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장

 

6월 24일 아침의 서울.

《쌀 사이소, 물고기 사이소.》 성량좋게 웨쳐대는 머리 푸수수한 싸구려장사들이 골목을 누비고 신문배달의 종소리에 눈을 흡뜨며 달려나가 받아쥔 신문 1면란에서 예수의 강림처럼 어마어마하게 보이는 덜레스나 맥아더의 하품소리라도 찾아볼가 하고 급급히 살펴보는 초췌한 선비님들이 《륙본장교구락부 파티》가 열리니 미남미녀들을 널리 환영하여 맞아들인다고 한 자그마한 활자들을 보며 정세가 풀리는가부다 하고 안도의 숨을 쉴 때 계동의 고 몽양 려운형의 뒤집에서 전이 노래진 파나마모를 쓰고 단장을 짚은 60대의 로인이 밖으로 나섰다. 쑥 빠진 키에 넓은 이마가 훤칠하여 의젓한 풍채였으나 가까이서 보면 반백이 된 머리가 리발조차 제때에 못하여 귀바퀴를 덮고 우수와 시름에 싸인 눈은 해빛을 두려워하는양 땅만을 좇고있다. 멀리 이름난 학자인 성삼문의 후손으로 고고학과 력사는 물론 현대철학에까지 론적이 없을정도로 박식하건만 정치의 물결이 엇갈리는속에서 좌도 우도 아닌 제나름의 소로길을 걸어가는것으로 우사 김규식의 말로 하면 《무해무익의 초인》이라 불리우는 성송암이였다. 허나 사람들은 그 어떤 우주인처럼 《이 세상의 손님》을 표방하는 그를 존경하였고 따뜻한 미소로 맞아주었다.

인문과학의 내노라 하는 저명인사들도 성송암과의 교분을 명함처럼 휘두르는가 하면 정계의 모모한 사람들도 《배일애국자》요, 《대학자》요 하며 송암에게 아부하기도 했으나 송암은 려운형이 총에 맞아 비명횡사한 다음부터는 그 어디에도 머리를 내밀지 않아 이제는 점점 그 어르신네들의 기억속에서 사라져가고있었다.

송암은 옆구리에 자그마한 곽을 끼고있었다. 《보당의원》간판을 단 집을 에돌다가 자전거에 부딪친 송암은 피한다는것이 도랑에 뛰여들어 넘어졌다.

넘어지면서도 곽은 떨구지 않고있다. 자전거 임자가 내려서서 사과의 말을 할 때 그는 들은둥만둥 얼굴 한번 찌프리지 않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외진 골목에서 큰길로 나서는데 가냘픈 목소리가 마중하였다.

《아버지 아니세요?》

로인의 앞에 흰 치마저고리를 입은 30대의 녀인이 미끄러지듯 달려와 선다. 갸름한 얼굴이 희다 못해 창백한데다가 눈가에 푸르무레한 그늘이 비껴 어딘가 쓸쓸한 음영을 풍기는 녀인이였다.

《계화냐.》

로인은 기뻐하는것도 또 싫어하는것도 아닌 소리로 대답하고는 녀인의 티하나 없이 산뜻한 옷차림과 기름을 발라 쪽진 머리에서 은은히 풍기는 이국산 향수내에 골살을 찌프리였다.

《어델 이리 급히 떠났어요.》

《골동품점엘… 어제 김규식씨가 알아봤다만 수가 없구나. 서장녀석한테 돈을 찌르는게 낫다고들 하길래 할수없이 고려 선운도사의 금불상을 팔려가는길이다.》

녀인은 아버지가 일생을 바쳐 모았고 그로 하여 제 생명보다 귀히 여기던 불상을 팔겠다고 나선 놀라운 결심앞에 비참한 형색으로 보다가 로인의 손을 잡았다.

《아버지, 이젠 련화는 경찰에서 취급하지 않아요. 그 앤 륙군형무소에 넘어갔어요.》

《게 무슨 소리냐?》

《그렇게 됐어요. 하지만 차라리 잘된 셈이야요. 오늘 당장 련화를 빼내겠다고 나선 사람이 있는걸요.》

《건 누군데-》

로인의 흐릿하던 눈이 번쩍하고 커졌다. 방금전까지만도 딸을 마치 이방지대의 외인처럼 바라보던 그의 눈에 따뜻한 빛이 갈마들었다.

《백정식이라고… 저 채병덕참모총장의 처남되는 사람인데 이번에 미국류학을 하고 와서 지금 리<대통령>의 경호장교로 림시있다고 해요. 그 사람이…》

《으음…》

성송암은 앓음소리를 치며 눈을 감았다. 그는 추악한 환영을 쫓듯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어색한 낯빛으로 헛기침을 했다.

《그래 그 사람은 어떻게 알고… 구한다더냐?》

《어제밤 주인과 함께 집에 왔더군요. 그때 그가 련화에 대해 물어보길래 말했더니 자기가 구해낸다는것이예요. 그런데는…》

이 대목에서 계화의 량볼이 보라빛으로 물들었다.

《그런데란 뭣이냐?》

《자기는 련화 없이는 못살겠는데 찬성을 해달라는거예요.》

《그래서-》

《저는 그가 도미류학도 하고 남자로서 그만하면 빠진데 없다고 봤어요. 저의 의사를 듣더니 아버지를 만나고싶대요.》

《으음-》

송암은 또 한번 신음을 터치며 단장에 몸을 싣듯하며 고개를 떨구었다. 그의 머리속에는 괴롭고 어지러운 상념들이 풍우같이 들이닥쳐 갈갬을 했다.

둘째딸이자 막내딸인 성련화의 운명은 지금 바람앞의 등불처럼 위태한 지경에 빠져들었다. 북에서 발표한 《평화통일호소문》을 가지고 선전한 《죄》로 체포된 련화는 《빨갱이》로 인정되여 엄중취급을 당하는판이다. 련화와 같이 체포된 청년들속에서 남자들 몇은 벌써 홍제원화장터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총살당했다는 말까지 떠돌고있다. 성송암이한테는 유일한 희망이자 그의 사랑을 송두리채 걷어안고있는 련화였다. 그 딸을 구하고저 이때껏 굽히지 않던 기개며 자존심마저 다 버리고 동분서주하게 된것이다. 심지어는 사돈이라고 하지만 개닭보듯하던 《정부》의 《장관》이랍시는 리윤병이한테까지 찾아갔다. 얻어진것이란 안됐다는 귀떨어진 동정 몇마디에 딸교양을 잘못했다는 구질구질한 책망이였다. 그래도 맏딸 계화가 한발 건너의 사돈보다 나았다. 며칠전부터 대구에서 올라와 시집에서 사는 계화는 시아버지앞에서는 아무 말도 않고 꿀먹은 벙어리처럼 있다가 오늘 이렇게 찾아와 억이 막힌 방법이나마 한가지 구원책을 내놓는것이다.

그러나 그 구원책이라는것이 인륜도덕의 계률같은것은 싹 집어던진 상태에서 움직이라는것이다.

《어떻게 하겠어요. 아버지, 다른 수가 없잖아요. 혹시 아버진 월북한 림운학이란 사람을 생각하는것 안야요?》

계화가 무심결에 하는 말인듯 물었다.

《언제 만나기로 했니?》

《10시경에 저희집에 오겠다고 했어요. 주인과 하는 말을 들으니 며칠안으로 감옥과 류치장들을 정리한대요. 빨갱이들을 싹 숙청해치운다고 해요. 련화도 그 대상이라는거예요.》

《너의 주인은 언제 서울에 올라왔느냐?》

대구주둔 3사단의 미수석고문통역인 계화의 남편은 얼마전부터 38선에 이동되였다고 했다. 계화도 그래서 대구에서 살다가 시집에 올라와 기거하고있지만.

계화는 아버지의 말에 주변을 기이는 눈치로 조심스레 둘러보고는 귀속말하듯 말하였다.

《엊저녁에 올라왔어요. 고문관의 처가 오늘래일로 미국의 고향집에 간대요. 그편에 산삼과 몇가지 선물을 보낸대요. 그리고 말이예요.》

계화는 수심어린 빛으로 송암이를 보며 뭔가 말할듯말듯 눈을 깜박이다가 수삽한 웃음을 지었다.

《오늘아침 술을 찾더니… 한다는 말이 〈쌈터지기 전에 너의 그 빨갱이를 꺼내야지 그러찮으면 천당에서나 만나.〉하는거죠뭐.》

송암은 가볍게 몸을 떨었다. 요즈음 쉬쉬하며 들리느니 전쟁소리라 이미 인박힌 말이였으나 딸의 말을 들으니 사태의 절박성이 더욱 새삼스럽게 느껴져 련화의 신상에 대한 불안감이 가슴을 옥죄였다.

《내 그 사람을 만나겠다.》

한발자국 뒤져 걷는 송암의 낯빛은 비장하다 못해 처량했다.

그는 안동국에 있는 리윤병의 집에 갈 때까지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집은 적산건물중에서 리승만이 하사한 로대가 달린 2층목조건물이였다. 계화는 젊은 시어머니가 제 동무들과 한담을 하는 맞은켠방을 흘끔흘끔 살피며 2층응접실로 아버지를 안내했다.

응접실은 서양식으로 꾸려져있었다. 벽을 따라 안락의자와 쏘파를 놓고 드문드문 화분을 세웠다. 계화가 권하는 의자에 앉은 송암은 머리를 쳐들다가 징그러운 구렝이나 만난듯 황급히 외면하였다. 물에 불궜다나온듯 팅팅 부은 몰골의 리승만과 어깨를 맞춰 찍은 뾰족한 턱에 나비수염을 한 리윤병이 웃고서있는 사진이였다. 조만식의 한쪽팔로 북선기독교의 교주격이던 리윤병이 46년 2월에 월남하여왔을 때 같은 리왕조의 혈통이라는것, 미국과 기독교를 다같이 하늘처럼 받들어모신다는 그 일치성에 서로 감격하며 찍은 사진이다.

《얘, 네 방에 가자.》

송암은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계화의 방은 복도의 맨끝에 있었다. 방에는 예수의 고행을 보여주는 눅거리 모사품들이 어지럽게 걸려있었다.

방을 둘러본 송암은 허허 웃고는 계화가 내미는 방석은 보지도 않은채 장판바닥에 꿇어앉았다.

《수녀원이구나.》

송암이 갓난 예수를 그러안고있는 성모 마리아상을 유심히 쳐다보며 하는 말에 계화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차를 가져올래요.》

계화가 소리없이 문을 여닫고 나가자 송암은 나직이 한숨을 지었다. 세상은 장관의 며느리, 세도가 당당한 미수석고문관의 통역의 안해라는것으로 계화의 처지를 혹 부러워할는지 몰라도 이 수도원과 같은 을씨년한 방에서 찬송가의 구절을 부르며 하루하루 젊음을 죽여가는 딸이, 그나마 아이를 못낳는다고 시부모의 천대까지 받는 딸이 과연 행복하다고 하기에는 송암의 량심과 눈이 너무나 밝았다.

송암이로 볼 때 계화는 이 집에 이식된 하나의 어설픈 꽃에 불과했다. 리윤병이 만들어놓고 그 아들이 굳건히 지키는 문안에서 순종과 자비의 너울을 쓰고 희망도 정열도 없이 살아가는 고독하고 불쌍한 존재였다.

계화는 오직 예수밖에 몰랐다. 리화녀전시절부터 그러긴 했으나 리윤병의 며느리로 된 이후부터는 더욱 극성이였다. 그의 모든 행동과 말은 예수로부터 시작되고 예수로 끝났다. 그에게서 아버지와 동생은 《선량한 이웃》의 하나로만 되였다. 련화가 빨갱이인 운학이를 따른다 하여 또 송암이가 그것을 두둔한다 하여 계화는 울며불며 야단을 했고 시부의 엄명이 있어서인지 집으로 다니는것도 삼가했다. 그래도 아직은 인간의 얼과 인정이라는 살뜰한것이 다 마멸되지 않아 련화의 이번 불행에 접하여 언니로서 가슴을 태우고있는것만은 사실이다.

《아버지, 차를 드세요.》

계화가 사기쟁반에 노란 차 두고뿌를 가져다바친다. 송암은 김이 물물 나는 차고뿌를 들었다가 그만 놓고말았다,

《왜 안드세요?》

《별로 생각이 없구나.》

송암은 련화생각에 가슴이 욱 저려들었던것이다.

《너무 걱정 말으세요.》

《…》

《그리고 이제부턴 련화를 꼭 붙잡으세요.》

《그건 무슨 소리냐?》

《그 앤 그저 사내들처럼 분주스럽지요. 정말이지 그 앤 먼저 믿음을 갖는것이 첫째야요.》

《그건 너의 시부 말이겠구나.》

송암이 허구픈 웃음을 웃자 계화는 낯이 빨개졌다. 계화가 말하는 《믿음》이란 자기처럼 예수를 믿던가 하라는것이다. 송암은 그것이 자기자신에 대한 반발로도 느껴졌다. 불쑥 마음이 비꼬여나갔다.

《련화도 믿음이 있지 않니. 그 앤 공산주의란걸 믿는단다.》

《안예요. 그 앤 공산주의를 믿는것도 안예요. 그저 그 림운학이라는 사람 따랐을뿐이지.》

《그래, 너처럼 예수를 믿게 하면 되겠느냐?》

그 말에 계화는 웃음을 머금었다. 송암도 빙긋이 웃었으나 그것은 자신에 대한 회오와 비난의 웃음이였다. 서로 다른 두 길을 걷는 계화와 련화의 운명, 그것은 자기가 빚어만든 기형의 열매가 아닐가.

이 땅은 예나 오늘이나 사상과 넋의 동토대라고 개탄하며 일찌기 두 딸들에게 정신령역에서의 자유를 선포한것이 그리고 자기의 무사상, 무정견의 허무주의가 오늘의 결과를 빚어냈는지 모른다. 오래인 정신적방황끝에 그가 얻어낸 진리란 이 땅에서 정의를 찾는다는것은 불가능하다는것이였다. 그는 모든 주의와 주의를 읊조리는 《영걸》들을 회의와 랭소속에 보았다. 이렇게 되여 끝끝내 정신적믿음을 찾지 못한 그는 딸들에게 《너희 뜻대로 살아보라.》는 아량과 호의를 베풀었다. 계화가 이 집에 오게 된것도, 련화가 쇠고랑을 차게 된것도 결국 그 《아량과 호의》때문이다.

그가 리윤병이를 알게 된것은 1944년 서대문감옥에서였다. 송암은 그 몇년전에 혜초가 간 길을 따라 중국과 인도를 편답하던 과정에 상해림정의 인물들과 만난것이 사달이 되여 령어의 몸이 되였던것이다. 그가 옥살이를 하는 방에 하루는 명태꼬치같은 몸에 장삼같은 죄수복을 입은 리윤병이가 들어섰다. 그는 들어서기 바쁘게 창살밖으로 가래침을 내뱉으며 쪽바리 왜놈이 어쩌고저쩌고 욕을 퍼붓더니 점심밥으로 들어온 목궤밥을 간수에게 쥐여뿌리며 《이놈들, 이따위걸 먹을줄 아느냐. 이제 하느님의 사도들한테 천벌을 받지 않나 두고봐라.》하며 법석을 떨었다. 그통에 도로 끌려나간 리윤병은 온몸에 구렝이를 감고 들어와 며칠을 앓았다. 그때 윤병이를 곁에서 간호한것이 성송암이와 《반일무장단》관계자 림천이였다.

윤병은 당나귀기침을 하며 근 열흘을 누워있더니 일어난 다음부터는 일체 욕질을 삼가하고 아침저녁 벽을 마주하고 예수를 부르며 줄곧 성경을 외워대였다.

방안의 모든 사람들이 그 예수광을 비웃었으나 성송암과 림천만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림천은(사람들은 그를 공산주의자라고 했으나 송암은 그것을 믿지 않았다.) 《일본이 망하라고 하느님께 비는 모양인데 옥고를 이겨내는 하나의 좋은 방편일지 모르지요.》 하고 윤병이를 책하는 사람들을 눅잦히기도 하였다. 대신 송암은 기독교의 허무함을 두고 윤병이와 이른바 학구적인 토론을 끝없이 벌리기도 하였다. 이런 과정에 친교라면 친교라고 할것이 생겼다. 그런데 운명의 묘한 작회라고 하겠는지, 면회일에 계화와 련화가 법전에 다닌다는 윤병의 아들 리영준과 림천의 아들이라는 림운학이와 거의 동시에 나타났다.

그때 송암은 아버지를 닮아 매우 준수하고 기골차게 생긴 운학이가 퍽 맘에 끌렸다. 그래서 감방에 돌아온 다음 노는 말삼아 림천에게 《아들을 사위삼고싶다.》고 했다. 림씨가 웃으면서 《까치는 까치끼린데… 우리는 짝이 안되지요.》라고 몸을 사리는데 윤병이가 괭이상에 웃음을 짓고 송암에게 달라붙었다.

《거 큰딸이 리화녀전이라지요. 게선 착실한 신도들이 많이 나옵네다. 난 아까 그를 보고 성모 마리아가 강림했는가 깜짝 놀랐습네다.》

미국선교사들과의 오랜 교우관계로 말을 외국사람들식으로 더듬는 윤병은 송암의 손까지 잡고 간청하는것이였다.

《거 큰딸을 우리 아들에게 주지 않겠습네까. 아무리 봐야 천생연분의 배필일것 같소이다.》

송암은 윤병을 갑갑한 감방에서는 말벗으로 삼았어도 사돈으로 삼을 생각은 꼬물만치도 없었다. 그런데다 네모테안경을 코에 건 말상의 아들이라는 사람 역시 마음싸지 않았으나 그가 필생에 명심하리라고 한 좌우명대로 말하였다.

《난 자식들에게 지시를 하는 사람이 아니웨다. 각자는 제 눈이 있고 제 생각이 있을테니 그 애 마음이 정할탓이지요.》

윤병은 다된 혼사런듯 기뻐했다. 그런데 윤병은 몇번 형무소장실에 불려나갔다오더니 감옥에 들어온지 한달도 채 못된 어느날 《병보석》으로 나갔다. 그는 나가는중에도 《송암선생, 약속을 잊지 마소.》 하고 다짐을 두는것을 잊지 않았다. 나가서는 인차 평양으로 떠났고 면회일이면 그대신 아들이 계화와 함께 나타나선 음식가지며 속옷따위들을 한아름씩 들이밀었다. 하는 케가 수상쩍어 계화에게 물으니 대답인즉 《사람이 좋아요. 아버지도 승낙했다죠.》 하고 말을 얼버무렸다. 이런중에 페결핵 3기인 안해가 덜컥 쓰러졌다. 윤병의 아들이 돈을 내여 입원을 시킨다, 약을 지어 쓴다 하며 얻어쓴 돈이 수백원을 넘는다는것이였다. 허나 그 성의에도 안해가 종시 살지 못하고 눈을 감자 리윤병이 와서 장사를 치러주고 면회일도 아닌 때에 아들과 계화를 데리고와서 《아예 살립시다.》 하고 들이대는것이였다. 송암은 낚시에 걸린 가오리신세가 되여 하자는대로 끌릴수밖에 없었다. 눈치를 보니 예수에 미친 딸은 리윤병이가 마치 예수가 보낸 성인이나 되는듯 떠받드는 꼴이였다. 송암은 감방귀신으로 썩을지도 모를 자기의 처지에서 이러쿵저러쿵 할 형편이 못되여 《마음대로 해라!》하고말았다.

이에 대해서 림천은 몹시 유감스러워했다.

《잘한 처사 같지 않습니다. 나도 그 사람을 좀 아는데… 하느님한테 너무 팔려 지조가 없지요. 그나마 배일감정이 있는것으로 눈감았는데 지금은 그 감정마저 헌신짝처럼 집어던지지 않았습니까.》

그때 송암은 림천의 말이 옳이 여겨졌으나 겉으로는 수긍하려들지 않았다.

《설마 그럴수야 있겠습니까? 보석으로 나간것이 좀 별랗긴 합니다만 그렇다 해서 나삐 볼수야 없지 않습니까.》

송암은 해방이 되여 감옥에서 풀려나온후에야 림천이 얼마나 사람을 정확히 봤는가를 알았다.

북선기독교회의 거두이고 대지주인 리윤병이 석방을 위해 비행기헌납금을 바치고 보석으로 나오자바람으로 평양에 가서 벌린 선도회에서 조선사람은 일본을 위해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하는것이 하느님의 뜻이라고 력설했다는것을 들었다.

돌아가는 소문이라 반신반의하는중에 리윤병이 38선을 넘어 월남해와서는 《적색 마귀를 물리치자.》고 게거품을 물고 돌아치더니 리승만의 수하졸개가 되였다. 그것까지는 사상과 주의에 초월하려는 송암이의 눈에 융화될수 있었다. 그러나 《서북청년단》이라는 테로단을 뒤에서 조종하는 인물의 하나가 되여 마지막에는 감옥동료였던 림천이 서울시인민위원회조직관계자라는것으로 배척하던끝에 미군정에 쏠아 검거하게 한것을 알았을 때 송암은 뜬눈으로 밤을 새우며 뼈저린 통탄을 하였다.

그때로부터 송암은 리윤병과 절교를 하였고 계화에게 다니는것도 그만두고말았다. 계화는 처음엔 울기도 하고 그러지 말라고 애원도 하였으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아버지나 련화에 대하여 점점 멀어져갔다. 송암은 그것이 서글펐으나 돌이켜세울 희망이 없었다. 결국 그는 《너희들 뜻대로 살아보라.》고 한 자기의 처사가 무책임, 무관심으로 기울어진 실책임을 자인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는 이 실책을 두번다시 되풀이하지 않기 위하여 련화에 대해서는 은연중 신경을 썼다. 《어떻게 하라!》는 조언은 못주었으나 《…하지 말라》는 의견은 강하게 내세웠다.

림천의 아들인 림운학에 대해서 인간적으로는 호감을 두고 귀히 여겼으나 《북조선공산주의》에 끼워있다는것으로 련화와의 접근을 극력 막아나섰다. 이렇게 그는 자기가 표방한 《정신령역에서의 자유》와 모순되는 립장을 취했다.

《아버지, 왔어요.》

송암이 눈을 감은 때에 살며시 방을 나갔던 계화가 문을 열고 기쁜빛으로 소곤거렸다.

송암은 흠칫 하고 몸을 떨었다.

(그자를 만나?!)

백정식이를 처음으로 알게 된 광경이 눈에 선히 밟혀왔다.

…《두상, 림운학이를 감췄지.》

《여, 빠따방맹이를 멕일가?》

우그그 몰려든 서청패의 어중이떠중이들, 한놈이 야구방망이로 송암의 어깨를 때렸다. 《어이구》 하고 송암이 쓰러질 때 웃방에서 운학이와 함께 있던 련화가 달려나왔다.

《이게 무슨짓들이예요.》

련화가 송암의 온몸을 감싸듯 마주서 소리치자 놈팽이들뒤에 서있던 딱 바라진 몸매에 거무스레한 얼굴, 뽀마도로 재운 머리가 기름단지처럼 번들거리는자가 한걸음 나서며 머리를 가볍게 숙였다.

《아, 이거 성련화양이 아닙니까.》

대리석조각같이 굳어진 련화의 얼굴을 쳐다보는 눈에는 비굴한 아첨과 음심이 깃을 폈다. 그는 능글맞게 웃으며

《제 련화씨 형부되는 리영준씨의 동창입니다. 미안하게 됐습니다. 이거 집을 헛갈렸구만-》하면서 머리를 긁는 시늉을 하고는 제 패거리들에게 휙 돌아섰다.

《잘못 들어왔다. 이 집은 대학자 성송암선생님댁이시다. 돌아가자.》

…성송암은 선뜻 일어서기가 두려웠다.

《그자는 악당이예요. 서청패의 악질로 사람잡이에 이골이 났어요. 얼마전에 우리 학교 녀동무들 여럿이 미군들에게 끌려가 몸을 망치게 된것도 저놈이 끄나불이 되여 안내했다는거예요.

그때 운학씨가 없었다면 저도 잘못됐을거예요.》

언젠가 련화가 하던 말이 귀가를 쟁쟁히 울린다. 허나 그는 끝내 일어섰다.

(이 모퉁이에 와서 내 주제에 뭘 망설인단말이냐. 련화의 목숨이 경각에 이르지 않았는가.)

응접실에 들어서자 대위의 계급장을 단 카키색모직군복을 입은 백정식이 온 얼굴이 웃음으로 차 거수경례를 하였다.

《선생님, 그간 편안하셨습니까?》

백정식의 눈에는 알릴듯말듯한 미소가 스쳐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