린다는 글이 씌여져있었다.

례빈성판사 리공이라면 리자연의 동생이 아닌가.

이건 정말 모를 일이다. 남권부가 정말 리자봉에게 그런 공문서를 보냈다면 여기에서 뭔가 긴요한걸 알아낼수 있을것이다.

이걸 꼭 알아내야 한다.

《일랑이 아버님! 정말 긴한걸 알아다주었소이다. 이제 남권부가 례빈성으로 보내는 공문서가 있거들랑 그걸 꼭 고생스러워도 가져다주소이다.》

《고생이랄게 있나. 내 꼭 그러하겠네.》

《이거 무슨 말로 인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소이다.》

역관지기는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그런말 말게. 난 이 일을 병기를 만드는데 도움이 된다고 해서 하는걸세. 그러니 다시는 인사고 뭐고 하는말 말게.》

《예, 예. 그렇게 애써보겠소이다.》

역관지기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 또 찾아오겠으니 잘 있으라구.》

김충지는 바빠맞아 역관지기의 옷자락을 부여잡았다.

《왜 가시겠다고 하는겁니까? 점심참인데…》

《아아, 별다르게 생각 말게. 점심을 끓여놓고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 그래.》

그 말에 김충지는 웃음이 났다.

점심을 마련해놓고 역관지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누구인지 짐작이 간다.

김충지가 서경에 올 때 역관지기의 아들 일랑이가 서경성에 작은어머니가 산다고 했었다.

작은아버지이면 작은아버지이지 작은어머니라 하기에 그게 이상하여 일랑이에게 슬그머니 물어보니 홀로 사는 서경어머니가 자기를 친자식처럼 끔찍이 대해준다고 하였다.

김충지는 직판 물었다.

《그 사람이 소실은 아니겠지요?》

역관지기의 얼굴이 벌개졌다.

《허― 자네 눈은 매눈 한가지일세그려. 아닌게아니라 그쯤되는 녀인일세.》

김충지는 기뻐 역관지기의 손을 잡아흔들었다.

《거참 잘됐소이다. 아무렴 마음에 둔 녀인이 해주는 밥이 얼마나 달다구요. 그런데 왜 모여살지 않소이까?》

역관지기는 가벼운 한숨을 지었다.

모여살면 좀 좋겠는가. 서경녀인을 사귄지도 벌써 이태가 지났는데…

이태전 어느 봄날 한 녀인이 무거운 임을 이고 절령고개를 넘어왔다. 해가 반쯤 서산으로 기운무렵이였다.

녀인은 임이 무거워 더 걷기 힘든지 역참마당에 짐을 내려놓고 주저앉았다.

역말들에 꼴을 가져다주던 역관지기는 그 녀인을 띠여보고 어데가는 나그네인가고 물었다.

녀인은 자기는 서경성에 사는데 봉주고을 친정집을 찾아간다고 하였다.

봉주고을이라면 절령역참에서 아직 수십리는 더 가야 했다.

역관지기는 생각다못해 역말을 끌어냈다. 그리고 녀인을 뒤에 태우고 말을 달려 친정집까지 데려다주었다.

그 녀인이 며칠후 은혜갚음으로 옷을 한벌 지어가지고 역관지기를 찾아왔다.

그날 역관지기는 그 녀인이 홀로 사는 녀인임을 알게 되였고 그녀인 역시 역관지기가 아들아이 하나를 거느린 홀아비라는것을 알았다.

이렇게 알게 된 두사람은 자주 오가면서 더욱 정을 깊이하였다.

과부와 홀아비가 모여사는것은 당연한 일이라지만 역관지기는 절령같은 험지로 그 녀인을 데려다가 고생을 시키고싶지 않았다. 그래서 역관일을 그만두고 서경에 나가겠으니 그때 함께 모여살자고 녀인과 약속을 하였으나 하루이틀 미루다보니 오늘에 이르게 되였다.

《자넨 아직 젊어서 다는 몰라. 큰 도회에서 사는 녀인이 절령같은 험한 고장에서 어떻게 산다고 그러나. 일랑이 에미도 고생만 시키다가 보냈는데…》

김충지는 가슴이 찡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김충지는 채롱속에서 비단천을 찾아들었다.

시전거리에 나갔다가 서경의 비단이 유명하다기에 안해에게 주려고 산것이였다.

《이걸 제 성의로 알고 받아주소이다.》

《원 사람두… 하여간 고마우이.》

사립문밖에 나가 절령역관지기를 바래주는 김충지는 마음이 아팠다.

저렇게 어지고 의로운 사람들에게는 어이하여 고생이 기를 쓰고 따라다니는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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