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균노


제 2 장


15


두개의 철덕에서 뽑은 놋쇠물로 천균노를 붓고난 박원작은 그곁에서 꼬박 밤을 지새웠다. 그러기는 장공인들도 마찬가지였다.

《해가 뜬다!―》하는 누군가의 웨침소리에 사람들은 일제히 동쪽 하늘을 쳐다보았다. 대동강건너 동대원의 저 멀리 하늘에 두둥실 보름달같은 불덩이가 서서히 솟구쳐오르고있었다.

장쾌한 해돋이순간이였다.

사람들은 난생 처음이기라도 한듯 경탄을 터치며 둥근 해덩이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였다.

박원작도 감탄을 금치 못했다. 여느때는 그저 자연이 그리는 장쾌한 화폭으로 례사롭게 보아지던 저 해돋이가 오늘은 어이하여 이렇듯 벅차게 안겨지는것일가?

아마도 나라를 위하는 길에 더없이 큰 공헌을 이룬 뜻깊은 때이기에 저 해덩이도 무등 가슴 벅차게 안겨지는것이리라.

이윽고 박원작은 천균노를 품고있는 거푸집우로 올라섰다.

둥근해를 쳐다보던 장공인들이 거푸집우에 올라선 박원작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박원작은 자기를 지켜보는 장공인들의 눈길에서 그들이 무엇을 바라고있는가 하는것을 능히 알수 있었다. 지금 장공인들의 심정을 생남소식을 들은 아비가 제자식을 보고싶어하는 그 마음에 비길런지… 저 장공인들은 자기들의 손으로 부어낸 천균노의 웅자를 한시급히 보고싶어하리라.

그러나 지금 당장으로 그들의 마음을 풀어줄수는 없었다.

어제 오후 서경류수부에서 기별이 왔는데 오늘 아침 서경류수가 나와 지켜보는 앞에서 거푸집을 헤치고 천균노를 함께 보자는것이였다.

박원작은 서경류수의 그 마음이 리해되였다. 조정대신이라고 할수 있는 그가 자기 관내에서 쉽지 않게 도래한 대사를 어찌 소홀히 할수 있으랴.

박원작은 자기를 쳐다보고있는 장공인들을 타이르듯 입을 뗐다.

《다들 조급해 마오. 아침밥을 먹고 식솔들까지 다 보는 앞에서 거푸집을 뜯어내자구.》

근달이 맞장구를 쳤다.

《자, 다들 밥먹을 차비를 합세.》

기다린듯 때마침 음식임을 인 녀인들이 나타났다.

장공인들이 마주 달려가 녀인들의 머리에서 음식임을 받아내렸다.

웃고 떠드는 속에 한자리에 둘러앉아 아침밥을 나누는 장공인들의 모습은 꼭 하나의 큰 식솔같았다.…

해가 한기장쯤 떠오르자 벽제소리를 앞세우고 한무리의 말탄 사람들이 병마도감에 들어섰다.

관복을 깨끗이 차려입은 박원작이 정문에서 그들을 맞아들였다.

큰키에 채수염을 드리운 황보영서경류수는 말에서 내려 박원작의 손을 잡아주었다.

《한번 나와본다본다 하면서도 오늘에야 나왔네.》

박원작은 그 한마디에서도 황보영의 진정을 느끼였다.

지난해 서경류수로 부임되여온 황보영이 그동안 병마도감에는 나온적 없지만 도움을 준건 한두가지가 아니다. 료미로 내줄 쌀도 제때에 보내주었고 놋쇠를 녹여낼 숯도 떨어질세라 대주었다.

이번에도 많은 량의 숯을 해결해주었기에 천균노를 부어낼수 있었다.

《자, 병마도감사! 어서 우리 하객(축하하러 온 나그네)들을 안내하게.》

황보영이 롱조로 하는 소리에 박원작도 웃음을 지었다.

박원작은 황보영을 따라온 여러 서경군의 장수들에게 손을 모아잡고 읍을 차리고는 그들을 련장으로 안내했다.

장공인들이 허리를 굽히고 서경류수의 행차를 맞이하였다.

박원작은 황보영에게 련장뜨락에 우뚝한 천균노의 거푸집을 가리켰다.

《류수님, 저게 바로 천균노가 들어있는 거푸집이오이다.》

황보영이하 모든 장수들이 웅장한 거푸집앞에서 혀를 차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박원작은 거푸집을 어루만지며 감탄을 터치는 그들이 진정되기를 기다렸다가 입을 열었다.

《그럼 거푸집을 헤쳐보겠소이다.》

황보영일행이 거푸집에서 멀찌기 물러서자 장공인들이 우르르 밀려나왔다. 장공인들은 먼저 널판자계단을 뜯어내고 조심스럽게 거푸집을 허물기 시작했다.

우로부터 해볕에 드러나는 천균노의 동체는 누런 황금빛을 번쩍거렸다.

사람들은 점점 더 크게 제모습을 드러내는 천균노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였다.

마침내 두 어른이 두팔을 벌리고 안을만큼 굵은 천균노가 자기의 우람찬 몸집을 전부 드러냈다.

그것을 본 사람들이 환성을 질렀다.

여느때같으면 익살스러운 말로 떠들어댔을 군만이조차 천균노의 웅자앞에 얼이 나갔는지 입만 헤 벌린채 야―, 야― 할뿐이였다.

박원작이 보건대 포아가리를 땅바닥에 대고 서있는 천균노는 어덴가 큰 종같았다.

한참만에 황보영이 박원작의 팔을 건드리며 물었다.

《제대로 되였나?》

박원작은 가슴을 울렁거리며 대답했다.

《아직은… 이제 저걸 바로 눕혀놔야 알수 있소이다.》

박원작의 대답을 곧 분부로 여긴 근달이 장공인들에게 말했다.

《자, 제꺽 달라붙어 천균노를 바로 잡아야지.》

이미 차비를 갖춘 장공인들이 천균노를 둘러쌌다.

무게가 무려 3만근이나 나가는 육중한 천균노를 뚝힘만으로는 다룰수 없다.

장공인들은 천균노를 눕힐 자리에 아름드리통나무 몇개를 끌어다놓고 떼를 뭇듯 바줄로 묶었다. 그다음 우로 향한 천균노의 몸체 꼭뒤에 붙여놓은 굵은 고리들에 바줄을 꿰였다.

근달의 손짓에 따라 장공인들은 천균노를 눕힐 반대켠에다 아름드리통나무들로 문틀같이 버팀대를 세웠다. 그리고 버팀대우를 두개의 바줄로 묶어 천균노를 눕힐쪽과 그 반대쪽으로 길게 드리워놓았다.

《자, 다들 바줄을 잡으라!》

근달의 웨침에 장공인들이 두개의 바줄에 벌떼처럼 달라붙었다.

근달은 바줄당기기를 하듯 장공인들이 바줄을 잡고 길게 늘어서자 또다시 웨쳤다.

《내 말을 잘 들으라! 먼저 천균노를 눕힐 자리에서 바줄을 당기고 천균노가 기울어지면 그 반대쪽에서도 바줄을 당기되 천천히 바줄을 놓아주어서 천균노가 천천히 넘어지도록 해야겠네. 자, 그럼 시작하라.》

엿싸!―

통나무떼쪽에서 먼저 두개의 바줄을 잡아당기자 천균노가 움씰했다. 하더니 그쪽으로 기울어졌다. 그와 동시에 버팀대쪽에서 《기운을 써라!》하며 바줄을 당겨댔다.

금시 끊어질듯 팽팽하게 당겨진 바줄에 끌리운 천균노는 서서히 통나무떼우로 넘어졌다.

이어 쿵!― 하는 둔중한 소리가 울렸다.

천균노는 무사히 통나무떼우에 길게 누워버렸다.

심국종이 괭이를 들고 포아가리로 가서 그속의 거푸집을 부셔댔다. 그가 괭이질로 모래에 이긴 찰흙을 쑤셔내면 메득이와 군만이 그것을 삼치에 담아 뒤로 넘겼다.

굴을 뚫듯 괭이를 휘두르면서 심국종은 포아가리속으로 들어갔다.

한참만에 포아가리속을 말끔히 파낸 심국종이 그안에서 기여나왔다.

그런데 심국종의 얼굴이 까맣게 질려있었다.

박원작은 대바람 불길한 징조를 느꼈다. 그는 갑자기 가슴이 한줌만 해져 몸을 떨었다.

시누런 금빛을 번쩍이는 웅장한 천균노의 자태에 마음이 흡족해진 황보영은 아무런 눈치도 모르고 기뻐하였다.

《암, 보나마나 속도 다 잘되였을거네. 누가 만든 화포라구 탈이 날텐고.》

황보영은 여전히 만족한 웃음을 머금고 박원작을 치하했다.

《병마도감에서 큰일을 하였네. 이 사실을 상감께서 아시면 얼마나 기뻐하시겠나. 이제 며칠있으면 판북계병마사로 전직된 최공이 여기로 올것이니 그날 천균노의 포성을 울립세.》

박원작은 그렇게 좋아하는 황보영앞에서 말이 나가지 않았다.

심국종의 낯색에서 일이 심상치 않음을 엿본 김충지와 근달이 어느새 천균노로 달려가 그속으로 기여들어갔다.

좀 있어 포아가리속에서 기여나온 그 두사람의 얼굴도 까맣게 질려있었다.

그제서야 공기가 이상함을 감촉한 황보영이 누구에게라없이 물었다.

《천균노에 무슨 일이 생겼나?》

이런 때는 년장자가 달랐다. 젊은이들이 숨도 크게 쉬지 못하는데 근달이 두손을 맞잡고 황보영앞에 나섰다.

《류수님! 아뢰옵기 거북스러우나 천균노의 화약통에 이상이 생겼소이다.》

《무엇이?!…》

황보영이 깜짝 놀라는데 박원작이 천균노로 달려갔다. 그는 서둘러 포아가리속으로 기여들어갔다. 무려 석자남짓한 포아가리여서 어둑컴컴하지 않았다.

화약통에 이상이 생겼다는것은 화약통의 어느 한쪽에 금이 갔다거나 움푹 패여들어간것 아니면 벽두께가 얇게 부어졌다는것이다.

과연 어디에 어떤 이상이 생겼을가.

박원작은 격목통에 배를 깔고누워서 화약통안을 샅샅이 훑어보았다.

이상이 생긴데를 발견했을 때 그는 악몽인듯 하여 한동안 멍해있었다.

온갖 만정성을 다 기울여 부어낸 천균노인데 이럴수가 있는가. 화약통의 한쪽벽에 목침이 반쯤 들어갈만큼 움푹 패여있으니 화약을 다져넣고 불을 달면 천균노는 깨지고말것이였다.

《병마도감사님!―》

박원작은 밖에서 부르는 소리에 한숨을 몰아쉬며 포아가리속을 기여나왔다.

기진맥진한 박원작의 손을 잡고 황보영이 위로했다.

《이보게, 첫술에 배부르겠나. 탈이 난걸 알았으니 그걸 바로 잡으면 돼. 한번 해서 안되면 두번, 두번 해서 안되면 세번… 그러면 천균노는 빛을 볼거네.》

박원작은 어려울 때 힘을 주는 황보영이 고마와 눈물을 머금었다.

《류수님!…》

하지만 박원작은 좌절감에 몸을 비칠거렸다.

과연 우리의 재주로는 천균노같이 큰 화포를 부어낼수 없단 말인가!

그렇게도 커다란 기대를 안고 모여왔던 사람들이 실망하여 하나 둘 흩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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