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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약재에 깃든 뜨거운 은정

 

 

주체75(1986)년 5월 어느날이였다.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께서는 일본에 가는 평양학생소년예술단의 출발준비정형을 료해하시다가 총련상공인들가운데 더러 앓고있는 사람들이 있다는것을 아시고 생각깊으신 눈길로 한 일군을 바라보시며 이국땅에서 사는 동포들은 여느때도 그렇겠지만 몸에 병이 나서 앓을 때 조국이 더 그리울것인데 조국에서 가는 사람이 빈손으로 가면 되겠는가고 하시면서 이번 기회에 보약을 가져다주어 그들의 건강을 빨리 춰세우도록 해주어야 하겠다고 이르시였다.

그러시면서 경애하는 령도자께서는 앓고있는 재일조선상공인들에게 산삼과 록용을 보내주는것이 좋겠다고, 평양학생소년예술단이 일본에 들어갈 때 가지고 가서 그들에게 전달하고 고무해주어야 하겠다고 하시면서 그들은 지난 기간 조국과 총련조직을 위하여 많은 돈을 낸 애국적인 상공인들이라고 절절히 말씀하시였다.

조국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이역의 차디찬 하늘아래서 병고에 시달리는 동포상공인들의 정상을 아픈마음으로 눈앞에 그려보시며 친부모도 줄수 없는 뜨거운 사랑을 베푸시는 그이를 우러르며 일군들은 한없는 격정에 가슴을 들먹이였다.

   경애하는 령도자의 이런 의리깊은 사랑이 있어 오늘 해외동포상공인들은 건강한 몸으로 애국사업에 헌신하고있는것이다. 차 례

 

비내리는 날

 

주체57(1968)년 동해안지구에는 류별나게 비가 많이 내렸다.

바로 이러한 때 함경남도안의 사업을 현지지도하시던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께서는 어느날 오후 갑자기 함흥영예군인수지일용품공장에 나가 보자고 말씀하시였다.

일군들이 그이께 아침부터 비가 내렸기때문에 공장현지지도를 일정에 넣지 않았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그이께서는 자신께서 이번에 함흥에 내려온 중요한 목적의 하나가 바로 이 공장을 찾아보는것이라고 하시며 만사를 제쳐놓고서라도 공장을 다녀와야 한다고 단호히 말씀하시였다.

결국 그이께서는 공장을 향해 떠나게 되시였다.

그이께서 오신다는 소식을 받은 공장지배인은 우산을 들고 허둥지둥 정문앞으로 달려나왔다.

경애하는 령도자께서는 그의 두손을 잡으시며 영예군인들은 다 건강한가고 물으시고 수령님께 기쁨을 드리기 위해 애쓰는 동무들이 보고싶어 이렇게 찾아왔다고 웃으시며 말씀하시였다.

지배인은 날씨가 궂은것이 마치 자기때문인듯 죄송스러워하며 급히 우산을 펼쳐드리였다.

그러자 그이께서는 나야 뭐라는가, 몸이 불편한 동무가 어서 우산을 쓰라고 하시며 지배인에게 우산을 씌워주시였다.

  너무도 황송하여 지배인이 급히 우산을 다시 그이께 드리자 령도자께서는 웃으시며 그러다가 감기에라도 걸리면 어떻게 하겠는가고, 그럼 우리 함께 쓰고 가자고 하시며 지배인의 우산을 자신께서 손수 드시고 다른 한손으로는 지배인을 감싸안으시고 걸음을 옮기시였다.

  그런데 령도자께서 크지 않은 우산을 지배인쪽으로만 기울이다 보니 우산에서 줄줄이 흘러내리는 비물은 잠간사이에 그이의 옷자락을 축축히 적시였다.

  하지만 그이께서는 그런데는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의족을 한 지배인의 다리를 근심어린 시선으로 내려다 보시며 천천히 걸으라고 연신 주의를 주시는것이였다.

 이때 지배인의 몸에 비방울은 떨어지지 않았지만 그의 두 볼로는 비물이 아닌 두줄기 물줄기가 하염없이 흘러내리였다. 차 례

 

 
    물

 

주체52(1963)년 여름, 위대한 김일성주석을 모시고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시던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께서 후치령마루에 오르시였을 때에 있은 일이다.

차가 산마루에 이르렀을 때 주석께서는 일군들에게 쉬여가자고 말씀하시였다.

해발 1, 300m를 헤아리는 후치령마루에서 눈앞에 펼쳐진 전경을 만족스럽게 부감하시던 주석께서는 사람들이 름날에 이 높은 령을 오르내리자면 마실 물이 있어야 하겠다고 하시면서 주변에 샘이 있는지 찾아보라고 이르시였다.

멀지 는곳에 샘터가 있다고 보고드리는 일군들의 말을 들으신 령도자께서는 함께 가보자고 하시였다.

샘터는 령마루에서 조금 아래로 치우친 나무숲속에 있었는데 언제 인적이 닿았는지 오솔길에는 잡관목이 앞을 막았고 볕조차 들지 않는 숲속의 이슬이 무릅까지 적시였다.

이윽고 샘터에 이르시여 맑고 정갈한 샘물을 맛보시던 령도자께서는 차고 맛이 좋다고 하시면서 맑고 시원한 샘물을 수령님께 가져다드리자고 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손수 물통에 물을 채워넣으시였다.

물통을 일군들에게 넘겨주신 령도자께서는 도로 샘터에 앉으시여 팔소매를 걷어올리시고 몸소 그 주변을 정리하시는것이였다.

잠간사이에 환해 진 샘터를 만족스럽게 들여다 보시며 그이께서는 일군들에게 령길을 넘어다니는 길손들이 샘물을 마실수 있게 샘터를 깨끗이 꾸리고 길도 잘 닦아놓아야 하겠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외진 숲속의 이름없는 샘터, 드물게 찾아오는 평범한 길손들도 물을 마시고는 바쁜 걸음을 재촉했으련만 경애하는 그이께서는 하나의 샘도 스쳐지나지 않으시고 샘물을 마시게 될 인민들을 위해 그렇듯 정성을 기울이시며 마음을 쓰시는것이였다. 차 례

 

 

 

얼굴색을 보시고도

 

주체66(1977)년 3월 하순경에 있은 일이다.

어느 한 지방의 사업을 현지에서 지도하시던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께서는 한 녀성로동자의 얼굴에 수심이 비껴있는것을 알아보시였다.

그이께서는 다정한 눈빛으로 그 녀성로동자를 바라보시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있는가고 인자하게 물으시였다.

그러자 한없이 너그러우신 그이앞에서 그는 어려움도 잊고 마음속사연을 그대로 터놓았다.

그는 군대에 있는 둘째에게 새 살림을 꾸려준 다음 한번도 만나보지 못했는데 홀 어머니품에서 자란 그가 어떻게 살고있는지 한번 가보았으면 하는 생각을 하더랬다고 하면서 나이를 먹으면 시름이 늘어난다더니 자기도 공연히 걱정을 하는것 같다고 쑥스럽게 말씀올리였다.

령도자께서는 어머니가 세간 난 자식생각을 하는것은 응당한 일인데 그게 왜 공연한 걱정이겠는가고 하시면서 너그럽게 웃으시였다.

이윽고 그이께서는 일군들에게 우리가 차를 내주어 어머니를 아들한테 갔다 오게 하자고 하시면서 빈손으로 보내지 말고 무엇을 좀 준비해서 보내주자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얼굴색을 얼핏 보시고도 속마음까지 깊이 헤아리신것도 놀라운 일이였지만 자식의 새살림을 보러가는 홀어머니의 첫 나들이길을 념려하시여 승용차를 보내주시고 빈손으로 떠날가봐 따뜻이 보살펴주시는 그이의 사랑이 너무도 고마워 녀성로동자는 하염없이 쏟아지는 눈물을 걷잡지 못해하였다. 차 례

 

 

새로 생긴 식당에서

 

주체90(2001)년 12월 어느날 이른 아침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께서는 강계 내포국집을 찾으시였다.

아담하고 깨끗하게 꾸려진 건물의 안팎을 일일이 돌아보시던 령도자께서는 평양창광거리가 왔다가 울고 가겠다고 만족해 하시면서 이 식당에서 내는 료리품종에는 자신도 맛보지 못한 료리까지 있다고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그러시면서 그이께서는 이 좋은 식당에서 닭내포료리에 술도 한잔씩 받쳐주면 인민들이 좋아하겠다고 하시면서 자금을 더 들여서라도 닭공장을 하나 멋있게 짓자고, 그러면 이런 닭내포국집이 하나 더 생겨날수 있다며 기뻐하시였다.

현대적인 닭공장을 수많이 일떠세워주신것도 부족하신듯 사색을 거듭하시며 닭내포국집이라는 새로운 봉사시설을 꾸려 인민들에게 안겨주시고도 어떻게 하면 보다 더 윤택하고 행복한 생활을 안겨주겠는가를 늘 생각하시는 분이 바로 경애하는 령도자이시다.

그때 일군들은 인민의 행복에서 그토록 큰 기쁨을 느끼시는 경애하는 그이를 우러르며 머지 않아 우리 조국땅우에 일떠설 강성대국을 그려보았다. 차 례

 

 

 

농민과 무릎을 마주하시고

 

 

어느해 초여름에 있은 일이였다.

숙천군에 대한 현지지도의 길에 오르신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께서는 어느 한 포전머리에서 물고를 보는 로인을 만나 허물없이 담화를 하시였다.

자애로운 친어버이심정으로 로인을 마주하시고 아침밥상에 올랐던 식찬으로부터 생활상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차근차근 알아보시던 령도자께서는 요새 농촌에서 마늘이 한창인데 마늘장아찌를 담그어 먹거나 풋마늘을 된장에 찍어먹을수 있지 않는가고 물으시였다.

대답을 올리지 못하고 머뭇머뭇하더니 어줍은듯 웃는 로인을 보신 그이께서 만면에  미소를 담으시고 아마도 안주인이 아들딸, 손자에게 보내려고 마늘을 몹시 아끼는 모양이라고 하시자 로인은 맞췄다고 하면서 자기 로친이 여간 깍쟁이가 아니라고 하는것이였다.

로인의 말에 한동안 즐겁게 웃으시던 그이께서는 문득 아침에 잡수신 국에 기름을 넣었는가고 다정히 물으시였다.

그가 선뜻 대답을 못하자 령도자께서는 그렇게 말씀을 잘하시던 할아버지가 왜 그러는가고 하시며 나 혼자만 듣겠으니 어서 이야기하라고 하시며 그의 입가에 귀를 가져다 대시는것이였다.

그제야 로인은 사실 이 고장에는 깨가 잘되므로 깨를 많이 심으면 기름을 더 풍족하게 먹을수 있다는데 대하여 대답을 올리였다.

로인의 길지 않은 대답에서 실태를 파악하신 령도자께서는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 농촌을 현지지도하실 때마다 기름문제를 풀데 대하여 일일이 가르쳐주시였다고, 모름지기 이 농장에서도 교시관철을 위한 계획을 세웠을것이라고 하시면서 계획만 요란하게 세우지 말고 이제부터라도 조직사업을 짜고 들어 먹는 기름문제를 풀데 대하여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였다.

이름없는 한 평범한 농민을 마주하시고 흔히 스쳐지날수 있는 하나의 작은 사실을 인민생활과 관련한 큰 문제로 포착하시고 대책을 세워주시는 그이의 인민적풍모는 세월과 더불어 길이 전해질것이다. 차 례

 

 

 

숭고한 인민성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께서 수도 평양에 일떠선 현대적인 고층살림집을 돌아보실 때 있은 일이다.

새집들이를 앞둔 어느날, 건설을 맡아한 일군들의 안내를 받으며 채광이 좋은 넓다란 방들과 부엌, 목욕탕과 위생실이며 창고 등 살림집내부를 구석구석까지 세세히 살펴보신 령도자께서는 이윽고 베란다로 나가시였다.

전망이 좋은 베란다에 서시여 한동안 외경을 부감하고 나신 그이께서는 문득 한 일군을 부르시더니 베란다의 한쪽 모서리를 가리키시며 물 빠지는 구멍이야 밑바닥에 바싹 붙여서 내야지 이렇게 올려다 내면 어떻게 하는가고 부족점을 일깨워주시였다.

령도자께서는 일군들에게 지금 일부 살림집들의 세면장 물빠지는 구멍도 턱이 높아 말끔히 빠지지 않고 고이기때문에 녀인들이 손바닥으로 쓸어넘긴다고 하시면서 이것은 결코 어느 누가 이런데까지 살펴보지 못했다는 실무적인 문제가 아니며 비록 사소하고 하찮은것같지만 우리 일군들의 일하는 본새와 마음씨를 그대로 말해주는것이라고 신중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그이께서는 눈에 잘 보이는데건 안보이는데건, 큰것이건 작은것이건 할것없이 모든것을 집을 쓰는 사람들의 립장에서 세심하고 깐지게 자그마한 흠도 없이 해야 하며 그렇게 하는것이 인민의 충복다운 일본새이고 마음씨라고 일깨워주시였다.

심한 자책에 잠겨있는 일군들을 둘러보시며 그이께서는 혹 어떤 사람들은 옥에도 티가 있다고 요란한 살림집을 지어준것만도 대단한데 그런 사소한 흠집이야 뭐라겠는가고 할수 있는데 옥에 티는 허용할수 있어도 인민을 위한 우리 일군들의 마음의 티는 절대로 허용할수 없다고 거듭 말씀하시였다.

옥에 티는 허용할수 있어도 인민을 위한 일군들의 마음의 티는 절대로 허용할수 없다고 하시는 그이의 말씀을 일군들은 경건한 마음으로 새겨안았다. 차 례

 

 

 

자매섬에 선 학교

 

 

주체63(1974)년 가을 어느날이였다.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께서는 우리 나라 등대원들의 생활형편을 료해하시다가 서해에 있는 자매섬의 세 어린이들이 남포에 나와서 소학교에 다닌다는것을 알게 되시였다.

그이께서는 한동안 아무 말씀도 없이 창밖을 내다보시다가 실태를 보고 드린 일군에게 아이들이 어머니를 그리워하지 않는가고 물으시였다.

일군은 모두 명랑하게 공부를 잘하고있다고 말씀올렸다.

그러자 그이께서는 그래도 어머니의 품만이야 하겠는가고 하시면서 깊은 생각에 잠기셨다가 자매섬에 학교를 세워주자고 하시면서 나어린 학생들이 집을 떠나 공부하게 해서야 우리 마음이 편하겠는가고, 꼭 지어 주도록 하자고 절절히 말씀하시였다.

일군들이 자매섬에 학생들이 세명밖에 되지 않는다는것과 그들은 이제 한두해 지나면 다 소학교를 졸업하게 된다는것을 말씀드리자 그이께서는 한해도 좋고 두해도 좋으니 학교를 세워주자고 하시며 앞으로 한 아이가 남는 경우에도 어머니의 품에서 공부할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령도자께서는 이것저것 타산만 하면 학교를 지을수 없으니 새 학년도부터 학생들이 공부할수 있게 소학교를 세워주자고 뜨겁게 이르시였다.

 이리하여 세 학생을 위하여 지도에 점으로도 표시되지 않던 자그마한 자매섬에 학교가 일떠서고 전반적11년제의무교육제가 완전히 실시된 뜻깊은 주체64(1975)년 개학날부터 그들은 자기 집에서 학교에 다니게 되였던것이다. 차 례

 

 

사랑의  다리

 

주체62(1973)년 12월 어느날에 있은 일이다.

쉬임없는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 가시던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께서는 구월산기슭에 있는 수정천을 건느시다가 차를 세우게 하시였다.

그때 길가던 학생들이 달려와 인사올리는것을 자애에 넘치는 시선으로 바라보시던 그이께서는 어데로 가는 길인가고 다정히 물으시였다.

아이들은 목소리를 합쳐 학교로 가는 길이라고 씩씩하게 대답하였다.

그러자 그이께서는 대견하게 그들을 바라보시면서 몇학년인가, 매일 이 돌다리를 건너 학교에 다니는가고 또다시 물으시였다.

아이들은 이번에도 아무 생각없이 그렇다고 대답을 드리였다.

경애하는 령도자께서는 잠시 생각에 잠기시더니 여름철에 물이 불어날 때에는 어떻게 건너 다니는가고 물으시였다.

아이들이 아버지, 어머니나 중등반 오빠, 언니들이 업어다 건네 준다는 대답을 드리자 그이께서는 아무 말씀없이 굽이굽이 흐르는 수정천줄기를 한동안 바라보고계시였다.

이윽고 학생들의 어깨우에 쌓인 눈을 손수 털어주시며 그이께서는 이젠 학교에 가보라고 하시면서 눈이 쌓여 돌이 미끄럽겠는데 조심해서 건너다니라고 이르시였다.

학생들을 보내고 차에 오르시여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겨계시던 그이께서는 그애들이 건너 다니는 개울에 다리를 하나 놓아주자고 말씀하시는것이였다.

수행하던 일군이 그이께 개울을 건너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여라문명밖에 안된다고 말씀올렸다.

그러자 경애하는 령도자께서는 신중한 음성으로 여라문명이 아니라 한두명이라도 다리를 놓아주자고 하시면서 나라의 귀중한 보배들을 어떻게 머리수로만 헤아려보겠는가, 빨리 아이들에게 넓고 환한 다리를 놓아주도록 하자고 말씀하시였다.

어린이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좋은것을 선참으로 아낌없이 돌려주시는 그이의 이런 사랑, 이런 은정에 의하여 수정천우에는 《사랑의 다리》가 놓이게 되였던것이다. 차 례

 

 

 

사랑의 입사증

 

 

어느 해 봄에 있은 일이다.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께서는 텔레비죤방송국을 현지에서 지도하시다가 한 촬영가가 얼마전에 결혼식을 하였다는것을 알게 되시였다.

그이께서는 그를 부르시여 왜 알리지 않고 결혼식을 혼자 했느냐고 하시면서 옆에 있는 일군에게 이 동무한테는 부모가 없어서 내가 잔치를 해주려고 했는데 혼자 했다고, 무슨 일이 제기되면 알리라고 전화번호를 대주었는데 전화도 걸지 않고 혼자서 슬쩍 해버렸다고 말씀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신혼부부의 생활형편을 일일이 알아보시다가 그가 아직 집을 받지 못하여 안해를 지방에 둔채 가정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것을 알게 되시였다.

그때로부터 한달이 지난 어느날 예고도 없이 갑자기 촬영가의 사무실로 찾아오신 경애하는 령도자께서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하는 그를 승용차에 태우시고 만수교를 지나 보통강반에 새로 일떠선 아빠트밑에 차를 멈춰 세우신 다음 몸소 그를 이끄시고 2층3호실로 가시였다.

그이께서는 입사증을 받으라고 하시면서 새 가정을 이루었는데 쓰던 집에 들일수 없어서 새집을 구하느라고 좀 지체되였다고, 어서 집이 마음에 드는가 들어가보라고 하시였다.

인정깊게 하시는 말씀에 목이 메여 촬영가는 그 자리에 서고만 있는데 그이께서는 그의 손에 입사증을  쥐여주시고 방으로 들여보내고서야 그곳을 떠나시였다.  차 례

 

 

 

 

복받은 이름 대홍이와 홍단이

 

 

주체89(2000)년 3월 21일이였다.

대홍단군종합농장을 현지지도하시던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께서는 서두분장 제대군인마을 한복판에 자리잡은 민원식의 가정을 찾아주시였다.

뜻밖에도 경애하는 그이를 자기 집에 모시게 된 한없는 행복감에 넘쳐있던 민원식의 안해 박혜금은 친정아버지를 만난듯 수집음도 다 잊고 그이의 손을 잡고 귀속말로 7월에 애기를 낳게 되는데 애기이름을 지어달라고 청을 드리였다.

아직 태여나지도 않은 애기이름을 지어달라니 모두들 의아해하였다.

허나 한없이 자애로우신 그이께서는 그날 저녁 일군들에게 원래 아이이름은 아버지가 짓게 되여있지만 제대군인안해의 간절한 부탁인것만큼 그들의 미래를 축하해주는 의미에서 우리가 지어주자고, 아들을 낳게 되면 《대홍》이라고 하고 딸을 낳게 되면 《홍단》이라고 하는것이 좋을것 같다고 하시면서 앞으로 아들과 딸을 낳아 아들이름은 대홍이라고 하고 딸이름은 홍단이라고 짓게 되면 대홍단이라는 뜻이 된다고 하시였다.

령도자께서는 아버지의 성이 민가이므로 아들이면 민대홍, 딸이면 민홍단이라고 부르면 뜻이 좋을것이라고, 원래 좋기는 오누이 쌍둥이를 낳아 대홍이 홍단이라고 하면 더 리상적이라고 하시며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그해 7월, 그 녀성은 만사람의 관심속에 태여나기전부터 뜻깊고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딸 홍단이를 낳았다.

력사의 땅 대홍단을 떠메고 나갈 래일의 세대들을 키워내시려는 경애하는 령도자의 사랑과 은정속에 오늘 이 땅에서는 수많은 대홍이와 홍단이가 태여나 세상에 부럼없이 자라고 있다.

참으로 현지지도의 그 바쁘신 속에서도 이름없는 한 녀성이 드린 청을 잊지 않으시고 새로 태여날 애기의 이름까지 친히 지어주시는 그이는 인정이 깊고 다심하신 인민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시다. 차 례

 

 

 

사랑은 대를 이어

 

 

주체84(1995)년 8월 어느날이였다.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께서는 김성규선생의 자녀들을 찾아내여 그에게 못다준 사랑을 자식들에게 안겨주도록 해주시였다.

김성규선생은 오랜 한학자로서 광복전에 국내와 해외에서 민족주의운동에 참여했으며 광복후에는 서울에서 단군을 시조로 하는 5천년 민족사를 해설선전하여 남조선 유교계의 진보적인사들과 한학자들을 비롯한 중간정치세력들로 조선민족대동회를 조직하고 그 위원장으로 사업하였다.

그후 그는 공화국의 품에 안기여 통일성업에 헌신하다가 주체38(1949)년 1월 병으로 돌아갔다.

령도자께서는 이제는 친지들의 기억속에서도 삭막해져가는  선생을 잊지 못하시고 김성규선생의 아들의 사업과 생활을  구체적으로 료해하시였으며 그를 자기가 수십년 서있던 초소에 다시 내세워주시는 특혜를 베풀어주시였다.

뿐만아니라 선생의 손자들이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뒤를 이어 통일애국의 길에서 삶을 빛내이도록 높이 내세워주시였다.  부모가  조국통일성업에  공헌하였다고  하여  그  자손들에  이르기까지 극진히  보살펴주시는  경애하는 령도자의 의리깊은 사랑속에 조선민족대동회 위원장이였던 김성규선생의 후대들만이 아닌 모든 애국인사들의 자녀들이 만사람의 축복속에 값높은 삶을 누리고있다.

참으로 경애하는 령도자는 정견과 신앙, 과거여하를 불문하고 애국하는 사람, 통일위업에 헌신하는 사람이라면 그가 누구이건 그의 공로를 꼭같이 평가하시여 영생의 삶을 주시며 그들의 자녀들에게까지 그 사랑이 미치게 하여 만복을 누리도록 하시는 민족의 위대한 태양이시다. 차 례

 

 

 

풍 산 장 맛

 

 

어느 해 여름 무더위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몸소 풍산땅을 찾으신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께서는 읍종합상점을 돌아보시였다.

그런데 그때는 저녁때여서 판매원은 하루동안 판매한 전표들을 세느라 여념이 없었다.

령도자께서는 판매원이 일을 다 끝낼 때가지 매장에 서계시였다.

일을 끝내고서야 오래동안 매대에 서계신분이 경애하는 령도자이심을 알아본 판매원이 어찌할바를 몰라하는데 그이께서는 우리야 좀 기다린들 뭐라는가고 너그럽게 말씀하시며 천천히 식료매대쪽으로 걸음을 옮기시였다.

령도자께서는 진렬품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시고 나서 판매원에게 된장, 간장은 떨구지 않고 넉넉히 공급하고있는가고 알아보시고 된장맛이 어떤가고 물으시고는 주민들에게 공급하는 된장을 좀 가져오라고 말씀하시였다.

된장그릇을 받아드신 령도자께서는 된장의 질이 시원치 못한것 같은데 된장맛이 좋아야 국맛이 좋다고 , 여름에 호박국을 끓여도 그렇고 겨울에 시래기국을 끓여도 장이 맛있어야 국이 구수하고 밥맛도 돋군다고 말씀하시며 판매원에게 장을 맛있게 만들어 달라고 식료공장에 자꾸 제기해야 한다고 이르시였다.

그러시면서 그이께서는 판매원에게 된장 반kg쯤하고 간장 한병  그리고 고추장과 양념장을 좀 달라고 당부하시는것이였다.

이날 경애하는 그이께서는 군의 책임일군들에게 인민들의 식생활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된장, 간장의 질을 개선할데 대하여 간곡히 말씀하시고 그 방도를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고서야 이 고장을 떠나시였다.

인민생활향상을 위해 온갖 로고와 심혈을 다 바치시는 경애하는 그이께서는 오늘도 기초식품생산에서 획기적인 전변을 가져오도록 하시기 위하여 크나큰 로고를 바쳐가고 계신다 차 례

 

 

 

《 판  결 》

 

 

언제인가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께서는 자강도의 외진곳에 자리잡고있는 어느한 광산 흑연건조장의 현지실태를 료해하고 온 중앙의 한 일군의 보고를 받으시고 즉시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비상회의를 소집하시였다.

비상회의가 소집된다는 통보를 받고 모여온 당과 국가의 지도간부들과 각도의 책임일군들은 중대한 사건이 발생한것으로 예측하고 저으기 긴장되여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회의에 상정된 의제는 한 광산의 작업장문제였다.

다른 나라들같으면 전쟁과 같은 사태나 론의될 정치국 비상회의에서 로동자들의 얼굴에 흑연가루가 묻는것과 같은 사실을 기본의제로 상정한것은 우리 나라에서만 찾아볼수 있는 일이다.

회의에서는 광산 흑연건조장의 실태가 통보되고 로동자들의 로동조건에 무관심한 일군들이 집중적으로 비판되였다.

그날밤 도의 책임일군을 집무실에 따로 부르신 령도자께서는 자신의 잘못을 비는 일군에게 나에게 용서를 빌것이 아니라 로동자들앞에서 사죄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이제 날이 밝으면 수령님께서 교시하신대로 다른 도당책임비서들과 정무원 위원회, 부의 책임일군들과 함께 광산에 가서 로동자들을 모여놓고 동무가 일군들을 대표하여 잘못을 빌어야 하겠다고, 일군들의 잘못에 대한 판결권은 로동자들에게 있다고 말씀하시였다.

이리하여 다음날 광산문화회관에서는 하나의 엄숙한 《심판무대》가 마련되고 로동자들이 《판결》을 내리게 된 류다른 《심판장》이 펼쳐지게 되였다.

참으로 일찌기 있어 본적이 없는 극적인 장면이였다.

그처럼 례사로운 일까지도 가슴에 맺히시여 도의 책임일군을 내려보내여 사죄하게 하고 일군들에 대한 처분까지도 로동자들에게 맡겨주신 그 꿈같은 은정에 목메여 로동자들은 웨쳤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우리들때문에 더는 마음쓰지 마실것을 전해주십시오!》라고. 차 례

 

 

 

맹물로 에운 점심식사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께서는 주체78(1989)년 5월 어느날 벼모내기와 강냉이영양단지모 옮겨심기를 다그치고있는 황해북도의 한 농촌을 현지지도하시였다.

포전들을 돌아보시는 그이를 안내하던 현지의 한 일군은 점심참이 지나자 그이께 식사준비때문에 마을에 잠간 다녀오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그이께서는 시간이 벌써 그렇게 되였는가고 하시며 승용차에 간단히 꾸려가지고 온것이 있으니 그것으로 아무데서나 요기를 하자고 하시며 그 일군을 데리고 황주천기슭으로 걸음을 옮기시였다.

잠시후 황주천가의 안침진곳에 종이를 펴놓고 식사가 차려지게 되였는데 식사래야 빵과 같은 한두가지 마른 음식과 보온병의 물이 전부였다.

그이께서 일군들과 자리를 같이 하였을 때였다.

저 멀리 양수쪽에서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가 바람결을 타고 간간히 들려왔다.

령도자께서는 양수장에서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가 계속 나는것을 보아 그들이 식사를 하지 못했을것이라고 념려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수고하는 동무들이 식사를 못하였는데 우리만 식사를 하니 안됐습니다, 그 동무들이 작업중에 있는 양수기를 운전하느라고 여기에 올수 없다면 거기서라도 식사를 할수 있도록 무엇을 좀 가져다 주어야 하겠습니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종이우에 펴 놓은것들을 한데 모아 현지의  일군에게 가져다 주라고 하시였다.

일군이 할수 없이 음식꾸레미를 안고 몇발자국 옮기는데 그이께서는 그 사람들이 내가 보낸것이라면 먹지 못할수 있으니 내가 보낸것이라고 말하지 말고 동무는 거기서 함께 요기를 하면서 그 사람들이 먹는것을 보고 오라고 이르시였다.

그러시고 자신께서는 보온병의 물을 고뿌에 따라 마시며 일군들에게도 권하시였다.

그러시면서 동무들이 나와 함께 다니자면 이따금 이런 일을 겪게 될 각오를 해야 한다고 롱말을 던지시며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이렇게 되여 그이께서는 그날 점심식사를 결국 맹물로 에우시게 되였던것이다. 차 례

 

 

 

6년생 재배산삼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탄생 70돐을  전  민족적인  경사로  맞이하던  주체71(1982)년 봄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께서는 일본에 있는 유치원반 어린이로부터 초급학교 학생에 이르는 전체 동포자녀들에게 3뿌리씩 차례지도록 6년생 재배산삼을 2만 3,500뿌리나 보내주시였다.

그때 총련일군들은 물론 해당 부문 일군들도 그이께서 전체 재일동포자녀들에게 그런 희귀한 선물을 보내주시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총련의 한 부의장은 《정말 뜻밖이였습니다. 아마 이런 선물은 아직까지 세계 그 어느 나라의 해외교포자녀들도 받아보지 못하였을것입니다.》라고 하면서 령도자께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뜨거운 감사의 편지를 올렸고 오사까의 한 학부형은 편지에서 한없이 고마운 그 은정이 그대로 보약이 되여 아이들도 튼튼해 지고    자기들도 젊어지는것 같다고 하면서 이제는 자기들 때문에 더는 심려하지 마시라고,  경애하는  령도자를 모시고 있는 기쁨이 곧 자기들의 건강이고 행복이라고 진정 어린심정을 피력하였다.

일본의  한 사회활동가는 이 사실을  알고  조선사람이 부럽다고 하면서   해외동포들에  대한   경애하는   김정일비서의 사랑은 고금의 력사가 알지 못한 가장 열렬하고 강렬한 사랑이라고 격정에 넘쳐말하였다.

6년생 재배산삼, 이것은 한갖 보약재라고만 말할수 없는, 같은 민족이라면 그가 어디에 살든 따뜻이 한 품에 안아주시려는 경애하는 령도자의 뜨거운 사랑의 결정체인것이다. 차 례

 

 

 

70돐생일 전날에

 

 

주체65(1976)년 1월 4일이였다.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께서는 한 일군에게 전화를 거시여  래일이 총련 리계백부의장 생일 70돐이 되는 날인데 어째서 아무런 의견도 제기하지 않고있는가고 물으시였다.

그런데 그때 그일군은 다음날이 부의장의 생일이라는것을  감감 잊고있었다.

경애하는 령도자께서는 그러한 그에게 자기들이 맡아보고있는 사람의 생일도 모르고서는 그들과의 사업을 잘할수 없다고 하시면서 부의장은 공로가 있는 사람인것만큼 응당한 평가를 해주어야 한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리계백부의장에게 훈장을 수여하여야 하겠다고, 수속을 빨리 하여 다음번 배편에 훈장과 훈장증명서를 보내도록 하여야 하겠다고 강조하시였다.

그로부터 얼마후 총련중앙청사에서 수훈전달모임이 있게 되였는데 그날 부의장은 자신에게 수여된 국기훈장 제1급에 깃든 사연을 두고 너무도 감격스러워 이렇게 말하였다.

《예로부터 인간 70고래희라  하였는데  내가 이국땅에서 별고없이  일흔나이를   살게된것은   전적으로  위대한 주석님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극진히 보살펴주신 덕분입니다.  이 은혜만 하여도 말로 다할수 없는데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오늘 이런 영광까지 안겨주시니 나는 이에 어떻게 보답을 드려야할지 알수 없습니다.

참말 이 사랑, 이 은혜는 백골난망입니다.》

참으로 가까이 있는 자식보다 멀리 해외에서 사는 자식을 더 귀중히 여기시며 온갖 육친적배려와 뜨거운 은정으로  보살펴주시는 그 숭고한 의리와 인간애는 일찌기 어느 시대 어느 나라 령도자에게서도 찾아볼수 없는 전무후무한것이다. 차 례

 

 

 

한 기업가가 받아안은 사랑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께서는 주체89(2000)년 6월 29일 력사적인 평양상봉이후 처음으로 찾아온 정주영일행을 접견해주시였다.

그이께서는 고령의 불편한 몸으로 불원천리 찾아온 정주영일행을 환영해주시고 그의 건강상태며 기업형편에 대해 상세히 료해하시였다.

그러시면서 경제협력과 관련된 정주영의 소망을 들어보시고 개성공업지구건설을 《현대》가 맡아하도록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시였으며 금강산관광사업을 비롯하여 경제협력사업에서 제기되는 여러가지 문제들도 몸소 해결해주시였다.

정주영은 경애하는 령도자의 하해 같은 믿음과 사랑에 너무도 감격하여 몸 둘바를 몰라하였다.

이날 령도자께서는 고령의 정주영을 의자에 앉히시고 기념사진을 찍어주시였다.

일국의 최고수뇌로서 평범한 한 기업가인 자기를 이렇게 존대해주고 내세워주시는 경애하는 령도자의 숭고한 풍모에 정주영은 깊이 머리숙여 탄복하였다. 차 례

 

 

 

신흥관에 어린 다심한 사랑

 

 

어느 해인가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께서는 함경남도에 대한 현지지도를 끝마치시면서 몸소 함흥시에 있는 신흥관을 찾아주시였다.

이날 신흥관에 들어서신 령도자께서는 감회가 깊으신듯 신흥관에 와본지도 10년이 넘는다고 하시면서 하루에 농마국수를 몇그릇이나 내는가고 물으시였다.

하루에 3,000그릇을 보장한다는 일군들의 보고를 받으신 그이께서는 하루에 3,000명을 봉사하자면 국수그릇이 1,500조는 있어야 하겠는데 유리국수그릇1,500개와 떨어뜨려도 마사지지 않는 접시 1,500조를 보내주라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그이께서는 함경남도에서 농마국수를 잘하는데 농마는 국가에서 보장해주겠다고 하시면서 철도에서 대홍단의 농마를 먼저 수송해주도록 은정깊은 배려를 돌려주시였다.

경애하는 령도자께서는 이날 국수는 고기맛이 아니라 국수맛이 기본이라고 하시면서 국수에는 여러가지 고기를 놓지 말고 한가지 고기를 놓아야 한다고, 국수에 소고기를 쓰면 신맛이 나기 때문에 인민들에게 봉사할 때에 다른 고기를 쓰지 말고 돼지고기를 놓아줄데 대하여 일일이 가르쳐주시였다.

경애하는 령도자께서는 또한 국수그릇으로는 유리그릇을 쓰되 농마국수는 비빔국수를 하는것이 좋고 메밀국수는 양념장을 쳐서 먹어야 제맛이 난다고 세심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참으로 이날에 하신 경애하는 령도자의 귀중한 가르치심에는 우리 인민들의 식성까지 환히 헤아려보시고 그들을 위해 참답게 봉사활동을 벌려나가도록 해주신 은정깊은 어버이의 다심한 사랑이 깃들어있다 차 례

 

 

 

금   가   위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께서는 주체71(1982)년 봄 어느날 탄생 70돐을 맞으시는 위대한 김일성주석께 드리려고 재일동포들이 보내온 선물전시장을 찾으시였다.

지성어린 선물들을 하나하나 눈여겨보아주시며 걸음을 옮기시던 령도자께서는 유난히도 반짝이는 두개의 금가위앞에서 걸음을 멈추시였다.

그 금가위로 말하면 총련 지바현의 한 상공인이 주석의 탄생 70돐을 계기로  조국의 수도 한복판에 주체사상탑과 개선문을 건립하고 제막한다는데 주석의 위대성을 세기를 두고 길이 칭송하게 될 영원불멸할 기념비제막식에서 어찌 보통가위로 테프를 끊을수 있겠는가고 하면서 탄생 70돐을 맞으시는 주석께 충성의 선물로 드린것이였다.

일군으로부터 한 평범한 동포상공인의 진정이 넘친 소원을 들으신 그이께서는 이 금가위를 인민대학습당에 차려놓게 될 선물전시장에  내놓고 꼭 수령님께 보여드리자고 하시면서 그 동포상공인의 소원대로 주체사상탑과 개선문 제막식때 반드시 이 가위로 테프를 끊도록 하자고 말씀하시였다.

원한다고 하여 다 이루어질수 없는 소원, 더구나  불멸의 대기념비제막테프를 끊는것과 같은 영광스러운 행사에 자신이 올린 선물을 긴요하게 써줬으면 하는 한 평범한 해외동포상공인의 크나큰  소원까지 다 헤아리시고 풀어주시는 령도자앞에서 일군들은 뜨거운 눈물을 삼키였다. 차 례

 

 

 

양력설을 앞두고

 

 

주체67(1978)년 12월 14일에 있은 일이다.

이날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께서는 한 일군에게 뽈스까에서 진행되는 제18차 국제공개탁구선수권대회에 간 우리 선수들이 언제 돌아오게 되는가고 물으시였다.

령도자께서 물으시는 의도를 미처 헤아리지 못한 일군이 실무적으로 아직 경기가 진행중인데 그것이 끝나면 즉시 렬차편으로 돌아오게 되여있다고 보고드리였다.

잠시후 그이께서는 깊은 생각에 잠기시더니 탁구선수들이 기차를 타고 오게되면 설명절이 지나게 될수 있다고 하시면서 선수들이 조국에 돌아와 설명절을 쇨수 있게 비행기를 타고 오게 하라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선수들이 돌아올 때 정기항로를 리용하지 말고 우리 비행기를 타고 오게 하라고 다시금 강조하시였다.

단 몇명의 탁구선수들이 빨리 귀국하여 조국땅에서 설명절을 쇠도록 하시기 위해 보내주신 사랑의 려객기는 이렇게 마련되였다.

기성관념으로는 결코 생각할수 없는 위대한 사랑의 품에 안겨사는 조선의 탁구선수들이 비행기에 올라 그리운 조국땅으로 향할 때 세계각지에서 온 선수들은 부러움을 금치 못해하였다. 차 례

 

 

인 공 잔 디

모란봉기슭에 온갖 꽃 활짝 피여나던 주체66(1977)년 어느 봄날이였다.

이날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께서는 김일성경기장(당시 모란봉경기장)에 나오시여 대집단체조 《조선의 노래》 종합시연회를 보아주시였다.

그날 저녁 령도자께서는 해당 부문 일군을 부르시여 낮에 집단체조를 보고 돌아와서 록화한것을 다시 보았다고 하시면서 아무리 생각해도 마음에 걸리는것이  있어서 불렀다고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경기장에 깐 멍석에 대하여 생각해본 일이 없는가고, 어린것들이 멍석우에서 달리다가 혹 넘어지면 어디 벗겨질수도 있지 않는가고 가볍게 일군을 나무람하시면서 멍석대신 인공잔디를 깔아주자고 하시였다.

인공잔디값이 비싸다는 일군의 보고에 그이께서는 값이 비싸도 일없습니다, 우리가 돈을 두었다가 무엇에 쓰겠습니까, 아이들을 위해서는 나라의 돈을 다 바쳐도 좋습니다,

우리 어린이들에게 세상에서 제일 좋은 인공잔디를 깔아줍시다라고 말씀하시였다.

아이들을 위하시는 그 위대한 사랑앞에 일군들은 세차게 끓어오르는 가슴을 진정할수 없었다. 차 례

 

 

 

유희장의 첫 《손님》이 되시여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께서는 주체66(1977)년 10월 2일 대성산에 현대적인 유희장이 건설되였다는 보고를 받으시고 친히 현지에 나오시였다.

이날 령도자께서는 수많은 유희기구들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타보기도 하시고 동작도 시켜보시면서 시설들의 운전법과 안전상태를 세심히 알아보시였다. 그러시면서 회전속도가 빠른 유희기구들은 나이 많은 분들이나 어린이들에게는 어지럼증을 일으킬수 있으니 회전속도와 시간을 조절하는것이 좋겠다고 하시며 매 시설들에서 주의할 점을 하나하나 일깨워주시였다.

관성단차에 이르러서는 일군들의 만류도 불구하고 우리 인민들이 다 타고 즐길 유희기구인데 나라고 왜 못타겠는가고 하시며 서슴없이 관성단차에 오르시였다.

날이 아주 어둡고 찬 바람은 불어왔으나 이날 저녁 령도자께서는 일군들과 함께 공중렬차까지 다 타보시고서야 유희장을 떠나시였다.

제일 훌륭한 유희장을 꾸려주시고 거기에 자그마한 흠이라도 있을세라 바로 잡아주시면서 인민들이 타보기에  앞서  첫 《손님》이  되시여  자신께서  먼저  타보시며 그 안전성을 확인하고서야 마음놓으시는   령도자앞에서 일군들은 끓어오르는 격정에 마음을 진정할수 없었다. 차 례

 

 

 

림시로 낸 건늠길

 

주체50(1961)년 5월 말 룡성도로확장공사가 한창 벌어질 때였다.

그날도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께서는 공사에 동원된 인민군운전수와 함께 불도젤에 오르시여 흙을 밀어내는 작업을 하고 계시였다.

그런데 바로 그때 경애하는 령도자께서는 운전수에게 앞을 보라고 하시며 손으로 한곳을 가리키시는것이였다.

원래 그곳에는 다리쪽으로 가는 건늠길이 있었는데 공사가 본격적으로 벌어지면서 작업장 여기저기에 모래, 자갈무지들이 생기고 파헤친 웅뎅이나 기계설비들이 놓여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에돌아 다니지 않고 불편한대로 본래의 건늠길로 다니고 있었던것이다.

그이께서는 운전수에게 뭔가 생각되는 점이 없는가고 물으시고 이 험한데로 다니느라고 이곳 주민들이 얼마나 불편해 하겠는가고 하시며 못내 가슴아파하시였다.

이윽토록 공사장을 둘러보시던 그이께서는 우리가 도로확장공사를 하는것도 인민들을 위한것인데 인민들에게 불편을 주어서야 되겠는가고 하시면서 인민들이 마음놓고 다닐수 있게 림시로 건늠길을 내는것이 좋겠다고 말씀하시였다.

이리하여 누구도 예견하지 못했던 림시건늠길이 생겨나게 되였고 새로 낸 림시건늠길로 수많은 사람들이 불편없이 오가게 되였다.

길가에 서시여 오가는 사람들을 정겹게 바라보시던 경애하는 령도자의 얼굴엔 만족한 미소가 밝게 어려있었다 차 례

 

 

 

누구인지 몰랐으나

 

눈보라치는 어느 겨울날 아침이였다.

평성시 배산마을 앞길로 한 녀인이 아이를 업고 급한 걸음으로 걷고있었다.

앓는 아이를 업고 급하게 걸음을 다그치는 녀인의 몸에서는 그 추위속에서도 땀이 흐르고있었다.

이때 소리없이 등뒤에서 달려오던 승용차가 녀인의 옆에 이르러 멈춰서더니 차에 타고있던 분이 녀인에게 말을 건네는것이였다.

그분께서는 이 추운 날씨에 아이를 업고 어디로 가는가고 하시며 차를 타고 함께  가자고 하시였다.

녀인은 그분의 인정에 고마움을 금치 못해하며 일없다고 거듭 사양하였지만 이 추운 날씨에 아이를 업고 어떻게 걸어가겠는가고, 어려워 말고 어서 차에 오르라고 다심하게 이르는 고마운분의 마음에 이끌려 차에 오르긴 했지만 송구한 마음으로 해서 차문곁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분은 편히 앉으라고 하시면서 평성에는 무슨일로 가는가고 다정히 물으시였다.

녀인은 며칠째 시름시름 앓던 어린애가 갑자기 병이 더해져서 큰 병원으로 가려고 역으로 나갔는데 그만 한발 늦어 기차를 놓쳤기때문에 할수 없이 걸어서 떠나게 된 사연을 말씀드렸다.

그분은 어린애의 머리도 짚어보고 맥박도 가늠해보시며 열이 몹시 난다고 하시면서 운전사에게 차를 좀더 빨리 몰라고 이르시였다.

너무도 고마운 인정앞에 눈굽이 쩌릿해 진 녀인은 살며시 눈을 들어 그분을 우러러 보았다.

인자하고 환하신 모습! 꼭 어디선가 뵈온듯한데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어느덧 승용차는 평성시에 들어서 병원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이르렀다.

그분께서는 어서 병원으로 들어가라고 손짓하시며 돌아갈때는 기차를 놓치지 말고 꼭 타고 가도록 서두르라고 이르시였다.

차는 떠났으나 녀인은 그분이 다름아닌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이심을 끝내 아보지 못하였다. 차 례

 

 

 26 

은  덕  수

 

서해기슭 은천군 제량리(당시)사람들은 세상에 소문난 신덕샘물에 못지 않는 물을 마신다.

그러나 원래부터 이 고장물이 좋은것은 아니였다

오래전에 있은 일이다.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께서는 그 무렵 은천군을 다녀온 일군을 만나시였다.  지방을 다녀온 일군들을 만나시면 의례히 그러하듯이 그이께서는 이날도 일군에게 은천군인민들의 생활형편부터 물으시였다.

다른것은 일없는데 물맛이 썩 씨원치 않아 애로를 느끼고있다는것을 알게되신 경애하는 령도자께서는 곧 해당 부문의 전문일군들을 그곳으로 파견하시였다.

전문일군들이 나가 료해한데 의하면 제량리의 물맛은 좋지 않았다.

맛좋은 물은  마을로부터 10여리 떨어진 산기슭에 있었다.

경애하는 령도자께서는 즉시 대담한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수백세대의 농촌살림집들을 모두 물좋고 경치 좋은 산기슭으로 옮겨짓고 집집마다 수도를 놓아줄데 대한 은정깊은 조치였다.

이 사랑의 조치에 따라 곧 건설지휘부가 조직되고 청년들로 건설대가 무어졌다.

초보적으로 타산해보아도 강재, 목재, 세멘트, 운수수단이 많이 있어야 하였다.

경애하는 령도자께서는 몸소 그 모든것을 풀어주시였다.

보다 복되고 기름진 생활을 우리 인민들에게 안겨주시려고 그리도 마음쓰시는 경애하는 령도자의 위대한 사랑에 의해 서해기슭 제량리에서는 한날한시에 450세대가 새집들이를 하는 경사를 맞이하게 되였다. 차 례

 

 

 

사랑의《은덕분교》

 

오로지  인민을  위하여  심심산골  막바지까지  찾아주시고  문화주택을  지어주신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를 경치 좋은 남산동에  단 한번만이라도 편히 모시고 감사의 인사를 올리려던 이 고장 인민들의 간절한 소원이 풀리는 영광의 날이 왔다.

주체70(1981)년 10월 어느 날 황해북도 서흥군의 남산동마을을 찾으신 령도자께 수행한 일군들은 이곳 인민들이 그이를 모실 지성어린 집 한채를 마련한 사실에 대하여 보고드리였다.

일군들의 보고를 받으신 그이께서는 인민들의 심정이 충분히 리해된다고 하시면서 나야 아무데서 쉰들 뭐라는가고, 그 집을 마을어린이들을 위한 유치원으로 쓰자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한 일군이 이 마을에는 이미 유치원과 탁아소가 잘 꾸려져있는것만큼 남산동인민들의 절절한 소망을 헤아려주실것을 그이께 거듭 말씀드리였다.

이 고장 인민들의 뜨거운 마음에 가슴이 후더워지는듯 먼 산발을 이윽토록 바라보시던 그이께서는 이 마을 아이들이 어느 학교에 다니는가고 물으시였다.

그애들이 얼마간 떨어진곳에 있는 리소재지 학교에 다닌다는 일군의 대답을 들으신 령도자께서는  그 집을 분교로 쓰자고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그이께서는  남산동사람들이  새로  지은  이  집을  분교로  만들면 위대한 수령님께서도 기뻐하실것이라고 절절하게 말씀하시였다.

경애하는 그이께서는 환히 웃으시며 남산동사람들이 어버이수령님께 기쁨을 드리게 되였으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고 하시면서 그 집을 분교로 리용할데 대하여 다시금 강조하시였다.

그후 남산동사람들은 그이의 크나큰 은덕을 대를 이어 전해 갈 일념속에 분교이름을  《은덕분교》라고 지었다. 차 례

 

 

《죽음의 날》을 재생의 날로

 

주체69(1980)년 10월 26일이였다.

이날 새벽 태평양서북부지역에서는 일찌기 볼수 없었던 강한 태풍이 일어난 그 수역을 통과하던   1만t급이상의 선박들이 침몰되는 참상이 빚어졌다.

이날 태풍중심권을 벗어난 지점인 남조선근해에서만도 수백척의 배들이 향방없이 종적을 감추었다고 한다.

세계해운력사는 이날을 《죽음의 날》이라고 기록하였다.

그런데 바로 이날 조국에 오는 재일동포청년 400명을 싣고 동해의 한복판을 지나던 《삼지연》호가 태풍중심권에 들게 되여 위험에 처하게 되였다.

3층객실 정면유리 4개 파손, 객실침수, 배 전진 못함, 위험!》이라는 무전문이 《삼지연》호에서 날아왔다.

이른 새벽, 이 사실을 보고받으신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께서는 조난 당한 《삼지연》호에 사람은 몇명이 탔으며 현재 배는 어느 위치에 있는가 등을 알아보시고 즉석에서 관계부문 일군들을 찾으시여 비상구조조치를 취하시였다.

이리하여 인민무력부와 륙해운부, 수산위원회 일군들, 그리고 《삼지연》호 설계와 제작에 참가했던 기술자들을 망라한 구조전투지휘부가 조직되였다.

조난 당한 한척의 려객선을 구출하기 위하여 이렇듯 전례없는 대구조작전을 펴시고도 그이께서는 여전히 마음을 놓지 못하시여 구조대가 도착할 때까지 모든 사람들이 신심을 잃지 말데 대하여 《삼지연》호에 무전으로 알리도록 하시였다.

그이의 말씀을 전달받은 선원들과 재일동포청년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였고 불굴의 의지로 부닥친 난관을 맞받아 나갔다.

이러한 때에 령도자께서 보내주신 공군비행기들과 해군함선들이 《삼지연》호에 도착하였다.

이리하여 그 무서운 《죽음의 날》에 태풍수역을 항해하던 수많은 사람들가운데서 구원된것은 오직 재일동포청년들뿐이였다.

참으로 령도자께서 해외동포들에게 베풀어주시는 사랑과 은정에는 끝이 없다. 차 례

 

 

 

옮겨진 철길

 

주체65(1976)년 7월 어느날 백두산지구에 대한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 가시던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께서는 내곡온천이 각종 치료에 좋은 성분을 가지고 있다고, 거기에 료양소를 지어놓고 량강도인민들이 료양도 하고 혁명전적지 답사자들이 돌아가는 길에 들려 휴식도 하고 목욕도 하면 좋을것이라고 하시면서 바쁘신 시간을 내시여 이곳을 찾아주시였다.

손수 온천물에 손을 담그시여 온도도 가늠해 보시고 물량도 헤아려보시던 령도자께서는 이 지구에 현대적인 료양소와 문화후생시설들을 잘 꾸릴데 대한 방도를 가르쳐주시다가 통나무를 가득 실은 림철기차가 기적소리를 요란스럽게 내면서 달리는 모습을 보게 되시였다.

림철기차가 먼 산굽이를 돌아사라질 때까지 이윽토록 바라보시던 령도자께서는 심려 어린 안색으로 일군에게 이곳에 료양생들이 와서 료양을 하게 되면 조용해야 겠는데 철길이 지나가서 안되겠다고, 그것을 다른데로 돌리도록 해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였다.

사방 산으로 둘러 막힌 크지 않은 골안에서 철길을 옮기자면 산에 400~500m정도의 굴을 뚫어야 한다는것을 아시면서도 그이께서는 오직 인민들의 보다 훌륭한 생활환경을 위하여 철길을 돌리자고 하시니 참으로 가슴뜨거운 일이 아닐수 없었다.

령도자께서는 계속하여 목욕탕건설방향과 관리운영방법, 치료방법은 물론 목욕을 하고난 사람들이 지방의 특산물도 맛볼수 있게 할데 대해서까지 따뜻이 일깨워주시였다.

이날 그이와 함께 동행했던 도의 일군들은 이름없는 온천까지 몸소 찾아주시고 그것이 인민들의 건강증진에 더 잘 리용되도록 해주시는 경애하는 그이의 한없는 은정에 감격을 금할수 없었다.

그이께서 다녀가신 후 내곡온천마을 한가운데로 지나갔던 철길은 먼데로 옮겨졌고 내곡온천은 현대적인 치료설비를 충분히 갖춘 훌륭한 료양기지로 전변되여 수많은 근로자들과 주민들의 건강증진에 적극 이바지하게 되였다. 차 례

 

 

 

언제나 인민들이 좋아하게

 

 

어느해 추운 겨울날이였다.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께서는 기별도 없이 수도의 어느한 청량음료점을 찾으시였다.

2층의 대중식사실에 들리신 그이께서는 감격에 겨워 인사를 올리는 접대원에게 《오늘의 청량음료안내》대로 에스키모를 청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요즘 청량음료점을 찾는 손님들이 얼마나 되며 주로 어떤것을 많이 요구하는가도 알아보신 령도자께서는 손님들이 겨울철에 좋아할 음료들이 없는데 대하여 지적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자애에 넘치신 어조로 인민에 대한 헌신적복무정신으로 한가지의 청량음료라도 더 많이, 더 좋게 만들어 내놓기 위하여 애써 노력한다면 인민들의 구미와 수요를 능히 충족시킬수 있다고, 예로부터 우리 인민은 여러가지 산열매, 야생식물을 리용하여 다종다양한 음료를 만들어 마시였다고 말씀하시면서 사철 달고 시원한 여러가지 음료를 수요에 따라 공급할수 있는 방도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가르쳐주시였다.

그이께서는 계속하여 손님들의 편리와 민족적형식에 맞게 온돌식으로 된 방들을 몇칸 더 꾸려주어 민족적정서가 풍기는 방에 빙둘러 앉아 청량음료나 음식을 먹게 되면 우리 인민들이 매우 좋아할것이라고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령도자께서는 접대원에게 꽃에 나비가 찾아들듯이 수도시민들과 오가는 길손들, 단골손님들이 사철 찾아들어 청량음료점이 늘 흥성거리게 하자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꼭 그렇게 하겠다는 접대원의 대답을 들으신 령도자께서는 그 추운날에 손수 에스키모를 맛보시며 인민의 참된 복무자들이 어떻게 살며 일해야 하는가를 뜨겁게 깨우쳐주시였다. 차 례

 

 

 

몸소 낚으신 잉어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께서는 나라의 방방곡곡을 찾으시는 현지지도의 길우에 인민에 대한 뜨거운 사랑의 이야기를 수많이 남기시였다.

주체70(1981)년 10월 말 서해안일대를 현지지도하시던 령도자께서는 어느날 새벽 이 근방에 큰 저수지가 있겠는데 한번 돌아보자고 하시였다.

드넓은 저수지의 전경을 한동안 바라보시던 그이께서는 뜻밖에도 낚시대를 찾으시였다.

그동안 현지지도의 길에서 쌓인 피로를 푸시기 위하여 낚시질이라도 하시려는줄 알고 일군들은 기쁜 마음으로 그이께 낚시대를 가져다 드리였다.

한식경이 지나자 잡아낸 잉어는 몇개의 구럭을 채우고도 남았다.

얼마후 령도자께서는 일군들에게 잡아낸 잉어가 몇마리나 될것 같은가고 물으시였다.

일군들이 퍼그나 된다고 말씀올리자 그이께서는 잉어는 보약으로 쓰이는데 아이들에게 먹이면 좋을것이라고, 그러니 오늘 우리가 잡은 잉어를 모두 탁아소나 유치원에 보내주자고 하시였다.

경애하는 령도자께서는 잉어들이 다 포장된것을 보시자 그것을 옥류관에도 보내여 여러가지 료리를 해서 인민들에게 공급하는것이 좋겠다고 하시였다.

어쩌다가 현지지도의 길에서 손수 낚으신 잉어까지도 기어이 어린이들과 인민들에게 보내시려는 그 끝없는 은정앞에 일군들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차 례

 

 

 

드레박에 깃든 사연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께서 주체56(1967)년 7월 어느날 속후역에 들리시였다.

이 지방의 실정을 자세히 알아보시던 그이께서는 문득 역구내에 있는 자그마한 우물을 보시게 되였다.

그이께서 웬 우물이냐고 물으시자 역의 일군이 물맛이 수도물에 못지 않아 사람들이 늘 즐겨마시기에 그대로 두고 있는것이라고 말씀드렸다.

깊은 관심을 가지시고 우물을 들여다 보시던 그이께서는 우물에 뚜껑조차 변변한것이 없고 드레박마저 낡은것을 헤아려보시고 우물이 어지러워 손님들의 기분이 흐려지겠다고 하시면서 드레박과 뚜껑도 새로 만들어놓고 우물안팎도 깨끗이 정리하여 늘 정가로운 물을 마실수 있게 하라고 당부하시였다.

그로부터 며칠후 역일군들이 아직 새 드레박을 갖추어 놓기도 전인데 하루는 그이를 동행하던 한 일군이 역으로 찾아왔다.

그는 정성껏 만든 드레박을 내놓으며 령도자께서 보내주시는것이라고 알려주는것이였다.

그 말에 역일군은 가슴속에 뜨거운것이 솟구쳐오르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그런데 그때로부터 며칠이 지나 그이께서 다시 이 역에 나오시였다.

렬차가 떠날 시간까지는 불과 몇분밖에 남지 않았지만 그이께서는 우물을 돌아보시면서 우물에 뚜껑도 해 씌우고 새 드레박도 놓으니 손님들이 좋아하겠다고 더없이 만족해하시며 이제부터 우물을 더 잘 관리하여 손님들이 깨끗한 물을 마시게 하라고 당부하시였다.

경애하는 령도자께서 우리 인민을 위하여 기울이시는 사랑은 이렇듯 자애롭고 뜨거운것이다. 차 례

 

 

 

로동계급을 위한 국가연회

 

주체50(1961)년 5월 초 어느날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는 함흥시에서 비날론공장준공을 온 세상에 선포하던 뜻깊은 시각에 공장건설에서 로력적위훈을 세운 로동계급에게 성대한 연회를 차려주자고 말씀하시였다.

연회를  앞두고  준비사업을  마감단계에서  다그치고있던  5월  7일, 연회준비장소를  찾아주신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께서는 줄지어놓은 식탁사이를 천천히 걸으시며 음식의 가지수와 그 차림새를 일일이 헤아려보시였다.

고기도 여러가지이고 수산물도 많다고 만족해하시며 그이께서는 상우에 미나리를 놓는것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신선한 물고기도 시간이 오래면 중독현상을 일으킬수 있다고 가르쳐주시였다.

령도자께서는 연회음식차림표의 음식가지수를 하나하나 확인하시고 로동자들이 참가하는데 량을 많이 하여 푸짐히 차려야 한다고 하시면서 술도 가장 좋은것으로 놓고 고급담배도 올려놓도록 하라고 이르시였다.

이어 녀성들을 위해 따로 마련한 연회상을 보시면서 녀성들의 구미에 맞게 갖가지 감미로운 음식들로 상을 괜찮게 차렸다고 만족해하시던 그이께서는 왜 녀성들의 상에는 마실만한것이 없는가고 하시면서 세상에서 조선녀성들처럼 성미가 순박하고 부드러우면서도 슬기롭고 용감한 녀성들은 없다고 , 비날론공장건설에서도  우리  녀성들이  참으로  일을  잘하였다고  치하하시며 포도주도 놓아줄데 대하여 친어버이사랑이 담긴 말씀을 하시였다.

로력혁신자 1,600명이 앉을  긴  식탁의  마지막까지  다  돌아보신  령도자께서는  일군들에게 오늘은  수령님께서 비날론공장준공을 경축하여 로동자들에게 크나큰 배려를 돌려주시는것만큼 연회상을 최상의 수준에서 잘 차려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시고 연회장을 나서시였다.

이날 위대한 주석과 경애하는 령도자를 함께 모시고 연회에 참가한 로동자들은 자기들을 더 위해주고  더  기쁘게  해주고  싶으시여  연회상에  오를  음식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깊이 헤아려주신  령도자의 다심한 은정이 가슴속에 뜨겁게 안겨와 그 고마움에 누구나 눈시울을 적시였다. 차 례

 

 

 

쇠물과 보호안경

 

주체55(1966)년 5월 3일 황해제철소를 돌아보시던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께서 6호 평로앞에 이르시였을 때의 일이다.

마침 한창 쇠물이 끓고있는 중이여서 용해공들은 로가까이에서 로상태를 살펴보고있었다.

그이께서는 공장일군들에게 저렇게 불앞에 가까이 서있지 말고 좀 떨어진곳에서 용해작업을 하면 안되는가고 하시면서 용해공들이 왜 보호안경을 끼지 않는가고 물으시였다.

그 일군은 육안으로 로안을 보아야 로상태를 정확히 볼수 있다고 하면서 그들은 쇠물빛을 보고도 쇠물의 온도를 알아낸다고 말씀드리였다.

령도자께서는 잠시 생각깊이 서계시더니 보호안경을 달라고 하시며 성큼성큼 평로앞에 바투 다가가시였다.

당황한  한 일군이 앞을 막아나서며 열풍이 심하다고 말씀드리자 그이께서는 용해공들이 매일같이 일하는 곳인데 내가 잠간 서있는것이야 뭐라는가고 하시며 오래동안 로안의 쇠물을 들여다 보시였다.

쇠물은 바다처럼 사품치며 이글이글  끓어번지고 참기 어려운 열풍이 확확 뿜어나왔다.

그이께서는 보호안경을 벗어드시고 이 보호안경을 끼면 완전히 눈이 보호되는가, 이 보다 더 좋은것은 없는가고 물으시였다.

일군들은 그때까지 보호안경에 대해 크게 관심을 돌리지 않았기때문에 그보다 더 좋은것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었으므로 미처 대답을 올리지 못하였다.

깊은 생각에 잠겨계시던 그이께서는 누구에게나 눈은 다 귀중하지만 용해공들은 쇠물빛갈만 보고도 쇠물의 질을 가늠할수 있어야 하는것만큼 그들에게 있어서 눈은 특별히 더 귀중하다고, 그런데 로앞에서 강한 빛을 받으면 눈이 인차 나빠질수 있다고 하시면서 우리 용해공들에게 세상에서 좋다고 소문난 보호안경알가운데서 제일 좋은것을 골라서 해결해주자고 말씀하시였다.

우리의 용해공들에게 최상의 작업조건을 마련해주시려는 그이의 은혜로운 사랑은 이렇게 세부에까지도 다 미치고있는것이다. 차 례

 

 

왕들만 쓰는 설비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께서는 주체70(1981)년 6월 29일 친히 개원준비정형을 알아보시기 위하여 함흥에 있는 구강병예방원을 찾으시였다.

령도자께서는 흥남지구로동자들이 이발이 좋지 못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늘 생각해 왔는데 병원을 꾸려줄바에는 돈을 들여서라도 세상에서 제일 좋은 설비를 일식으로 갖추어주자고 하시면서 적어도 50~100년앞을 내다보고 현대적인 설비로 예방원을 꾸려주도록 온갖 필요한 조치를 다 취해주시고 이렇듯 현장에까지 찾아오신것이였다.

병원을 돌아보시던 그이께서 2층에 있는 어느 한 치료실에 들리시였을 때였다.

거기에는 보기 드문 최신형종합치료대가 설치되여있었다.

수행한 일군들로부터 이 기대를 들여올때 외국의 전문가들이 다른 나라에서는 왕이나 대통령급수반들의 전용치료설비로만 사가는 기대를 조선에서는 어떻게 지방도시의 병원설비로 들여가는가고 하면서 종시 의문을 풀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으신 령도자께서는 우리 나라에서는 왕이 없는데 그러면 야단났다고 하시며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그 말씀에 수원들모두가 명랑한 웃음을 터뜨리는데 령도자께서는 그러나 걱정할것은 없다고, 우리 나라에서야 인민이 주인인데 인민들이 써야지 누가 쓰겠는가, 바로  로동자들이 여기에 앉아야 한다고 뜨겁게 말씀하시는것이였다.

그이의 말씀에 접한 수원들은 가슴마다에 형언할수 없는 숭고한 감동이 차올라 모두 약속이라도 한듯 웃음을 거두었다. 차 례

 

 

구봉령이 전하는 불멸의 이야기

 

주체89(2000)년 8월 31일 이름없던 자강도 구봉령에서 력사에 길이 전해질 사랑의 전설이 꽃펴났다.

이날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께서는 자강도의 여러 부문 사업을 현지지도하시는 그 바쁘신 가운데서도 인적드문 깊은 산중에서 수십년동안 묵묵히 도로관리원으로 일해온 김성녀녀성과 그 가족소대원들을 친히 만나주시고 그들에게 뜨거운 은정을 부어주시였다.

꿈결에도 그리던 어버이장군님을 뵈옵게 된 가족소대원들은 너무도 크나큰 감격으로 저도 모르게 격정을 터치였다.

김성녀녀성의 셋째딸은 그이앞에서 상급학교도 마다하고 이곳에 오게 된 사연을 노래한 자작시를 읊어드리였고 이어 가족소대원들은 소박한 합창도 불러드리였다.

경애하는 그이께서는 그들의 시와 노래를 들으시고 환하게 웃으시며 어느 합창단보다 낫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가족소대원들이 10명이라는데 이런 외진산골에서 한생을 보낸다는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기보다 나라를 먼저 생각하는 동무들과 같은 애국자가 많기때문에 우리 당이 강하고 우리 민족이 번영하는것입니다. 동무들의 정신세계는 참으로 고상하고 아름답습니다.》

그러시고는 가족소대원들과 뜻깊은 기념사진을 찍어주시였다.

그때 그이의 오른쪽에 선  김성녀녀성의 딸이 자기 품에 안겨 잠든 아이를 깨우려고 여러번 흔들었으나 깊이 잠든 아이는 깨여날줄 물랐다.

그 광경을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시고 정겹게 바라보시던 그이께서는 그냥 놔두라고, 아이가 커서 후에 사진을 보면 두고두고 후회할것이라고 따뜻이 말씀하시였다.

그로부터 얼마후 령도자께서는 가족소대원들에게 대를 두고 길이 전할 사랑의 선물을 보내주시였고 도의 책임일군에게는 이들이야 말로 현시대의 참된 인간들이라고 , 특별보도를 하여야 하겠다고 이르시였다.

이름없는 깊은 산골의 도로관리원들을 사랑의 한품에 안아주시고 온 나라가 다 알게 해주시는 자애로운 인민의 령도자이신 그이는 진정 멀리 떨어져있는 자식을 더 위해주고 싶어하는 친어버이라고밖에 달리 부를수 없는것이다. 차 례

 

 

 

몸소 짜신 주택배정안

 

주체74(1985)년 가을 어느날 깊은 밤이였다.

한 일군의 집에 전화를 몸소 걸어주신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께서는 내가 동무를 잠에서 깨운것이 아닌가고 하시며 날이 추워오는데 이미 완공된 살림집들을 빨리 배정하여 김장을 해넣기전에 이사를 시켜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였다.

그이께서는 그 집들에 들어야 할 사람들의 사정이야 내만큼 아는 사람이 없겠으니 그 집배정안은 내가 직접 짜려고한다고 하시면서 초보적인 안을 가지고있는데 동무의 의견을 들어볼가 해서 그런다고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살림집에 한번 옮겨앉으면 적어도 몇 년, 몇십년 아니면 당대를 살게 되는것만큼 처음 배정할 때 잘 해주어야 한다고 하시며 우선 새집들에 들어야 할 대상들의 이름을 불러주시였다.

그러시고는 누구는 아직 나이도 많지 않고 집에 늙은이가 없으니 높은 층이 좋을것이라고 하시고 또 누구는 건강이 그닥 좋지 못한데다가 늙은이들까지 모시고 있으니 층수도 낮고 해볕도 특별히 잘드는 쪽을 주어야 하며 또 누구는 식구가 많고 당장 장가를 보내야 할 아들이 있으니 구조상 합리적인 호실을 배정해주어야 한다고 일러주시였다.

경애하는 령도자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을 하시고 전화를 끊으신 다음에도 다시금 일군들의 형편을 한사람한사람 일일이 따져보시며 배정안을 확정하시였다.

다음날 이른 아침 그 일군을 만나주신 그이께서는 살림집배정안에 대한 의견을 다시 물으신 다음 그 일군에게 자신께서 작성하신 배정안을 넘겨주시며 호랑이는 잡기보다 몫을 내기가 더 어렵다더니 집을 짓기보다 배정하기가 더 어려운것 같다고  말씀하시였다.

참으로 뜻깊은 말씀이였다.

그 일군은 친부모보다 더 따사롭고 다심하신 그이의 은정에 눈시울이 뜨거워남을 어찌할수 없었다. 차 례

 

 

 

전자식초음파진단설비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께서는 지난날 무권리속에서 헤매던 우리 녀성들이 인간의 참된 존엄과 진정한 삶의 보람을 마음껏 누리게 하여주시고도 그 무엇인가 부족한것만 같으시여 늘 마음을 쓰고 계신다.

주체71(1982)년 4월 24일 그이께서는 평양산원의 모든 설비들이 현대적으로 꾸려졌으나 태아의 상태를 정확히 관찰하는 현대적인 설비가 없어 의료일군들이 진단에서 애로를  느끼고있다는것을 헤아리시고 억만금을 들여서라도 새로 개발된 두가지 종류의 전자식초음파진단설비를 각각 1대씩 들여다 평양산원에 보내주도록 하시였다.

전자식초음파진단설비는 얕은 부위로부터 깊은 부위에 이르기까지 태아의 수와 그 발육상태를 정확히 관찰하고 촬영까지 할수 있게 되여있어 이 설비만 들어오면 오진과 같은 의료사고를 없애고 임신부들과 태아의 건강관리를 보다 과학기술적으로 할수 있었다.

이처럼 귀중한 전자식초음파진단설비가 얼마후 그이의 배려로 대양과 대륙을 넘어 평양산원에 들어오게 되였던것이다.

오늘 우리 녀성들은 녀성들을 끝없이 아껴주시고 귀중히 여기시는 경애하는 령도자의 이렇듯 따뜻한 사랑이 있어 세상에서 가장 존엄높고 행복한 삶을 누리고있는것이다. 차 례

 

 

   

저 녁 《소 풍》

 

주체56(1967)년 8월 초 어느날 함경남도의 여러부문 사업을 지도하시던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께서는 어느날 저녁 일군들에게 소풍이나 할겸 함흥시 륜환선거리에 나가 보자고 말씀하시였다.

령도자께서는 의아해하는 일군들에게 지금은 퇴근이 한창일 때이니 시내의 교통조건을 자세히 알수 있을것이라고 하시였다.

그제서야 교통이 제일 복잡한 시간에 륜환선거리를 돌아보려고 하시는 그이의 의도를 알게 된 일군들은 이날 낮에 동흥산에 오르시여 시내교통문제와 관련하여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던 일이 생각났다.

승용차가 거리에 나서자 그이께서는 종일 겹쌓인 피로도 아랑곳하심이 없이 거리의 가로등불빛 하나, 뻐스정류소위치 하나도 무심히 스쳐지나지 않으시고 자세히 살펴보시였다.

그러시다가 도로교차점을 조금 지나 통남거리에 있는 뻐스정류소에 수많은 사람들이 길게 줄지어서있는 모습을 보신 령도자께서는 동행한 일군들에게 시안에 뻐스가 모두 몇대이며 기본간선도로에서 운행되는 뻐스의 대수는 얼마인가고 물으시였다.

일군들의 대답을 들으신 그이께서는 정류소에 뻐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이 서있는데 뻐스대수를 늘이며 통남동 뻐스정류소는 교통이 매우 복잡한 곳이므로 안전한 곳으로 옮겨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였다.

다시 천천히 달리던 승용차가 모방직공장앞거리에 이르렀을 때였다.

공장에서 나온 로동자들이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신 그이께서는 하루종일 기대곁에서 일한 로동자들이 퇴근길마저 먼거리를 걸어서 가게 하면 얼마나 피곤하겠는가고 걱정하시며 륜환선거리로 뻐스가 다니게 하되 정류소는 어디에 새로 내오고 운행은 어떻게 하는것이 좋겠다는것까지 일일이 가르쳐주시였다.

이날 그이의 저녁《소풍》은 결국 함흥시 근로자들의 출퇴근문제를 푸는데 목적을 두신 현지지도의 련속이였다. 차 례

 

 

 

그이의  기쁨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께서 주체71(1982)년 4월 어느날 새로 건설한 문수거리를 돌아보시던 때에 있은 일이다.

그이께서는 차가 문수거리 기본통로에 들어서자 차를 달리게 하시다가는 멈추어 세우시고 세우시였다가는 다시 달리게 하시면서 손수 살림집층수도 세여보시고 집들에 해빛이 잘 들겠는가도 헤아려보시였다.

한편 상업류통망이며 학교망 등도 다 헤아려보시며 이 통로, 저 통로로 차를 몰게 하시던 그이께서는 만족한 웃음을 지으시였다.

그이께서는 문수거리에 건설한 건물들이 다 크고 조화를 잘 이루었고 도로도 륜환선으로 잘 뽑았다고 하시면서 문수거리를 일떠세우니 평양시가 더 환해졌다고 만족해하시였다.

그러시면서 그이께서는 다시 문수거리2계단공사를 다그칠데 대한 방향도 제시해주시였다.

중심거리를 달리던 승용차가 창가에 불빛이 환히 흐르는 한 살림집앞에 이르렀을 때였다.

그 불밝은 창문들에 기쁨의 미소를 보내시던 령도자께서는 문득 차를 세우라고 하시였다.

잠시후 그이께서는 눈을 감으신채 기쁨어린 어조로 조용히 동무들도 저 웃음소리를 듣는가고, 그전엔 개구리울음소리만 들리던 이 문수벌에 오늘은 현대적인 도시가 일떠서 저렇게 창가마다에 웃음소리가 넘쳐난다고 하시였다.

그제서야 일군들은 그이께서 오늘 왜 그렇게 기뻐하시는지 알게 되였고 인민의 행복에서 자신의 기쁨을 찾으시는 그 숭고한 덕망에 감동을 금할수 없었다.

이밤 바쁘신 길을 멈추시고 그 웃음소리에서 일만시름을 다 놓으신듯 흐뭇이 미소 지으시는 령도자께서 들으시는줄도 모르고 웃음소리, 노래소리는 더 크게 울려나왔다.

이것은 그대로 그이의 기쁨이였다. 차 례

 

 

 

《왜 나라고 못들어 가겠습니까》

 

주체64(1975)년 7월 초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를 맞이한 검덕광산은 크나큰 감격과 기쁨으로 설레였다.

차에서 내리신 경애하는 령도자께서는 광부들의 손을 뜨겁게 잡아주시면서 어서 로동자들이 있는 막장으로 들어가자고 하시였다.

이때 한 일군이 막장에만은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그이께서는 《광부들이 일하고 있는데 왜 나라고 못들어 가겠습니까. 일없습니다.》라고 말씀하시였다.

이번에는 갱장이 나서서 갱안은 습기가 많아서 들어가실수 없다고 말씀드렸다.

경애하는 령도자께서는 그를 바라보시다가 《갱안에 들어가지 않을바에야 우리가 무엇때문에 여기에 오겠습니까. 우리의 귀중한 로동자들이 일하는 곳이라면 아무리 멀고 험한 곳이라도 들어가 보아야 합니다. 광부들을 찿아온 우리들이 막장에도 안들어가고 그냥 돌아가면 그들이 얼마나 섭섭해 하겠습니까. 내 걱정은 말고 들어갑시다.》라고 절절하게 말씀하시였다.

경애하는 그이께서 타신 인차는 마침내 20리 막장의 한끝에 닿았다.

그이께서는 광부들의 손을 하나하나 뜨겁게 잡아주시며 일이 힘들지 않는가, 작업에서 애로되는것은 없는가, 우리가 막장에서 전투를 벌리는것도 바로 로동계급을 위해서 하는 일이라고 말씀하시며 일군들에게 광부들을 아껴야 한다고 재삼 강조하시고 충분한 휴식을 보장해줄것을 당부하시였다.

이처럼 로동자들이 일하는 곳이라면 아무리 멀고 험한 곳이라도 들어가 보아야 한다고 하시며 자신의 몸도 돌보지 않으시고 수천척 지하막장까지 찾아가시는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와 같으신분은 일찌기 어느 나라 력사에서도 찾아볼수 없다.

참으로 경애하는 그이는 인민적지도자의 전형이시다. 차 례

 

 

 

추가된 리봉과 고급지우개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탄생 65돐을 한해 앞둔 어느날이였다.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께서는 다음해 어버이수령님의 탄생일을 계기로 전국의 학생들에게 줄 선물안을 보시고 일군들에게 너무 소극적이라고 하시면서 옷은 학생들에게만 해줄것이 아니라 탁아소와 유치원어린이에게도 다 해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리고 유치원어린이들과 학생들에게 입는것 일식과 함께 제일 색갈이 고운것으로 양말도 갖추어주며 신발도 갖추어주자고 하시였다.

또한 경애하는 령도자께서는 학생들에게 가방을 만들어 주되 빈 가방을 그대로 줄것이 아니라 그안에 특별히 기념으로 만든 학용품까지 일식으로 갖추어주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손수 그 가지수를 하나하나 정해주시였다.

 그리고 당과류도 해마다 주던것이므로 이번에도 주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각도 곡산공장들에서 최상의 수준에서 생산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경애하는 령도자께서는 선물준비와 관련하여 기차와  , 자동차는 물론 비행기까지 동원해 주시고 막대한 자금도 돌려주시였으며 선물생산전투도 몸소 진두지휘하시였다,

마침내 선물제품생산이 끝났다는 보고를 받으신 그이께서는  어느 한 큰 회의실에 선물들을 진렬하게 하시고 여러 일군들과 함께 돌아보시였다.

짧은 기간에 방대한 선물을  질적으로 잘 만든데  대하여  매우  만족해  하시며  선물제품을  살펴보시던 경애하는 령도자께서는 왜 녀자아이들의 리봉이 보이지 않는가고 하시면서 아직 늦지 않았으니 전투를 벌려 리봉을 해결해야 하겠다고 하시였다.

그리고 학용품중에 지우개가 없는것 같은데 학생들에게 만년필, 원주필, 연필로 쓴 글을 다 지울수 있는 고급지우개도 꼭 만들어주어야 한다고 하시였다.

이리하여 우리 나라의 모든 어린이들에게는 옷으로부터 신발과 리봉, 일식을 갖춘 학용품들이 선물로 안겨지게 되였다. 차 례

 

 

 

《수령님께서 아끼시는 선원들을 살려내야 합니다》

 

주체63(1974)년 12월에 있은 일이다.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 아프리카의 신생독립국가들에 보내시는 귀중한 선물을 싣고가던 대형무역선 《혁신》호가 인디아양의 한복판을 달리고있었는데 갑자기 두선원이 급한 병으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배의 의사가 구급대책을 세웠으나 곧 수술을 하지 않으면 살려내기 힘든 위급한 병이였다.

그때 밤 늦도록 사회주의건설에서 비약을 일으키기 위한 《70일전투》를  지휘하고  계시던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께서는 《혁신》호의 항보를 받게 되시였다.

그이께서는 보시던 업무를 미루시고 생각에 잠겨 거니시다가 말씀하시였다.

수령님께서 아끼시는 선원들을 살려내야 합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생명을 의탁하고 바다에 나간 동무들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꼭 살려내야 하겠습니다.》

경애하는 령도자께서는 곧 환자를 구원하기 위한 작전을 펴시였다.

마드라스가 콜롬보보다 가깝기는 하지만 마드라스는 항행목적지쪽이 아니고 많은 외화를 써야 하므로 콜롬보로 가는수 밖에 없겠다는 일군들의 보고를 받으신 그이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환자들의 생명은 시간을 다툽니다. 가까운 마드라스로 정합시다.…

<혁신>호에 항로를 바꾸라고 무전을 치시오. 변신없이 받아볼수 있도록 공개전파를 날리시오!》

그러시고는 인디아주재 우리 대사관에 련락하여 입항수속과 즉시에 환자를 수술할수 있는 준비를 갖추도록 하시였으며 유능한 무전수들을 2중, 3중으로 배치하고 책임일군이 직접 무전대앞에 앉아 《혁신》호를 지휘하도록 지시를 주시였다. 한편 권위있는 의료일군들에게는 무전으로 《혁신》호에 치료방조를 주면서 두 환자의 생명을 최대한 연장시킬데 대한 특별과업을 주시였으며 유사시에 인디아양으로 날아갈수 있는 비행기를 대기시키도록 명령하시였다.

이렇듯 경애하는 령도자의 한없이 뜨거운 사랑에 의하여 사경에 처했던 두 선원은 구원될수 있었으며 그리운 조국으로 무사히 돌아올수 있었다. 차 례

 

 

 

조개 줏던 처녀

 

주체64(1975)년 2월 어느날에 있은 일이다.

어느 한 포구에 사는 한 처녀는 조개잡이를 하던 중 밀물을 만나 얼음장을 타고 캄캄한 먼 바다로 흘러가게 되였다.  무자비한 자연의 횡포앞에서 그의 생명은 너무도 절망적인것이였다.

이 급한 보고를 받으시자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께서는 하시던 일을 멈추시고 지체없이 포구의 처녀를 구원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몸소 구조대책을 세워주시였다.

경애하는 령도자께서는 먼저 인민군의 한 공군부대에 전화를  거시여 직승기들을 출동시키는 한편 긴급히 구조대를 조직하여 바다를 샅샅이 훑으며 찾도록 명령하시고 또 도와 군의 책임일군들을 현장에 보내시여 구조사업을 전격적으로 벌리도록 하시였다. 이렇게 되여 사고현장에서는 한 생명을 구원하기 위한 대규모의 작전이 벌어지게 되였다.

겨울의 밤 바다에서 그를 찾기 위한 작전은 산속에서 바늘을 찾는 일처럼 어려웠다.

경애하는 령도자께서는 그 기나긴 시간 침식도 잊으시고 사무실에 계시면서 한초한초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다리고 계시였다.

20시간에 걸친 맹렬한 수색작전끝에 드디여 한 직승기가 자그마한 얼음장우에서 처녀를 발견하였다.

직승기는 한껏 내려가 구조수단을 드리웠으나 하얗게 얼음이 밴 처녀는 이미 빈사상태였으므로 들어올리지 않으면 안되였다.

처녀는 병원으로 직송되여 집중치료를 받은 뒤에야 의식을 회복했다.

 인간을 가장 귀중히 여기시는 경애하는 령도자의 고귀한 사랑과 은정에 의하여 사경에 처했던 한 처녀의 운명은 이렇게 구원되였다. 차 례

 

 

 

세쌍둥이가 태여날 때마다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께서는 세쌍둥이가 태여났다는 보고를 받으실 때마다 국가적인 대책을 세워 잘 키우자고 하시며 몸소 의복, 내의, 이불, 포단감과 솜을 비롯한 수많은 필수품과 영양식품을 보내주시고 의료진도 무어 현지로 보내주신다.

주체69(1980)년 11월 말이였다.

원산에서 세쌍둥이가 태여났다는 보고를 받으신 경애하는 령도자께서는 《어제 원산에서 남자세쌍둥이를 낳았습니다. 세쌍둥이와 산모의 건강보호를 위하여 의료진을 내려보내며 수령님의 선물도 내려보내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세쌍둥이의 앞날을 축복해 주시였다.

경애하는 령도자께서는 외진 섬마을이나 하늘아래 첫 동네라고 부르는 깊은 산속의 림산마을에도 세쌍둥이가 태여나면 직승기를 띄우시고 유능한 의사를 보내주신다. 평안북도에서 세쌍둥이를 낳았을때에는 평양에서 떠나는 국제렬차의 출발시간을 늦추더라도 약품과 기구를 실어보내야 한다고 하시였으며 분계선 가까운 어느한 마을에서 세쌍둥이가 태여났을 때에는 미리 승용차번호를 알려주어 초소들에서 기다리고있다가 문을 제때에 열어주어 머무름시간이 없게 하여주시였다.

정녕 우리 나라에서 모든 세쌍둥이들은 경애하는 령도자의 은혜로운 사랑에 의하여 따뜻이 보살펴지고 행복하게 자라나고있는것이다. 차 례

 

 

 

창광원에 깃든 뜨거운 사랑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뜻을 받들어 목욕탕을 건설하여 인민들에게 선물할것을 결심하신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께서 창광원건설장을 찾아주신 어느날이였다.  

경애하는 령도자께서는 짧은 기간에 많은 일을 했다고 건설자들을 치하하시며 내부를 돌아보시다가 대중탕의 수용능력이 수도인구에 비하여 좀 작을것 같으니 내부시설을 조절하여서라도  그 능력을 늘여야 한다고 하시였으며 한증탕에 구급호출신호장치가 없는것을 아시고는 못내 서운해 하시면서 돈도 더 들고 시공도 복잡하겠지만 반드시 구급호출신호장치를 만들고 구급의사를 배치하여 누구나 다 마음놓고 한증할수 있게 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이날 진렬해놓은 40여종의 갖가지 타일견본을 보시며 욕조안에는 연한 하늘색 타일을 붙여야 욕조안의 물이 더욱 정결해 보인다고 하시며 목욕탕에 붙일 타일색까지 친히 선정해주시였다.

경애하는 령도자께서는 수영장과 물놀이장에 필요한 물문제를 다른 나라에서 흔히 하고있는대로 한번 채워놓은 물을 다시 려과하여 쓰는 방법으로 해결하려는것을 아시고는 우리 인민들이 리용할 목욕탕과 수영장, 물놀이장에는 1%의 묵은 물도 있어서는 안된다고 , 100% 뽑고 100% 넣는 원칙에서 방도를 찾아야 한다고 따뜻이 깨우쳐주시였다.

그러시고는 지역평면도를 놓으시고 색연필로 목욕탕과 대동강을 쭉 련결시키시며 대동강물을 끌어올릴 방도를 가르쳐주시였다.

이렇게 창광원은 경애하는 령도자의 발기와 구상에 의하여 대건축물로 이 땅에 솟아나 우리 인민이 사랑하며 즐겨찾는 대중봉사기지로 훌륭하게 꾸려지게 될수 있었다. 차 례

 

 

앞당겨진 대회

 

주체67(1978)년 9월 전국교육일군대회를 얼마 앞둔 어느날이였다.

자정이 가까워 오던 깊은 밤에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께서는 한 일군에게 전화를 거시여 지금 조국에 와있는 총련교육일군대표단이 언제 일본으로 떠나는가고 물으시였다.

그때 물으시는 까닭을 알지 못한 그 일군은 어안이 벙벙해서 그저 며칠후 떠나게 된다는것을 말씀드렸다.

그러자 경애하는 령도자께서는 《그러니까 교육일군대회가 열리기전에 떠난다는 말입니까?》라고 물으신 다음 생각에 잠기신듯 한동안 묵묵히 계시다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총련교육일군들이 조국에 왔다가 전국교육일군대회를 며칠 앞두고 떠나게 되면 얼마나 섭섭해 하겠습니까. 그들을 대회에 참가시켜주도록 해야 하겠습니까. 수령님을 모시고 진행되는 이 대회에 그들을 어떻게 하나 꼭 참가시켜주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

그러시면서 한동안 말씀을 끊으시고 생각에  잠겨계시던 경애하는 령도자께서는 방문기일을 연장하는것은 어렵기 때문에 대회날자를 앞당겨야 한다고 하시면서 우리가 좀 수고를 하더라도 총련교육일군들이 대회에 참가해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직접 받게 하고 조국의 교육일군들의 우수한 경험도 듣게 하도록 해주자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경애하는 령도자께서 취해주신 조치에 의하여 이렇듯 전국교육일군대회는 앞당겨 열리게 되였던것이다.

참으로 해외에서 후대교육사업을 담당수행하는 교육일군들을 그처럼 귀중히 여기시며 그들에게 최상의 영광을 안겨주시려고 심혈을 기울이시는 경애하는 령도자의 인정에는 끝도 한계도 없다. 차 례

 

 

 

흘러가는 화면속에서도

 

언제인가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께서는 예술영화촬영소에 나가시여 영화의 작업필림을 보아주시였다.

화면에 나타난 배우들의 이름을 정답게 부르시며 인물들의 형상방도에 대하여 가르치심을 주시던  그이께서는 화면에 나오는 어느한 배우의 얼굴을 보시며 《저 동무의 얼굴이 상한것 같습니다. 오래전부터 위를 앓고있었는데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말씀하시였다.

그 배우가 위를 앓고 있는것을 모르고있던 일군들은 그이께 그 배우가 지금은 별로 앓는것 같지 않다고 말씀드리였다.

그러자 그이께서는 화면에 비친 그 배우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시며 《아니요. 몹시 상했습니다.》라고 하시며 돌아가면 그 동무의 건강상태를 꼭 알아보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그후 그 배우는 경애하는 령도자의 가르치심에 따라 위를 수술하게 되였다.

이때에도 그이께서는 친히 촬영소일군들에게 전화를 거시여 그가 허약한 몸으로 큰 수술을 용케 견디여 냈다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때마침 수술했다니 다행입니다. 큰일 날번 했습니다. 수술후과가 없도록 잘 치료해주게 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러시고는 촬영소에서 올려보내는 사업일보에 매일 그 배우의 수술후 치료정형에 대하여 적어넣으라고 이르시였다.

그 후에도 경애하는 령도자께서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 배우의 건강문제에 대하여 물어보시면서 그의 건강이 퍽 좋아졌다는 보고를 받으시고는 그래도  잘 믿어지지 않으신듯 《이제부터는 몸을 돌보면서 일을 해야 하겠습니다. 너무 무리하지 마시오.》라고 뜨겁게 말씀하시면서 휴양까지 보내주시였다. 차 례

 

 

 

숨은 애국자들이라고 하시며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께서는 주체63(1974)년 10월 어느날 한 일군을 부르시여 외진 알섬에 가서 그곳 등대원들의 생활을 구체적으로 알아올데 대한 과업을 주시였다.

며칠후 섬을 다녀온 일군으로부터 등대원들이 뭍사람들 못지 않게 잘 살고있다는 보고를 받으신

경애하는 령도자께서는 그래도 섬인데 륙지 같겠는가고 하시며 생활에서 애로되는것이 있겠는데 어떤것들인가고 또다시 물으시였다.

그래서 그 일군은 자기가 보고 느낀대로 섬에 먹는 물이 바르다는것과 사람들이 뭍에 드나들 때 불편을 느낀다는것을 말씀드렸다.

이야기를 들으시면서 깊은 생각에 잠기셨던 그이께서는 등대원들은 귀중한 사람들이라고, 섬사람들의 먹는 물문제를 풀어주기 위해서는 많은 아연도철판과 세멘트를 보내여 큰 물탕크를 만들어주며 급한 환자가 생겨도 그렇고 발동선 한척을 가지고서는 마음 놓을수 없으니 두척의 배를 보내주자고 말씀하시였다.

그리고 등대원들의 자녀들이 뭍에 나와 공부한다는 사실을 아시고는 그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자고 , 섬이란 낮에도 고독하다고 하시면서 하루일을 끝낸 등대원들과 그 가족들이 유쾌하게 지낼수 있도록 새로 나온 텔레비죤수상기와 손풍금도 보내주자고 말씀하시였다.

그뿐이 아니였다.

뭍에 나오고 싶어하는 등대원들과 그 가족들의 소원을 헤아리시여 그들에게 새옷을 화려하게 지어입혀 평양견학도 시키자고 말씀하시였다.

경애하는 령도자께서는 그들의 숨은 노력을 높이 평가해주시면서 《등대는 조국의 불빛이고 등대원들은 그것을 지키는 숨은 애국자들입니다. 우리는 이런 등대원들을 응당 높이 평가해야 하며 그들을 잘 보살펴주어야 합니다.》라고 말씀하시였다.  

이처럼 경애하는 령도자의 각별한 사랑속에 지난날 인간세상과 등지고 버림받던 인생이였던 등대지기들이 오늘은 그야 말로 높이 떠받들리우고 있다. 차 례

 

 

   

령도자와 동포청년

 

 

주체85(1996)년 1월 22일이였다.

이날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께서는 조국을 방문한 재일조선청년학생들을 위하여 연회를 마련해주시고 그 자리에 친히 참석하시였다.

그 뜻깊은 자리에서 그이께서는 조선대학교 학생들이 공부는 어떻게 하는가, 조국에 처음 온 학생들은 몇명이나 되는가 하는것을 일일이 알아보시다가 문득 누구에게라 없이 여기에 효고현에서 온 동무가 있는가고 물으시였다.

그러시면서 령도자께서는 그 학생의 가정에서는 지난해의 《한신대진재》때 어떤 피해를 입었는가고 재차 물으시였다.

그제야 비로소 경애하는 령도자께서 물으시는 뜻을 알게 된 동행한 일군들을 비롯한 참가자들 모두는 가슴이 뭉클해짐을 어쩔수 없었다.

이윽고 그 학생을 몸가까이 부르시여 이름이며 나이, 가정형편과 피해정형을 하나하나 물으시던  그이께서는 어머니가 잘못된 사연을 상세히 료해하시고는 저으기 안색을 흐리시며 안되였다고, 참 안되였다고 거듭 갈리신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경애하는 령도자께서는 흐느끼는 그의 어깨를 다정히 어루만져주시며 비록 어머니를 잃었지만 조국이 있는 이상 동무는 결코 외롭지 않다고 다시금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그 모습을 우러르는 동포학생의 눈가에는 뜨거운것이 고여올랐다.

봄날의 해빛처럼 온몸을 포근히 감싸주시는 령도자의 그 인정, 그 사랑이 그의 가슴벽을 뜨겁게 울리였던것이다. 차 례

 

-> 이 도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법적보호를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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