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균노


제 2 장

12


박원작은 여느날처럼 신새벽에 깨여났다. 해연은 벌써 아이를 업고나가 부엌에서 밥을 짓고있었다. 그의 머리속에는 천균노의 거푸집을 잘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꽉 차있었다. 그는 이미 철덕을 쌓을 때부터 천균노의 모양새며 크기를 이모저모로 타산했었다.

박원작은 여느날 아침과는 달리 벽에 기대앉아 사색을 이어나갔다.

지팽이모양의 불막대기, 다시말해 화장을 만배로 크게 한것이 천균노이니 산학에 정통한 그로서는 그 크기를 어렵지 않게 산출해낼수 있었다. 천균노의 크기는 기장이 10자(3. 03m)에 둘레길이는 13자 8치(약 4. 2m), 포아가리속의 폭은 33치(약 1m)정도 하면 3만근의 놋쇠가 들어갈것이다.

화약은 보통 40근정도 다져넣고 불을 달면 300근의 둥근 돌탄을 얼마든지 천보쯤은 날려보낼수 있을것이다. 천균노의 두께를 5치로 하면 40근의 화약이 터지는 힘에 끄떡않을것이다.

천균노의 크기를 바로 정했으니 그것을 부어낼 거푸집을 빚는 일도 어렵지 않다. 거푸집은 뢰등석포의 거푸집처럼 대동강바닥에 흔한 가는모래를 파내여 찰흙과 섞어 빚으면 될것이다.

3만근이나 되는 육중한 천균노의 거푸집을 빚어놓으면 철덕처럼 볼만 할것이다. 그럼 어떻게 거푸집을 앉혀야 편안할가. 포아가리쪽이 밑으로 가게 세워서 거푸집을 다져쌓되 천균노의 속생김과 꼭같이 먼저 쌓아놓고 그다음 5치의 공간을 정교하게 내면서 겉을 쌓아주어야 할것이다.

병마도감에는 아무리 까다롭고 복잡한 거푸집일지라도 솜씨있게 빚을줄 아는 귀신같은 재간을 가진 장공인들이 많으니 천균노의 거푸집같이 큰 거물도 마음먹은대로 해낼수 있을것이다.

아무래도 오늘 병마도감에 나가봐야 할것 같다.

어제 련장행수 근달이 찾아와 하는 말이 며칠을 거퍼 쉬니 오금이 쑤셔 장공인들이 병마도감에 나가려 한다는것이였다.

하고싶어 하는 일을 밀막으면 도리여 몸살을 앓는다는데 거푸집을 앉힐 자리도 볼겸 병마도감에 나가야겠다.

박원작이 자리에서 일어서려는데 방문이 열리며 해연이 밥상을 안고 들어섰다.

박원작은 자리를 차고일며 밥상을 받아들었다.

《아이를 업고 밥상까지 들다니…》

박원작은 밥상을 든채 《이제라도 시비 하나를 두지 않겠소?》하고 물었다.

《또 그 말씀이시오이까? 저도 백성집 딸인데 집안일 하나 거두지 못하여 시비를 둔다는건 말도 되지 않소이다. 그런 말씀 마시고 상이나 내려놓으시와요.》

《어… 그러지.》하고 밥상을 내려놓은 박원작은 설음식과는 전혀 다른 상차림에 눈이 둥그래졌다.

상우에는 부추며 파, 싱검초(당귀) 등이 놓여있었다. 이것들은 다 움에 두었던것들이 아닌가. 이런 생신한 남새들은 립춘날에나 먹는것인데…

박원작은 해연의 등에서 아이를 안아들며 물었다.

《왜 벌써 〈립춘채〉를 꺼내놓았소?》

《벌써라니요? 오늘이 바로 립춘날인데…》

《오… 오늘이?!》

박원작은 어줍게 웃음을 지었다. 자나깨나 천균노 그 한생각이다보니 절기가 어떻게 바뀌는줄도 모른것이다.

당시는 력서로 음력을 썼으므로 해마다 24절기에 따르는 날자들의 차이가 심했다. 립춘만을 보아도 어떤 해는 음력설보다 보름전에 오는가 하면 또 어떤 해는 그보다 열흘 늦어지는 때도 있었다.

그러니 박원작이 벌써 립춘이 든줄 모르고있었다 해도 무리는 아니였다.

박원작은 급히 웃방에 올라가 백추지(하얀 고려종이) 몇장과 백옥연갑이라고 하는 흰 옥돌로 만든 벼루집이며 붓을 찾아들고 내려왔다. 오늘은 집기둥에다 봄이 오자 복이 들고 계절에 따라서 경사가 많기를 바란다는 글인 《립춘대길》을 써붙여야 하는 날이다.

《글도 다 써서 붙여놓았어요. 그러니 아무 념려말고 진지나 드세요.》

박원작은 웃고말았다. 집에서는 늘 손님격인 자기가 새삼스럽게 생각되였다. 그것도 그것이지만 사내가 해야 할 일을 언제나 앞질러 해치우는 해연의 마음에 감동되였다. 참말이지 하나하나의 언행에 정이 쏙쏙 드는 해연이였다.

박원작은 문득 작년 여름날에 있은 일이 생각나 울대를 오르내렸다. 흐르는 내물에 하루종일 들어가있어도 덥다고 하는 여름날 불이 이글대는 철덕에서 놋쇠물을 받아 뢰등석포를 붓고나니 기갈이 나서 견딜수가 없었다.

아, 이런 때 시원한 서경랭면이나 먹어봤으면 좋겠다 하고 생각하는데 꿈인양 해연이 여러 녀인들과 함께 메밀국수임을 이고 병마도감에 나타났다.

그날 박원작은 기갈도 기갈이지만 기분이 뜬김에 서경랭면을 무려 세그릇이나 받아먹었다. 정말 오장이 시원히 풀리던게 평생 잊을수 없었다.

어쩜 해연은 사내의 마음을 그렇게도 헤아릴수 있었을가.

박원작의 품에서 영준이를 안아든 해연이 《어서 드세요.》해서야 그는 벌씬 웃고나서 싱검초를 집어들었다.

싱검초를 꿀에 발라 입에 넣으니 그게 참 별맛이였다. 싱검초를 맛스럽게 먹고난 박원작은 이번에는 연한 파를 집어 초장에 찍어 입에 가져갔다. 그 맛도 별맛이였다.

립춘날에 새파란 생남새를 먹으면 그해 이발이 무사하다는데 어찌 사양할소냐.

생생한 남새를 곁들여 밥 한그릇을 다 축낸 박원작은 배를 슬슬 쓰다듬으며 유쾌하게 웃었다.


×


박원작이 장공인들과 함께 련장칸의 뜨락에서 천균노의 거푸집을 앉힐 자리를 정리하고있을 때 조득국이 이끄는 마차행렬은 안북부를 빠져나와 서경을 향해 질주하고있었다.

수십대의 마차들에 놋쇠를 실은 이 행렬의 선두에서 말을 달리는 조득국의 곰상판에는 간교한 웃음이 어리여있었다.

이 길이 어떤 길인가. 가슴속에 품은 뜻을 하루빨리 당겨올수 있는 고행의 길이다.

정월에 봄이 시작된다고 했으니 이해의 봄은 정말 운수가 좋은 봄이라고 해야 할것이다.

조득국에게 있어서 놋쇠를 싣고 서경으로 가는 이 길은 하루빨리 녀진으로 돌아가는 길이기도 했다.

세상에 호걸이라 자처하는자치고 천하를 호령하는 장수의 지위를 탐내지 않는 놈 없다는데 자기를 대단한 인물로 여기는 조득국의 가슴속엔 하루빨리 녀진장수가 되고싶은 야심뿐이였다. 장수가 되는 길은 오로지 힘에 의거하는 길뿐인줄 그는 잘 알고있었다.

덕에 의거하면 뜻을 성취할수 있다는 말은 다 뜻을 이룬 사람의 겉치레말이고 초야에서 기회를 엿보는 호걸은 반드시 힘에 매달려야 한다. 이제는 바야흐로 그 기회가 거의 무르익어온다고 할수 있다.

수백리안팎의 녀진부락들을 거의다 거머쥔 장인은 이 조득국이 어서 빨리 화약의 비방을 알아가지고 돌아오기를 학수고대하고있다. 그러니 화약의 비방을 알아내는 날이자 장인의 뒤를 물려받는 날로 될것이다.

몇해전 화약과 《신기한 병기》를 남몰래 마바리에 떠싣고 압록강건너의 녀진부락을 찾아간 조득국은 그때 맹안(민호 3 000호)을 다스리는 두령집에 장가를 들었다.

젊어서부터 팔난봉으로서 자기를 말리려드는 안해마저 내쫓아 홀몸이 된 그가 두령집에 장가를 든것은 대단한 횡재였다.

조득국의 가시애비가 된 두령은 서경에다 고려에 잠입한 녀진인들을 끄나불로 가지고있었다.

그 끄나불들중의 한 로파가 절색으로 알려진 제 딸을 조득국이에게 주고 그를 녀진의 간자로 만들었다.

서경류수부의 사록참군사란 벼슬을 지낸적도 있어 고려의 물정에 밝은 조득국이 간자로 맞춤했던것이다.

로파가 안겨준 보물덩이와 미녀에게 혹한 조득국은 녀진을 섬길것을 맹약했다.

그동안 조득국은 루차에 걸쳐 고려의 위력한 병기들을 빼내여 녀진소굴에 보내주었다.

그렇게 하자니 적지 않은 은덩이며 고리문근처에 있는 고래등같은 기와집은 말할것도 없고 죽자살자 하던 미녀까지 남권부에게 섬겨바치지 않으면 안되였다.

하지만 그 대가로 사방 백리땅을 호령하는 두령집의 사위가 되였으니 장차 장인의 자리를 물려받을수 있게 된것이다.

그자리에만 앉으면 무엇도 두려울게 없다.

거란까지도 겁나할것 없다. 한때 천하를 크게 위협하던 거란은 어제날의 거란이 아니다. 해는 중천이면 옮겨가고 달은 만월이면 이지러진다고 사나운 기세로 송나라를 굴복시키고 대군으로 고려를 쳤던 거란은 자기가 일으켰던 그 전란에 부대껴 기력을 뽑히우고 쇠약해버렸다. 그러니 고려처럼 화약을 쓰는 《신기한 병기》들을 갖춰놓고 나아가서 박원작이 새로 만들어낼 천균노까지 그 비방을 뽑아다 차려놓는다면 거란따위가 감히 녀진을 넘볼수 있겠는가.

오늘날 자기를 지켜내는 비방에 대해 론한다면 그것은 남들이 가지고있지 못하는 세상에서 제일 위력한 고려의 화약을 먼저 빼앗아 취하는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것이다.

가장 앞서나가는자만이 남을 누를수 있는 법이거니 이해 신사년(1041년)에는 어떻게 하나 화약의 비방을 내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동안 남권부에게 숱한 재물을 먹였으니 이제는 그자의 목을 비틀어 화약의 비방을 넘겨받을 때가 되였다.

당초의 생각대로 하였더라면 이미 돌석이를 묶어간지가 옛날이였을것이다. 허나 잔고기가 가시 세다고 그놈이 화약의 비방을 내놓지 않는다면 10년 공든 탑 무너질수 있기에 오늘을 기다려온게 아닌가.

큰 고기에겐 큰 미끼를 던지라 했거늘 그동안 남권부에게 먹인 돈이면 하늘의 별도 따올수 있으렷다.

사냥하여 잡은 산짐승들을 남권부에게 가져다주군 하길 잘했다.

그 산짐승들이 조화를 부렸는지 박원작이 서경에 다시 내려와서 천균노란 무서운 병기를 만들려 한다는 희소식이 날아왔던것이다.

천하의 그 어떤 성루도, 거대한 충차도 단번에 묵사발로 만들수 있다는 천균노에 대한 소식을 들은 그날 조득국은 너무 좋아 하루종일 입을 다물수 없었다.

화약의 비방과 함께 천균노를 만드는 비결까지 알아가지고 가면 그야말로 횡재우에 또 횡재가 아닐수 없다.

고려는 그 거대한 화포를 기껏해서 성루에 올려놓고 적을 막자고 만들지만 이 조득국은 결코 그렇게만은 하지 않을것이다. 이 세상에 없는 그 좋은 병기를 가지고서 왜 울타리만 지키려 하겠는가. 천균노만 있으면 당장 온 녀진을 줌안에 넣은 다음 거란으로 쳐들어갈테다. 천균노의 우렁찬 포성이 울리기만 해도 거란은 기절초풍을 할것이다. 거란은 사람들의 인총이 조밀한 도회지들에 몰켜 평지성을 쌓고 사니 천균노로 몇방만 울리면 살려줍사 하고 무릎을 꿇고말것이다.

참는자에겐 복이 차례진다고 박원작이 천균노를 만들어낼 때까지만 그를 돕자. 박원작은 천하에 둘도 없는 인재이니 틀림없이 천균노를 만들어낼것이다. 바로 그때 낚시줄을 당겨 그 비방까지 뽑아가면 천하를 먹을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될것이다.…

이런 음흉한 속심에서 조득국은 놋쇠가 없어 천균노를 붓지 못하고있다는 남권부의 말을 듣고 그에게 놋쇠를 넘겨받도록 계책을 꾸민것이였다. 그의 속심을 알리 없는 남권부는 재물욕심이 나서 덥석 조득국의 미끼를 받아물었다.

조득국은 안북부에 심복부하들을 가지고있었다. 그들도 고려에 잠입한 녀진족속들인데 압록강을 넘나드는 길에 사귀였고 재물로써 그들을 심복으로 만들었다.

조득국은 이미전부터 녀진소굴에다 병마도감을 크게 지을 심산에서 안북부의 부하들에게 놋쇠를 사들이게 했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니 그 많은 놋쇠를 국경너머로 날라가는 품이면 녀진에서 거란과 교역을 하는편이 나을것 같았다. 그래서 비싸게 팔아넘기려 하던 참이였는데 때마침 쓸 일이 생겼던것이다.

당장은 그 많은 놋쇠를 남권부에게 거저 주는것 같아 속이 알찌근하지만 천균노를 생각하면 그까짓게 무슨 대수란 말인가.

이런 장사속이라면 발벗고도 만리를 뛸상싶었다.

하여 조득국은 남들이 다 쉬는 정초의 이날에도 산을 넘고 눈보라에 묻히면서 지친 마차행렬을 재촉하며 서경을 향해 가고있는것이다.

그는 용기를 내여 소리쳤다.

《이놈아, 어서 가자! 이랴,… 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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