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장

 

7월 7일 새벽부터 아군의 제3차작전이 개시되였다. 3차작전방침은 패주하는 적들에게 숨돌릴 사이를 주지 않고 련속적인 타격을 가하여 금강과 소백산줄기계선을 유지하려는 미제침략군의 기도를 파탄시키고 적의 기본집단을 대전과 소백산줄기의 동남부에서 각개 포위소멸함으로써 남해와 대구방향으로 신속히 진출할수 있는 유리한 조건을 마련하는것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 제시하신 작전방침을 받아안은 인민군련합부대들의 공격은 그 드센 타격력과 높은 속도로 하여 적을 전률케 하였다.

미군부대들과 새로 편성한 괴뢰군단들로 평택-장호원리-제천계선의 회복을 시도하던 맥아더는 그것이 실패로 끝나고 퇴각이 시작되자 백악관에 정식으로 5개사단의 증원을 요구했다. 그때는 이미 트루맨이 마지막주패장으로 쥐고있던 비상대책안을 유엔안보결정으로 정식화하게끔 하였을 때였다. 7월 7일 유엔은 조선대표는 물론 상임리사국인 쏘련과 중화인민공화국 대표의 참가도 없이 《유엔군》의 조선파견문제를 《결정》하였다. 그 시각부터 미제를 비롯한 15개국 추종국가들의 병졸들과 비행기, 땅크, 대포, 탄약이 해로와 항로를 통해 조선으로 밀려들었다.

세계는 《유엔군》조작《결정》에 대하여 원자탄의 첫 폭발때와 같은 반응을 보였다. 조선이라는 작은 나라에 열여섯개 나라의 무력이 들어간다는 사실에 공산주의와는 동거할수 없다고 생각하는 서방의 많은 신사들까지도 분격을 금치 못했으며 한 약소국가와 약소민족의 슬픈 멸망의 래일을 측은한 동정속에 주시하였다.

지구의 동반구와 서반구로 줄달음치는 전파속에 격분과 놀라움, 동정과 불안이 물끓듯 할 때 이 시련을 감당하게 된 주인들의 태도는 너무나 태연하였고 침착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7월 8일 방송연설을 통해 미제를 비롯한 서방국가 군대들의 침공에 맞서 전체 조선인민이 한결같이 떨쳐나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위한 성전에 참가할것을 호소하시였다. 세계는 굴할줄 모르는 민족의 위대한 정신과 기백, 고결한 량심과 의지가 담긴 이 연설앞에 놀라움과 경탄을 금하지 못하였다.

인민군부대들은 질풍같은 공격속도로써 최고사령관동지의 호소에 응하였다. 7월 10일경에는 주타격사단들이 벌써 금강에 접근하였다. 후방에서는 7월 8일 하루동안에만도 수만명의 입대탄원자들이 군사동원부로 내달았다.

해방된 남조선의 모든 도시와 농촌들에서도 수만명의 인민군입대 탄원자들이 전선에 갈것을 희망하여 의용군부대들이 조직되였다.

 

《얘, 그 엉뎅이에 뿔난 생각 그만해라. 싸움이란 남정네들 하는것이지 계집애가 삐칠게 못돼. 그저 지금처럼 땅 나눠주는 일 하는게 천하 장한건줄 알아라. 장선생도 그러지 않더냐. 이 마을에 네가 온건 천상선녀강림 한가지라구… 괜히 그 분탕같은 몸이 으깨여져 대천들에 백골되면 늬애빈 어찌하며 난 또 어찌하냐? 더 말말고 이젠 나와 함께 예 살자. 땅도 탔겠다 세상 부럼없이 살아보자꾸나 》

련화의 등에서 부황단지를 하나하나 떼내는 이모는 또다시 그 수다스러운 신칙으로 들볶기 시작했다. 이럴 때면 련화는 입술을 꼭 다물고 생글생글 웃을따름이다. 이 며칠새 놀랍게 변한 이모를 새삼스럽게 보면서. 이모는 원체 말이 적었다. 자식낳이를 못하는것도 있겠지만 한뉘 남편과 함께 척박한 밭에 코박고 치여나는 통에 생의 활기마저 잃어버렸던것이다. 그런데 그저께 토지개혁법이 발포되고 이모네도 백주사의 땅으로 닭알 노란자위같은 논 l,000평을 분여받게 되였다. 이때부터 이모는 기쁨에 둥떠 갑자기 말이 다사한 녀인으로 되고말았다.

련화는 닷새전부터 양음리의 이 이모네 집에 와있었다. 로량진전투가 있은 그다음날 서울에 있던 인민군대들이 다 한강너머로 남진해나가자 옆집에 살던 전공처럼 정록주를 비롯한 감방동무들 거의다가 그 인민군대를 따라나갔다.

그러나 련화는 그들과 같이 가지 못했다. 전호근이를 쎄브란스병원에까지 후송한 그는 다음날부터 고열과 오한으로 병원침대에 쓰러졌다. 의사들은 헌병의 발길에 채인 옆구리의 어혈로 오는 후유증이라고 했다. 그러나 련화는 자기의 병이 그 어혈로 생긴 후유증이 아니라 보다 정신적타격에서 오는것임을 잘 알고있었다.

잠결에 그는 림운학이를 소리쳐 불러 다른 간호원들을 놀라게 했다. 열이 좀 떨어지자 그는 서울로부터 한 80리 떨어진 이 이모네 집으로 왔다.

이모는 수척해진 그의 얼굴보다 절망과 상심에 빛을 잃은 련화의 슬픔어린 눈동자를 보고 더욱 놀랐다. 련화와 아버지의 기막힌 신세와 팔자를 두고 한바탕 울음을 울고난 이모는 그 즉시로 련화의 병치료에 팔을 걷고 달라붙었다. 의학의 혜택을 입어보지 못하는 이고장 사람들은 웬간한 상처나 병은 조상대대로 물려받은 민간료법으로 치료를 했고 그 기술을 전수받고있었다. 허나 련화의 병은 별로 차도가 없었다.

련화는 밭에 나가 이모부와 이모가 김을 매는것을 구경하다가는 자기도 호미를 들고 밭고랑에 들어섰다. 그러나 한 이랑도 못나가서 주저앉고말았다. 그런데 그저께 남반부에서 토지개혁을 실시할데 대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결정이 발표되고 토지개혁위원회를 조직할 때 위원으로는 이모부도 뽑히웠고 어찌된 반연으로인지 련화가 서기로 추천을 받았다. 이모가 그를 굉장한 《사상가》며 《적색운동자》로 소문을 편탓도 있었다. 련화는 방에 누워있다가 이 소식을 전달받았고 북조선파견원의 방문까지 받았다. 자기는 농민이니 장선생이라 하지 말고 장동무로 불러달라고 하는 수더분하게 생긴 그 사람은 첫 대면에 《성춘향의 후손이 아니시오?》라는 말로 좀 싱겁다는 인상을 주었으나 더없이 소탈하고 성실한 태도로 련화의 마음을 당겼다. 그 사람은 떠돌이 머슴군으로 산 자기의 과거와 땅을 받고 성인학교를 거쳐 이제는 리농맹위원장까지 하게 된 일신사를 죽 털어놓은끝에 지금 이 동네에도 머슴살이와 소작부침으로 사람 못살 처지에 있는 농민이 그득하니 그들에게도 빨리 사람다운 생활이 차례져야 되지 않는가, 더구나 이 일은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의 하해같은 사랑이 빨리 가닿게 하는 중요한 사업이다, 더구나 동무야 지하투쟁까지 했다는 운동자가 아닌가, 그런 처녀로서 이에 무관심하는것은 죄악이다 하고 검질기게 달라붙는통에 련화는 더는 못한다고 할수 없었다.

그때부터 련화는 거의 밤낮없이 그 사람과 함께 토지대장을 만들고 분여명단을 작성하였다. 밭들을 돌아보기도 하였다. 그럴 때면 로인들과 아이들이 줄줄이 뒤쫓아다녔고 대접이 륭숭하였다. 어떤 날엔 몇십리를 걷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피곤을 몰랐다.

련화는 이 땅의 력사에 없던 밭갈이하는 모든 농민들에게 무상으로 땅을 준다는 세기적사변의 적극적인 참여자로서 크나큰 긍지를 느꼈다. 땅을 받게 된 마을사람들이 《서울아가씨》로부터 《련화선생》으로 불러주며 존경과 감사의 따뜻한 눈길로 봐줄 때 련화는 삶의 행복은 마치 여기에만 있는듯 한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하였다.

이럴 때는 아버지와 림운학에 대한 생각도 가뭇없이 사라지고 그 생각에 멍들었던 마음속 상처마저 잊혀지군 하였다.

이모는 련화의 이런 돌변에 그저 혀를 차고 깜짝깜짝 놀랄따름이였다. 이곳 전답은 대부분이 채병덕의 장인되는자가 외눈백이 병신삼촌에게 맡겨 관활하고있었다. 련화는 장선생과 함께 매 소작인들의 토지증서들에 네모배기 각도장으로 찍혀진 백가라는 성을 볼 때마다 백정식에 대한 치떨리는 원한을 골수에 사무치게 느꼈으나 그것도 밝게 피여오르는 그의 기분을 흐리게 못했다.

그 토지증서들을 모아 불에 태울 때 련화는 말로는 다 못할 통쾌감을 느꼈다. 얇은 미농지가 거멓게 타들다가 바람에 날려가는것을 보며 그는 마치 백정식이라는 허울이 타버리는듯 한 기쁨에 휩싸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오늘아침 면으로부터 김일성장군님의 방송연설소식이 촌에까지 날아들었다. 그러자 마을청년들은 저마끔 인민군대에 나간다고 법석을 놀았고 련화마저 그런 뜻을 이모에게 비추었다. 다른 청년들이 군대에 간다는데 대해서는 《암, 그래야지. 오라질 외눈깔(백지주의 별명)이 오면 땅을 다 빼앗기겠는데 사내란 명색들이 그걸 기다리며 있겠느냐?》 하던 이모가 련화의 그 말에 대해서는 펄쩍 뛰며 막아나섰다.

《그래 네가 군대에 가 잘못되면 난 늬엄마를 무슨 낯으로 저승에 가 만난단말이냐. 늬아버님도 어데가 헤매는지 모르는판에.》

이모가 한 마지막 이 말은 련화의 가슴깊이 응어리로 박혀들었다.

(그래 너는 지금 누구편이냐?)

이런 질문을 띄워놓고 그는 몇번이고 생각을 굴리지 않을수 없었다. 자기는 응당 아버지편이여야 할것이였다. 이렇게 론거를 세워보면 군대에 가는것이 무슨 큰 불효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백정식이며 감옥에서 자기를 막아주고 죽은 녀인이며를 생각하면 군대에 가는것이 옳을것이라는데로 결론이 떨어졌다. 그 가장 중요한 원인에는 림운학이가 있었다. 자기는 림운학의 편에 서야 할것이였다. 그러나 지금의 처지에서 운학이가 과연 자기를 어떻게 볼가 하면 저모르게 얼굴엔 수심이 끼였다.

련화는 이불우에 뛰놀던 해빛이 가드러들고 문발그림자가 길게 누운 마루를 내다보며 서글픈 심경에 사로잡혔다.

이때 갑자기 삐그덕 하는 대문소리와 함께 누구를 찾는 녀인의 목소리가 울렸다. 련화는 벗어놓았던 쎄라복을 입으며 문가에 다가갔다.

오골조골 주름살투성이의 키작은 녀인이 빌려입은듯이 후렁후렁한 연미색비단치마저고리를 어색스레 쓸어만지며 마당에 들어섰다. 부엌에 내려가 부황단지를 씻던 정화숙이 내다보고 환성을 올렸다.

《어휴, 무슨 진사마님인가 했구만. 어찌 왔소?》

마당에 선 녀인은 얼굴을 붉히며 얼른 절을 하였다. 련화는 순남이의 어머니를 알아보았다. 이번에 순남이가 백지주의 집에다가 2천평의 토지를 분여받자 딸집으로부터 아들한테 옮겨온 녀인이였다. 그는 정화숙이 벙글벙글 웃으며 신기스럽게 보는것에 어색해하며 입을 열었다.

《저…오늘저녁 우리 집에 와줍소.》

《무슨 일인데?》

《오늘 순남이 잔치 차려주자고 했습니더.》

《아휴 그런… 백죄… 소문도 없다가.》

《가출개 또순이와 정분이야 있었습지요. 그 집에서 우리 머슴애가 맘있으나 매인 몸이라 싫다꼬 하다고… 이번에 허락을 했음. 길일을 봐달라고 웃골 큰무당댁에 물었더니 오늘이 좋다고 해서…》

《약혼식도 안하고 하오? 아니, 방에 좀 들어와 얘길 하오. 야, 경사다 경사다 해도 순남이네 같은 경사가 없고마.》

《글쎄 내 말이 그 얘기 아니오.》

녀인은 눈이 게슴츠레해지며 눈물방울이 찔끔 솟았다.

그는 누데기차림의 그전 습관으로 치마자락을 들어 눈물을 훔치다가 련화를 띠여보고 《서울아재 계셨군…》 하고 허리를 구부려 절을 하며 뒤따라 말을 이었다.

《아무것도 차린거 없지만 서울아재랑 꼭 와야 됩니다.》

하고 애잔한 미소를 보낸다.

《그런데 준비는 좀 됐소?》

정화숙이 못내 감동된 얼굴로 걱정스레 물었다.

《준비란 뭐, 그저 신랑신부 무릎이나 맞추려고 합니다. 북에서 오신 강선생님이 주체를 서주겠다고 했습니다.》

《난 뭘하라우?》

《에그 무슨 소릴, 순남이가 이만만 한게 뉘덕이요? 그저 오기만 하소. 서울아재도… 약속했소 잉?》

녀인이 돌아간다음 정화숙과 련화는 순남이를 두고 한참동안 흥띤 이야기를 벌렸다.

련화도 순남이를 잘 알고있었다. 미쏘공동위원회가 최종적으로 깨여진 얼마후 순남이가 미군놈의 차에 다쳤을 때 련화도 몇번이나 그가 입원한 병원으로 갔댔고 이 양음리로 내려올 때 아버지가 얻은 말달구지에 그를 태우고 왔었다. 그때까지 련화가 알고있던 순남이는 사람이 너무 좋아 어리무던한것이고 흰것을 검다고 해도 믿을 정도의 고지식한것이였다.

이번에 인민군대가 이 마을에 들어설 때 순남이는 실로 희비극의 주인공이 되였다. 백주사는 가족과 함께 도망치면서 일체 재산의 위임권을 순남에게 맡겼다. 그 값으로 보리 반성에 입쌀 한말을 남겼다. 순남은 쿵쿵 울리는 포소리를 들으며 《에라 죽기전에 밥이나 실컷 해먹고 죽자.》 하고 보리쌀에 입쌀을 약간 섞어 한 함지 실히 될 밥을 지었다. 밥이 잦아 퍼들고 한술 뜨려고 할 때 인민군대가 널대문을 두드리며 주인을 찾았다.

순남은 벌벌 떨리는 다리를 간신히 끌고 대문빗장을 열었다. 바깥마당에는 낯설은 이북군대들이 꽉 들어차있었다. 이마에 《뿔》을 찾았으나 그런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순남이는 한숨 놓았으나 어깨마다 번쩍이는 총을 보며 연신 우들우들 떨었다.

《동무가 주인이요?》

한 군인이 물었다. 순남은 어망결에 《아니》라고 했다가 백주사가 일러준대로 《그럽지유.》라고 고쳐 대답했다.

《정말 주인이란 말이요?》

《그럽지유.》

똑같이 울리는 말에 군인은 의아한 표정으로 머리를 기웃거리다가 집을 좀 보자고 하였다. 순남은 죽이지는 않는다는 생각에 한숨 놓여 《그럽지유.》 하며 뛰여들어갔다.

(성송암어른이 나같은건 죽이지 않는다더니 과연 고명한 선생님이야.)

안마당에 들어와 집안을 둘러보던 군대들중에서 한사람이 그가 먹으려던 보리밥을 넌지시 들여다보고는 낯을 찡그렸다.

《여보, 당신 정말 이 대궐같은 집의 주인이라는게 사실이요?》

《예… 저…》

순남이는 우들우들 떨며 더 말을 못했다. 군인은 한쪽구석에 삼베등거리를 덮어놓아둔 밥소랭이를 열어보고는 (보리밥우에는 파리가 까맣게 달라붙어있었다.) 눈빛이 무섭게 변했다.

《에잇!》

그 군인은 더 말 않고 군화소리를 요란히 내며 나갔다. 순남은 그가 무엇때문에 성을 내는지 몰랐다. 무릎맥이 빠져 주저앉은 그는 이제 들이닥칠 《무서운 일》을 그려보며 여기에 강제로 떨궈둔 백주사를 원망했다. 그런데 《무서운 일》을 저지를 군대도 오지 않았고 쌀을 가지려도 오지 않았다. 자기를 잊어먹고 다른데로 갔는가 생각할 때 례의 그 군인이 나타났다.

《이리 오우.》

순남은 푸주간에 끌려가는 소꼴이 되여 절뚝거리며 그의 뒤를 따랐다.

《주인님이 오시오!》

활기찬 웃음들에 끌려 고개를 드니 마루와 마당에는 밥식기를 든 군인들이 한가득 둘러앉아 그를 쳐다보고있었다.

《나두 왜정때 머슴질을 했습니다만 이 사람같진 않았소다. 세상 둘도 없는… 자, 앉소.》

그를 데리고 온 군인이 누구에게라없이 말하고는 순남의 손목을 잡아당겨 가마니우에 앉혔다. 그의 앞에는 남들보다 곱이나 되게 담긴 이밥그릇과 고기국이 놓여있었다. 순남은 그 군인이 쥐여주는 숟가락을 억지다싶이 받아들며 눈길을 쳐들다가 흠칫 놀래였다. 그 군인의 눈에는 물기가 배여있었다. 난생처음 보는 따뜻한 정과 사랑이 스민 서글픈 눈길이였다. 둘러보니 다른 군인들의 눈에도 그 비슷한 빛이 갈마돌았다.

《동무, 어서 드오. 인민군대는 다 동무와 같이 고생하던 사람들이요.》 하고 누군가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따뜻하게 일깨워줄 때 순남은 불시에 눈물이 솟구쳐올라 고개를 푹 숙이였다.…

련화가 이모와 함께 서울서부터 내내 품고온 돈 얼마와 쌀독밑굽에서 퍼낸 입쌀 몇되박을 함지에 이고갔을 때는 백지주의 대청마루와 마당이 로인과 아이들로 빼곡이 찼을 때였다.

그 짧은 시간에 어떻게 차렸는지 웅기중기 놓인 상들에 떡그릇과 막걸리동이들이 즐비하게 차있었다. 땅을 탄 기분들에 마음들이 후해져 부조가 크게 들어왔기때문이였다. 주름살마다에 웃음이 핀 순남이 어머니가 지짐그릇과 수저를 들고 그 사이를 새처럼 날아다녔다.

《평생 백지주 입치거리를 받던 순남이네 호사났구나.》

얼근히 취한 로인들속에서 이런 부르짖음이 튀여나올 때 련화는 눈허리가 시큰해졌다. 일생 백지주의 부엌데기로 있던 그가 오늘은 자기의 아들을 위해 전을 부치고 음식을 만들고 술상을 나르고있는것이 아닌가.

련화와 정화숙은 귀빈으로 지목되여 신랑신부가 있는 중방에 안내받았다. 그러나 련화는 동리 처녀들이 몰켜있는 한쪽구석의 돗자리에 가 자리를 잡았다. 거기서는 신랑신부의 머리밖에 보이지 않았다. 늘 귀바퀴를 덥수룩하게 내리덮던 머리를 시원스럽게 깎아버린 순남은 낯이 벌개서 이따금 주변을 살펴보다가는 사람들의 웃음어린 눈길과 부딪치면 벌씬 웃었다. 그옆에 틀지게 앉은 장선생은 백세루양복에 넥타이까지 받쳐 련화에게 마치 서울 동대문구 은행사장같이 보였다.

해가 아직 한발가웃 남아있고 갈구랑달이 이마치기나 하듯 허연 하늘에 삐죽이 솟구쳤을 때 식이 시작되였다.

술잔들이 오고가며 흥띤 이야기들이 련줄 터져나왔다. 백주사의 집과 전답을 분여받은 순남이네의 경사를 두고 하나같이 축하를 했다.

순남은 웃기도 하고 울기도 했다. 신랑신부 잔을 돌릴 때 련화 앞에 이른 순남은 눈물이 그렁해 청원하듯 말했다.

《어쩜 성선생아버님두 모르시는것 있었이유. 아, 이 좋은 정치를 모르고 떠나가다니요. 내 같은건 무색해서 그렇지만 아 성선생 어른이시야… 왜 모르실란지유. 여기 계심 내 큰잔 올리였을지라우. 그 어른님이 지금 얼마나 객고가 심하겠이유.》

련화에게 붙어 순남이 긴 사설조로 이야기할 때 장선생을 둘러싼 로축들은 전쟁이 언제면 끝날것 같은가. 북에서는 어떻게 사는가, 현물세가 무엇인가. 마지막에는 양복차림에까지 말이 오갔다.

《장선생이 농사를 했다는데 참말인갑쇼? 옷이랑 우리 고을 백지주것보다 히야번쩍합니다.》

옆에서 술을 처 권하는 사람의 그 말에 장선생은 싱긋이 웃다가 《자 내 손을 보시오.》 하고 마디마디 소나무굽처럼 튕겨난 크고 거친 농사군의 손을 보였다. 그리고는 웃음을 거두고 감회깊은 눈길로 자기의 옷을 내려다보다가 조용히 말했다.

《이 옷은 김일성장군님께서 주신것입니다.》

그 말은 폭탄과 같은 반응을 일으켰다.

《장군님께서?! … 대포를 놓은것이 아니시유?》

《장군님께서 주신것입니다. 제가 낟알생산을 많이 했다고 표창으로 주신것입니다.》

《아니, 제 농사를 잘 지었는데 공으로 주셨단말이요.》

《그렇습니다.》

진지한 얼굴빛을 한 장선생의 그윽한 말소리에 좌중은 한동안 얼어붙은듯 굳어있다가 감탄의 소리들이 연방 터졌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요.》

《과시 해님이라고 하시더니-》

웅성거리는속에서 어떤 사람은 장선생에게 다가가 그 옷을 만져보기까지 했다.

잔치가 한고비 오르자 너도나도 일어나 춤을 추었다. 장선생도 추었고 련화의 이모도 했다. 춤을 못추는 사람들은 병신시늉도 내고 짐승울음소리라도 내서 흥을 돋구었다.

달이 떠오르자 흥은 더욱 고조되였다.

할머니들까지 일어나 양산도를 추고 노들강변을 불렀다. 박수가 일고 웃음이 물결쳐갔다. 련화는 한폭의 그림을, 환상적인 무릉도원을 보는것 같은 기분속에 잠겨 열광어린 환희에 잠긴 모습들을 보았다. 많은데서 미지수로 그려져있던 새 세상의 전모가 이들의 모습에 구가되여있는상싶었다.

(그래, 이 생활을 위해서라도 운학동무가 선 대오에 들어서야 한다.)

다음날 련화는 네명의 마을청년들과 함께 서울로 떠났다.

련화는 함께 떠난 청년들을 데리고 종로행전차를 타고가다가 부민관앞에서 백색상의에 푸른 스카트를 입은 날씬한 몸매의 녀군인의 아릿다운 모습을 반한듯 보다가 그가 학교연예대에서 함께 노래를 부르던 동무임을 알아보았다. 련화는 너무나 반가와 동행한 청년들에 대한 자기의 체면도 잊고 달리는 전차에서 뛰여 내렸다.

《옥금아!》

《련화!》

둘은 많은 사람들이 본다는것도 잊고 두손을 맞잡은채 빙빙 돌아갔다. 숨돌릴만 하게 되자 옥금은 그간의 련화 일을 묻고 군대에 입대하려는 말을 듣자 손벽까지 쳤다.

《잘됐어, 우리 단장동지한테 가자.》

《단장이라니?》

《아이, 내 정신 봐, 소개가 늦었구나. 난 인민군협주단에 들어갔어. 우리 단장동진 기막힌 쏘프라노인데 글도 쓰고 노래도 짓는 예술의 대가야. 지금 사람을 더 받는중인데 반동이 아니고 웬간한 실력이 있으면 다 받아. 북에서 온 남동무들은 다 멋쟁이야. 기량도 보통 높잖아. 너는 절대 환영할거야. 인물 곱고 노래 잘하니 그 남동무들이 다 너한테 반할걸.》

련화가 별로 내켜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자 옥금이는 다른 각도로 말을 번졌다.

《이 협주단은 서울시민들앞에서 공연을 마치고 이제 전선으로 나간다나. 그리고 대우랑 참 좋다. 옷도 공짜, 먹는것도 공짜 그저 <대원 손옥금 만날수 있습니까?>, <외출할만합니까?> 이런 규정보고 몇자만 알면 돼.》

련화는 마음 한구석에서 손저어부르는 그 유혹에 솔깃했으나 과연 현재의 자기가 노래부르고 춤출수 있겠는가를 생각하고 서글피 웃으며 말했다.

《고마워. 근데 난 전선부대에 입대하려고 해.》

《응, 그렇구나. 하긴 그전 우리 반에 있던 숱한 애들이 군대에 탄원했어. 참 오늘아침엔 의용군에 입대한 학생들의 시위행진까지 있었어.》

련화는 옥금의 안내로 군대초모소로 쓰이는 안성중학교에 갔다. 입대탄원자들이 어떻게 많은지 옥금이만 아니였다면 저녁까지 기다려도 수속할수 없었을것이였다.

두눈에 안경을 낀 소성 한알의 군관이 학생용책상에 앉아 입대자들의 이름, 주소를 적었다. 분명 사람들의 끊임없는 출현에 지친듯 한 그는 고개들 들지 않고 이름, 나이, 주소, 직장을 적은 후 역시 보지 않은채 《부모들의 승인이 있었습니까?》라고 좀 딱딱한 어조로 물었다. 련화는 여기서 장황한 사연을 말한다는것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네》라고 짤막히 대답했다.

군관은 련화를 유심히 보다가 안경을 다시 낀 후 문건에 무언가 적어놓고 《좋습니다. 그런데 신원보증을 할 동무가 있습니까?》 하고 정색해 물었다.

련화가 마당 한구석에서 웬 녀학생과 말하는 옥금이를 소리쳐 부르자 군관은 《아, 알겠습니다. 저 협주단 동무가 동물 데려왔지요.》 하고는 문건 맨밑에 날자와 제 이름자를 쓰고 그 아래에 멋을 부려 수표를 하였다.

그리고는 문건을 쥐고 다시금 유심히 련화를 보다가 상냥하게 말했다.

《우린 동무를 믿겠습니다. 신원을 확인하는 절차는 략하기로 하고… 동무를 특별취급으로 조직에서 추천해보낸 대렬에 편입시키겠습니다.》 하며 그는 종이장을 련화에게 쥐여주며 찾아갈 방을 가리켜주었다.

《잘 싸우시오.》

그는 마지막에 악수까지 청했다.

련화는 그 군관의 말대로 특별취급대상이 되여 저녁에는 벌써 군복까지 타입고 다음날 아침에는 규정학습을 했다.

오후 한겻은 가족들과 친척들을 만나는 외출이 승인되여 련화는 계동에 있는 집으로 돌아왔다. 집은 떠나던 때 그대로였다.

련화는 방에 걸린 거미줄들을 털어내고 방바닥에 물걸레질 한 후 한바탕 울고나서 아버지에게 남기는 편지를 썼다. 집에서 입고간 옷과 이모가 준 행리중에서 불필요한것들을 보자기에 싸놓고 그우에 편지를 찔러놓았다.

새벽 두시에 련화는 그 군관의 인솔밑에 30명의 신입병사들과 함께 평택쪽으로 가는 기차에 올랐다. 매칸마다 련화처럼 새 군복을 떨쳐입은 사람들로 초만원이였다.

사단대렬참모라고 하는 그 군관은 다섯명씩 조를 짜서 매 칸으로 데리고 가서는 《의용군동무들입니다.》 하고 소개를 하고는 자리를 양보해줄것을 말하였다.

그러면 그의 말이 무슨 절대의 군령처럼 되여 박수갈채가 왔고 여기저기에서 자리들을 권했다.

차칸마다 땀내와 열기로 화끈화끈하였으나 무엇이라 이름찍지 못할 가슴설레이게 하는 환희와 랑만의 공기가 차넘치고있었다.

련화는 도릿한 얼굴에 역시 동그스름한 두눈이 무척 귀인성스러운 녀성군인옆에 앉았다.

《성련화라고 불러주세요.》

련화가 자리를 내준데 대한 사의로 머리를 수그리며 자기를 소개하자 그 녀성군인은 숫저운 웃음을 지으며 일어설가말가 망설이다가 《리복심이라고 해요.》 하며 손을 내밀었다. 악수를 하고나자 복심이라는 녀인은 먼저 인사차림을 못한데서 오는것인지 약간 헤덤비는 태도로 사과며 복숭아가 담긴 구럭을 열었다.

《좀 들라요. 달다니깐요.》

련화는 귀설은 함북사투리의 독특한 억양에 방긋 웃었다.

복심이라는 녀성도 련화가 왜 웃는지 깨달은것 같았다. 그는 웃으며 물었다.

《내 말이 우쁘게 들려요?》

《네…》

련화는 대답하고나서 《호호.》 하고 소리내여 웃었다. 그에게는 복심이라는 녀자가 북에서 온 녀자라는것으로 호기심이 들뿐아니라 첫 인상에서부터 호감이 갔다.

그들은 인츰 친숙해져 일신상의 이야기를 조용조용 나누기 시작하였다.

7월 5일 그처럼 경모하여마지 않던 김일성장군님을 만나뵌 복심은 집에 가려던 당초의 생각을 싹 잊고말았다. 그는 폭격현장에 나온 인민군중앙병원 간호원들을 도와 무너진 집들에서 시체들을 꺼내고 부상당한 사람들을 날랐다. 몸매는 체소하나 담차고 영악스러운 그의 일솜씨에는 오랜 군의들도 혀를 둘렀다. 그는 야전병원에 가서 비편제간병원자격으로 부상자들을 돌보았다. 그 병원에는 전선에서 온 부상병들이 많았다. 그 부상병들은 낮이고 밤이고 침상을 지켜 궂은 일, 마른 일 가리지 않으며 전투이야기가 나올 때면 해면이 물빨아들이듯 귀기울이면서 54사에서 온 사람이 없느냐고 묻기도 하는 온순하면서도 암팡진 이 녀성에 대하여 한결같은 사랑과 동정을 기울였다. 회복된 몇명의 부상병들이 전선으로 나가게 되였을 때 복심이도 따라가겠다고 하였다.

병원일군들은 사민인 녀자가 어떻게 갈수 있느냐고 했지만 복심은 막무가내였다. 퇴원하는 부상병들 역시 그의 편이 되여주었다.

이렇게 되여 복심은 의례적인 규정을 뛰여넘어 서울까지 나왔고 여기서 정식 군복을 타입고 전방사단 간호원으로 배치를 받았다. 그는 어느 한 싸움터에서건 송기덕이앞에 보란듯이 나타나고 싶은것이 하나의 소원이기도 했다.

《나 역시 조국을 위해 한몫 했어요.》

이 말만 자랑차게 할수 있으면 더 원이 없을것이였다. 그래도 자기를 깔본다면 그때에는 결단코 돌아설것이다. 그리고 작별시 값눅은 동정으로 남기고간 로임봉투를 그앞에 던져버릴것이다.

복심은 군복을 바꿔입을 때 예전의 옷을 다 싸서 집에 부치면서도 그 돈봉투는 기덕이 주던 그대로 꽁꽁 싸서 안주머니 깊숙이 감추었다. 때로 젖가슴우에 놓인 그 돈을 감촉하느라면 눈굽이 쩌릿해오기도 했으나 그때마다 그는 마음을 모질게 도사려먹군하였다.

기차는 평택에서 더 못나갔다. 그다음부터 자동차를 타고가게 되였다. 복심은 련화와 함께 한차를 탔다.

푸름푸름하게 동터올무렵에 그들은 포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얼마 안가서부터 마사진 포와 자동차며 철갑모따위들을 보게 되였다. 한 갈림길에서 붉은 완장을 두른 군인들이 차를 멈춰세웠다.

《이 길로 가면 안됩니다. 적들의 반돌격으로… 점령당했습니다.》

푸르무레한 새벽빛속에 모두의 얼굴이 희푸른 조각상처럼 굳어졌다.

따르락 따르락…

산발적으로 올리는 중기사격소리가 가까이에서 울려왔다. 최현 장령의 52사가 싸우는 전투지대였다.

 

괴뢰 6사를 격파하고 안성을 거쳐 진천에 돌입한 최현장령의 52사는 문암산, 소을산 계선에서 예상치 않은 적의 강한 저항에 부딪쳤다. 새로 편성된 괴뢰 수도사단이 막아나섰던것이다.

7월 5일 적은 륙본명령 2호로써 괴뢰 1군단 조직을 선포하고 거기에 수도사단, l보사, 2보사, 5보사, 7보사 다섯개 사단을 세개 사단으로 재편성하여 밀어넣었다. 괴뢰수도사단은 일본군과 만주군출신들, 《서북청년단》과 《족청》깡패들, 북조선에서 땅과 공장을 빼앗기고 도주한자들로 구성된 1군단의 기동사단으로서 괴뢰군의 원로로 자처하는 김석원이 지휘하였다. 김석원은 송악산, 은파산 침공작전실패의 책임을 지고 이때까지 예비역으로 물러나있었다. 그는 군부내에서 자기의 경쟁적수였던 채병덕이 패전의 모든 책임을 지고 참모총장직에서 물러나는 때에 사단장의 군직을 접수한것으로 매우 비장한 각오와 기분을 체험하고있었다.

더구나 맞다든 상대가 자기의 운명에 두번씩이나 심한 파곡선을 그어준 최현장령임을 알고 이를 갈았다. 1937년도에는 간삼봉에서, 1949년에는 송악산과 은파산에서 최현과의 싸움에서 매번 만신창을 당하고 패전지장이 되였던것이다.

일선대대의 전호에까지 나타난 그는 행리속에 간직한 일본도를 뽑아들고 전투지휘에 나섰다. 그의 이런 희비극적인 만용을 만류하는 미군고문관앞에서 김석원은 열이 나 말했다.

《사이껭(최현)은 나의 구적이요. 이번까지 패전하면 나는 살아돌아가지 않을테요!》

문암산방어진이 허물어지자 그는 1련대를 데리고 직접 탈환전투에 나섰다. 후퇴하는자는 장교이건 사병이건 무조건 총살하였다. 7월 10일 하루동안에만도 세명이나 쏴죽이면서 11차례의 반돌격을 벌렸다. 한번은 문암산의 봉화대에까지 접근하기도 하였다. 미고문관들은 이 아아인의 조폭하고 완강한 기질에 혀를 둘렀으며 맥아더는 괴뢰수도사단의 《맹전》에 대하여 격려의 무전문까지 날려보냈다. 이 전쟁이 일어나 미군은 물론 괴뢰군들에게 있어서 하루낮 하루밤을 전투로 밝히면서 반돌격까지 한례는 없었던때문이였다.

그러나 이 《무사도식》반돌격은 사단유생력량의 삼분지 일을 까마귀의 제밥으로 만드는것으로 끝나고말았다. 최현장령이 은밀히 기동시킨 한개 련대의 우회기습으로 김석원의 사단은 여지없이 붕괴되였다.

패주하는 괴뢰수도사단을 다쫓아 추격전을 들이댄 최현장령의 52사는 청주북쪽의 미호천계선에서 또다시 방어를 꾀하는 괴뢰군 한개 련대를 단숨에 무찌르고 7월 13일 충청북도 도소재지인 청주를 해방하였다. 그런데 사단은 차후공격을 위한 출발진지를 확보하기 위하여 교외남쪽으로 진출하던 로정에서 이제껏 당해보지 못한 무시무시한 포사격에 맞다들었다.

그때 최현은 사단지휘부로 정한 도청건물의 안방에서 참모장이 작성한 전투보고서를 읽고있었다.

첫 폭발의 진동에 열어놓았던 창문이 요란스레 닫기며 유리창이 박산이 나 널마루에 쏟아져내렸다.

《6련대쪽입니다.》

사단참모장이 낯색이 확 변하여 소리쳤다. 마치 그의 말을 증명이나 하는듯 6련대장이 전화를 걸어왔다. 련대의 선두공격구분대들이 대구경곡사포화력권에 들었다는것이였다. 최현이 그 사격권에서 벗어나라는 지시를 내리고 송수화기를 놓자마자 따르릉 하고 또다시 전화기가 울어댔다. 4련대에서 오는것이였다.

《30번 보고합니다. 련대공격전방에 두개 대대가 새로 나타났습니다. 적의 참호계선까지는 인발지뢰와 반땅크지뢰원으로 되여있습니다. 결국 우리는 강력한 포병대대들과 두개 련대의 적과 대치한셈입니다.》

정찰에 없던 새로운 정황에 최현은 아래입술에 이발을 박은채 17련대를 찾았다. 17련대 형편도 방금 전화한 4련대나 다름없었다. 거기엔 한개 공격대대의 전방에만도 열다섯개의 토목화점이 막아나섰다고 했다. 그런데다가 한개 중대가 나가는 말구령협곡같은데로는 두개 대대의 력량으로 반돌격까지 해온다는것였다.

《11번동지, 사단포나 싸마호트(자동포)의 지원없이는 공격이 거의 불가능할것 같습니다.》

《이보 련대장, 동무넨 왜 그모양이요? 6련대나 4련대는 동무네보다 곱절 어려운데도 끄덕않고있소. 그러지 말고 참을인자 세개를 새기오. 세개를! 알았소. 그러면 듣소. 이제부터 전면공격을 당장 중단하고 차후 명령이 있을 때까지 대대별 구간에서 전투정찰을 하시오.》

전화를 끊고난 최현은 다시 전투보고서를 펼쳤으나 별반 글줄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6련대전방에서 울리는 포소리는 계속 높아만갔다. 최현의 머리에는 불길한 예감이 시퍼런 빛줄기처럼 지나갔다. 좀전에 받은 피반령계선에 나간 사단정찰조로부터 보내온 보고가 사실이라는데 주의가 미쳤다. 그는 옷주머니에 구겨넣었던 그 무선수신지를 꺼내 펼쳤다.

《사단장동지 앞.

피반령은 괴뢰1군단의 수도사단을 중심으로 좌익은 1보사 13련대 우익은 2보사, l사 11련대와 12련대는 보은계선에 예비대로 있음. 적은 종장방어체계형성… 미25사의 장비기재로 된 대구경곡사포 두개 대대가 좌표 15, 20 독립바위릉선에 배치…》

최현은 책상가녁에 놓아두었던 모자를 푹 눌러쓰며 일어섰다.

《참모장동무, 피반령정찰조와 무선결속을 하여 그 곡사폰지 뭔지 하는걸 깔수 없는가 알아보시오.》

《어데 가시렵니까?》

《6련대에 나가보겠소.》

《보고서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건 좀 두고보기요. 우리의 결심이 명백히 서지 못하지 않았소. 우선 6련대의 공격만을 익혀보오.》

최현은 예견했던 정황중에서 최악의 경우가 도래했음을 알았다. 7월 11일부 전선사령관의 명령에서 최현사단은 늦어도 4∼5일안으로 보은계선에 진출하여 대전동남쪽을 포위하기로 되여있었다. 그런데 적은 벌써 그 기미를 알아차리고 한개 군단의 장벽으로 앞을 막은것이다.

(침착하자. 다시금 잘 생각해보자.)

최현은 자칫 잘못하면 사단이 이 막강한 화력앞에서 전멸당할수 있다는것을 알고있었다.

찌는듯 무더운 날씨였다. 최현은 아직 수색전투가 한창인 도시의 중심부를 질러 교외남쪽으로 차를 몰게 했다. 늘 흐리던 하늘이 활짝 개이고 해빛이 쨋쨋이 내리비쳤다. 교외의 들판에서는 그 해빛보다 더 눈부신 섬광이 일며 폭음과 함께 거대한 불기둥을 일으켰다. 그 불기둥은 단번에 수십개씩 하늘로 뻗치다가는 무너져내리며 짙은 연기와 흙비를 뿌리였다.

《이젠 더 못가겠습니다.》

운전수가 제동변을 잡아당겼다. 마치 그의 결심이 옳다는것을 증명이나 하듯 공기를 째며 날아오던 파편 하나가 앞에 선 가로수의 밋밋한 가지 한대를 뭉청 잘라냈다.

더위에 처진 가로수의 떡잎이 길옆 도랑물에 잠겨드는것을 바라보던 최현은 가슴에 건 쌍안경줄을 바로잡으며 포탄이 작렬하는 벌판에 눈길을 돌렸다.

포탄은 벌판끝에 어슴푸레 보이는 산너머 멀리서 날오고있었다. 최현은 벌판을 따라 나란히 질러간 달구지길을 보고 그리로 차를 몰라고 했다. 부관과 운전수가 위험하다고 하자 최현은 성을 내였다.

《몰라면 몰아.》

차는 포탄의 폭발로 운무가 낀듯 뽀얀 벌판을 따라 달렸다. 둔덕과 웅뎅이들에 포사격을 피해 음페한 군인들이 놀라운 눈길로 최현을 바라보았다. 비온 뒤끝이라 온통 물투성인데다가 삐죽삐죽 돌들이 대가리를 쳐든 길이여서 차는 몹시 들추었다. 최현은 자주 엉덩방아를 찧으면서도 그 벌판의 골머리에 거뭇하게 보이는 산에서 한초도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뒤가 피반령인것이였다.

최현은 적들이 미리부터 준비한 포진지에서 이미 계산해놓은 제원으로 면적사격을 하고있음을 판단했다. 적의 포지휘감시소는 벌판끝에 있는 산에 있을것이였다. 그리고 적의 포병대지휘관이 벌판에 서린 화염과 포연때문에 자기가 탄 차를 보지 못하고있으므로 포사격을 유도하지 못한다는것도 알았다.

최현이 무심천언덕아래의 6련대지휘부에 갔을 때 포사격이 멎었다. 천막도 없이 큰바위옆에 모포를 깔고앉은 흡사 굴뚝소제를 하다나온것 같이 새까맣게 된 련대장은 최현이 차를 세우고 걸어올 때까지 전화통을 마주하고 뭐라 분주스럽게 설명하다가 《다 무사했소?》 하는 소리에 놀라며 일어섰다. 바지 한귀퉁이가 찢어져 허연 내의가 드러나보였다. 그는 찢어진 바지를 감아쥐며 그 황급한 동작속에서도 송수화기에 대고 《여기 오셨습니다.》 하고는 보고를 하였다.

《앉소. 앉아서 말하오. 누구요?》

최현은 싸늘한 바위밑에 기대앉으며 전화통을 가리켰다. 련대장은 어두운 얼굴로 사단참모장에게 정황보고를 했음을 말했다.

《희생자가 있소?》

《네, 열세명이… 》

최현은 몽몽한 연기와 먼지의 장벽이 일떠서있는 벌판을 바라보다가 아무말없이 모자전에 꽂아둔 실과 바늘을 뽑아들었다.

《찢겨진 바지를 깁기요. 련대장이 꼴이 뭐요.》

그는 망설이는 련대장의 다리를 잡아당겼다.

《결심을 말하오.》

최현은 아무런 바쁜 일도 없는 사람처럼 천천히 바늘을 꿰며 물었다.

6련대장은 련대가 개활지대로 포복전진을 하는데 불시에 포탄이 날아왔다는것, 이때껏 겪어보지 못한 대구경포탄이므로 기미가 이상해 급히 련대를 철수시켰다는것을 띠염띠염 말했다.

《그래 이젠 어떻게 하겠소?》

《뚫러볼만한곳을 찾아 정찰을 파견했는데 신통한곳이 없습니다.》

《신통한데야 어데 있겠소? 그래도 이앞이 제일 허술할게요. 포를 유독 동무네쪽에만 쏜다는것은 적들이 이앞에 방어를 제대로 못꾸렸다는것을 의미하지?》

《섯!》 하는 웨침이 울렸다.

최현은 열댓메터 떨어져 서있는 보초병앞에 2명의 전사가 군복 앞자락에 뭔가 싸들어안고 서있는것을 보았다.

역시 련대장처럼 옷과 얼굴이 까맣고 입술만 깨끗할 정도로 붉은 두 전사는 사단장을 알아보고 뻣뻣이 굳어졌다.

《뭐요?》

《저… 우리 중대장동지가 련대부에 참외를 가져가라고 해서 왔습니다.》

《참외는 무슨 참외요?》

련대장이 큰소리치는것을 보고 최현은 싱긋 웃으며 전사들에게 손짓하였다.

《가져오우.》

전사들은 최현과 련대장을 힐끔힐끔 보며 다가와서는 풀밭에 무릎을 꿇고 쏟아놓았다. 각 하나를 단 군인이 최현의 웃음띤 눈길을 보자 용기를 내며 말하였다.

《참 맛있습니다.》

하면서도 무슨 추궁이 내리지나 않을가 하는듯 조심스레 눈치를 살폈다. 최현은 아무것도 입에 댈 기분이 없었으나 숫저운 전사들때문에 하나 들었다.

《어데서 난거요?》

《정찰을 나갔다가 땄습니다.》

《그곳이 어데요?》

최현의 눈빛이 긴장되였다.

《저-기입니다.》

각 하나를 단 군인이 되돌아서 가리키는곳은 널직한 골짜기였다. 몽몽한 연기에 덮이여 잘 알아볼수 없으나 최현은 거기가 수도사단과 1사의 린접점임을 알았다.

최현은 가슴이 널뛰듯해졌다.

《그래 참외밭에 적이 없던가?》

두 군인이 얼떠름한 기색으로 마주보았다. 각 하나를 단 군인은 사단장의 범연치 않은 기색에 주저주저하다가 말했다.

《없는것 같습니다. 저흰 저 왼쪽켠의 고지로 나가 위력정찰을 했습니다. 적의 사격이 너무 심해 골짜기로 내리뛰다가 이 참외밭에 잠시 엎드려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거긴 적이 없는것이 아닌가?》

《네, 그런것 같습니다. 아니 그렇습니다. 저흰 너무 당황해서-》

《그래도 참왼 따지 않았는가?》

최현이 웃자 군인들도 따라웃었다.

《사단장동지, 저희가 다시 나가보겠습니다. 우린 고지에만 신경을 썼댔습니다.》

《골짜기라?!…》

최현은 참외를 만지작거리며 생각하다가 주머니를 급히 뒤졌다. 그리고 담배갑을 꺼내였다.

《하여튼 고맙소. 수고스레 가져온 참외를 그대로 먹을수 없지. 이거나 가져다 피우오. 그리고…》

최현은 입이 쩍 벌어져 벙글거리는 상등병의 손에 억지다싶이 담배를 쥐여주고 《동무네 중대장한테 가서 말하오. 사단장권한으로 동무들에게 감사를 준다고-》

《네…?》

전사는 차렷하고 섰으나 너무나 뜻밖의 일이라 어쩔바를 모르다가 《조국을 위하여 복무함!》이라고 웨쳤다. 최현은 짐짓 눈섭을 찌프렸다.

《그러나 앞으로 이런걸 들고다니는건 찬성이 아니야. 동무네가 나에게 뭘 이깨워줬기때문에 주는 감사야.》

최현은 기뻐서 달려가는 전사들을 보다가 련대장에게 고개를 돌렸다.

《알겠소? 저놈의 골짜기가 우릴 도울것 같애. 저길 뚫러야겠소.》

《적들이 잠복을 깔아두고 모른척하지 않았을가요?》

《허, 똥줄이 빠져 도망치던녀석들이 그럴 계제가 있소. 두가지요. 하나는 사단린접점이기때문에 미처 주의가 돌아가지 않아 배치를 하지 않았거나 아니면 고지사이에 난 골짜기라는것으로 등한시했을것이요. 일반적으로 저런 골짜기로 들어가는것은 전멸을 의미하니까. 하여튼 이 즉시 다시 정찰을 해보오.》

《알겠습니다.》

《만약 거기가 구멍이라면… 일은 먹고 떨어지오.》

최현은 통쾌하게 껄껄 웃었다. 그리고 참외를 무르팍에 쳐 두쪽으로 나누어 련대장에게 내여밀었다.

《먹기요.》

되돌아올 때 최현의 마음은 가벼워졌다.

물론 최현은 6련대가 성공된다 해도 결정적인것이 못되며 일정한 지역을 점령하는것으로만 끝날것이며 일단 1참호나 2참호를 점령한후에는 또다시 전진이 좌절될수 있다는것을 모르지 않았으나 전혀 나갈수 없는 형편에서 단 몇메터라도 전진할 방안이 나온것으로 기쁨을 느꼈던것이다.

커다란 느티나무아래서 최현은 불시에 차를 멈춰세우라고 했다.

분명 울음소리를 들은것 같았다. 차에서 뛰여내린 그는 부서진 돌멩이쪼박들과 풀잎들이 널린 달구지길을 따라 걷다가 흠칫 하고 걸음을 멈추었다.

《복심동무! 복심동무!》

모자도 없이 온몸에 검댕이를 뒤집어쓴 녀성군인이 풀밭에 누운 한 군인을 정신없이 소리쳐 부르고있었다. 그옆에서는 다리에 붕대를 동인 장대한 체격의 하사관이 그 우악진 손으로 잔디풀을 꽉 그러쥔채 어깨를 떨고있었다.

최현이 가까이 가자 《복심동무!》를 부르던 녀자가 눈물을 닦으며 일어섰다. 잔디풀을 잡아뜯던 하사관은 사단장을 알아보고 일어서려다 말고 《사단장동지!》 하고는 입귀를 이지러뜨렸다.

최현은 풀밭에 누워있는 녀인을 내려다보았다. 왼켠가슴을 가로질러 동인 붕대에 동전잎만한 피자국이 새겨졌는데 녀인의 눈은 꼭 감겨있었다. 그 얼굴을 찬찬히 여겨보던 최현은 깜짝 놀랐다.

《이 동무 이름이 뭐라구?》

《리복심입니다.》

갸냘핀 몸매의 처녀는 슬픔에 떨리는 목소리로 조용히 말했다.

최현은 자기 눈앞에 의식을 잃은채 누워있는 녀자가 다름아닌 20여일전 평양 전차안에서 만난 녀자임을 알아보았다.

《어떻게 된 일이요?》

최현은 무너지듯 주저앉으며 복심이의 손목을 잡았다. 맥박을 가늠하려 했으나 전혀 감각이 없었다. 그러나 이따금 눈시울이 움직이는것으로 봐 아직 숨이 멎지 않음을 알수 있었다.

《사단장동지, 저때문입니다.》

하사관이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쳐들고 힘겹게 말했다.

《이 동문 저를 살리느라고… 부상당한 저를 끌어내다가 포탄이 떨어지자 몸으로 저를 덮었습니다.》

최현은 말없이 일어서 련락병과 부관에게 이들을 차에 실어 후송하라고 하였다. 그는 차를 타고가면서 서럽게 우는 성련화라고 부르는 간호원을 통해 이들이 아침도 안먹고 종일 뛰여다니면서 열아홉명의 부상병을 구원한것이며 복심이가 평양에서 장군님을 만나뵈옵고 그후 입대했다는 사실을 들었다.

최현은 가슴이 쓰렸다.

평화스러운 저녁의 수도풍경과 더불어 보꾸레미를 안은채 넘어져 어쩔바를 모르던 이 녀인의 순진스런 모습이 떠오르며 코등이 저릿해올랐다.

(전쟁은 숫스러운 새각시같던 이 녀자마저 싸움터에 나서게 하였다.)

최현의 얼굴은 먹장처럼 질려있었다. 그는 복심이를 진찰대에 눕히는것까지 본후 군의소장에게 무조건 살려내라는 명령을 주고 뛰다싶이 돌아나왔다.

사단참모장은 수정보충한 《전투보고서》를 놓고 최현을 기다리고있었다. 작전참모들과의 협의끝에 채택된 보고서는 최현의 의도대로 6련대의 습격전투를 위한 계획이 구체적으로 반영되여있었다.

최현은 손바닥으로 얼굴과 눈을 문다지고(그는 이로써 아직도 눈에 서물거리는 복심이라는 녀대원의 강렬한 인상을 지우려 했다.) 보고서철을 펼쳤다. 그는 사단병력수가 적힌것을 보고 손가락으로 그 수자를 가리켰다.

《이건 병력을 더 달라는거요?》

《우린 편제에 비해서 2 500명이 모자랍니다. 현재 사단력량은 괴뢰군 사단에 비해 삼분지이밖에 되지 않습니다.》

최현은 색연필을 집어들었다. 병력요청을 바라는 참모장의 속심을 빤히 넘겨다보면서 그대로 두는것은 비렬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에서 실태를 알아야지 않는가, 그것은 규정적보고인 이상 둬둬야 하지 않는가 하는 목소리에 주저했다.

결국 그는 색연필을 그대로 든채 아래부분을 마저 읽었다.

사단과 련대들에서 료해한 적정분석, 피반령계선의 적병력집중에 대해서는 완전히 확인된 사실처럼 《…피반령엔 괴뢰1군단의 수도사단, l사, 2사, 3개 사단이 견고한 방어진을 구축하였는바…》라고 쓴데서부터 최현은 미간을 잔뜩 찡그리였다.

그러나 가장 심각한 대목은 그아래에 있었다.

…이런 정황으로 하여 현재 사단의 능력으로는 7월 8일, 7월 11일 전선사령부명령에서 지적된 목표를 명령된 시간내에 점령할수 없음을 보고드립니다.…

《이게 뭐요!》

최현은 자기를 억제하지 못하고 소리쳤다. 사단참모장과 작전과장은 약속한듯 서로 마주보고 고개를 수그렸다.

최현은 색연필로 그 대목을 벅벅 그어버렸다. 연필알이 부러져 나갔다. 그는 터져오르는 분기를 간신히 억제하고 그밑을 마저 읽었다.

…현재상태에서 피반령공격을 수행하자면 최소한으로 한개사단의 병력과 장비, 두개 련대이상의 땅크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최현은 담배를 꺼내들었다. 그러나 피우지는 않았다. 담배를 만지작거리기만 하였다. 담배대는 손가락에서 흙먼지처럼 부스러져 떨어져내렸다. 최현은 종이까지 가루처럼 만들어버리고 소리나게 손을 털었다. 이렇게 그는 자기 분노를 진정시켰다.

최현의 눈에 퍼런 빛이 번쩍이는것을 두려웁게 보던 참모장은 안경을 벗어 매만지는것으로 위압되는 자기를 다잡으며 매우 침착히 말했다.

《사단장동지, 그건 현재의 상태에서 반드시 필요한 수자입니다. 객관적인 분석에-》

《객관이고 손님관이고 걷어치우오.》

《전선사령부에서 이 실태를 알고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 알면 어떻게 한다는거요? 띤하고 맞붙어 힘내기를 하는 쪽에 대고 땅크랑 사단이랑 보내달라는거야. 그럼 거기는 어찌는가, 아니 하늘에서 군대와 땅크가 떨어져내릴걸 생각하나, 결국 못하겠다는 우는 소리지, 무슨 소리야 응?》

최현은 책상을 쳤다. 오동나무로 만든 책상은 피아노의 건반을 한꺼번에 때릴 때처럼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였다. 그 소리에 최현은 자기 입술을 깨물며 말을 삼켰다.

그는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았다.

《앉으시오.》

최현은 그때까지 참모장과 작전과장이 서있다는것을 새삼스럽게 느끼였다. 소리를 낮춰 부드럽게 말하려 했으나 말소리가 갈리여 거칠어졌다.

최현은 자기가 왜 이처럼 자신을 다잡지 못하게 예민하여졌는가를 생각하며 다시 전투보고서를 내려다보았다.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는 글줄이 방금전과는 다른 의미로 해석되였다.

(생각한것은 우에다 말할수 있잖을가. 그러나 한개 사단과 두개의 땅크련대… 이건 너무하다.)

최현은 만년필을 꺼내들고 그 한개 사단과 땅크라는것만은 지워버렸다. 그리고 다시 읽어보니 《지원이 필요》라는 글줄이 마음에 맞지 않았다.

(결국 더 달라는 수작질이지. 최현아, 너도 구차하게 되였구나.)

최현은 입귀를 이지러뜨리며 지원이 필요하다는 대목마저 지워버리려다가 멈칫하고 동작을 멈췄다.

그러자 수자들이, 군사작전과 전술의 초보적규범들이 일시에 그의 사색에 뛰여들었다.

《1대 4…》

그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참모장과 작전과장이 의아스럽게 지켜본다는것도 느끼지 못했다.

최현은 자기의 사단이 4배의 적과 맞다들었다는것을 우연스럽게 입에 올린것이였다. 유격대시절부터 수십배의 적과 싸워 버릇한 최현에게 4배라는 적이 결코 두려운것은 아니였다. 그러나 지금의 전투는 유리한 때는 적을 치고 필요한 경우에 물러서는 자유자재한 유격활동이 아니다. 엄연히 전선을 유지하며 적을 소멸할뿐아니라 한치한치의 땅을 해방하고 그자리를 지키는것이다. 물론 최현은 정규전이라 해도 방어력량보다 공격력량이 3배 우세할 때만 공격한다는 리론같은것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이번 전쟁자체가 사실로써 그것을 증명했다. 최현의 뇌리에는 전쟁 첫날부터 오늘까지의 적과의 력량상대비가 구체적전투정황과 엇섞여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춘천을 해방하고 나올 때만도 l대 1이였다. 진천계선에 이르렀을 때 다 부서져나간 괴뢰6사 대신 재정비된 수도사단과 경찰대와 마주섰을 때 력량상 아군 하나에 적이 둘로 되자 전투는 어려워졌다. 그때 최현은 물론 모든 전사들이 마지막힘까지 다해 싸웠다. 그런데 이제는 적이 넷이다. 싸움을 의지와 담력, 지혜의 대결로 보면서도 전술적계산에 밝은 최현은 사단참모부가 머리를 짜 만든 이 보고서가 결코 비겁쟁이의 우는 소리가 아닌 매우 과학적인것임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는 지원요청대목을 그대로 두는것이 옳지 않겠는가 생각하였다. 최현장령도 결심이 흔들릴 때가 있다는 뒤말쯤은 두렵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생각과 달리 그부분을 모조리 그어버렸다. 매우 힘겹게 글자 하나하나를 다 지워버린 그는 큰일을 해제낀 사람처럼 모두숨을 내쉬였다. 그리고는 매우 미안스러운 거의 어줍은 기색으로 참모장과 작전과장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사단장 권한으로 이런 독단을 하는데 대하여… 량해를 바라오.》

성미가 드센 장령에게서 이런 말을 처음으로 듣는 사단 참모장과 작전과장은 몹시 놀라는 기색이였다. 최현은 그런것에는 아랑곳않고 생각깊은 어조로 계속했다.

《동무들의 분석은 정확하면서도 또 틀리기도 하오. 그것이 무슨 아까데미에서 토론되는 작전전술리론이라면 매우 훌륭한 분석일거요. 그러나 이미 명령을 받은 집행자의 눈으로 보면 틀린것이요. 명령에 대해서는 그것을 할수 있는가 없는가를 론하는 사람이 아니라 반드시 하겠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겠는가 하는것만 생각는 사람이 되여야 하오. 동무들은 전선사령부에서 내린 명령을 가지고 흥정하려드는데 그래서는 안되오. 그 명령은 곧 장군님께서 내리신 명령이 아니겠소.

장군님께서 내리신 명령은 꼭 할수 있으며 또 죽더라도 해야 되는것이요. 나는 이제껏 그렇게 싸워왔소. 그렇게 싸워 실패한적이 없었으며 매번 죽음을 각오했지만 살았소. 장군님께서는 우리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신단말이요! 우리 장군님께서는-》

최현의 목청이 갑자기 떨리며 눈굽이 불깃해졌다. 그는 흥분을 내리누르려 주먹을 꽉 부르쥐고 안깐힘을 쓰다가 힘주어 말했다.

《명령에 제시된 전투계획은 변경시키지 않겠소. 지원요청도 빼겠소. 반대 없소?》

《알겠습니다. 사단장동지!》

한시간후 최현은 련대장이상 모인 자리에서 새로운 전투계획을 발표하였다. 6련대를 주공으로 사단공격전투를 단행하기 위한 그의 결심은 다음과 같았다.

4련대와 17련대는 어두울무렵부터 소구분대들의 산발적인 공격으로써 적의 시선을 끌어당긴다. 6련대는 적의 대구경포진지를 습격하는 시간을 기준으로 미리 준비시킨 대대를 참외밭골짜기로 진입시켜 적의 종심을 뚫는다. 적들이 그 대대의 기습을 알아차리고 력량을 거기에 집중시킬 때 6련대가 공격에 진입하여 그들을 지원한다. 그때에 4련대와 17련대는 6련대의 린접을 보장하고있다가 변화되는 정황에 맞게 좌우로 우회하여나가던가 6련대가 개척한 통로로 계속 진격한다.

이 계획 실현의 성과여부는 전적으로 첨입대대의 역할에 달려있었다. 온 전선에 소동을 일쿤 틈을 타 종심깊숙이 들어간다는것도 문제지만 일정한 교두보를 확보하고 주력이 올 때까지 견지한다는것도 희생을 각오하는 결사전이였다.

《어느 대대를 보내겠소?》

마지막으로 이것을 물을 때 최현은 얼굴기색이 좋지 않았다.

그는 6련대장의 대답이 어떻게 나오리라는것을 빤히 알고있었기때문이였고 그가 예상한것과는 다른 대대가 찍혀졌으면 하고 바라는 자기의 속심이 거북하여 눈살까지 찌프린것이였다.

아닐세라 6련대장은 오래 생각지 않고 대답하였다.

《박로수동무의 대대를 보내겠습니다. 그런데서 경험도 있고 그들은 벌써 낌새를 맡고 련대정찰과 함께 참외밭을 돌아봤습니다.》

방안의 모든 사람들의 얼굴이 한결 밝아졌다. 박로수에 대해서는 모든 부직간부들이 깊은 믿음과 신뢰를 가지고있는것이였다.

《동무넨 왜 2대대밖에 없소?》

최현은 목구멍에까지 치밀어오르는 이 말을 간신히 참았다. 그는 련대에 가서 보고결정을 짓자고 결심하였다. 최현에게는 오랜 싸움과정에 미신이라고 할수도 있는 《예감》이 있었다. 그저께 청주전투를 앞둔 공격출발진지에서 최현은 잠시동안 박로수를 만날수 있었다.

《영혜한테서 편지가 왔나?》

최현은 인사말로 이렇게 물었다. 그런데 박로수의 얼굴색이 좋아보이지 않았다.

《전쟁판에 편지가 그렇게 쉽게 오겠습니까?》

《하긴 그렇지.》

최현은 겉으로는 긍정했으나 속으로는 약간 의아해졌다. 영혜의 처지에서는 하루에도 몇번씩 드나드는 최고사령부기통을 얼마든지 리용할수 있으니만치 오히려 평화시보다 편지가 빨리 올수도 있는것이다. 그는 박로수도 필경 이쯤한것은 알리라고 생각하였다.

《저… 사단장동지! 후날 오영혜동무를 만나면 저에 대해서… 얘길… 하겠습니까?》

《거야 해야지.》

《사단장동지, 영혜동문 요구성이 높습니다. 춘천에서의 저의 잘못을 용서 안할것입니다.》

《원, 이런 바보라구야. 그래 몇시간 철직된것을 써보냈는가?》

《네.》

《알고보니 쑥이야. 남자란게 녀자한테 그렇게 오밀조밀 다 보고하면 어찌하나. 하여튼 후날 그건 내가 말해줘.》

《고맙습니다.》

그때 박로수의 목소리는 분명 떨리는것 같았다.…

회의가 끝난후 최현은 6련대장을 한발 앞서보내고 군의소에 전화를 걸었다. 복심이의 진찰결과를 알고싶어서였다. 군의소장은 방금전에 서울로 가는 차편에 복심이를 후송해보냈다고 하였다.

《파편이 심장근처에 박혔기에 우리로서는 수술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희망은… 별로 없습니다.》

최현은 맥이 풀렸고 마음이 우울해지였다. 복심이의 해쓱한 얼굴과 박로수의 얼굴이 한데 겹쳐 빙빙 돌아갔다. 6련대지휘부까지 가면서 최현은 줄곧 갈마드는 불안스런 생각에 눌려 마음의 안정을 얻지 못했다. 주먹같은 비방울이 후둑후둑 떨어져내리기 시작하였다. 개였다가는 흐리고 흐렸다가는 개이는 변덕스러운 장마날씨였다.

 

7월 11일이후 전선사령부의 시선은 금강에 쏠려있었다. 김책은 전선사령관으로 임명된 첫날부터 금강을 연구하였다. 최고사령관 김일성동지께서는 적들이 그 천연적인 하수장애를 리용하여 강력한 방어진을 꾸릴것이고 그것이 주타격방향부대들의 전진로상에서 제일 큰 암초로 될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김책도 그렇게 생각하였다. 그는 금강의 자연지리적인 특성은 물론 그 강의 력사와 유래에까지 관심을 돌렸다.

최고사령관 김일성동지께서는 대전해방작전을 준비하시며 명령 051호로 강행도하를 잘할데 대하여 특별히 강조하시였다. 김책은 그 명령을 접수한뒤로부터는 전선사령부 정찰을 통해 매일이다싶이 금강의 방어진지굴설정형을 알아보았다.

금강은 장마비로 하여 그 수심과 너비가 최대로 불어있었다. 좁은목이라 해도 300∼400m에 이르렀고 제일 옅은 여울도 깊이가 l. 5m를 넘었다.

적들은 연연 수십km의 금강을 포와 땅크, 영구화점과 토목화점, 지뢰와 탐조등… 등 온갖 최신식전투기술기재로 요새처럼 꾸렸다. 도꾜와 대전방송에서는 금강방어선을 3년간은 끄떡없이 견지할수 있는 《불퇴의 선》으로 선포했다.

김책은 한강전투의 교훈으로부터 금강의 다리들을 점거할 결심을 하였다. 다리만 확보하면 땅크와 보병의 련합돌격으로 파구를 조성할것이고 그렇게 교두보만 얻으면 시간적으로 좀 지체되는 감이 있어도 도하에 성공할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광정리를 해방한 54사가 금강 북안으로 진출하였을 때 공주로 통하는 금강교가 불덩이로 화하여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와 거의 동시에 태평리의 금남교, 신촌의 철교가 폭파되였다. 띤의 공병대가 선손을 쓴것이였다. 배마저 모조리 끌어가던가 불태워버렸다. 이것은 12일밤에 있은 일이였다.

김책은 그 보고를 받은 즉시 모든 신변 및 지방기자재를 총동원하고 적들의 방어시설물과 빈집들을 털어서라도 도하기재를 준비할것을 명령하였다. 그러나 그렇게 준비한 도하기자재들은 하루밤사이 쏟아진 폭우로 떼홍수가 진 물에 거의다 떠내려가고말았다.

비줄기가 억수로 드리운 무덥고 습한 밤이였다. 김책은 금강에 나가있었다. 거기서 그는 새롭게 생나무를 찍어 무은 떼가 두세사람이 타기 바쁘게 물에 가라앉는것을 목격하였다. 그러나 그를 더욱 위협하는것은 금강대안의 방어진이였다.

뿌리채 뽑힌 나무들이 둥둥 떠내려가는 검푸른 강물우로는 탐조등이 시허연 빛줄기를 휘두르고있었고 연신 튀여오르는 조명탄에 제방들의 이끼와 개버들의 아지까지 환히 드러났다. 강물우에 떠내려오는 뿌리채 뽑힌 나무며 풀판들이 탐조등에 포착되면 위혁사격인지 심심풀인지 적의 기관총과 포들이 우박같은 사격을 들이대군 하였다. 그렇게 되면 거기엔 부글부글 끓는 물거품만이 남을뿐이였다. 새로 전개한 53사도 같은 형편이였다. 김책은 차를 타기도 하고 걷기도 하면서 강안을 따라 수십리를 오르내렸으나 어데라없이 빈틈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주변인민들의 방조를 받아서라도 도하준비를 무조건 끝내라는 명령을 떨구고 돌아섰다. 그의 심정은 비내리는 날씨나 다름없었다. 도계리를 지나면서부터 길에는 53사 군인들로 꽉 덮여있었다. 모든 전사들이 무거운 배낭외에 널판이며 새끼퉁구리같은것을 메고있었다. 군대대렬 중간중간에는 머리에 수건을 질끈 동인 농민들이 집재목이며 통나무따위를 실은 닫구지들을 몰고 버젓이 렬을 지어가고있었다.

김책은 갈림길목에서 인민군경무관과 싸우는 한 달구지군을 목격하고 차를 세웠다. 전조등에 얼핏 드러난 턱수염을 길게 기른 농민의 얼굴은 쉰이 썩 넘어보였다.

한손으로 소코뚜레를 쥔채 경무관을 삿대질하며 소리치는 농민의 두눈은 불빛에 화경처럼 번쩍였다.

《이녁은 아무리 장교라도… 그럼 못쓰네. 그래 내 아들, 내 며느리 원쑤를 갚자는데 무슨 훼방인가. 엉. 말해보게.》

소리칠 때마다 볼수염에 맺힌 비방울이 떨어져내렸다. 경무관은 억이 막힌듯 비죽이 웃다가 김책의 차에서 비치는 전조등빛에 한손을 눈에 가져가며 습관적으로 통과신호를 했다. 김책은 불을 죽이게 하고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말싸움에 대하여 호기심을 가지고 떠드는 전사들의 말이 들렸다.

《저 아바인 대대장감이군.》

《뭣때문에 그런다나?》

《도하전투에 참가하겠다는거지.》

김책은 전지불로 달구지를 얼핏 비쳐보았다. 까뭇한 널판들이 가득 쌓인우에 백동장식이 번쩍거리는 장농이 바줄에 동여있었다.

《무슨 일들이요?》

김책이 묻자 경무관은 불의에 나타난 장령앞에서 당황함을 금치 못하며 말했다.

《장령동지! 도하기재준비로 사민들을 통과시키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알고있소. 그런데 왜 이렇게 지체시키오.》

《저… 장령동지, 명령에는 인민들의 재산에 침해가 되지 않게… 즉 쓸만한 가구같은것은 절대 받지 않게 되였습니다. 그런데 이 아바이는 고급장농까지 가지고나왔습니다. 그래 안된다고 하니-》

《장관어른-》

눈을 감츠리고 대화를 엿듣던 털부숭이 농군이 한걸음 다가서며 허리를 굽석했다.

《부탁이웨다. 미국놈들이 한주일전에 내 아들, 며느리서껀 다 죽였수다. 난 홀몸이웨다. 그래 이 늙은게 저 장농은 해서 무엇 한단말이웨까? 좀전에 인민군대어른들이 문을 두드리며 <주인님, 금강을 건느는데 떼무을 감이 없습니까. 돈을 드릴테니 널판같은것이 있으면 팔아주십시오.>하는것이 아니겠소. 아, 내 원쑤를 갚으러 가는 사람들이 글쎄 널판을 사겠다고 한단말입니다. 집을 다 헐어가도 그놈들만 족치면 내 기뻐 만세를 부르겠는데- 그래서 내 집에 덕대랑 가시대랑 다 부셔가져오는데… 저 젊은이는 물건 중한건 알지만 마음 상하는건 모른단말이우다…》

턱을 덜덜 떨며 하는 농민의 진정어린 말에 김책은 사뭇 격정을 금할수 없었다.

《고맙습니다. 그러나 이 군관동무를 탓하지 마십시오. 우리 인민군대는 인민들한테서 실 한오리 마음대로 써서는 안되게 되였고 그것을 어기면 처벌을 받게 됩니다. 지금은 부득불 이렇게 신세를 집니다만 저런 집안의 가보까지야 어찌 쓰겠습니까. 그러니 장농만은 그만두십시오.》

《장관어른, 왜 이 마음을 그리 몰라줍니까. 그렇지 않아도 난 김일성장군님의 군대들이 어떠한가를 잘 알고있습니다. 그래서 저 장궤도 부셔가지고 올가 하다가… 고쳐 생각했지요. 저 장궤로 말하면 우리 고조할아버지가 만든것인데 바다에 띄워놓아도 물 한방울 새지 않습니다. 갑오경장때 우리 할아버지가 왜놈군대를 피해 저 꿰짝에 들어가 물우에서 사흘을 살았는데 끄떡 않더랍니다. … 자, 그럼 장관어른, 난 갑네다.》

그는 경무관쯤은 아랑곳않고 호기있게 소를 끄당기였다.

《이랴!》

호기진 웨침이 추썩거리는 비소리를 짓누르며 크게 울렸다. 김책은 눈굽이 쩌릿해올랐다.

(바로 이것이다. 이것이 우리 인민이다.)

김책은 마음이 저으기 밝아졌다. 전선 동부와 중부에 대해서까지 얼마간 사색할 여유를 가졌다.

(최춘국이네는 지금 죽령을 넘을것이고… 동해안의 박정덕련대장은 평해리를 떠났을것이고… 최현은 청주를 먹고 피반령에 접할것이다. 피반령만 넘으면… 거기엔 괴뢰 1군단이 집결된다고 했지?!…)

그는 이 며칠사이 자기가 그쪽 부대들의 행동에 대해서 거의 관심을 돌리지 못했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하지만 금강을 넘기전에는 금강도하의 확실한 방안을 얻기전에는 어쩔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김책이 중앙청에 도착했을 때는 새벽 네시였다. 강건이 새록새록 마른 눈길로 방금전 최고사령관동지께서 전화로 찾으셨다는것을 알려주었다.

《오시면 인차 전화를 걸어달라고 하셨습니다.》

《무슨 말씀이 계셨소?》

김책은 뽀얗게 습기가 낀 시계유리밑으로 시간을 보다가 물었다.

《금강도하문제때문이였습니다. 도하전투를 더 앞당길수 없는가고 물으시고 구체적인 계획은 전선사령관동지가 온 다음에 토론하자고 하셨습니다. 지금 도꾜의 맥아더한테 륙군참모총장 콜린즈와 공군참모총장 반덴버그가 나타났답니다.》

《금강도하에 대하여 더 생각해본것이 없소?》

김책은 강건의 책상앞에 펼쳐져있는 금강지역지도에 시선을 주었다. 강건의 줄기찬 사색이 비껴간듯 지도는 무수한 부호와 선과 점들로 차있었다.

《원래의 안에서 더 발전시킨것이 없습니다.》

하면서 강건은 허위도하로 적의 시선을 끄는 문제와 적의 화력진지를 제압할 방도 몇가지를 이야기하였다. 김책이 이따금 시계에 눈길을 주는것을 보고 강건은 은근한 기대를 보이며 말했다.

《빨리 전화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저 말하오.》

김책은 강건의 이야기가 끝나고 자기의 의견까지 비쳐본 후 전화를 들었다. 징- 하는 전류소리를 들으며 그는 될수록 랭정해지려 애썼다. 자신의 결심과 계획에 설익은것이나 과장되거나 주관에 빠진것이 없는가를 되돌이켜보았다. 김일성동지께서 나오시자 그는 랭정해지려던 자세를 잃어버렸다.

《전선사령관 김책 전화받습니다. 안녕하십니까?》

《금강형편이 좋지 않다지요?》

김일성동지께서는 그가 전선에 갔다온 사실에 대해서는 비추지 않고 물으시였다. 김책은 그이께서 모든것을 다 아시고계신다는 생각에 짤막히 대답올렸다.

《그렇습니다. 좋지 않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잠시 동안을 두셨다가 말씀하셨다.

《그래 말해보시오. 동무들의 결심과 계획을 말입니다.》

김책은 강건의 지도를 눈바투 당겨놓고 먼저 정황을 간단히 보고한 후 작전회의와 강건과의 토론에서 합의를 본 결심을 보고드렸다.

《우선 오늘 아침부터 전반지역에서 소구분대들로 부단히 허위도하를 진행하려고 합니다. 전투정찰을 배합한 이 허위도하를 통하여 적들이 숨겨놓은 화력진지와 방어정형을 알아보고 주요하게는 적들로 하여금 1분도 마음을 놓지 못하게 하며 우리의 도하개시시간을 가늠할수 없게 하자는것입니다. 그 사이 매 련대들마다 하나 내지 두개의 유리한 도하지점을 찾고 거기에 포와 땅크들을 집중시켜 대안가까이 은밀히 기동시키려고 합니다. 낮사이에 적의 화력진지들을 포착하고 사격제원을 갖춘 후 야음을 리용하여 그 지점들에 강력한 사격을 집중시키면서 준비된 도하구분대들을 진입시키겠습니다. 일단 도하구분대들이 대안에 상륙하면 거기서 지체하는것이 아니라 포사격으로 통로를 개척하면서 계속 진격하여 적의 배후로 뚫고나가게 하려고 합니다.》

《첨입(쐐기식으로 뚫는것)입니까?》

《네, 그렇게 선견대들이 적의 배후를 쳐나가 지원로와 퇴각로들을 차단하고 적의 포화력진지들을 기습하게 되면 적의 방어체계에 일대 혼란이 빚어질것입니다. 그 시각에 주력부대들의 도하를 개시하려고 합니다.》

《좋습니다. 아주 멋있습니다.》

김책은 이마에 흘러내리는 땀을 닦았다. 그는 자기들의 방안이 기본적으로 지지를 받았음을 알았다. 그러나 그 누구보다 김일성동지를 잘 알고있는 김책은 그이의 어조에서 완전무결한 지지가 아님을 포착하였다. 몇초의 침묵이 김책에게는 매우 길게 여겨졌다.

《그런데 선견대의 첨입전투시 다른 구분대는 무엇을 하게 됩니까?》

《출발진지에서 대기하게 됩니다.》

《대기라?!… 그렇게 되면 선견대의 도하지점외의 적들은 구경을 하고있겠습니까? 말하자면 도하선견대가 저희 배후로 들어 갈 때까지 가만 있겠는가 하는것입니다.》

《네, 그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문제는 그들이 얼마나 재빨리 과감히 움직이는가 하는것에 달려있다고 봅니다.》

《옳습니다. 그러나 신속과감한 그것만 믿을순 없습니다. 적들이 강력한 화력체계를 갖춘 조건에서.》

《최고사령관동지, 허위도하로 다른 적들이 그에 시선을 돌리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그것입니다. 그런데 내 생각에는 허위도하로만 그치는것이 아니라 도하선두구분대가 적의 배후로 쳐나가는것과 동시에 본격적인 도하로 넘어갔으면 합니다. 전반적지역에서 폭을 넓혀말입니다.》

《알겠습니다. 장군님, 그렇게 되면 적들은 눈과 손을 어데다 둘지 몰라 쩔쩔맬것입니다.》

김책은 그 광경을 그려보자 기운이 부쩍 치솟았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더 다른 말씀이 없이 한동안 잠잠히 계시다가 심중한 어조로 물으시였다.

《도하시간은 어느때로 하렵니까?》

《야간도하를 하려고 합니다.》

《야간?! 꼭 야간에만 해야 하겠습니까?》

《네?! 그렇다면 낮에도 해본다는것입니까?》

《그렇습니다. 동무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놈들은 밤잠도 자지 않고 눈이 벌개 지켜있다고, 우리가 야간전을 위주로 한다는걸 알고있는 적들이니만치 이번에 그걸 리용해볼수 없겠습니까?》

《알겠습니다. 밤에 부단히 적을 피로케 한 후 아침녘에 불시 도하를 강행하는 방법으로.》

《옳습니다. 그것입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활기찬 음성으로 도하전투와 관련된 몇가지 문제를 더 언급하고 계속하시였다.

《이번 도하준비에 난관이 많지만 그 조직과 계획은 빈틈이 없는것 같습니다. 전선사령관동무의 생각엔 어떻습니까?》

방금 김일성동지께서 튕겨주신 방안은 확고한 승산을 보여주고있었다. 그러나 김책은 몇초동안 꼼짝않고 굳어져있었다. 정황을 두고, 자신을 두고 랭혹히 물었다. 《자신 있는가?》 그의 눈앞에는 솟구쳐오르던 물기둥과 제방뚝에서 벙끗거리던 수천개의 불꽃이 사물거렸고 물에 가라앉던 떼목이 떠올랐다. 책임적인 답변을 올릴 때가 왔다는 결론에 이른 그는 몸자세를 바로잡고 말씀드렸다.

《오늘로 도하를 개시하는것은 좀 어려우리라고 생각합니다. 53사는 더 말할것 없고 54사의 준비도 아직은 원만하지… 못합니다.》

《김책동문 언제 했으면 좋겠습니까?… 래일이면 되겠습니까?》

김책은 입안이 말라들었다. 그이의 친근한 음성을 들으며 일순 죄송스러운 감을 느꼈다. 그는 마른침을 삼키고 침착히 대답올렸다.

《장군님, 그만 걱정스러워서… 명령을 주십시오.》

《김책동무, 우리는 이 전투만 아니라 이 전쟁이 끝날 때까지 <완전한 준비>를 갖춘 전투는 할수 없을것입니다. 힘들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금강을 한시바삐 도하하여 대전지역에서의 포위작전을 실현하여야 합니다.

도하는 결정적으로 앞당겨야 합니다.

54사는 래일아침, 53사는 늦어도 모레아침으로 그 시작시간을 정합시다. 53사가 하루 늦게 도하하는 경우 54사의 도하는 달리되여야 할것입니다. 어느 시간에 도하를 하는가 이 문제지요. 물론 적의 화력진지는 대낮에 때려야 합니다. 그렇게 한 조건에서는 저녁이나 밤에도 계속 나가야 하겠습니다. 김책동무, 우선 전사들을 믿읍시다.》

김책은 전화가 끝난 뒤 한동안 아무말없이 방안을 천천히 거닐었다. 강건의 열띤 눈길이 안타깝게 그를 쫓는것을 느껴서야 걸음을 멈추고 그는 웃음을 지었다.

《작전회의를 소집합시다.》

이로부터 30분후 김책은 전선길에 나섰다. 또다시 금강으로 나가는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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