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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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항일전의 일대 앙양을 위한 나날에
제3절 능숙한 지하정치활동으로
2. 신파와 도천리에서
군사작전수행에 크게 기여하시여​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께서는 주체26(1937)년 신파지구에서 맹렬한 지하공작활동을 벌리시여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작전적구상을 실현하는데 적극 기여하시였다.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께서는 광선사진관, 석전양복점, 샘물터국수집, 신갈파객주집, 사발상점, 물방아집 등 여러곳에 비밀련락장소와 비밀사업장소들을 정해놓고 혁명조직성원들과의 사업을 하시였다.

 

 

광선사진관을 비롯한 이 지점들은 조직원들과의 접선과 련락을 위한 장소인 동시에 유격대에 보낼 원호물자의 집결과 보관장소로도 되였다. 특히 김정숙동지께서 직접 나가시여 무어주신 조국광복회 오함덕가족분회​와 아안리분회는 원호물자를 조선인민혁명군에 보내고 혁명조직성원들을 국내의 여러 지방에 파견하는 중요한 통로였다. 부전, 장진, 신흥, 흥남일대에 파견되는 지하혁명조직성원들은 주로 아안리분회책임자의 집에서 그리고 갑산, 덕성, 북청, 단천일대로 가게 되는 성원들은 가족단위로 무은 분회조직인 오함덕객주집에서 임무를 받고 떠나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이 시기 삼수군 호인지구에도 조직을 넓혀나가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조직의 안전을 위하여 신파일대의 곳곳에 꾸려놓은 수많은 아지트들을 엇바꾸어 리용하시였고 여러 신분으로 변장하시면서 적들의 경계망을 무력하게 만들며 활동하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 그 나날에 신파에로 드나드신것은 수십번이였으나 《올빼미눈》이라고 소문난 신갈파경찰들도 그에 대하여 전혀 눈치채지 못하였다. 김정숙동지의 활동에 의하여 국내에서 보내는 수많은 유격대원호물자들이 신파를 통해 조선인민혁명군에로 흘러들어갔고 수많은 지하공작원들과 혁명조직성원들이 신파를 거쳐 국내각지에로 스며들어갔다.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께서는 신파일대에 꾸려진 혁명조직들에 의거하여 국경주변 적들의 일거일동을 빠짐없이 장악하여 제때에 사령부에 통보하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여러 혁명조직들에서 조선인민혁명군의 국내진공작전을 보장하기 위하여 적들의 동태와 무력배치정형을 알아보도록 하시였다.

그러시고는 몸소 신파시내의 적기관들의 배치상태와 적들의 움직임에 대한 정찰을 진행하시고 저물녘에야 돌아오시였다.

 

보천보전투후 일제침략자들이 총독부에서 긴급회의를 열고 대규모적인 《토벌》계획을 세웠으며 조선주둔 제19사단소속 함흥 74련대가 혜산에 도착했다는 정보를 입수하신 김정숙동지께서는 이 사실을 지체없이 사령부에 보고하시였다.

 

유격근거지 《토벌》에 미쳐날뛰는 일본군경들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께서는 신파지구의 모든 혁명조직성원들을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주신 임무를 훌륭히 수행하도록 이끌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보천부전투이후 적들의 움직임에 대한 김정숙동지의 보고를 받으시고 곧 국내와 국경일대의 혁명조직들에 혜산에 집결한 적들의 움직임을 탐지할데 대한 임무를 주시였다.

김정숙동지의 지도밑에 신파지구의 모든 혁명조직들은 김정숙동지께서 주신 과업을 수행하는데로 이행하였다.

 

여러 조직들에서는 적들의 병력수와 기도를 재빨리 알아내였다. 그러나 적들의 《토벌》기도를 완전히 파탄시키려면 적들의 도하지점과 도강날자를 구체적으로 알아내야만 했다. 적들은 혜산에서 매일 한개 부대씩 압록강을 건네보내고있었다. 그런데 김정숙동지께서 조직동원하신 혁명조직성원들과 인민들은 적들이 대낮에 건네보낸 부대를 밤에는 다시 은밀히 혜산쪽으로 건네온다는것을 알아냈다. 적들이 혜산에서 압록강을 도하하는것은 조선인민혁명군의 이목을 딴데로 돌리기 위한 기만도하라는것이 명백하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적들의 정확한 도하장소와 날자, 그 병력수를 알아내기 위하여 혁명조직들을 적극 발동하시였다.

마침내 김정숙동지께서는 적들이 자기의 병력을 혜산에서 신파로 이동시켜 거기서 압록강을 도하하게 되며 그때 동원되는 자동차는 70대이고 그 병력은 1 500여명이며 도하날자는 6월 27일과 28일이라는것을 알아내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즉시 사령부로 정찰자료를 보내시였다.

 

적들의 대병력이 신파에서 압록강을 건너 간삼봉쪽으로 몰려간 때로부터 이틀후인 6월 30일 간삼봉에서는 적들에게 무리죽음을 안기는 총소리가 하늘땅을 진감하였다. 그 총소리는 하루종일 계속되였고 간삼봉전투는 조선인민혁명군의 대승리로 끝났다. 조선인민혁명군을 《전멸》시키겠다고 떠들며 신파에서 압록강을 건늘 때는 하루밤이 걸렸던 놈들이 다시 건너올 때는 불과 200명정도의 패잔병들로서 몇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간삼봉의 《호박농사》에 대한 이야기가 항간에 널리 퍼진것은 그때부터였다.

 

유격대의 타격에 녹아난 일제의 패배상을 보도한 자료

 

김정숙동지께서는 그로부터 며칠후 간삼봉에 기여든 적들이 무리로 녹아났다는 소식은 도천리에서 들으시였다. 전장에서 멀리 떠나있었으나 김정숙동지의 마음은 간삼봉에서 전투를 지휘하고계시는 김일성장군님가까이에 가계시였고 수령님의 안녕을 바라시는 한마음으로 그 총소리를 들으시였다. 승전의 기쁜 소식을 들으시였을 때 김정숙동지께서는 감격의 눈물을 금치 못하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 사선을 헤치시며 개척하신 신파통로는 조선혁명의 사령부가 있는 백두산근거지와 조국땅을 하나의 맥박으로 높뛰게 하는 대동맥이였고 수많은 정치공작원들과 국내혁명가들의 대통로였으며 조선인민혁명군에 대한 국내인민들의 뜨거운 지성이 백두산지구로 굽이쳐 흘러들어가는 대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후날 김정숙동지께서 도천리-신파지구공작을 성과적으로 마치고 돌아오셨을 때 신파경찰들의 눈이 《올빼미눈》이라는데 동무는 무슨 수를 써서 자기 정체를 로출시키지 않았는가, 신파시내에 수십번 들락날락하면서도 적들에게 잡히지 않고 마음대로 활동할수 있었던 비결은 어디에 있었는가고 물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물으심에 김정숙동지께서는 이렇게 대답올리시였다.

《제가 밀정들이나 경찰들의 손에 걸려들지 않은건 책임성때문이였습니다. 놈들에게 붙잡히면 사령부에서 준 임무를 수행하지 못하고말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 저절로 대담해지는게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군중이 저를 목숨을 걸고 보호해주었습니다.》

일화; ❖ 밀정놈의 가치담배​

 

이처럼 능숙한 지하공작원이신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의 높은 책임성과 희생적인 투쟁에 의하여 신파를 비롯한 삼수일대에 강력한 지하조직망이 꾸려지고 국내깊이에 지하조직을 뻗쳐갈 발판이 튼튼히 마련되게 되였으며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군사작전수행에 적극 이바지하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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