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
목록으로
제4장 위대한 수령님의 새 조국건설령도보좌, 주체위업계승의 시원마련
제7절 총대위업계승의 시원을 여시여
3. 인민의 참된 아들로
남다른 생활을 해서는 안된다시며​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어리신 아드님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으시는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께서는 어리신 김정일동지를 한없이 검박하고 소박한 생활속에서 키우시였다.

 

※ 김정숙동지께서는 아드님께 늘 우리 인민들이 아버지장군님을 그토록 높이 우러러 따르는것은 아버지장군님이 위대하실뿐아니라 인민들과 한치의 간격도 없이 생활하시며 늘 겸손하고 소박하시기때문이라고 하시며 아버지장군님의 뜻을 받들어 우리는 언제나 인민들과 똑같이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 하기에 위대한 수령님과 김정숙동지께서는 저택에서 옷장도 없이 옷걸개를 리용하시였고 자그마한 보통 침대와 책상 하나가 있는 검박한 방에서 생활하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새 조국건설에 헌신하시며 아드님을 소박성과 검박성을 미덕으로 아는 인민의 아들로 키우시였다.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께서는 아드님께서 보통아이들과 꼭같은 옷차림을 하도록 하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아드님께 수령님의 자제분일수록 인민들과 꼭같이 입고 꼭같이 먹어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

 

※ 김정숙동지께서는 어느날 아드님의 여름옷을 지으시였다. 옆에서 일손을 도와드리던 한 녀성은 옷을 지으려는 천이 락하산천이라는것을 알아보고 아드님의 옷인데 이왕이면 좀 좋은 천으로 짓자고 말씀드리였다. 락하산천은 공기가 잘 통하지 않는데다가 땀을 빨아들이지 않으므로 여름옷천으로는 적당치 않았기때문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 녀성에게 생각은 알만한데 그러면 안된다, 지금 좋은 천으로 아이들의 옷을 해입히는 집이 몇집이나 되겠는가고 하시며 우리도 다른 보통 가정들에서 아이들에게 해주는 그런 수수한 옷을 해입혀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흰락하산천으로 지은 소매짧은 웃옷과 검은 천으로 지은 바지, 너무도 평범한 이 여름옷이 김정숙동지께서 지으신 어리신 장군님의 새 여름옷이였다.

 

겨울에도 김정숙동지께서는 그때 아이들이 입던 수수한 보통옷을 아드님께 해입히시였다.

 

※ 어느날 어리신 장군님께서 어머님께서 기워주신 양말을 신으시고 경위대에 가신 일이 있었다. 경위대원들은 《장군님의 아드님이신데 기운 양말을 다 신으시다니…》 하고 놀라와하였다. 아드님으로부터 이 이야기를 들으신 김정숙동지께서는 《그건 아저씨들이 잘 몰라서 그런 말을 한거란다. 기운 양말을 신는것이 왜 부끄러운 일이겠니.》라고 하시며 자신께서는 어렸을 때 추운 겨울날 양말은 고사하고 발을 감쌀 한쪼박의 천도 없었고 산에서 싸울 때는 신발마저 다 꿰져서 노끈을 감고 산에 오른적도 있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조국이 해방되였지만 사람들은 아직 잘 살지 못하고있단다. 새 양말을 신은 아이들보다 기운 양말을 신은 아이들이 더 많은것을 너도 보았지? 장군님의 아들이라고 해서 특별하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남이 조밥을 먹을 때는 우리도 조밥을 먹고 남이 기운 양말을 신을 때에는 우리도 기운 양말을 신어야 한다.》라고 하시면서 남들이 기운 옷을 입고 기운 양말을 신을 때 새 옷을 입고 새 양말을 신으면 그게 더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씀하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다음날 경위대원들을 찾으시여 동무들이 어제 공연한 말을 했다고 하시며 아직 나라의 형편이 어렵다보니 모든 아이들에게 새 양말을 신기지 못하고있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수령님의 아들이라고 어찌 새 양말만 신기겠는가고 하시며 앞으로는 그런 말을 삼가해야 하겠다고 조용히 타이르시였다.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께서는 아드님께서 식생활도 인민들과 꼭같이 하도록 요구하시였다.

 

※ 주체36(1947)년 가을 함경북도 경성군에 가계실 때에도 김정숙동지께서는 아드님께 좁쌀을 섞은 잡곡밥을 지어주시였다. 한 녀성일군이 그 사실을 알고 몹시 안타까와하자 어리신 장군님께서는 《우리 아버님은 조밥을 먹어야 좋은 사람이라고 하셨어요.》라고 챙챙한 목소리로 말씀하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도 수령님께서는 산에서 싸우실 때 늘 대원들과 같이 식사하시면서 대원들이 죽을 들면 죽을 드시였고 강냉이를 먹으면 강냉이를 잡수시였다고 말씀하시였다. 그 녀성일군이 그럼 아드님에게만이라도 흰쌀밥을 지어드릴수 있지 않는가고 하자 김정숙동지께서는 조용히 웃으시며 사람은 어려서부터 다른 사람들과 꼭같이 먹고 지내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전체 인민이 아직 흰쌀밥을 먹지 못하고있는데 우리라고 어찌 그렇게 할수 있느냐고 하시였다고 하시면서 언제나 어리신 아드님께서 인민들과 꼭같은 잡곡밥을 드시도록 하시였다.

 

※ 한번은 누구인가 자제분들에게 간식으로 드리라고 김정숙동지께 햇밤을 얼마간 가져다 드린적이 있었다. 늘 봐야 자제분들이 삶은 감자나 닦은 콩을 간식으로 하고있는것이 마음에 걸렸던것이다. 한 호위일군도 그때 김정숙동지께 아드님에게 간식이라도 괜찮은것으로 드렸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리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한동안 아무 말씀도 없으시다가 수령님께서는 아이들에게 사탕, 과자를 마음대로 먹이지 못하는것을 몹시 가슴아파하고계신다고 하시며 어떻게 수령님의 자제분들이라고 해서 남다른 대우를 바라겠는가, 그건 수령님의 뜻이 아니고 또 나도 허용할수 없는 일이라고 말씀하시였다.

 

※ 그때 사탕이나 과자 같은것이 전혀 없는것은 아니였다. 당시 쏘련이나 중국 등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돌아온 사람들이 당과 국가의 지도적지위에서 적지 않게 일하고있었는데 그들의 아이들은 사탕이나 과자를 귀하지 않게 먹고있었다. 그러나 김정숙동지께서는 아드님께 왜놈들이 망하면서 곡산공장을 다 마사놓고 가다보니 우리 나라에서는 아직 사탕, 과자를 많이 만들지 못하고있고 보통 로동자, 농민의 집에서는 아이들에게 먹이지 못한다고 이야기해주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아드님께 《아버지장군님께서는 지금 아이들에게 사탕, 과자를 먹이시려고 밤낮으로 애쓰고계신다. 이제 곡산공장이 복구되면 우리 나라에서도 여러가지 사탕, 과자를 많이 만들게 된다. 그때면 온 나라 아이들이 그런 사탕, 과자를 마음껏 먹게 된다. 우리도 그때에 가서 그것을 맛보자.》고 말씀하시였다.

 

※ 그 시절에 저택에서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내군 하던 위창숙은 다음과 같이 회상하였다. 《나는 지금 우리 나라 모든 어린이들이 탁아소, 유치원에서 매일 간식으로 먹는 속에 팥을 넣고 만든 속빵을 볼 때나 명절마다 한아름씩 아이들에게 안겨지는 선물사탕, 과자속에 있는 기름사탕과 겹과자들을 볼 때면 이날에 하시던 어머님의 말씀이 생각되고 그때에는 쪄낸 감자를 간식으로 드시던 위대한 장군님의 모습이 뜨겁게 되살아오르군 합니다.》

 

참으로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는  어리신 장군님을 인민의 아들로 안아키우신 위대한 스승이시였다.

 

      ※ 일화; ❖ 《우리에게는 조국이 어머니란다.》​

내리적재 하시겠습니까?내리적재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