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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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위대한 수령님의 새 조국건설령도보좌, 주체위업계승의 시원마련
제6절 숭고한 의리와 사랑
2. 통일애국인사들에 대한 뜨거운 사랑
부부대의원으로​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께서 친혈육의 정으로 사랑하여주시고 혁명적으로 교양하고 이끌어주신 남조선혁명가들가운데는 제주도태생의 혁명가 강규찬, 고진히 부부도 있었다.

 

 

강규찬, 고진히부부

 

강규찬, 고진히부부는 나라가 해방되자 제주도에 인민위원회를 세우고 북조선에서와 같은 위대한 수령님의 정치를 온 남녘땅에 펼치기 위하여 헌신적으로 투쟁하였으며 미제의 민족분렬정책이 더욱 로골화되자 인민무장자위대를 편성하고 한나산을 중심으로 《단선》, 《단정》을 반대배격하기 위한 적극적인 무장항쟁을 벌리였다. 강규찬, 고진히부부는 주체37(1948)년 3월 네 남매를 제주도의 친척집에 남겨둔채 그곳을 떠나 평양으로 들어왔다.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께서는 부부대의원들의 마음속고충을 풀어주시기 위해 늘 마음쓰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평양에 들어온 강규찬을 당중앙위원회에서, 고진히는 평양시인민위원회에서 중요한 사업을 맡아 수행하도록 크나큰 배려를 돌려주시였다. 그러시고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첫 대의원선거에서 남조선인민들에 의하여 대의원으로 선거받고 최고인민회의에 참가한 그들부부를 친히 만나주시였으며 그들을 제주도에서 선출된 대의원, 싸우는 부부대의원이라고 하시며 장하다고 높이 치하해주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고진히를 여러차례 몸가까이 불러주시고 그가 맡은 사업도 잘하고 가정생활도 잘해나가도록 극진히 이끌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배려로 고진히가 중앙고급지도간부학교(오늘의 인민경제대학)에 가서 공부하게 되였을 때 누구보다도 기뻐하신분은 김정숙동지이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가 학교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에도 댁으로 찾아온 그를 뜨겁게 맞아주시고 다과도 권하시면서 학교에 가서 공부를 잘하여 많은것을 배워가지고 왔다니 좋은 일이라고 하시면서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앞으로의 사업과 생활에서 명심해야 할 문제들에 대하여 하나하나 가르쳐주시였다.

 

고진히와 허물없이 이야기를 나누시는 과정에 김정숙동지께서는 그들부부가 제주도에 두고온 네 남매때문에 마음놓지 못하고 생활하는데 대하여 깊이 헤아리시였다.

 

부부대의원들의 마음속고층에 대하여 보고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가 그들의 걱정을 덜어주자고 하시면서 고진히동무와 함께 여러 일군들을 제주도에 보내시여 아이들을 데려오도록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과 김정숙동지의 대해같은 은정에 감격의 눈물을 삼키며 제주도땅에 이른 고진히동무는 아이들을 데리고 급히 북으로 향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고진히가 사선을 뚫고 제주도에서 아이들을 데리고왔다는 보고를 받으시고 못내 기뻐하시면서 앓는 아이를 곧 병원에 입원시켜 치료받도록 배려해주시는 한편 대동강기슭에 아담한 살림집을 마련해주시였다.

 

어느날 김정숙동지께서는 남녘끝 제주도에서 사선을 헤치고 평양에 온 아이들이 보고싶다고 하시며 고진히의 집을 찾으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아이들을 뜨겁게 안아주시고 정겹게 바라보시다가 처녀애 하나는 어디로 갔는가고 물으시였다.

 

고진히는 딸애 하나를 데려오지 못한 사연에 대하여 그대로 말씀올리였다.

 

고진히가 아이들을 데려오려고 제주도의 어느 한 마을에 이르렀을 때 세 아이들은 맡겨둔 집에 있었으나 일곱살난 딸은 경찰의 눈을 피하여 먼곳에 있는 다른 친척집에 가있었다. 그런데 둘째아들이 열병에 걸려 심하게 앓고있었다. 군경놈들이 눈에 쌍심지를 켜고있는 조건에서 앓는 아들을 살리자면 그곳에서 더는 지체할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부득이 딸 하나를 남겨두고 배에 올랐던것이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신 김정숙동지께서는 한동안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시다가 어두운 안색으로 그 어린것이 살벌한 땅에서 홀로 누구를 의지하여 살아가겠는가고 하시면서 아무리 정황이 위급하다고 하여도 다른 방법이 없었겠는가, 딸을 데려오지 못한것은 잘한 일이 아니라고 하시며 몹시 서운해하시였다. 그러시고는 그와 함께 제주도로 갔다온 일군들을 나무라시는것이였다.

 

순간 고진히는 끓어오르는 격정을 억제할수 없었다. 그는 용암보다도 뜨거운 김정숙동지의 고매한 은정앞에 눈물이 솟구쳐오름을 어찌할수 없었다.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께서는 부부대의원들의 생활을 따뜻이 돌봐주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일군들에게 수령님께서 강규찬, 고진히가 제주도에서 잘 싸우던 사람들이니 생활을 잘 돌봐주어야 한다고 늘 교시하시였다고 하시면서 그들부부의 생활에 대하여 구석구석에 이르기까지 따뜻이 보살펴주시였다. 그리고 강규찬일가가 새집들이를 하게 되였을 때에는 가구비품일식과 함께 이부자리, 쌀, 부식물까지 친히 마련하여 보내주시는 극진한 배려를 돌려주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병원에 입원했던 그의 아들이 치료받고 나았다는 보고를 받으시고는 그 애의 몸을 추세우라고 하시면서 인삼과 닭을 보내주시는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강규찬부부는 생활의 걸음걸음에서 이와 같이 김정숙동지의 은혜롭고 따뜻한 육친의 사랑을 느끼며 행복한 나날을 보내였다.

 

네 남매의 아버지, 어머니가 되도록 그들은 세상에 그런 사랑, 그런 손길이 있는줄 몰랐었다. 바람 많고 돌 많은 제주도처럼 세상은 차디찬 바람만 불어닥치고 한걸음 옮겨도 발끝에 채이는것은 모난 돌뿐인줄로만 알아오던 그들이였던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그들의 집에서는 뜻하지 않게도 불이 일어났다. 집과 함께 가장집물들이 한순간에 재로 변하여버리였다.

 

고진히는 당황하지 않을수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과 김정숙동지의 사랑이 어린 집과 가장집물들을 태워버렸으니 죄송하기 그지없었다. 이러한 사실에 대하여 보고받으신 김정숙동지께서는 이때에도 어찌할바를 모르고있는 고진히를 친히 댁에 불러 힘을 주시고 용기를 안겨주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화재의 원인과 피해정형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알아보시고 대책을 세워주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불이 났을 때 그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위대한 수령님의 초상화를 제일먼저 정중히 모셔내온 사실을 높이 평가해주시면서 동무들의 가슴속에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충정이 깊이 간직되여있다는것을 알수 있다고 치하해주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후 위대한 수령님의 배려로 그들이 다시 새집을 받도록 하여주시였다. 그리고 또다시 가구비품과 여러가지 옷감 등을 새로 마련해보내주시는 뜨거운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께서는 부부대의원을 혁명적신념과 불굴의 넋을 지닌 혁명가로 키워주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고진히를 항일무장투쟁시기에 형성된 우리 당의 혁명전통으로 무장시키기 위하여 여러모로 애쓰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에게 조선인민혁명군 녀대원들이 온갖 난관을 무릅쓰고 일제놈들과 용감히 싸우던 이야기도 들려주시였으며 그를 데리고 만경대혁명학원에도 나가시였다. 그리고 평양시 녀성들을 조직동원해야 할 때에는 그에게 책임적인 일을 맡겨주시였다.

 

은혜로운 그 손길아래 고진히는 항일유격대원들의 불굴의 혁명정신과 혁명적사업방법, 인민적사업작풍을 따라배우며 성장하여갔다. 세월이 흐를수록 더해지기만 하는 김정숙동지의 육친의 정과 뜨거운 사랑앞에서 강규찬, 고진히는 감동을 금할길 없었다.

김정숙동지의 따뜻한 보살피심속에서 그들은 혁명적신념과 불굴의 넋을 지닌 혁명가로 성장하였다.

 

그들은 조국해방전쟁이 일어나자 고향을 해방하기 위한 성스러운 투쟁의 길에 용약 떨쳐나섰으며 생명의 마지막순간까지 《김일성장군 만세!》,《조국통일 만세!》의 구호를 피로써 쓰고 장렬한 최후를 마쳤다.

 

이렇듯 남조선혁명가 부부가 《김일성장군 만세!》, 《조국통일 만세!》를 심장으로 웨치며 최후를 마칠수 있은것은 그 잊을수 없는 나날에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께서 고이 심어주신 혁명가의 변치 않는 신념과 불굴의 넋이 있었기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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