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제 5 권

 

2. 정든 성시에서

 

만순은 쟈잘리나 결의형제 같은것에 큰 기대를 걸고있었다. 그가 우리에게 그런것들을 뭇자고 주동적으로 제기해온것은 인민혁명군과 선린우호관계를 가지고 그 배경밑에서 적들에 대한 군사적우세를 유지하려는데 목적이 있었다. 오의성도 한때 우리에게 쟈잘리를 뭇자고 요청해왔다. 쟈잘리라는 공간을 통하여 인민혁명군과의 련합을 실현하고 공산주의자들을 그 련합에 비끄러매두려는것은 반일부대일반이 취하고있던 공통적인 경향이였다.

그렇지만 쟈잘리나 결의형제 같은것이나 뭇는다고 하여 반일공동전선이 저절로 이루어지는것도 아니며 그것이 공고한 동맹으로 발전하는것도 아니였다.

공고한 동료관계는 실전속에서만 발전할수 있으며 거듭되는 시련을 통해서만 그 진가를 가늠할수 있다. 우리가 백두산으로 진출하는 새로운 정세하에서 적을 제압하기 위한 공동의 군사작전을 펼치는것은 반일부대를 인민혁명군의 충실한 동맹자로 만들며 그들과의 련합을 공고한것으로 만드는 좋은 계기로 될수 있었다.

1936년 8월의 무송현성전투는 우리와 반일부대들과의 공동전선을 확고한것으로 되게 하는데서 특출한 의의를 가지는 하나의 대표적인 전투였다.

《우리 공동전선을 무은김에 큰 성시를 하나 제껴보지 않겠습니까?》

내가 넌지시 이런 제기를 하자 만순은 깊이 생각해보지도 않고 쾌히 응해나섰다.

《제낍시다. 김사령네 부대하구라면야 무슨 대적인들 못제끼겠소. 나는 지금 천하를 쥐락펴락할것 같은 기분이웨다. 큰 성시를 하나 들이칩시다.》

일본군이라면 맞서보지도 않고 덮어놓고 줄행랑을 놓던 산림부대 두령의 대답치고는 놀랄 정도로 자신만만하였다. 약담배기운의 덕으로 생겨난 허세가 아닌지도 몰랐다.

만순은 우리앞에서도 약담배를 서슴없이 들이빨군하였다. 그것은 그가 우리를 각별히 신임한다는 표시였다. 원래 중국의 아편중독자들은 파악이 없는 생소한 사람들앞에서는 절대로 약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만순이 우리를 허물없는 친지로 생각하는것은 어느 모로 보나 좋은 일이였다. 원래 그는 반일부대 대장이 될 때까지만 해도 약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초기에는 싸움도 본때있게 하였다. 싸움이 있을 때마다 공을 세워 인차 대부대의 지휘관으로 되였다.

한번은 그의 부대가 일본군의 포위속에 들어 전멸될번한 일이 있었다. 포위를 돌파하는 과정에 수많은 사상자가 났다. 만순도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지였다. 이 한차례의 위기는 그를 단번에 비관론자로 만들어버리였다. 돌격할 때마다 악악 소리를 지르며 이리떼처럼 달려드는 일본군은 군률이 째이지 못하고 무장이 약한 반일부대의 사병들에게 있어서 너무도 힘에 부치는 대상이였다. 게다가 왕가대장까지 따라다니며 도처에서 그의 부대를 녹여냈다.

만순은 깊은 산중에 토성을 쌓고 들어앉아 싸움을 전페하고 주민들의 재물을 털어서 부대의 생계를 가까스로 유지해나갔다.

인민들의 재물로 살아가자니 토비근성밖에 늘어날것이 없었다. 산속의 늙은 《비장》은 한숨과 울화속에서 약담배로 세월을 보냈다.

만순의 부하들중 적지 않은 사람들은 부대생활에 넌덜머리가 나서 총을 집어던지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어떤 사병들은 토비로 전락되였으며 어떤 사병들은 흰기를 들고 위만군의 병영으로 찾아갔다. 지휘관들은 도박질로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시국이 어떻게 되여가고있는지조차도 모르고있었다. 걸핏하면 매질을 하든가 쌍욕질을 해대는 지휘관들의 전횡때문에 상하관계는 사실 말이 아니였다.

만순부대는 괴멸직전의 위기에 처해있었다.

망조가 든 만순부대를 구원하는 길은 련합을 실현하는 길이며 련합에 의한 실전을 통하여 그들에게 적들과 싸워 승리할수 있다는 신심을 안겨주는데 있었다. 바로 그때문에 우리가 만순부대와의 제휴에 성공한후 그들에게 인차 큰 성시를 하나 치지 않겠는가고 제기한것이였는데 만순이 제꺽 응해나서는 바람에 일이 순조롭게 풀리게 되였다.

《김사령이 왕가대장을 쳐갈기는것을 보고 내 수하의 장졸들은 모두 탄복하였소이다. 김사령부대와 함께 성시를 친다면 우리 아이들도 쌍수를 들어 환영할것이니 어서 작전을 짜주시오.》

만순의 말이였다.

그는 우리가 로령과 시난차, 서강, 대영 등지에서 거둔 성과를 몹시 부러워하였으며 그 전투들에 적용된 전법과 전술을 매우 신비스럽게 생각하고있었다.

만순은 저 멀리 춘추전국시대로부터 중국명장들은 지략으로 이기고 일본사람들은 용맹으로 싸움을 하는데 김사령은 도대체 어떤 전법으로 싸우기에 련전련승하는가고 물었다.

나는 웃으면서 전법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것은 군인들의 정신상태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만순은 김사령의 부하들은 모두가 용감무쌍한 강병이라는것이 한눈에 알린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하나같이 용렬한자들뿐이니 도무지 믿을수 없다고 하면서 긴 탄식을 하였다.

《대장어른, 너무 상심할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반일공동투쟁을 잘하면 그들도 얼마든지 용맹한 사병들로 될수 있습니다. 어느 성시를 치면 좋겠는지 그거나 골라보시지요.》

내가 이런 말을 하자 만순은 손을 홰홰 내저으며 그것도 김사령이 선택하는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우리는 그날 공격대상문제를 가지고 의견을 교환하였으나 아퀴를 짓지 못하고 헤여졌다. 만순은 내심으로 무송현성을 쳤으면 하는 의향을 품고있는것 같았지만 주장하지는 않았다. 그것이 오히려 나에게는 다행스러웠다. 무송은 길림과 더불어 나의 생애에서 잊을수 없는 정들고 때묻은 고장이였다.

무송은 만주대륙의 어느곳에서나 흔히 볼수 있는 평범한 현소재지였다. 내가 무송에서 소학교를 다닐 때까지만 해도 이 고장에는 2층이상의 고층건물이 하나도 없었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다.

무송시가에 널려있는 수백호의 집들은 대체로 초가마가리들이 아니면 오두막들뿐이였다. 간혹 벽돌집도 있고 기와집도 있고 네모번듯한 목조가옥도 있었으나 그것은 손가락으로 꼽을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가난이 줄줄 흐르는 그 초가마가리들과 오두막들을 내몸의 한부분처럼 사랑하였고 우리가 무시로 드나들던 소남문이나 송화강을 내 고향의 정경처럼 어데 가서나 애틋한 추억속에 그려보군하였다.

나는 이 성시에서 일생의 라침판으로 된 아버지의 유언을 받아안았다. 그 유언을 안고 아버지의 령구를 따라 양지촌 묘소로 향하던 때로부터 어언 1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는데 이제는 그 묘소주변의 풍경에도 변화가 생기지 않았을가.

백두산으로 진출하려는 우리의 전략적의도를 관철하는데서는 무송의 적을 제압하는것이 여러모로 의의가 컸다. 나는 그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있었지만 어째서인지 무송을 쳐야 하겠다는 결단을 선뜻 내리게 되지 않았다.

우리는 만순과 헤여진 다음부터 조국광복회 하부조직들을 지도하는 한편 도처에서 적합한 공격대상을 골라잡기 위한 성시정찰활동을 본격적으로 진행하였다.

우리가 만순부대와의 협동작전준비를 한창 하고있을 때 오의성부대의 제1지대장 리홍빈이 대오를 이끌고 예고도 없이 불쑥 나를 찾아왔다. 지글지글 끓는 삼복더위를 무릅쓰고 먼 로정을 강행돌파한 리홍빈의 얼굴은 땀에 떠있었고 군복은 먼지와 소금버캐로 얼룩져있었다.

리홍빈의 제1지대는 오의성부대에서 전투력이 제일 강한 기간부대의 하나였다. 리홍빈자신은 오의성의 바른팔이라고 불리울만큼 상관에게 충실한 사람이였고 또 그만큼 총애도 받는 능력있는 지휘관이였다. 우리와는 걸죽한 롱질도 서슴없이 할수 있는 구면이였다.

북만의 청구자에서 잠간 만나보고 헤여진 오의성의 부대가 어떻게 되여 남하하는 인민혁명군부대를 추적하여 무송에까지 나타났을가?

《나를 김사령한테로 보낸것은 오사령이올시다. 령감의 말이 김사령부대가 백두산쪽을 향해 남하행군을 하고있을터인데 어디서건 찾아내여 협동작전을 하라질 않겠습니까.》

지대장은 먼 행군의 피곤도 무릅쓰고 한참동안 신바람이 나서 오사령의 안부를 전하였다.

《령감이 나보고 김사령부대를 찾아가라고 할 때는 정말 막연했습니다. 내가 〈이 망망대해같은 만주땅에서 신출귀몰하는 김일성부대를 어데 가서 찾는단 말입니까.〉하고 말하니까 령감은 〈머저리같은게 무슨 걱정이 그리 많아. 모로 가도 좋고 기여가도 좋으니 총소리가 제일 높은데로만 찾아가라구. 그러면 거기에 김사령이 있어.〉하더란 말입니다. 령감님말이 참말 명언이였습니다. 이 만주천지에서 총소리가 그중 높은 고장이 바로 무송일대더란 말입니다.》

《하긴 우리 부대가 여기서 매일같이 총소리를 내고있습니다. 얼마후에는 만순부대와 함께 큰 성시를 하나 칠 계획입니다. 반대가 없다면 리형이 거느리고 온 지대도 이 작전에 참가시키고싶은데 어떻습니까?》

《그런 행운을 내가 마다할리 있습니까. 오사령도 협동작전을 하라고 내 등을 막무가내로 떠밀어보냈는걸요. 령감도 뒤처리를 하고 인차 우리를 따라오겠다고 했습니다.》

만순부대와의 련합이 성공한 때에 리홍빈의 지대까지 합세하고보니 우리로서는 경사에 경사가 겹친셈이였다.

나는 가슴이 뭉클해졌다. 리홍빈이 정녕 인민혁명군을 돕자고 불원천리 우리를 찾아왔단 말인가. 청구자에서 우리를 만났을 때 오의성은 자기를 반일군 전방사령으로 인정해주지 않는 주보중의 처사를 몹시 원망하면서 의기소침한 기분에 싸여있었다.

그때만 해도 그는 우리와의 합작에 대해서는 별로 화제에 올리지 않았었다.

주보중에 대한 울화만 토로하던 오의성이 김일성공산당하고는 죽을 때까지 통일전선을 해야겠다면서 리홍빈을 우리한테 파견한것은 우리에 대한 지지와 변함없는 믿음의 표시였다. 왕덕림이 쏘련을 거쳐 관내로 들어간후 비록 일시적으로 동요하기는 하였지만 오사령이 통일전선의 대의를 저버리지 않고 우리와의 합작을 시종일관하게 추구해온것은 참으로 경의를 표할만한 일이였다.

때마침 만순도 와있어 리홍빈은 그날 신들메를 풀 사이도 없이 협동작전토의에 참가하였다.

우리는 공격대상문제를 다시 협의하였다.

나는 후보지로 몽강을 비쳐보았다. 몽강은 1932년 여름 통화의 량세봉부대에 갔다가 돌아올 때 한달가량 머물러있으면서 대오를 늘이고 지하조직을 복구하던 고장이였다. 발판도 있고 파악도 충분한 고장이여서 싸움만 벌리면 손쉽게 목적을 이룰수 있었다.

만순은 거리가 너무 멀다고 하면서 달가와하지 않았다. 설사 이기고 돌아온다 해도 귀환도상에서 포위에 들수 있다는것이였다. 그는 무송현성에 마음을 두고있었다.

《김사령, 무송을 칩시다!》

리홍빈도 주먹을 움켜쥐고 격노해서 부르짖었다. 그가 무송을 치자고 하는데는 그럴만한 사연이 있었다. 리홍빈은 액목을 떠날 때 우리의 행처를 알아내려고 무진흥이라는 중대장을 먼저 척후로 파견했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임무수행도중 무송헌병대에 체포되였다.

적들은 무송에 온 목적과 접선대상이 누구인가를 대라고 그를 강박하였다. 무진흥은 그 문초에 침묵으로 대답하였다. 헌병대의 악마들은 고문을 하다 못해 그의 입안에 끓는 물을 퍼넣었다. 입안과 목안의 가죽은 삽시간에 익어서 문드러지고 입술도 온통 물퉁이로 되였다. 그래도 그 강인한 중대장은 절개를 굽히지 않고 무언으로 항거하였다.

적들은 끝내 무진흥을 《통비분자》의 죄명을 쓰고 억류되여있던 무송지구의 애국농민들과 함께 무송북쪽변두리에 끌어내다가 총살하였다. 그런데 총알은 이 중대장을 면바로 맞히지 못하고 빗나갔다. 남의 시체우에 쓰러져있는 그를 어느 귀인이 업어다가 총상까지 치료해서 부대에 돌려보냈다. 이 불사신같은 중대장의 입을 통하여 무송지구에 주둔하고있는 일본군경들의 살인흑막이 온 세상에 알려지게 되였다.

리홍빈은 무진흥이 헌병대에 갇혀있을 때 보고들은 몇가지의 살인진상을 추려서 말해주었다.

왕가대장이 죽은 다음부터 일제군경들은 《통비분자색출》의 구실밑에 성문을 봉쇄하고 그 성문으로 드나드는 주민들에게 출입증을 발급하는 놀음을 하였다. 증명서기일이 지났거나 증명서가 없이 성안출입을 하는 사람들은 모조리 잡아다가 고문을 했고 반항자들은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버리였는데 그 살인방법이야말로 고금의 어느 력사에서도 볼수 없는 혹독한것이였다.

놈들은 성문에서 단속된 사람들을 서문다리부근에 있는 려관에 가두었다가 신새벽이면 서문밖 두도송화강변의 늪가에서 시참을 해서 죽이였다. 시참이란 군인기질을 키운다고 하면서 시퍼런 칼로 산 사람의 목을 쳐서 생피를 보게 하는 귀축도 치를 떨 백정행위의 일종이다.

시참한 시체들은 두도송화강변의 늪속에 처넣었다. 후날 무송사람들이 그 늪을 살인항이라고 부른것은 너무나도 응당한 일이다. 적들은 시참의 비밀을 류포시키는 사람들도 제때에 색출해내여 꼭같은 방법으로 처형하였다. 그들의 시체도 역시 살인항에 수장되였다.

나의 가슴속에서는 분노의 피가 끓어번지였다.무송에 대한 소중한 추억을 총성으로 깨뜨리거나 초연으로 흐리게 해서는 안된다고 여기였던 생각이 한갖 부질없는 련민에 불과했다는 자책이 머리를 호되게 때리였다.

사실 무송은 림강, 장백과 함께 백두산주변의 여러 성시들가운데서 적들이 각별히 중시하고있는 군사요충지의 하나였다. 일제는 무송을 《동변도치안숙정》의 중심거점의 하나로 삼고 여기에 관동군, 위만군, 경찰대 등 수많은 무력을 주둔시키고있었다.

실전에서 단련되였다고 하는 다까하시의 정예부대도 무송현성에 도사리고있었다. 그런것만큼 무송을 군사적으로 제압하는것은 백두산지구를 우리 손에 장악하는데서 의의가 컸다.

무송현성에 도사리고있는 간악한 적들을 쓸어눕히고 인민들의 원한을 풀어주자!

지옥같은 성곽안에서 시참의 세례를 받고있는 무고한 사형수들을 구원하자!

어디에서인가 이러한 피의 절규가 끊임없이 울려오는것 같아 나는 마음을 진정할 길이 없었다. 무송부터 치고보자! 나와 눈물겨운 인연을 맺고있는 이 성시에서 무고한 사람들이 일본도에 맞아 매일같이 죽어가는데 이런 비극을 지척에 두고 몽강으로는 왜 간단말인가. 무송을 치면 이고장 사람들의 원한도 풀어줄수 있고 반일부대들과의 통일전선도 튼튼한 초석우에 올려세울수 있으며 백두산지구도 보다 손쉽게 장악할수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한시도 지체할수 없는 싸움이 아닌가.

나는 무송현성을 치는것이 이 성시의 모든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