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군혁명사상
목록으로
제1편 선군혁명사상리론
제1장 선군혁명사상창시와 심화발전
제1절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에 의한 선군혁명사상의 창시와 발전풍부화
2. 선군혁명사상창시의 사회력사적조건

선군혁명사상창시의 사회력사적조건을 옳게 파악하는것은 선군혁명사상의 창시와 심화발전과정에 대한 깊이있는 리해를 가지며 나아가서 그 과학성과 정당성을 정확히 인식하는데서 나서는 매우 중요한 문제의 하나이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로동계급의 혁명사상은 력사발전과 혁명발전의 성숙된 요구를 반영하여 나옵니다.》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실현하는 길을 밝혀주는 참다운 혁명사상은 시대와 혁명발전의 요구를 반영하여 나온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인민대중에 대한 제국주의자들과 반동들의 략탈과 폭압이 그 어느때보다도 강화되고 그것을 반대하는 인민대중의 혁명운동이 거세차게 벌어지는 이러한 시대적환경과 력사적조건을 과학적으로 분석통찰하시고 위대한 선군혁명사상을 창시하시였다.

 

 

- 선군혁명사상은 세계적범위에서 제국주의자들의 군사적폭압과 침략책동이 극도에 이르고 인민대중의 계급해방, 민족해방을 위한 투쟁이 힘차게 벌어지는 사회력사적조건을 반영하여 창시되였다.

20세기에 들어와서 자기 나라 인민대중을 억압착취하고 다른 나라, 다른 민족들을 지배하고 예속시키기 위한 제국주의자들의 파쑈적폭압과 침략책동은 더욱 로골화되였다.

◦ 자기 나라 인민대중을 억압착취하고 로동운동을 탄압하기 위한 제국주의자들의 파쑈적폭압책동이 악랄하게 벌어졌다.

이 시기 자본주의나라들의 사회생활은 심각한 위기에 빠져있었다.

원래 자본주의사회에서는 로동계급을 비롯한 근로인민대중과 자본가계급이 서로 근본적으로 대립되는 요구와 리해관계를 가지고있는것으로 하여 사회정치적불안정이 항시적으로 존재하며 대립과 투쟁의 관계가 사회관계의 기본으로 되고있다. 게다가 생산의 사회적성격과 점유의 사자본주의적형태사이의 사회경제적모순은 자본주의의 발전과 함께 더욱 심화되게 되며 그것은 불피코 자본주의사회의 고질병인 경제공황을 초래하고 사회를 파국상태에로 몰아가게 된다.

제국주의시기의 첫 세계경제공황인 1900년-1903년의 경제공황과 이에 뒤이어 도래한 1906년-1907년의 경제적불경기상태는 자본주의나라들에서 생산의 침체와 근로자들의 실업과 빈궁을 더욱 증대시켰다.

물론 경제공황은 산업자본주의시기에도 있었지만 제국주의시기에 와서 세계공황의 파괴력은 자본주의의 모순이 여러가지로 심화됨에 따라 더욱 커졌다.

제국주의자들은 저들의 이러한 정치경제적위기에서 벗어나보려고 자국내 로동계급을 비롯한 근로인민대중에 대한 착취와 략탈, 폭압책동을 더욱 강화하였다. 제국주의자들은 어떻게 하나 독점적고률리윤을 짜내기 위하여 로동시간을 무제한 연장하고 로동강도를 높이며 임금을 최저생활비계선으로 낮추는 반면에 상품가격을 올리는 등 근로자들을 가혹하게 착취하는 한편 자본의 지배를 반대하는 로동계급의 혁명투쟁을 폭력으로 가혹하게 탄압하여나섰다. 하루아침에 1 000여명의 희생자와 2 000여명의 부상자를 냄으로써 력사에 《피의 일요일》로 기록된 로씨야에서의 1905년 《1월 9일사변》은 로동계급과 인민대중에 대한 제국주의자들의 무자비한 폭압정책을 보여주는 일단에 지나지 않는다.

◦ 다른 나라, 다른 민족들에 대한 제국주의자들의 침략과 전쟁책동, 식민지인민들에 대한 가혹한 략탈이 더욱 강화되였다.

다른 나라, 다른 민족에 대한 침략과 략탈을 생리로 하는 제국주의자들은 자국내에서 저들의 정치경제적위기가 심화되자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출로를 해외침략에서 찾고 로골적인 침략전쟁에 더욱 미쳐날뛰였다.

그 대표적실례로 되는것이 바로 제1차 세계대전이다.

이 시기 제국주의자들은 식민지나라 인민들에 대한 가혹한 착취와 략탈도 더욱 강화하였다.

제국주의자들은 한편으로는 식민지지배를 영구화할 목적으로 폭압수단들을 증설하고 각종 악법들을 조작하며 식민지나라들에서의 민족자본의 발전을 억제하고 인민들을 우매화하는 등 정치, 경제, 문화적락후성을 종전대로 보존하려고 갖은 방법과 수단을 다하였다. 제국주의자들은 다른 한편 식민지초과리윤획득을 목적으로 식민지나라들의 자연부원을 략탈하고 본국에서보다 몇배나 눅은 임금으로 로동력을 착취하였으며 체화상품을 비싼값으로 팔고 가렴잡세를 들씌우는 등 식민지인민들을 가혹하게 착취하였다.

착취와 압박이 있는곳에는 반항이 있고 반항이 있는곳에서는 혁명투쟁이 일어나는 법이다. 제국주의자들의 가혹한 착취와 억압, 침략과 략탈은 자본주의나라들과 식민지나라들에서의 계급적 및 민족적모순을 날카롭게 하였으며 로동계급을 비롯한 근로인민대중으로 하여금 제국주의를 반대하고 계급해방, 민족해방을 위한 혁명투쟁에 일떠서지 않을수 없게 하였다.

로씨야에서의 사회주의10월혁명의 승리에 고무되여 많은 나라들에서 로동계급이 대중적인 파업투쟁을 전개하는 등 치렬한 계급투쟁에 떨쳐나섰으며 식민지나라들에서 민족해방투쟁의 불길이 활화산처럼 타올랐다.

수난의 력사로부터 자주의 새시대에로 확고히 전환되여나가는 력사발전의 이러한 흐름은 제국주의의 반혁명적폭력을 때려부시고 혁명을 승리적으로 전진시켜나가는 길을 정확히 밝혀주는 새로운 혁명사상, 혁명리론을 절박하게 요구하였다.

혁명의 원쑤들의 반혁명적폭력은 오직 혁명적폭력, 혁명의 총대로만 짓부셔버릴수 있다.

선군혁명사상은 바로 전세계적범위에서 제국주의자들의 군사적폭압과 침략책동이 극도에 이르고 그것을 반대하는 인민대중의 계급해방투쟁, 민족해방투쟁이 과감히 벌어지는 이러한 사회력사적조건과 환경을 반영하여 나온 혁명사상이다.

- 총대중시의 새로운 혁명사상, 혁명리론을 창시할데 대한 시대적요구는 민족해방혁명이 당면과업으로 나섰던 우리 나라 실정에서 더욱 절박하게 제기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혁명의 길에 나서신 첫시기 조선혁명의 당면과업은 일제를 타도하고 나라와 민족의 해방을 이룩하는것이였다.

이미 1905년의 《을사5조약》과 1907년의《정미7조약》의 날조로 우리 나라의 외교권을 빼앗고 《통감정치》를 실시하여 조선을 사실상 저들의 식민지로 예속시킨 일제는 1910년 8월 22일 또다시 《한일합병조약》이라는것을 날조함으로써 조선이 일본의 독점적인 식민지라는것을 공공연하게 선포하였다.

나라를 일제에게 빼앗기고 우리 민족이 통채로 식민지노예로 굴러떨어진 조건에서 자주성을 위한 우리 인민의 투쟁은 무엇보다도 일제의 식민지기반에서 벗어나기 위한 민족해방혁명을 당면한 과업으로 제기하고 벌어지게 되였다.

우리 나라에서 일제의 식민지통치를 뒤집어엎고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을 되찾기 위한 민족해방혁명을 성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첫째도 둘째도 일제의 반혁명적폭력을 때려부실수 있는 길을 밝혀주는 옳바른 사상리론이 있어야 하였다.

당시 무력으로 우리 나라를 강점한 일제는 총칼로 우리 인민의 자주권을 유린하고 식민지적폭압과 략탈만행을 미친듯이 감행하고있었다.

일제의 식민지파쑈통치는 세상에서 그 류례를 찾아볼수 없는 가장 악독한것이였다.

일제는 식민지통치기구와 야만적인 헌병경찰제도를 확립하고 대대적으로 확대강화된 폭력수단에 의거하여 언론, 출판, 집회, 결사, 시위 등 우리 인민의 초보적인 권리와 자유마저 빼앗았으며 무고한 인민들을 닥치는대로 검거투옥하고 야수적으로 학살하였다. 특히 일제는 1920년대 말|1930년대 초에는 우리 인민의 반일투쟁을 억누르고 저들의 대륙침략계획을 실현하기 위하여 식민지폭압정치에 더욱 광분하였으며 공공연한 파쑈통치를 실시하는 길에 들어섰다.

일제는 우리 인민에 대한 정치군사적폭압과 함께 경제적략탈도 악랄하게 감행하였다. 일제는 조선산업의 명맥을 틀어쥐고 민족공업의 발전을 억제하였으며 금, 은, 석탄, 철광석을 비롯한 우리 나라의 풍부한 자원을 닥치는대로 략탈하였다. 일제는 수많은 토지를 강제적방법으로 빼앗아냈을뿐아니라 《산미증식계획》의 미명하에 강압적인 량곡략탈정책을 실시하여 해마다 막대한 량의 식량을 일본으로 실어갔다.

일제의 전대미문의 가혹한 식민지통치로 하여 생사기로에 놓인 우리 민족은 일제를 반대하는 대중투쟁을 세차게 벌렸다.

주체18(1929)년에 원산부두 로동자들이 총파업을 일으켰으며 주체19(1930)년에는 부산방직공장 로동자들이 파업투쟁을 벌리고 서울, 평양, 대구, 인천, 흥남, 청진을 비롯한 전국각지에서 로동자들의 5.1절기념파업이 강력히 일어났다.

로동자들의 투쟁과 함께 농민들의 투쟁도 고조되였다.

주체18(1929)년 한해동안에만도 농민들은 수십차례에 걸쳐 소작쟁의를 벌렸으며 각처에서 일제와 친일지주들을 반대하는 투쟁을 전개하였다.

광주의 학생들을 비롯하여 전국각지의 청년학생들도 일제의 식민지노예교육정책과 민족문화말살정책, 우민동화정책을 반대하여 과감히 떨쳐나섰다.

그러나 당시 폭력적인 투쟁으로 벌어지던 우리 인민의 대중투쟁은 옳은 로선과 방침에 의하여 지도되지 못한것으로 하여 일제의 야수적인 무력적탄압을 이겨내지 못하고 실패를 거듭하게 되였다.

일제가 반혁명적폭력에 의거하여 우리 인민의 민족해방투쟁을 야수적으로 탄압하는 조건에서 조선민족도 무장을 들어야 하였으며 무장에는 무장으로 맞서야 하였다.

반일민족해방혁명이 당면한 과업으로 나서고있던 우리의 혁명실천은 발톱까지 무장한 강도 일제를 때려부시는 길을 총대, 혁명군대를 기본으로 하여 과학적으로 밝혀주는 새로운 혁명사상, 혁명리론을 절실히 요구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바로 우리 혁명의 이러한 실천적요구로부터 출발하시여 총대로 조국을 해방하고 혁명을 전진시켜나갈데 대한 혁명사상, 선군혁명사상을 창시하시였다.

참으로 선군혁명사상은 제국주의자들의 착취와 압박, 침략과 략탈책동이 그 어느때보다도 악랄해지고 그것을 반대하는 인민대중의 혁명투쟁이 거세차게 벌어지는 자주시대의 환경과 조건을 과학적으로 반영하여나온 위대한 혁명사상이다.

 

내리적재 하시겠습니까?내리적재
보안문자     
가+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