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균노


제 2 장

8


아침일찍 경상골의 집을 나서 병마도감을 향해 말을 달리는 박원작은 마음이 평온하기도 하고 불안스럽기도 하였다.

마음이 평온하다고 하는것은 자나깨나 그려보는 천균노를 만들수 있겠다는 상서로운 조짐이 엿보이기때문이였다.

밤에 련장칸에서 고된 일을 마친 김충지가 집으로 찾아왔다.

몸이 헨둥하게 축간 그를 보니 가슴이 아팠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고 그만큼 병마도감의 별관에 들어있으면서 놋쇠를 녹이는 일만 보아달라고 했는데 그 성의를 만류하고 고생을 사서 하니 몸이 견딜수 있으랴.

그가 하는 말이 아무래도 철덕을 두개 더 쌓아야 할것 같단다. 그게 혹시 떡쌀을 앉히기도 전에 김치국물부터 찾는 격이 아닐가.

허나 김충지의 다음말에 박원작은 비로소 자기 일의 빈틈을 자인하지 않을수 없었다. 아이도 10달이면 낳는다고 천균노를 만들어낼 차비를 미리 해두고있다가 일단 좋은 궁냥이 나지면 지체없이 놋쇠를 녹여야 한다, 지금 있는 철덕은 그냥 놔두고 단번에 만 5천근의 놋쇠를 녹일수 있는 두개의 큰 철덕을 새로 쌓으면 천균노를 손쉽게 부어낼수 있을것이다.

듣고보니 정말 옳은 생각이였다. 만 5천근의 놋쇠를 녹일수 있는 두개의 철덕이 있어야 불을 지핀 철덕에서 놋쇠물을 뽑아 천균노를 부어내는 일을 중단없이 단번에 마칠수 있을것이다.

확실히 큰 철덕을 다루어본 김충지가 다르다.

그의 의견대로 지체없이 철덕공사를 벌리자. 철덕을 쌓느라면 좋은 궁냥이 나질것이다.

박원작이 병마도감에 이르니 그를 기다리고있던 능산이와 군만이 굽석 절을 차렸다.

《병마도감사님! 밤새 편안하셨나이까?》

《오, 별일 없었네. 자네들도 다 편안했나?》

박원작이 말에서 미끄러져내리자 능산은 말고삐를 그의 손에서 넘겨받았다.

《그래 아침부터 웬일인가?》

《병마도감사님! 능산이 저 친구 다시 만든 불막대기를 다 손질해놓았소이다.》

그 소리에 박원작의 불안스럽던 마음은 구름이 걷힌듯 밝아졌다.

《아주 좋아. 내 백사불구하고 불막대기 쏘는걸 먼저 보아주겠네. 지금 곧 련장행수와 함께 뒤골안으로 오게.》

능산이와 군만은 너무 좋아 머리가 땅에 닿도록 허리를 굽석 숙였다.

《고맙소이다!…》

덩실덩실 춤을 추며 련장칸으로 뛰여가는 그들을 보는 박원작의 기분은 흥그러워졌다.

아무리 기분없는 일로 해서 머리가 아프다가도 활기에 넘쳐있는 장공인들만 보면 속이 거뜬해지니 그래서 병마도감에 나와야 사는 기쁨을 느끼는게 아닌가.

박원작이 마구간에 말을 매두고 뒤골안으로 가니 벌써 근달이를 데리고 능산이네들이 와있었다.

그들속에 번기가 끼여있는것을 본 박원작은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번기가 어찌된 일인가? 래일은 개경으로 떠나야 할 사람이 아직도 병마도감에서 어물거리고있으니…

며칠 있으면 설을 맞이하게 되는데 설을 함께 쇠고 떠나보냈으면 좋으련만 개경군기감에서 이제나저제나 하고 서경장공인들을 기다리고있으니 나라를 위한 일에서 어찌 그만한 아쉬움도 없으랴.

박원작은 속이 언짢아져서 번기에게 다가갔다.

《번기 이 사람! 자넨 어찌 내 마음을 몰라주나? 개경으로 가기 전에 한가지라도 집일을 더 돌보아야지. 어서 집으로 돌아가게.》

그쯤하면 돌아설줄 알았는데 번기는 벌쭉 웃으며 대꾸했다.

《병마도감사님. 이왕 갈바엔 불막대기까지 가지고 개경에 가면 더 좋지 않소이까.》

《?!…》

박원작은 말문이 막혀 잠시 하늘을 쳐다보았다.

새깃모양의 구름이 드문드문 널려있는 하늘은 맑고 푸르렀다. 아마 개경의 하늘도 여기 서경처럼 개였을것이다.

아, 병마도감을 거느렸다는 사람이 어쩜 일개 장공인의 생각에도 미치지 못할가. 불막대기를 위력있게 만들어가지고 개경에 가면 그 또한 얼마나 좋은 일인가.

《아주 좋아!》

박원작이 손을 내밀자 능산은 제꺽 그의 손에 불막대기를 돌려주었다.

두손에 불막대기를 무겁게 받아든 박원작은 그것을 한동안 들여다보았다.

겉은 다 며칠전의 불막대기와 같고 다른점이 있다면 아가리구멍이 좁아지니 불막대기도 가늘어져 무게도 퍽 가벼워졌다는것이다. 세근이 조금 넘어보였다.

《음― 될것 같군.》

《병마도감사님! 이것도 봐주소이다.》

군만이 내보이는 불막대기를 받아든 박원작은 그것이 능산이에게서 받은 불막대기보다 퍽 무겁다는것을 대뜸 느꼈다. 다섯근쯤 나갈것 같았다.

(?…)

유심히 살펴보니 무거운 불막대기는 아가리구멍이 둘째손가락이 드나들만 하였고 약통도 처음것보다 더 커보였다.

《음… 이것도 될만 해.》

장공인들의 얼굴에 희색이 어려들었다.

박원작이 불막대기들을 능산이와 군만이에게 넘겨주자 근달이 두개의 노살을 내보였다.

두개의 노살을 받아든 박원작의 입가에 만족한 미소가 비꼈다. 각각 두개의 불막대기에 꼭 들어가 맞게 만든 노살들은 다 허리부위에 세모꼴의 얇은 철판으로 맵시나게 날개를 붙였다. 열십자로 네개의 날개를 붙이고 그 앞뒤로 쇠띠를 조였으니 노살은 든든해보였다. 더 무거운 노살은 살대가 굵고 활촉도 커서 여간 위력해보이지 않았다.

박원작은 밤새 노살을 만든 근달의 수고가 헤아려져 눈굽이 축축해졌다.

《그럼 쏘아보게!》

박원작이 분부가 떨어지기 바쁘게 능산이와 군만이 불막대기를 꼬나들고 불심지에 불을 달았다.

이윽고 땅!―땅! 하는 야무진 소리가 골안을 흔들었다.

두개의 노살이 공중으로 치달아올랐다.

먼저번때와는 전혀 달리 살대가 흔들거리지 않았다. 살대에 날개가 있어서일것이다.

긴 포물선을 그으며 날던 두개의 살은 골안의 거의 막바지에서 떨어졌다.

무려 천여보나 되는 거리였다. 수질노며 팔우노, 수질구궁노들이 도달한 거리였다.

너무 기뻐서인지 장공인들은 아무말도 않고 멍하니 골안을 올려다보기만 했다.

박원작이도 마찬가지였다. 인차 그는 흥분을 다잡고 나직이 입을 열었다.

《이번엔 과녁을 쏘라구.》

박원작의 재촉에 능산이와 군만이는 서둘러 불막대기에 화약을 재웠다.

《침착들 하게.》

근달이 불막대기들에 불을 달며 귀띔해주었다.

이어 화약이 터지는 소리가 울리고 100보앞에 세운 과녁으로 노살이 날아들었다.

《맞았다!―》

환성을 지르며 과녁판에로 뛰쳐나가는 장공인들을 따라 박원작이도 뒤질세라 달려나갔다.

정말 두개의 노살이 과녁판에 박혀있었다. 고라니대가리의 한가운데를 명중하지는 못했어도 이마빡의 한켠을 맞혔으니 괜찮다고는 할수 있었다.

번기가 과녁에서 노살을 뽑아냈다.

무거운 노살은 더 깊숙이 박혀 그것을 뽑느라고 번기는 진땀을 뺐다.

근달이 웃으며 말했다.

《불막대기에 맞으면 쇠갑옷을 입혀놓아도 즉사를 면치 못하겠소이다.》

박원작은 불막대기의 예상치 못했던 위력에 가슴이 울렁거렸다.

그 어떤 쇠갑옷을 입은 놈도 단숨에 죽일수 있고 그 못지 않게 화약 터지는 소리가 요란하여 적을 위압하기에도 좋았다.

이런 병기를 고려군사가 모두 가지고있다면 그 어떤 대적도 쳐부실수 있다.

박원작은 눈시울을 슴벅거리며 번기의 손을 꼭 잡았다.

《이젠 큰소릴치며 개경으로 갈수 있겠소. 가만! 능산이, 불막대기를 만든 자네도 가야겠어. 군기감에 가서 서경사람들의 본때를 보여주라구.》

그 말에 능산이 고개를 떨구며 간신히 《예.》 하고 대꾸했다.

박원작은 자기의 손등우에 떨어지는 눈물이 누구의것인지 알았다. 정녕 병마도감을 떠나기 아쉬워하는 마음의 눈물이리라.

아니, 그때문만도 아니리라. 천균노가 념려돼서일것이다.

박원작은 다문 얼마간이라도 능산이와 번기의 마음을 위로해주고싶었다.

《오늘 이 경사로운 날을 어찌 그냥 보내겠나. 내 한상 내겠으니 오늘저녁 모두 우리 집으로 오게. 우리 집 랭면맛이 정말 괜찮아.》

장공인들은 환성을 올렸다.

능산이 좋아라 흔들어대는 불막대기를 무심히 바라보던 박원작은 머리가 핑그르르 도는것 같았다. 그바람에 그는 갑자기 비칠거렸다.

장공인들이 깜짝 놀라 박원작을 부축했다.

《병마도감사님! 웬일이시오이까?》

박원작은 대답대신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방금 뇌리를 친, 하여 정신을 아찔하게 하였던 그것을 생각해냈다. 능산이가 좋아라고 흔들대던 불막대기가 다시 안겨왔고 이어 물에 불쿠는듯 그것이 점점 늘어나는것이였다. 그것은 처음 모습의 열배, 백배, 천배로 불어나더니 나중에는 몇아름드리 통나무처럼 돼버렸다.

아! 바로 그것이다, 그것! 서너근의 불막대기를 천배가 아니라 만배로 크게 하면 3만근의 불막대기가 될게 아닌가. 3만근으로 크게 만든 불막대기에 화약도 그만큼 더 많이 다져넣고 터뜨린다면 수백근짜리 돌탄을 허공으로 날려보내기쯤은 식은죽먹기일것이다.

《됐소, 됐단 말이요! 능산이가 천균노를 만들게 하였어. 이 불막대기를 만배로 크게 만들면 그게 곧 천균이 되는 화포가 아니겠나!》

《병마도감사님!…》

장공인들이 박원작의 팔을 부여잡으며 목메인 소리로 그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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