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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회)

마감이야기

 

포성없는 수호전의 그 준엄한 해로부터 30년세월이 흘러간 1998년 11월의 어느날 저물녘이였다. 오후 느지막해서 내리기 시작하여 저물녘부터 성글어진 이해의 첫눈을 맞으며 일정한 간격으로 꼬리를 문 여러척의 배들이 남포항으로 들어오고있었다.

모두 다섯척으로 무어진 선단이였다. 앞장에 선 3750톤급대형선미뜨랄선 《룡악산》호를 제외하고는 뒤따른 4척이 다 1000톤급이 될지말지한 보통짐배들인데 《흥남13》이니 《동해27》이니 하는 이름만 아니면 어느 배가 어느 배인지 분간하기 힘든 어슷비슷한 생김새의 짐배들이였다.

그러나 누가 선박을 아는 사람이 있어 다섯척중 앞뒤로 세번째인 중간위치의 《서해44》호에 올라 두루 살펴보면 이 배에 짐실이칸이 없다는것을 어렵지 않게 알수 있다. 그렇다면 고기배인가? 그것도 아니다. 고기배라면 필요한 어구며 어창이 응당 있기마련인데 배에는 이도저도 다 없다. 그렇다고 무슨 려객선이나 관광선일수는 더욱 없는 이 용도불명의 배로 말하면 지금으로부터 30년전인 1968년 1월 23일 우리의 신성한 령해를 침범하였다가 조선인민군 해병들에 의해 나포된 미제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이다.

《푸에블로》호, 이름만 상기해도 감회가 새롭다. 그간 이 불운한 배 《푸에블로》호는 동해함대소속의 어느 해군부대에서 부업선으로 리용되여왔다. 배머리의 오른쪽 닻구멍옆에 있던 《GER 2》라는 표식을 지워버린 우에 《부업-ㅍ》라는 어엿한 조선이름을 달아주고 고기잡이 아니면 섬초소들에 식량이나 간장, 된장, 석탄 같은 후방물자들을 실어나르는 운반선으로 리용되였다.

그렇게 이름을 갈고 종신 머슴군마냥 잡역으로 30년세월을 보내면서도 종시 벗지 못한것은 미제무장간첩선으로서의 오명이라고 할가.

하지만 세월은 존재하는 모든것에 나이를 주는 대신 퇴색과 망각을 강요하는 반갑지 않은 손이다. 한때 세상을 들썽거리게 하고 조미간의 대결을 불붙인 《푸에블로》호의 존재도 례외일수 없어 당시를 체험한 세대들에게도 이제는 그 사건이 기억의 갈피속에 추억으로 잠겨있다. 뿐더러 1970년대 이후에 태여난 세대들의 경우에는 《푸에블로》호사건자체를 아득히 먼 과거의 개념으로 낱말처럼 생각하고있는 형편이였다.

바로 이러한 때, 새 세대들을 비롯한 인민들의 기억속에서 그 이름이 사라져가고있던 《푸에블로》호의 존재를 잊지 않으신분이 계시였으니 그이는 다름아닌 김정일동지이시였다.

우리 조선이 사회주의의 본태를 지킨다고, 자주권과 존엄을 지켜 저들앞에 굽신거리지 않는다고, 또 거기에 간첩선을 나포당하고 사죄문을 써낸 묵은 원한도 있어 이를 갈며 히스테리적인 반공화국소동에 매달리는 미제의 행위에 대처하여 인민들을 반미의식으로 더욱 튼튼히 무장시키기 위해 그이께서는 무장간첩선을 통한 실물교양의 절실한 필요성을 느끼시였던것이다. 사실 그것은 《푸에블로》호를 붙잡던 당시에 벌써 오늘을 생각하시여 마음속에 깊이 간수해두고계시던 전략비축품같은것이기도 하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인민군대의 책임일군들과 자리를 같이하신 어느 기회에 말씀하시였다.

《…30년전에 우리 해군이 붙잡은 미제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있습니까? 정찰자료에 의하면 미국은 아직도 그 배를 현역에서 제명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나는 그 배를 대동강에 끌어다놓고 인민들, 특히는 청소년들의 반미교양에 리용하려고 합니다. 미국한테서 빼앗은 배를 가지고 반미교양을 하면 실효성도 클것이고 미국이 알면 제 주먹에 면상을 얻어맞는 격이라 아마 복통이 터질것입니다.》

그이의 말씀에 따라 인민군총참모부와 해군사령부에서는 《푸에블로》호를 동해에서 서해로 넘겨오기 위한 작전계획을 세웠다. 그 작전안에 따라 적들의 위성감시를 눈멀게 하기 위한 대책으로 갑판구조물들을 일부 변경하고 《푸에블로》호를 포함한 5척으로 구성된 선단이 무어졌다.

지난 11월 6일 미명에 원산항을 출발한 이후 선단은 9일간 동해-남해-서해의 1 460마일을 항행하여 지금 드디여 남포항으로 들어오는것이다. 결코 쉬운 항해는 아니였다. 쯔시마해협을 지날 때는 일본해상자위대것들이 검열을 시도한바가 있었고 군산앞바다에서는 괴뢰해상경찰이 접근하여 단속에 응할것을 요구하였지만 거부한 일도 없지 않았다.

붕- 부- 웅-

앞장선 《룡악산》호가 울리는 고동소리에 따라선 배들도 저마끔 제목소리로 화답한다.

뚜- 우 뚜- 뚜

뿌웅- 뿡, 뿡…

눈내리는 항만의 하늘가에 울려퍼지는 배고동, 배고동… 그것은 적들과의 또 한차례 싸움에서 이긴 승리자들이 웨치는 함성과도 같은것이였다.

 

《푸에블로》호를 호송한 짐배선단의 남포항도착소식이 총참모부를 거쳐 김정일동지께 보고된것은 저녁 7시경이였다.

그 시각 당과 국가의 책임일군들과 함께 새해 1999년의 사업방향을 토의하시던 김정일동지께서는 발끝걸음으로 조심히 들어와 허리를 굽히며 귀속말로 소식을 아뢰이는 책임부관에게 롱담섞인 화를 내시였다.

《그건 전승소식이나 같은데 왜 가만가만 말하오. 승리의 소식은 대포소리처럼 크게 알려야 하오! 대포소리처럼 크게…》

그래서 책임부관은 허리를 쭉 펴고 가슴을 내밀며 당과 국가의 책임일군들을 향해 큰소리로 알렸다.

《30분전 〈푸에블로〉호가 남포항에 도착했습니다!》

책임일군들은 모두 눈이 휘둥그래졌다. 전혀 기억밖에 있던 《푸에블로》호 소리를 갑자기 듣게 되는것도 의외였지만 동해에 있던 그 배가 서해의 남포항에 도착했다는 소식은 동해의 섬 하나가 남해를 에돌아 서해로 떠왔다는것만치나 놀라운 그야말로 특보였다. 그렇게 놀라는 일군들을 미소어린 눈길로 일별하신 김정일동지께서는 《푸에블로》호를 동해에서 서해로 넘겨오게 된 사유며 배가 원산항을 출항한 보고를 받으신이래 지난 9일간 자신께서 얼마나 남모르는 왼심을 써오시였는가를 상기하시였다.

《…결국 우리는 미국과의 싸움에서 또 한번 이겼습니다. 미국이 궤도에 숱한 위성을 올려놓고 실시간으로 전세계를 손금처럼 내려다본다고 으시대지만 위성이 1 000개가 있단들 조선사람의 배짱과 지혜야 어떻게 들여다보겠습니까? 어림도 없지요. 이번에 〈푸에블로〉호가 그걸 증명했습니다.》

잠시 말씀을 멈추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시였다. 일군들도 서둘러 따라 일어섰다.

《〈푸에블로〉호를 어디에 정박시켜놓고 인민들과 군인들을 교양하겠는가 하는것을 연구해보아야 하겠습니다.》 팔을 결어 가슴에 얹으신채 천천히 일군들앞을 거닐으시며 김정일동지께서는 생각깊은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내 생각에는 그 간첩선을 침략선 〈셔먼〉호를 격침시킨 곳에 끌어다놓는것이 어떻겠는가 하는것입니다. 거기 한사정여울에는 제방우에 〈셔먼〉호를 격침한 때로부터 120년이 되는것을 기념하여 세운 비도 있어 미제의 조선침략사를 쉽게 리해할수 있는, 반미교양장소로서는 아주 맞춤한 조건을 갖추고있다고 봅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렇게 자신의 견해부터 내놓으시며 여러 일군들의 생각을 물으시였다. 그러나 누가 다른 의견을 내는 일군이 없었다. 일군들은 모두가 《푸에블로》호를 《셔먼》호격침장소에 두는것이야말로 침략자 미제에 대한 단순한 증오만이 아닌, 싸워 승리한 조선의 기개와 긍지를 가슴뿌듯이 받아안을수 있게 하는 명당임을 인정하였다.

그리하여 남포항에 얼마간 머무르면서 아이들의 표현을 빈다면 본래의 《간첩같은》 음침한 자기 모습을 되찾은 《푸에블로》호가 전리품의 신분으로 《셔먼》호격침비가 서있는 대동강 한사정여울목에 끌려와 정박한것은 이듬해 봄이였다. 그리고 참관개시행사를 거쳐 평양시민들에게 정식 공개된것은 그로부터 또 얼마후의 일이였다.

첫 참관의 날 인민군군인들도 포함하여 수백명을 헤아리는 참관자들앞에서 미제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의 족보며 침입경위, 나포전투과정을 정열적이면서도 실감있게 해설한 강사는 키가 후리후리하고 귀밑머리에 희슥희슥 서리가 불리는 해군대좌였다. 군인치고 젊지 않은 이 해군대좌로 말하면 최근 당의 조치에 의해 본래의 직무를 인계하고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 강사로 소환된 공화국영웅 박인철이였다.

개괄강의에 이어 참관자들을 안내하여 통신실과 무기고, 선실 등 간첩선의 내부를 보여주고 배에서 내린 박인철대좌는 마감으로 이런 말로 강의를 결속하였다.

《동지들, 오늘 동지들은 100여년전 우리의 조상들이 침략선 〈셔먼〉호를 격침시킨 여기 대동강의 한사정에서 조선인민군 해병들이 나포한 미제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를 참관하며 순간으로 함축된 조선의 근대사를 함께 보았습니다. 우리 인민은 100여년전에도 미국놈들과 싸워이겼고 1950년대에도 이겼으며 그리고 오늘도 이기고있고 앞으로도 이길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영원한 승리의 전통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동지들, 저기 물가에 묶여있는 가련한 미국간첩선을 다시한번 보십시오. 그리고 제방우에 서있는 저 〈셔먼〉호격침비를 보십시오. 얼마나 상징적이고 격침비는 또 얼마나 위엄스럽습니까!

그렇습니다. 패배를 위해서는 기념비를 세우지 않습니다. 기념비는 승리자들을 위해서만 세우는, 더 크고 위대한 래일의 승리를 위한 약속- 다시말하여 조국청사에 새기는 맹세와도 같은것입니다.

나는 동지들이 오늘 미제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를 참관한 이 기회에 모두 그러한 맹세- 승리의 기념비를 마음속에 세워가지고 돌아가기 바랍니다.》

강의는 끝났지만 참관자들은 숭엄한 감정에 잠겨 이윽토록 움직일줄 몰랐다. 그러는 그들 참관자들속에는 아직도 젊은 시절의 미모와 생기를 다 잃지 않은 50대의 인민군 녀성중좌가 있었다.

한성희였다. 얼마전까지 동해안의 어느 해군전대 군의소장으로 근무하던 한성희는 남편과 같이 소환되여 엊그제 김형직군의대학 어느 강좌의 상급교원으로 임명되였다. 그는 처녀시절의 꿈을 실현하여 지난해에 림상유전학분야의 론문을 써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성희는 두 아들과 딸을 가진 어머니이다.

맏이는 공군에서 추격기비행사로 복무하고 둘째는 동해함대관하 해군전대의 어뢰정 정장이다. 막냉이인 딸은 어느 보병사단의 녀성고사포부대 장탄수이고…

그러고보면 한성희의 가정은 모두가 군인이다. 하여 이 전투적이고 행복한 군인가정에서 한성희는 안해와 어머니로서만이 아닌 《총참모장》으로도 불리운다.

잊을수 없는 그해로부터 다시 15년세월이 흘렀다. 용감한 조선인민군 해병들이 미제무장간첩선 《푸에블호》호를 나포한지 어언 45년이 되는 해였다.

그동안 《푸에블로》호는 여전히 대동강 한사정에서 《셔먼》호격침비와 더불어 미제의 조선침략사를 세상에 고발하며 그리고 미제와 싸워이긴 조선의 긍지높은 력사를 만방에 강의하며 자기가 저지른 범죄의 값을 물기에 《수고》가 많았다.

그러나 대동강은 《푸에블로》호의 영원한 거처지가 아니였다.

이해 2013년은 공화국창건 65돐과 조국해방전쟁승리 60돐이 되는 뜻깊은 해로서 미제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에 있어서도 《셔먼》호격침비와 리별하고 대동강을 떠나지 않으면 안되는 운명적인 해였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당과 국가의 책임일군들에게 공화국창건 65돐과 전승 60돐을 승리자의 대축전으로 맞이하기 위한 사업방향을 주시는 기회에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위대한 수령님의 전승업적으로 빛나는 전승절을 후세에 가서도 영원히 조국해방전쟁승리의 날로, 제2의 해방의 날로 뜻깊게 경축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을 잘 꾸려야 하겠습니다.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은 인민군장병들과 인민들에게 조국해방전쟁을 승리에로 이끄신 위대한 수령님의 탁월한 전승령도업적을 체득시키는 위대성교양장소이며 후대들에게 전세대들이 수령님의 령도밑에 미제와 그 추종세력과의 전쟁에서 어떻게 싸워 승리하였는가를 보여주는 반제반미계급교양의 기본거점입니다. …

그무렵 김정은동지의 사색속에서는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을 다시 꾸리는 기회에 대동강 한사정에 있는 미제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를 보통강에 넘겨다 로획무기들과 함께 전시할 비상한 구상이 무르익고있었다. 이 구상이 실현되면 45년전 자신을 최고사령관으로 생각하고 결심해보라고, 《푸에블로》호를 어떻게 처리했으면 좋겠는가고 하시는 수령님의 물으심에 김정일동지께서 미국이 항복서를 내기 전에는 선원들을 절대로 돌려주지 않겠다고, 설사 놈들이 항복서를 낸다 해도 배는 돌려주지 않을것이며 후날 박물관에 전시해놓고 후대들에게 이것은 우리가 수령님시대에 잡은 미국의 간첩선이라고 말해주겠다고 하신 말씀이 현실로 되는것이였다. 다시말하여 이것은 김정일동지의 유훈을 관철하는 사업이였다. 김정은동지께서는 기념관건설부지를 잡아주시려고 현지에 나오신 기회에 결론을 주시였다.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탑 교양마당을 중심으로 미래상점쪽에는 공훈무기관에 있는 무기들을 전시하고 보통강쪽에는 로획무기관에 있는 무기들을 전시합시다. 그리고 로획무기들을 전시한쪽의 보통강에는 〈푸에블로〉호를 전시하여야 합니다.

지금 〈푸에블로〉호를 대동강에 전시하였는데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의 로획무기들과 함께 전시하면 그 의의가 더 커질것입니다.》

하여 《푸에블로》호는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의 완공과 때를 같이하여 보통강기슭에 끌려와 전승 60돐행사를 더욱 이채롭게 장식하는데서 류다른 기여를 할수 있었다.

곡절의 항로를 이어온 미제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 이야기는 여기서 끝난다. 하지만 행로는 끝났어도 전리품의 신분으로 침략자 미제의 죄행을 만천하에 폭로하는 고발자로서의 소임은 끝나지 않았으니 그것은 언제나 승리만을 아는 영웅조선의 긍지높은 력사와 함께 영원히 계속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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