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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6(2017)년
주체형의 첫 혁명무력창건으로 선군혁명령도의
독창적인 길을 개척하신 희세의 령장

 

 

반일인민유격대창건을 선포하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주체21(1932)년 4월 25일]
 

우리 민족사에서 4월 25일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무적필승의 혁명무력 조선인민군을 창건하신 력사의 뜻깊은 날이다.

조선인민군가

이날을 맞이하고있는 온 겨레는 걸음걸음 전승의 력사만을 아로새겨온 불패의 조선인민군이 걸어온 자랑찬 력사를 되새겨보며 건군으로 조선혁명을 개척하시고 군대에 의거하여 선군혁명령도의 독창적인 길을 개척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천출위인상을 다시금 돌이켜보게 된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건군으로 조선혁명을 개척하시고 군대에 의거하여 조선혁명을 승리의 한길로 이끌어오시였습니다. 수령님의 혁명력사는 건군의 력사이며 수령님의 령도는 선군령도입니다.》

로동계급의 혁명투쟁사에 건군위업의 개척자들은 많아도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와 같이 가장 간고하고 엄혹한 환경속에서 전인미답의 건군위업을 실현하시고 선군령도의 거룩한 자욱을 아로새기신 불세출의 위인은 없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력사상 처음으로 혁명무력건설선행이라는 독창적인 선군혁명방식을 정립하시였다.

강약이 부동이라고 강력한 총대가 없이는 국제무대에서 똑똑한 제소리 한마디도 할수 없을뿐더러 자기의 존엄도 생존권도 지킬수 없다는것은 우리 나라 력사는 물론 세계 모든 나라들의 흥망성쇠사를 통해 확증된 엄연한 진리이다.

 

※ 무관을 천시하고 10만양병설에도 귀기울임없이 태평가만 읊조리던 조선봉건통치배들의 무능으로 20세기 망국의 운명에 처하였던 우리 나라의 실태가 그것을 웅변해주고 19세기 후반기로부터 20세기 전반기에 걸쳐 윁남과 캄보쟈, 라오스와 먄마, 필리핀과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동남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이 유럽식민주의자들의 식민지로, 또다시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되게 되였던 현실이 보여주고있다.

 

비범한 예지로 이러한 력사의 엄연한 현실을 통찰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선행경험이나 원리에 구애되지 않으시고 다른 모든 사업에 앞서 혁명군대부터 먼저 조직것을 결심하시고 그 누구도 생각하고 실천할수 없었던 대용단을 내리게 되시였다.

 

혁명무력건설을 선행시키시려는 위대한 수령님의 결심은 숭고한 애국애민의 정신, 선군의지의 발현이였다.

총대이자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이고 생명선이다. 총대와 군력의 강약에 나라와 민족의 강약이 비례하고 자기의 총대와 군력이 약해지면 나라와 민족의 기운이 사멸되거나 망하게 되는것이 세상의 리치이다.

세상의 리치를 얼마나 이른 때에 그리고 정확히 깨닫는가 하는것은 위인과 보통사람을 구별해보게 하는 하나의 시금석이라고 할수 있다.

 

※ 조국과 겨레를 위한 일에 한몸 서슴없이 바치는것을 가풍으로 여기는 만경대혁명일가의 숭고한 뜻을 이어받으시였고 아버님께서 나라의 기둥이 되라는 뜻에서 《성주》라고 지어주신 이름그대로 어린시절부터 나라와 민족을 위한 큰일을 하시려는 높은 뜻을 품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두고 그토록 가슴아파하시면서 남들이 개인의 명예나 출세를 꿈꾸며 서울로 올라가고 외국류학을 떠날 때에도 12살 어리신 나이에 조국으로 향한 천리길을 걸으시였고 소학교시절에 《일본제국주의타도, 조선독립》이라는 글발을 새겨 사람들을 놀래우시였던것이다.

 

나라와 민족이 도탄속에 빠져있던 그 모진 세월속에서도 위대한 수령님께서 먼저 가다듬으신것은 자신께서 다름아닌 혁명의 총대로 강도 일제를 때려부시고 독립을 이룩해야 한다는 사명감이였다.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길림감옥에서 조선혁명의 진로를 모색하시면서도 수난당한 우리 민족을 살리는 길은 그 어떤 시위투쟁이나 실력배양, 개인테로에 있는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 혁명군대를 조직하고 그에 의거하여 강도 일제와 무장으로 싸우면서 전민족을 총궐기시켜야 한다는것을 혁명의 대명제로 가슴에 새기시였다.

 

혁명무력건설을 다른 모든 사업에 선행시키시려는 위대한 수령님의 구상과 결심에는 혁명투쟁에서 차지하는 혁명군대의 령도적지위와 핵심적역할에 대한 새로운 사상관점과 립장이 놓여있었다.

국가의 발생과 더불어 그 연원을 같이하고있는 군대가 강권행사의 수단으로 되여왔다는것은 력사적사실이다. 수많은 나라들이 군력에 지탱하여 강약과 우렬을 다투며 흥망성쇠의 력사를 거쳐온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그 모든 사실들을 집약해보면 군대를 조직하고 강화한 경위나 목적을 보면 례외없이 국가방위나 전쟁의 요구에서부터 출발하였다는것이다.

하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혁명무력건설을 다른 모든 사업에 앞세우시면서 그 목적을 단순히 무장행위나 국가방위에만 두지 않으시였다.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혁명군대만 있으면 무장투쟁은 물론 다른 이여의 그 어떤 혁명과업도 다같이 훌륭히 수행할수 있다고 보시였다. 그것은 혁명투쟁에서 총대가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립장에서 출발한것이였다.

 

혁명군대가 민족의 독립의지와 신념의 최고대표자이며 민족해방전선의 주력군이고 혁명의 조직자, 령솔자이라는것, 이것이 항일무장투쟁시기 위대한 수령님께서 새롭게 보신 혁명군대의 지위와 역할이였다.

민족해방전선의 주력부대로서 혁명의 령솔자로 될수 있는 혁명군대, 이런 선두기관차만 있으면 인민대중을 하나로 집결하여 강도 일제침략자들도 때려부시고 조국해방위업을 달성할수 있으며 총대로 당과 국가건설의 터전도 다질수 있다는것이 바로 위대한 수령님의 립장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민족의 애국심과 독립의지를 발동하는 커다란 영향력도 혁명군대가 가지고있다고 보시였다.

사람들은 흔히 선견지명은 위인이 지닌 풍모의 하나라고 한다. 하지만 위인들이 지닌 선견지명도 따지고보면 서로 다르다.

위대한 수령님은 이 세상 모든 위인들이 지닌 선견지명의 예지를 다 합친다고 하여도 따를수 없는 예지의 화신, 선견지명을 최상의 경지에서 완전무결하게 지니신 영재중의 영재이시였다.

정의의 총대를 강력하게 벼려 그 총소리를 크게 울릴 때 민족의 애국심과 얼도 높아진다는 진리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혁명군대를 창건하신 얼마후 현실속에서 증명되였다.

 

※ 일제침략자들이 9. 18일사변을 일으키고 전만주를 강점해나가고있을 때에 《무적황군》에 대한 신화로 하여 생겨난 공포가 조선과 만주는 물론 온 아시아대륙을 휩쓸고있었다. 그때로부터 몇년이 지나 보천보의 밤하늘에 울린 혁명군의 총소리는 격동적인 현실을 펼쳐놓았다.

조선인민혁명군이 보천보로 진격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세계가 떠들고 온 민족이 흥분하였다. 이 소식을 듣고 당시 서울에 있던 려운형은 보천보에로 달려갔고 상해림정의 김구는 신문에서 보천보전투소식을 읽고 끓어오르는 흥분을 참지 못해 만리 창공을 향해 배달민족이 살아있다고 몇번이나 소리쳤다고 한다.

 

이러한 격동적인 현실을 조선인민혁명군이 펼쳐놓았으니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 조선인민혁명군은 반일민족해방전선의 주력군이였고 민족의 독립의지와 신념의 최고대표자였으며 항일혁명의 조직자, 령솔자였다고 회고하시였다.

이처럼 위대한 수령님은 혁명무력건설선행이라는 독창적인 선군혁명방식으로 제국주의를 타도하고 조국을 해방하며 당과 국가창건의 터전도 닦고 민족의 단합도 이룩하는 혁명승리의 새로운 길을 열어놓으신 희세의 선군령장이시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혁명무력건설선행의 새로운 길을 밝히신데 기초하여 우리 식으로 혁명무력을 조직하시고 선군혁명령도를 시작하시였다.

 

※ 원래 국권이 없고 국가적후방도, 정규군의 지원도 없는 식민지나라에서 자체의 혁명군대를 조직한다는것은 헐치 않은 일이다. 하물며 제 나라도 아닌 남의 나라 땅에서 혁명군대를 조직하지 않으면 안되였던 조선혁명가들이 안고있던 고충은 더욱 컸다.

 

혁명군대를 창건하기 위한 투쟁은 처음부터 여러가지 난관속에서 진행되였다. 사람문제, 무기문제, 교련문제, 식량문제, 군중적토대문제, 구국군과의 관계문제를 비롯하여 군사정치적으로 많은 난문제들이 제기되여 해결을 기다리고있었다. 이러한 조건에서 필승의 신념과 무비의 담력이 없이는 혁명군대를 창건하는데서 나서는 모든 애로와 난관을 도저히 헤쳐나갈수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사람과 무기를 혁명군대창건의 가장 중요한 두가지의 필수적요소로 보시고 독창적으로 해결하시였다.

당시 조선의 혁명가들에게는 이 두가지가 다 부족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군대창건에서 사람의 머리수가 문제가 아니라고 보시였다. 정치를 알고 군사를 아는 사람, 조국과 인민을 위해 장기간 무장을 들고 싸울 준비가 되여있는 그런 청년들이 필요하였고 특히 군사정치적으로 준비된 골간이 절실히 요구되였다.

그렇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 안도에서 유격대창건준비로 분망하시던 나날에 조선혁명군출신의 골간이 한두명밖에 없었다.

사람만이 아니라 무기도 부족하였다. 무기를 대줄 국가적후방도 없었고 총 한자루 사올 돈도 없었다. 여기에 외부로부터 가해지는 악랄한 방해책동까지 가로놓여있었다.

 

※ 일제의 모략책동이 극도에 이르고 밀정망이 그물처럼 퍼져있었다. 농촌마을들을 혁명화하는 과정도 혁명가들의 희생적인 투쟁을 동반하지않으면 안되였기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주체21(1932)년초 몸소 푸르허마을에서 머슴군으로 가장하고 마을을 혁명화하는 일에 나서지 않으면 안되였던 엄혹한 시련의 시기도 있었다. 여기에 일제의 리간책동에 속아넘어간 중국인반일부대들에 의해 유격대결성을 위해 찾아오던 귀중한 조선청년들이 도처에서 수많이 처형되는 참사까지 빚어고있었다.

 

이처럼 엄혹한 현실속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필승의 신념과 강의한 의지, 무비의 담력과 배짱으로 이 모든 애로와 난관을 이겨내시면서 우리 인민의 첫 혁명적무장력인 반일인민유격대창건사업을 밀고나가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창건될 유격대의 골간을 혁명적실천속에서 키우시는 한편 여러 혁명조직들을 통해서도 육성하시였다.

유격대창건이 박두한 시기에는 단기강습(단기훈련)을 조직하여 핵심골간들을 집중적으로 키우시면서 우리 실정에 맞게 싸움에 실지 필요한것을 가르치도록 하시였다.

 

※ 위대한 수령님께서 우리 실정에 맞는 군사훈련을 주도록 하는데 얼마나 깊은 주의를 돌리시였는가 하는것은 황포군관학교출신의 군사일군이 청년들에게 주는 훈련에서 군벌냄새가 나고 유럽식종대대형과 일선형서렬방식을 배워주는데 대하여 경종을 울리신데서 찾아볼수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군대창건을 위한 대원문제도 우리 실정에 맞게 우리 식으로 해결하시였다.

식민지민족해방전쟁에서는 국가가 있고 령토가 있는 나라들에서처럼 동원령이나 의무병역제와 같은 법의 도움으로 사람들에게 총을 메울수 없었다.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매개 사람들의 정치도덕적자각과 전투적열정이 군대입대를 결정하게 된다고 보시였다. 대중이 혁명의식으로 각성될 때 그 누구의 강요나 지령이 없이도 자기자신의 해방을 위하여 스스로 총을 멜수 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런 원리에 기초하여 적위대, 소년선봉대, 로동자규찰대, 지방돌격대와 같은 반군사조직들에서 유격대입대를 희망하는 청년들과 추수, 춘황투쟁의 폭풍속에서 성장한 청년들로 유격대원들을 물색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무기문제도 우리 나라의 실정에 맞게 우리 식으로 해결하시였다.

혁명군대창건에 필요되는 무기문제를 해결하는데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기본열쇠로 틀어쥐신것은 적의 무기를 빼앗는것이였다.

당시 조선의 혁명가들은 적의 무기를 빼앗아 자체를 무장하자는 비장한 구호를 들고 한자루의 총을 얻기 위하여 자기의 귀중한 생명을 서슴없이 바치기도 하였다.

 

※ 무장을 획득하기 위한 투쟁이 얼마나 간고하였는가에 대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 만일 어느 문필가가 무장을 획득하기 위한 투쟁에서 우리 인민이 발휘한 무비의 희생성과 대담성, 림기응변의 기지와 비상한 창발성에 관한 일화들을 종합하여 형상적화폭으로 펼친다면 그것은 아마 하나의 장엄한 서사시로 엮어질것이라고 쓰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적의 무기를 빼앗는것과 함께 자력갱생의 혁명정신을 높이 발휘하여 자체의 힘으로 무기를 만들기 위한 투쟁도 힘있게 벌리도록 하시였다.

 

※ 우리 혁명투쟁력사에서 자력갱생의 선구자들로 불리운 유격대소조성원들과 혁명조직성원들은 간단한 병기창을 설치하고 칼과 창, 자작권총 등을 만들어 무장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령도밑에 자력갱생의 혁명정신을 발휘하여 연길폭탄을 만들어낸 화룡현 수리바위굴병기창은 후날 조선인민혁명군의 믿음직한 무기제조기지, 수리기지로 되여 항일대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혁명군대창건에서 나서는 부대조직건설방식도 우리 나라의 실정에 맞게 우리 식으로 해결하는 새로운 길을 열어놓으시였다.

무장대오를 조건이 성숙되는데 따라 처음에는 소규모의 유격대를 내오고 점차 대부대의 혁명무력으로 강화발전시키자는것, 이것이 위대한 수령님께서 새롭게 독창적으로 내놓으신 우리 식의 혁명군대조직건설방식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방도를 소규모유격대를 먼저 창건하고 그것을 점차적으로 대부대의 혁명군으로 발전시키는데서 찾으시였다.

 

※ 위대한 수령님의 독창적인 혁명군대조직건설방식에 따라 당시 유격대창건을 위한 중심지였던 안도에서 먼저 그 시범을 창조하고 일반화하는 사업이 진행되였다. 이에 따라 주체21(1932)년 3월 상순 안도현 소사하에서 18명의 새 세대 청년혁명가들로 먼저 소규모의 유격대가 나온데 이어 여러 지역에서 10~20명정도의 소규모유격대들이 광범히 조직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건군위업실현의 조건을 마련하신데 기초하여 주체형의 첫 혁명적무장력인 반일인민유격대를 창건하시였다.

 

주체21(1932)년 4월 25일,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안도의 수림속에서 반일인민유격대창건식을 가지시고 우리 인민의 혁명적무장력의 창건을 온 세상에 선포하시였다.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반일인민유격대창건식에서 하신 《반일인민유격대창건에 즈음하여》라는 력사적인 연설에서 선군사상, 선군혁명로선을 확고히 틀어쥐고 앞장에서 실현해나가야 할 반일인민유격대의 성격과 사명을 밝히시였으며 반일인민유격대를 확대강화하는 문제, 유격근거지창설을 추진시키는 문제, 인민대중과의 혈연적련계를 강화하는 문제 등 항일무장투쟁을 본격적으로 벌려나가는데서 나서는 과업들을 제시하시였다.

 

안도의 유격대가 창건된데 이어 동만의 여러 지역들에서도 위대한 수령님께서 파견하신 지도핵심들에 의하여 유격대들이 조직되였으며 북만과 남만에서도 조선의 견실한 혁명가들에 의하여 유격부대들이 조직되였다. 그리하여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우리 인민의 첫 혁명적무장력을 창건하는 사업이 성과적으로 실현되였다.

우리 인민의 첫 혁명적무장력인 반일인민유격대의 창건은 위대한 수령님의 선군혁명령도의 개시를 알리는 력사적인 사변이였다.

 

※ 반일인민유격대의 창건은 위대한 수령님의 선군사상, 선군혁명로선이 빛나게 구현되여나가는 중요한 계기였다. 반일인민유격대가 창건된 때로부터 군대를 먼저 조직하고 그에 의거하여 전반적조선혁명을 이끌어나가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선군혁명령도의 새 력사가 시작되게 되였다.

 

참으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로동계급의 혁명투쟁사에서 처음으로 혁명군대창건을 선행시켜 선군혁명령도의 독창적인 길을 개척하시고 승리의 년대와 년대를 이어오신 백전백승의 강철의 령장이시다.

건군으로 선군혁명령도의 독창적인 길을 개척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군건설위업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탁월한 선군령도로 계승심화발전됨으로써 조선인민군은 무적필승의 혁명강군으로 전승의 력사만을 아로새기며 자랑찬 로정을 걸어오게 되였다.

오늘 조선인민군은 위대한 수령님들 그대로이신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를 진두에 높이 모시여 무적필승의 백두산혁명강군으로 그 위용을 만방에 과시하며 민족의 숙원인 조국통일위업실현을 무력으로 굳건히 담보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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