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수나라침략자들을 쳐물리친 고구려인민들의 투쟁

평양성

평양시 중구역, 평천구역에 있는 고구려의 수도성. 《장안성》이라고도 한다.

삼국통일의 원대한 구상을 실현하기 위하여 남진정책을 강력하게 추진시켜오던 고구려는 427년 보다 조건이 유리한 평양으로 수도를 옮겨왔다. 그러나 안학궁과 대성산성으로 이루어진 평양의 처음 수도는 보다 강대하여진 고구려의 수도로서는 부족점이 있었다.

고구려는 지난 시기 수도보위의 교훈과 강력하여진 국력에 기초하여 도시전부를 성벽으로 둘러막은 새 수도 평양성을 552년-586년사이에 건설하게 되였다.

평양성은 북쪽에 금수산이 솟고 동, 서, 남 세면에 대동강과 보통강이 둘러막아 자연해자를 이룬 유리한 지대에 자리잡았다.

평양성의 바깥성벽은 금수산의 모란봉을 북쪽끝으로 하고 서남으로 을밀대, 만수대를 타고 보통강을 따라 뻗다가 보통강과 대동강이 합치는 목에서 동북으로 꺾이여 대동강을 거슬러 대동문을 지나 다시 모란봉에 이르렀는데 그 둘레는 약 16㎞이다.

평양성은 산성의 우점과 평지성의 우점을 종합하여 고구려사람들이 창안해낸 평산성형식의 새로운 수도성이였다.

평양성안은 성벽들로 가로막아 내성, 중성, 외성, 북성의 4개 부분성으로 나누었다. 부분성들의 성벽까지 합친 성벽의 총 연장길이는 약 23㎞이다. 내성은 을밀대에서 남산재에 이르는 지대를, 중성은 내성의 남쪽 안산에서 동쪽으로 대동강까지의 지대를, 외성은 중성의 남쪽 대동강까지의 넓은 지대를, 북성은 내성의 북쪽 모란봉과 전금문일대를 포괄한다.

내성은 궁성이고 중성은 중앙관청들이 있는 황성이며 외성은 주민거주지역이였다.

외성에서는 《田》모양의 리방들이 발견되였다. 외성에는 운하도 팠다.

북성은 내성의 보위성인데 여기에는 사원 등도 배치하였다.

성벽은 돌로 쌓거나 돌과 흙을 섞어 쌓기도 하였는데 릉선에서는 외면축조방법을, 평지에서는 량면축조방법을 썼다. 성벽바깥면은 4각추형태의 성돌로 면과 선을 맞추어 정연하게 쌓았다. 치는 산지대에서 성벽이 밖으로 돌출한 부분들에 배치하였다.

성문은 내성과 중성, 외성 등에서는 각각 네면에 내고 북성에서는 남쪽과 북쪽에만 냈다. 외부와 통하는 중요한 성문들에는 옹성을 쌓았다.

평양성에는 7개의 장대가 있었다. 그중 대표적인것은 내성의 을밀대와 북성의 최승대이다.

평양성벽에서 발견된 글자 새긴 고구려성돌들에 의하여 평양성의 축성년대와 함께 평양성건설에 고구려의 5부에서 사람들이 동원된 사실, 성공사의 담당구간, 담당자의 이름과 벼슬 등이 밝혀졌다.

평양성은 고구려의 력사와 문화, 고구려후기의 수도성제도와 그 발전모습, 고구려인민들의 슬기와 재능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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