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당나라침략자들을 쳐물리친 고구려인민들의 투쟁

연개소문의 정변

642년에 고구려에서 연개소문이 부패무능하고 투항주의적인 국왕과 집권관료들을 타도하고 정치적실권을 장악한 정변.

당시 고구려에 대한 당나라의 간섭과 침략야망은 극도에 이르렀다. 그러나 영류왕을 비롯한 고구려봉건통치배들은 당나라의 압력과 간섭에 굴종하여 민족적리익을 저버리고 양보정책을 실시하였다.

서부대인이였던 연개소문은 당나라의 간섭을 배격하고 국왕을 비롯한 집권관료들의 투항주의적행위를 반대하여 나섰다. 그러자 봉건통치배들은 642년 초에 그에게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변방에 가서 천리장성축성공사를 감독하도록 책임지워 내보내였다.

연개소문은 나라의 방위력강화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장성수축공사를 추진시키면서 자기의 지반을 튼튼히 닦았다. 이에 기초하여 그는 조성된 위험한 정세를 수습하기 위하여서는 단호한 조치를 취해야하겠다고 결심하고 이해 10월에 평양으로 돌아온 기회에 정변을 단행하려고 하였다.

한편 국왕을 비롯한 통치배들은 연개소문이 수도로 돌아온 기회에 그를 암살하려고 하였다. 이것을 알게된 연개소문은 선손을 써서 자기 관하부대의 열병식을 조직하고 여기에 투항주의적문무고관 100여명을 초대한 다음 사열을 받으려고 모여선 군사들을 동원하여 그들을 모조리 처단하였으며 이어 왕궁에 쳐들어가 왕을 죽여버렸다. 그리고 왕의 조카인 장을 새 왕(보장왕)으로 들여앉히고 자신은 스스로 최고관직인 막리지로 되여 나라의 실권을 장악하였다.

정변후 연개소문은 국내의 사회경제적형편을 개선하고 국력을 강화하여 당나라의 침입에 대처하였다.

이 정변은 그것이 봉건지배층안에서 벌어진 정권쟁탈전이였던만큼 비록 지배계급의 계급적제한성을 극복할수는 없었지만 당시 왕을 비롯한 부패한 통치배들이 당나라에 아부굴종하던 행위를 반대한것으로 하여 고구려력사발전에서 긍정적의의를 가지는 사변이였다. 즉 이 정변은 나라앞에 조성된 정세를 바로잡고 고구려의 자주권을 고수하는데서 중요한 계기로된 하나의 력사적사변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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