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0 회​​​

 

(제 50 회)

제 9 장

50

 

외로운 쪼박구름 한덩이를 벗하여 개풍쪽으로 기운 12월의 감빛해가 송악산아래 개성의 판문점공동경비구역에 어설픈 빛을 내리고있다.

오후 3시 20분경, 이른바 중립의 감시하에 적대되는 두 리념과 가치관이 한지붕밑에서 《공존》하는 여기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에서는 지금 미제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의 선원처리문제를 토의하는 조미정부간 제27차 담판이 진행되고있었다. 다시말하여 우리가 제시한 사죄문건에 미국측의 서명을 받아내고 선원들을 넘겨주는데서 나서는 마지막절차를 합의보기 위한 실무담판이였다.

박준국은 담판장에 들어가 적측대표와 마주앉으면서 오늘 담판은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고 시간도 그리 오래 끌지 않을것으로 예상하였다. 그렇게 생각할수밖에 없었던것은 지난번 제26차 담판에서 사죄문에 서명하는 장소에 기자들과 촬영가들을 참가시키는 문제와 서명에 앞서 하게 될 쌍방대표들의 발언 등 기본적인 사항들을 다 합의하고 오늘은 서명과 송환에 따르는 세부절차만 합의보면 되기때문이였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 때이른 속단이였다.

박준국이 주동적으로 제기한 절차안중에는 적측대표가 사죄문건에 공식 서명한 후 승무원들을 넘겨보낼 때까지 2시간의 시간적여유가 있어야 한다는 조항이 있었다. 적측이 사죄문건에 서명한 후 추방에 앞서 《푸에블로》호 선원들이 우리 공화국정부에 감사문을 올리는 의식이 있고 뒤따라 마지막기자회견을 해야 하므로 우리측으로서는 여유시간이 꼭 필요하였다. 그런데 적측대표 우드워드는 서명후 시간여유를 두는것을 한사코 반대하면서 《동시석방》을 주장하였다. 말하자면 자기가 사죄문건에 서명하는 즉시 선원들을 넘겨주어야 한다는것이였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거의 한시간가깝게 공방전을 거듭한 지금 박준국은 어지간히 지쳤지만 전혀 그런 티를 내지 않고 엄한 눈길로 우드워드를 건너다보며 다시한번 언명하였다.

《…우드워드씨, 당신도 잘 알겠지만 당신들의 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가 우리한테 나포된지 이미 11개월째 잡혔고 우리가 첫 담판을 시작한 때로부터는 오늘로 313일이 되였소. 그동안 당신측은 현상태에서 볼 때 일련의 문제들에서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던(나는 당신측이 이미 양보한 여러 사안들을 념두에 두고 하는 말이요.) 비론리적주장을 고집하느라고 많은 시간을 허무히 소비했소. 300여일의 대부분이 그렇게 맹랑하게 흘러갔다고보아 틀리지 않을것이요.

그런데 당신측은 모든것이 다 명백해지고 결속을 론의하는 오늘에 와서까지 어느모로 보나 타당성이 없는 주장을 하면서 아까운 시간을 소비하고있소. 당신 생각해보시오. 근 1년간을 끌어오면서 전쟁접경에까지 이르렀던 중대사건을 결속하는 마당인데 왜 2시간의 여유가 필요없겠소? 당신측은 펜을 들어 문건에 수표하고 선원들을 인수해가면 그만이지만 넘겨주는 우리로서는 일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소.

그런즉 다시한번 립장을 밝히면 그렇소. 당신측이 문건에 서명하여 나에게 수교한 때로부터 승무원들을 넘길 때까지 우리에게는 행정상의 리유로 2시간의 시간적여유가 꼭 필요하오. 이것은 당신이 말하는 동시석방원칙에도 어긋나지 않고 부합되는것으로서 절대로 변경시킬수 없다는걸 알아야 하오.》

우드워드는 무슨 생각인지 많이 하는 눈치였다. 했지만 아무래도 합당한 대답을 찾지 못한 모양 갑자기 목에 주름을 접으며 등뒤의 참모진을 돌아다보았다. 박준국은 탁상밑으로 우드워드의 종다리를 걷어차고싶은것을 겨우 참았다. 서당개 삼년에 풍월을 짓는다고 16차담판때 선을 보인이래 10여차의 담판을 경험했으면 이젠 웬간한 대답쯤은 자체로 결심할수도 있겠으나 날이 갈수록 더 자주 참모진에 의거하는 우드워드였다.

이윽고 발언쪽지가 어깨를 넘어오고 우드워드의 발언이 있었다.

《에-》 동지추위때라 회의실이 그리 덥지 않건만 땀이 나는지 우드워드는 손수건을 꺼내 이마를 찍으며 말은 말대로 하였다. 《우리는 당신측이 푸에블로호 선원들을 300여일간 억류하고있은 사실에 류의하면서 서명후 2시간의 여유를 제공하는데 동의합니다. 그러나 100걸음에 해당되는 우리측의 이 성실한 양보에 당신측도 응분의 양보를 해야 쌍방간의 도덕적균형이 보장된다고 봅니다.》

우선 앞머리부터 그렇게 단단히 다져놓은 우드워드는 일단 말을 끊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박준국은 그의 미소를 리해하였다. 미루어 《응분의 양보》와 《도덕균형》을 운운하는 우드워드의 심리속에는 이제 자기들이 제의하는 어떤 요구조건에 동의하지 않으면 우리측으로선 도덕적참패를 면치 못할것이라는 음흉한 위협이 자객의 칼처럼 감추어져있었다.

《그럼 들어보기요. 우리는 당신측이 제의하는 문제가 담판론리에 맞고 납득될만 한것이면 기꺼이 동의를 주겠소.》

박준국은 느슨한 웃음까지 합쳐 한걸음 물러서는척 했지만 실상 그것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마음의 탕개를 늦추게 하는 심리상의 공격이였다. 우드워드도 무슨 낌새를 챘는지 입귀에 물었던 미소를 급히 지우며 발언원고에 눈을 주었다.

《에- 사실 우리측의 요구란 별것이 아닙니다. 전번 26차담판때에도 제의한바 있지만 우리는 사죄문건을 서명하는 장소에 각각 3명의 사진기자들과 기록영화촬영가들이 참가는것이 불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들이 무슨 력사의 증견자라고 거기에 립회한단 말입니까? 그들은 그들대로의 직업에 돌아가 사진을 찍고 영화를 촬영하면서 돈을 버는것이 좋습니다. 예.》 과연 그렇다는듯 우드워드는 말끝에 히죽 웃음까지 이어놓았다.

(이런 덜된 놈 봤나, 서명장소에 사진기자와 촬영가들을 참가시키는걸 반대하다니.…)

박준국은 명치끝을 치받으며 우-욱 일떠서는 분기를 주체할수 없어 결김에 주먹으로 책상부터 탕! 때렸다. 그리고 우뜰 놀라는 적측참모인원들과 우드워드를 쏘아보면서 준절히 따졌다.

《이보 소장! 당신 정말 할말을 다했소? 그래 어제는 합의하고 오늘에 와선 뒤집는것이 미국식 〈도덕균형〉이고 담판례절이요?

《유감이요, 정말 유감스럽소. 나는 당신이 그간 정부의 그릇된 견해를 대변하느라 많이 고심하는걸 보면서 가엾은 생각에 동정한바도 없지 않았더랬소. 그러나 오늘은 담판대표로서의 당신에 대해 실망을 금치 못하게 되오. 알겠소? 당신의 인격과 수양에 대해 의심하게 된단 말이요.

나는 당신측이 전혀 아무런 문제로도 되지 않는 촬영문제를 가지고 더 이상 신경을 쓰지 않는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오. 증빙이 없는 력사일수록 위조되기 쉽다는것이 인류사의 교훈이고 우리가 경험한바요.

그러니 소장, 만일 당신측이 이 문제를 더 고집할 작정이면 이제라도 결심하시오. 이 담판을 계속하겠는가? 아니면 크리스마스이후로 미루겠는가? 그래 어느쪽이요?》

우드워드는 또 뒤쪽의 참모석을 돌아다본다. 좌우지간 자기란 통 없고 잘 익은 수박통처럼 크기만 한 머리를 참모들에게 맡겨놓고 사는 작자다. 하더라도 명색은 미국정부대표니 참모석에서는 옥신각신에 가까운 론의를 한참 거듭한 끝에 마침내 답변쪽지를 보내왔다.

《에-》 우드워드는 내용파악도 없이 무작정 읽어내려갔다. 《우리 미합중국측으로서는 여기가 헐리우드(미국의 영화도시)도 아닌터에 당신측이 왜 3명씩의 촬영인원을 서명의식에 립회시키자고 고집하는지 납득할수 없습니다. 하지만 미합중국국민인 〈푸에블로〉호 선원들이 크리스마스를 고향에 돌아가 쇨수 있게 하기 위해 우리는 100걸음 양보하여 자기의 주장을 철회하기로 했음을 정식 알려드립니다.

《망할것들, 아무래도 물러설걸 벌써 그랬어야지.》

감정같아서는 그렇게 시까슬러주고싶었지만 박준국은 감정을 누르며 알겠다는 뜻으로 점잖게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망할것들이기는 해도 례절은 차려야 했다. 미합중국대표로서 사죄문에 서명하는 문전에까지 끌려오느라고 앙버티며 수고한바가 많은 담판상대였던것이다.

 

12월 23일 아침이 밝아왔다.

미제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를 나포한지 꼭 11달이 되는 이날 오전 판문점에서는 미국측이 자기의 범죄행위에 대해 사죄하는 문건에 서명하고 우리측이 승무원들을 추방하기 위한 조미정부간 마지막담판이 진행되였다.

이 마지막담판과 선원인도인수에서 이상정황이 발생할수 있는 경우를 예견하여 총참모부는 부총참모장 강선태를 현지에 파견하여 적측으로부터 사죄문을 받아내고 선원들을 추방하는 사업일체를 총찰감독케 하였다.

정각 9시, 오늘따라 새 장령복을 차려입고 면도를 깨끗이 한 박준국이 비서장 한재경대좌를 비롯한 보좌성원들과 함께 담판장에 들어섰을 때 미국측 대표들은 이미 입장하여 기다리고있었다.

잠간 그들을 일별한 박준국은 한재경비서장에게서 받은 사죄문건을 미국측 대표 우드워드에게 넘겨주었다. 문건을 받은 우드워드는 선체로 내용을 읽어보더니 의견이 없는듯 사죄문을 책상에 내려놓으며 자리에 앉았다.

보좌인원들이 좌우로 늘어선 가운데 서명을 위해 수표용펜대를 쥐는 우드워드의 손이 중풍을 만난듯 후두두 떠는것을 박준국이도 강선태도 분명히 보았다.

순간을 놓칠세라 사진기가 섬광을 터치고 촬영기들이 돌아갔다.

이윽고 서명한 사죄문건이 돌아왔다. 사죄문의 내용은 이러하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정부 앞

미합중국정부는 1968년 1월 23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령해에서 조선인민군 해군함정들의 자위적조치에 의하여 나포된 미국함선 《푸에블로》호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령해에 여러차례 불법침입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중요한 군사적 및 국가적기밀을 탐지하는 정탐행위를 하였다는 이 함선의 승무원들이 자백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정부대표가 제시한 해당한 증거물들의 타당성을 인정하면서 미국함선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령해에 침입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반대한 엄중한 정탐행위를 한데 대하여 전적인 책임을 지고 이에 엄숙히 사죄하며 앞으로 다시는 어떠한 미국함선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령해를 침범하지 않도록 할것을 확고히 담보하는바입니다.

이와 아울러 미합중국정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측에 의하여 몰수된 미국함선 《푸에블로》호의 이전 승무원들이 자기들의 죄행을 솔직히 고백하고 관용성을 베풀어줄것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정부에 청원한 사실을 고려하여 이들 승무원들을 관대히 처분하여줄것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정부에 간절히 요청하는바입니다.

미합중국정부를 대표하여

 

미륙군소장 길버트 에이취. 우드워드

1968년 12월 23일

 

사죄문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국호가 무려 11번이나 당당하게 명기되여있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애당초 인정조차 하지 않는 미국이 국호를 11번이나 쪼아박은 사죄문에 서명하자니 정부대표인 우드워드의 심중이 어떠했겠고 대통령 죤슨으로서는 또 얼마나 복통이 터졌겠는가 하는것은 독자 여러분의 판단에 맡긴다.

이미 합의한 절차대로 《푸에블로》호 선원들을 적측에 넘겨주는 사업은 서명후 2시간이 지난 오전 11시부터 시작되였다.

선원들을 넘겨주기에 앞서 박준국은 판문점공동경비구역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모여있는 국내외기자들과 중립국감독위원회 성원들앞에서 추방성명을 발표하였다.

…원래 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 승무원들은 범죄현장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령해에서 붙잡힌 현행간첩들로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법에 의하여 마땅히 처벌받아야 한다.

그러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정부는 〈푸에블로〉호 승무원들이 저들의 죄행을 솔직히 자백하고 관대히 용서해줄것을 거듭 청원하였으며 또한 미국정부가 그들이 저지른 죄행에 대하여 책임지고 사죄한것을 고려하여 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 승무원들을 공화국북반부경외로 추방하기로 결정하였다.

〈푸에블로〉호와 그에 설치된 모든 기재와 무기들은 우리 나라 령해에 침입하여 정탐과 적대행위를 감행하는데 사용된 침략과 범죄의 수단이였기때문에 나포당시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정부에 의하여 이미 몰수되였다.

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정부의 조치에 따라 1968년 12월 23일 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의 이전 승무원전원을 공화국경외로 추방한다는것을 성명한다.》

 

박준국의 발언이 추방성명인줄을 모르고있었던 우드워드는 통역관 제임스 리의 설명을 통해 사실을 알게 되자 그만 아연실색하여 어찌할바를 몰랐다. 그럴수밖에 없는것이 《푸에블로》호 승무원들을 석방이 아니라 추방의 형식으로 돌려받게 됨으로써 미국의 체면은 세계의 면전에서 결국 한번 더 깎이우는 2중의 징벌을 받는것으로 되였기때문이였다. 그러나 정부대표가 아연실색하든말든 함장 로이드 마크 부쳐이하 승무원들은 자기들을 공화국경외로 추방한다는 소리가 너무도 고맙고 기뻐서 눈물을 흘리며 얼싸안고 돌아갔다. 그들의 그런 환희로운 모습이 국내외기자들의 사진기와 기록영화촬영기렌즈에 빠짐없이 담겼다.

여기서 여담삼아 한가지 언급하고 넘어갈것이 있다.

21일, 그러니까 바로 이틀전 남조선 서울주재 수십명의 외국기자들은 각자 미군사령부에 찾아가 《푸에블로》호 승무원들을 인수하는 판문점을 취재할수 있도록 승인해줄것을 요청하였다. 했지만 미군사령부에서는 저들 범죄자들의 가련한 몰골이 세상에 드러나는것이 두려워 판문점참관을 거부하였다. 기자들은 자유로운 취재활동을 거부하는 미군사령부 보도처를 상대로 집단적인 항의를 들이대였다. 이에 더 어쩔수 없게 된 미군보도처는 《푸에블로》호 승무원들을 돌려받은 후 기자회견과 필요한 취재활동을 보장하겠다는 약속으로 몇몇 선발된 기자들만 판문점취재를 허락하고 대부분의 기자들을 서울 롯데호텔에서 기다리게 하였다.

그런데 그렇게 선발되여온 몇몇 기자들의 처지도 그리 펴이지 못해 지금 그들은 승무원인도인수장소로부터 수백메터나 떨어진 사천교 건너편 야산릉선에 억류되여 현장가까이에는 접근하지도 못하고있었다. 그런대로 미군기자 3명에게만 특전이 차례졌다. 이에 격분한 남조선기자들과 외국기자들이 항의를 표시하자 백색철갑모를 해골처럼 뒤집어 쓴 미군헌병들이 곤봉을 휘두르며 단속하는 추태까지 연출하였다.

승무원인도인수는 바로 그 시각에 시작되였다.

현행간첩범들의 추방에 앞서 우리측은 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 나포당시 무모한 반항을 시도하다가 사살된 기관총수 웨인디 하제스의 시체를 넘겨주었다. 이어 애어린 조선인민군 전사가 이름을 부르는데 따라 호명된 승무원들은 《예스!》라고 큰소리로 대답하며 깍듯이 인사를 하고는 사천강에 놓인 판문교를 넘어가군 하였다. 그들은 우리가 해준 솜옷을 입고 100여메터나 되는 판문교중가운데쯤 가서는 우리쪽으로 돌아서서 손을 흔들어 사의를 표하군 하였다. 판문점 우리쪽지역에 모여선 내외기자들은 저저마다 그 모습을 필림에 담았다.

마감으로 함장 로이드 마크 부쳐가 전사에게 호명되여 판문교를 건너갔다. 자기의 부하들이 그랬듯이 그도 다리중간에 멈춰서며 몸을 돌리더니 손을 들어 사의를 표시했다. 부하들과 달랐다면 손을 좀 더 오래 흔들다가 내린뒤 허리를 깊이 꺾어 정히 인사까지 한것이라고 할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드리는 경의였다.

CAPTCHA Image
가+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