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봉건적착취의 강화, 1862년 전국각지에서의 농민폭동

3정

조선봉건왕조후반기에 봉건국가가 인민들을 가혹하게 착취하던 전정, 군정, 환정의 세가지 착취형태.

전정은 토지를 대상으로 한 수탈을 위주로 한것이고 군정은 주로 군적(병역부담대상자명단)에 등록된 량인(평민)들에게서 군포를 수탈하는것이며 환정은 봉건국가가 감행하는 고리대적착취인 이른바 환자를 통하여 수탈하는것을 말한다.

토지를 통하여 수탈하는 전세는 봉건국가가 감행하는 가장 기본적인 착취형태로서 17세기이후 그 명목이 매우 많아졌다. 당시 국가법전 《속대전》에 등록된 전세는 1결에 4~6말에 지나지 않았으나 실지 인민들이 수탈당하는것은 거의 그 10여배나 되였다.

봉건국가의 군포착취도 매우 심하였다. 군인 1명에 대하여 한해에 면포 2필을 착취하는 군포가 19세기 중엽에 와서는 량인농민 매호당 거의 10필에 가까운 량을 착취하는것이 보통일로 되였다. 이때에 이른바 백골징포, 《황구첨정》이라는 말이 일반적인것으로 되였다.

백골징포는 군인이 죽어서 이미 백골로 되였는데도 군포는 여전히 면제하지 않고 그 자손들의 부담으로 되였다는 말이며 《황구첨정》은 아직 입술이 노란 어린아이에게까지 병역을 들씌워 군포를 착취한다는 말이였다.

환자는 가난한 인민들을 구제한다는 허울 좋은 명목으로부터 시작한것이였으나 이 시기에 와서는 완전히 하나의 강도적수탈로 되였다.

전세, 군포, 환자의 착취는 처음에는 낟알, 면포 등의 현물형태로 진행되였으나 금속화페가 일반적으로 류통되게 되면서 점차 화페형태로 진행되였다.

이것을 계기로 하여 봉건국가의 관리, 도의 감사, 고을의 원(지방관) 및 서리 등 각급 착취자들은 더욱 교활하고 가혹한 착취를 파렴치하게 감행하였다.

3정의 가혹한 착취를 반대하여 인민들은 계속 줄기찬 투쟁을 벌려 왔다.

1862년에는 경상도 진주에서 광범한 농민들이 3정의 착취를 반대하여 폭동을 일으키고 봉건착취자들에게 커다란 타격을 안기였으며 이것을 계기로 하여 이해 3남(경상도, 전라도, 충청도)의 고을들을 중심으로 전국 20여개 고을들에서 농민폭동이 일어났다.

봉건정부는 이에 극도로 당황하여 3정을 개선하겠다는 구실을 내걸고 이른바 《3정리정청》(3정개선을 위한 관청이라는 뜻)을 내오고 해당한 대책들을 선포하는 등 큰 소동을 일으키였다.

봉건통치계급들의 착취는 매우 집요하였으나 그들은 광범한 인민대중의 계속되는 치렬한 투쟁앞에서 일정한 양보를 하지 않을수 없었다.

내리적재 하시겠습니까?
facebook로 보내기
twitter로 보내기
cyworld
Reddit로 보내기
linkedin로 보내기
CAPTCHA Image
가+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