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는 혁명적동지애와 의리의 숭고한 풍모를 지니신 위대한 혁명가이시다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

12월 24일은 선군태양이신 위대한 김정일동지를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높이 받들어 모신 행운의 날인 동시에 백두의 녀장군으로 명성떨치신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께서 탄생하신 력사의 뜻깊은 날이다.

이날을 맞으며 우리 겨레는 삼천리강산의 북변땅 회령의 키낮은 초가집에서 탄생하시여 10대의 어리신 때부터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수십만리 항일의 혈로를 헤쳐오시며 조국과 민족을 위해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치신 김정숙동지의 불멸의 한생을 감회깊이 되새겨보고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김정숙동무는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동지들을 위해 한생을 살았습니다. 그의 생애는 동지애로부터 시작되였고 동지애를 기초로 하여 발전하였으며 그 과정에 공산주의적도덕의리가 최대한으로 발양된 비범한 혁명가로 되였습니다.》   

혁명동지를 가장 열렬히 사랑하며 동지들사이의 혁명적의리를 지키는것을 숭고한 의무로, 영예로 여기는것은 혁명가의 도덕관이며 도덕적풍모이다. 혁명가로서의 고귀한 생명과 참다운 생활은 혁명적의리와 동지애를 귀중히 여길 때에만 빛나게 된다.

인류사는 당대에 쌓아놓은 공적으로 하여 력사에 널리 알려진 녀성활동가나 녀걸들을 수많이 기록하고있다. 하지만 동서고금의 그 어디에서도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와 같이 뜨거운 혁명적동지애와 숭고한 도덕의리를 지니신 위대한 혁명가는 찾아볼수 없다.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께서  보여주신  혁명적동지애와  의리의  숭고한  풍모에서  중요한것은  무엇보다먼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에 대한 끝없는 충실성이다.

수령에 대한 충실성은 혁명적동지애와 의리의 최고표현이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우선 한생토록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를 민족의 위대한 태양으로 높이 받들어모신 충정의 귀감이시였다.

위대한 김일성동지에 대한 김정숙동지의 충정의 마음은 어리시절 백두산의 새별이야기를 들은 때로부터 싹트기 시작하여 혁명의 길에 나서시였을 때부터는 위대한 수령님을 민족의 운명을 한몸에 지니신 위대한 태양으로 높이 받들어 모시였다. 주체19(1930)년 여름 야학선생님으로부터 민족의 태양으로 솟아오르신 김일성동지께서 벌써 몇년전에 화전에서 《ㅌ.ㄷ》를 결성하시고 투쟁의 홰불을 올리시였으며 카륜에서 조선혁명의 진로를 밝혀주시고 지금 온 민족을 조국해방위업실현에로 불러일으키고계신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을 때 김정숙동지께서는 끝없는 감격과 환희로 흥분을 금치 못하시였다.

김일성, 그이의 존함을 거듭거듭 외워보시던 김정숙동지께서는 우리 민족에게 빼앗긴 나라를 찾아주시고 우리 인민에게 착취와 압박이 없는 새 세상을 마련해주시려 혈전의 길에 나서신 민족의 태양이신 김일성동지께 자신의 한생을 다 바칠 굳은 결심을 다지시였다. 

《세상만물이 태양이 없이는 살지 못하는것처럼 우리는 김일성장군님의 품을 떠나서는 살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하늘의 태양과 같은분은 바로 김일성장군님이십니다.》 이것은 부암유격구에서 아동단사업을 지도하실 때에 어느날  아침  아동단원들과  함께  해돋이를 구경하시면서 김정숙동지께서 하신 말씀이다. 이 말씀은 김정숙동지께서 한생토록 간직하신 불별의 신념이고 의지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에 대한 김정숙동지의 끝없는 충실성은 또한 위대한 수령님의 사상과 로선을 견결히 옹호고수하신데서도 유감없이 발휘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사상과 로선을 옹호고수하기 위해서라면 한몸이 그대로 육탄이 되여야 한다는것이 다름아닌 김정숙동지의 신념이고 의지였다.

항일혁명이 형언하기 어려운 난관과 시련을 겪고있던 고난의 행군시기에 청봉밀영에서 혁명의 배신자와 맞서 견결히 싸우신 사실은 그 대표적사실이다. 

청봉후방밀영의 책임자로 있던 혁명의 배신자는 밀영에서 진행된 학습과정에 혁명의 전략전술이란 주관적욕망에 의해서가 아니라 객관적정세와 환경에 따라 결정되여야 하며 따라서 올겨울과 같이 불리한 혁명의 《저조기》에는 적들에 대한 적극적인 공세와 정면대결을 피하고 일단 물러서서 유리한 정세가 오기를 기다려야 한다는 궤변을 들고나오면서 조선인민혁명군부대가 국경일대에로 진출하는것을 《무모한 행동》이라고 시비중상하는데까지 이르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이자에게 당신은 마치 조선혁명의 운명이 객관적정세에 결정적으로 의존되는듯이 말하고있는데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우리는 객관적정세가 혁명투쟁에 영향을 준다는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절대화해서는 안된다, 혁명가들은 정세가 불리할수록 더 적극적으로 투쟁하며 화를 복으로 전환시키기 위하여 분발하여야 한다, 이것은 사령관동지의 뜻이다고 단호히 말씀하시였다. 계속하여 김정숙동지께서는 혁명의 《저조기》를 떠들면서 적과 싸우지 않고 국경연안에는 진출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는것은 사령관동지의 혁명로선에 배치되는 매우 불건전하고 위험한 견해라고 하시면서 우리는 사령관동지께서 제시하신 혁명로선과 방침의 정당성과 의의를 더욱 깊이 인식하고 그것을 철저히 옹호고수하며 무조건 집행해야 한다고 단호히 선언하시였다. 혁명의 배신자는 자기의 기회주의적이며 투항주의적인 반혁명적정체를 가리워보려고 발악하면서 밀영책임자의 직권을 악용하여 《간첩단사건》을 조작하고 김정숙동지를 비롯한 녀대원들을 그 혐의자로 몰아 체포한 다음 악착한 고문까지 가하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생명을 위협하는 고문이나 《간첩》혐의보다도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사상과 로선을 헐뜯는 배신자의 죄행이 용인되고있는데 대하여 더욱 절통해하시며 대원들이 이자와 견결히 맞서 싸우도록 이끌어주시였다. 이어 김정숙동지께서는 주체28(1939)년 4월 북대정자에서 열린 조선인민혁명군 지휘관 및 병사대회에서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사상과 로선을 헐뜯고 외곡한 배신자의 반혁명적죄행을 낱낱이 폭로단죄하시면서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높은 정치적각성과 혁명적신념을 가지고 사령관동지의 혁명사상을 견결히 옹호고수하여야 하며 그이의 혁명사상을 헐뜯는 현상에 대하여서는 날카로운 투쟁을 벌려야 합니다. 사령관동지의 혁명사상을 목숨으로 지킵시다. 이것은 우리의 가장 숭고하고 영예로운 임무입니다.》라고 열렬히 호소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후날 당시를 회고하시면서 김정숙동무는 사령부의 로선이나 작전적방침과 어긋나는 그릇된 사상에 대해서는 추호의 타협도 하지 않고 견결하게 투쟁한 철저한 사상론자였다고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에 대한 김정숙동지의 끝없는 충실성은 또한 위대한 수령님의 신변안전과 건강보장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치신데서도 발휘되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신변안전과 건강을 보장하는것을 혁명전사의 첫째가는 본분으로, 가장 숭고한 도덕의리로 간주하시고 항일혁명의 나날로부터 혁명생애의 전기간 여기에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치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항일대전의 간고한 나날 중국 동북지방의 무송현성전투와 홍기하전투, 황구령전투 등  수많은 전투들에서  한몸이 그대로 성새가 되고 방패가 되시여 위대한 수령님의 신변을 결사보위하시였다. 주체29(1940)년 6월 하순 안도현 대사하치기전투때에는 5~6명의 적들이 무성한 갈밭속에 몸을 숨기고 수령님께서 계시는 곳으로 은밀히 접근하여 총구를 쳐드는 위기일발의 순간 김정숙동지께서는 《사령관동지!》라고  다급히 웨치시며 번개같이 몸을 솟구쳐 위대한 수령님을 막아나서시면서 기여드는 적들에게 명중탄을 퍼부으시였다. 원쑤들의 총구앞에 방탄벽이 되여 나서신   김정숙동지의 고귀한 희생정신에 의하여 위대한 수령님의 신변은 믿음직하게 보위될수 있었다.

뿐아니라 김정숙동지께서는 항일전의 나날 사령부의 작식보장을 혁명의 운명과 관련되는 더없이 중요한 사업으로 여기시고 비상미마저 떨어져 맨감자로 끼니를 에울 때에는 감자를 갈아 지짐을 지지거나 산나물소를 넣고 떡을 만들어 위대한 수령님께 드리시였으며 밥가마가 적탄에 맞아 못쓰게 되였을 때에는 꼬치떡을 만들어 식사를 보장하시였다.

주체29(1940)년 10월말 훈춘부근의 어느 한 숙영지에서 얼음구멍을 까고 위대한 수령님의 옷을 빨아 말리우시다가 적정이 나타나자 젖은 옷가지를 가슴에 품고 행군하시면서 말리워 수령님께 올리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후날 그때의 심정에 대하여 너무나 얼어서 얼굴이 파랗게 질린 그를 보니 눈물이 날것 같았습니다, 생전에 우리 어머니도 해보지 못한 일을 그가 했다는 생각을 하니 나로서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수 없었습니다, 친어머니도 해주지 못한 일을 스스로 걸머지고 나서서 자신을 희생시킨 김정숙의 동지애, 생각해보면 그것은 자기 사령관에 대한 혁명적인 동지애인 동시에 인간 김일성 대한 뜨거운 정이기도 하였습니다라고 감회깊이 회고하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처럼 어려운 조건에서도 위대한 수령님께 명주솜외투와 털양말, 배띠를 만들어올리시였으며 주체30(1941년)봄 국내진출의 길에 오르신 수령님의 안녕을 위하여 머리카락을 솎아 신발깔개도 만들어드리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해방후에도 밤깊도록 사업하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한순간이라도 편히 쉬시도록 하시기 위하여 이른 새벽마다 장대로 정원의 새들을 날려보내시였고 여름이면 모기쑥을 태워 모기들을 쫓군 하시였다. 그리고 위대한 수령님의 목달개와 내의도 언제나 다듬이질로 포근하고 부드럽게 손질하군 하시였다.

이처럼 김정숙동지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을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구원하시고 끝없는 륭성과 번영에로 이끄시는 위대한 태양으로 높이 모시고 수령님을 충직하게 받드는것을 혁명전사의 가장 숭고한 도덕의리로 간주하시고 수령님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치시였다.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께서 보여주신 혁명적동지애와 의리의 숭고한 풍모에서 중요한것은 다음으로 혁명동지들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의리이다.

혁명적동지애는 같은 사상과 목적을 위하여 싸우는 혁명가들사이의 가장 고상하고 가장 귀중한 사랑이다.

김정숙동지께서 지니신 혁명적동지애는 동지들에 대한 뜨거운 믿음과 동지들을 위한 자기희생성, 동지들에 대한 원칙적인 사랑으로 특징지어지는 가장 숭고한 동지적사랑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우선 믿음으로 동지들을 얻고 믿음으로 동지관계를 다져나가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믿음으로 동지 한사람, 한사람을 얻으시고 혁명의 길로 이끌어주시였다.

김정숙동지의 동지들에 대한 믿음의 세계가 어떤것인가를 보여주는 이야기들은 수없이 많다. 그중의 한가지 사실만 보아도 잘 알수 있다.

주체22(1933)년 봄 부암유격구에서 최희숙동지가 《민생단》혐의를 받고 군중모임에서 처형당하게 되였을 때 김정숙동지께서는 결연히 연단에 나가시여 최희숙동무가 혁명에 끝없이 충실한 동무라고 생각한다고 하시면서 말 한마디를 가지고 어떻게 혁명동지를 《민생단》이라고 단언할수 있겠는가, 만일 우리가 혁명에 충실한 동무들을 《민생단》으로 몰아 죽인다면 좋아할것은 적들밖에 없을것이라고 절절히 말씀하시였다. 심판석에 앉았던 배타주의자들도 더는 어쩌지 못하고 최희숙동지를 무죄로 선언하지 않을수 없었다. 이렇게 되여 억울하게 《민생단》으로 몰려 처형당하게 된 한 녀성공청원이  다시 혁명의 길에 나서게 되였다.

정녕 혁명동지들에 대한 김정숙동지의 믿음은 어떤 불리한 정황속에서도 외면과 배반을 모르는 가장 진실하고 변함없는 믿음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또한 동지들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것을 깡그리 바치시였다.

남을 위해 자신을 바치는것을 더없는 행복으로 락으로 여기신분이 다름아닌 김정숙동지이시였다. 고난의 행군시기 허리까지 치는 생눈길을 헤쳐야 하는 힘겨운 행군길에서 초인간적힘으로 일어서시여 물을 끓여 대원들에게 공급하신분도, 부대의 식사준비를 위해 송기떡을 만드시고 자신의 몫으로 남겨두었던 몇개 안되는 송기떡마저 다 대원들에게 나누어주시고는 동무들이 기뻐하는것을 보니 배고픈 생각이 없어졌다고, 먹어서만 배가 부른것이 아니라 동무들이 그처럼 좋아한다면 얼마든지 먹지 않고도 견딜것 같다고 하신 분도 바로 김정숙동지이시였다. 하기에 김정숙동지께서는 그처럼 애용하시던 모포마저 헤여지는 녀대원에게 서슴없이 주어보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가 반세기가 지나서 그 모포를 들고 다시 찾아왔을 때 김정숙동지를 회고하시면서 그는 늘 받는 재미보다 주는 재미가 더 좋다고 하였습니다, 남들의 정을 받는것도 좋지만 남들에게 자기 정을 줄 때가 휠씬 더 좋다는것이 바로 김정숙동지의 인생철학입니다라고 뜨겁게 교시하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 지니신 혁명적동지애와 의리는 혁명투쟁의 길에서 희생된 동지들의 유가족들을 잘 돌봐주는것은 자신께서 맡으셔야 할 숭고한 의리로 여기신데서 남김없이 발휘되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삼도만유격구에서 활동하시던 나날 어느 한 공청일군회의에 참가하시여 회의참가자들에게 우리와 함께 혁명하다가 희생된 동지들의 유가족들을 잘 돌봐주어야 한다, 목숨이 지는 마지막순간까지 적과 용감히 싸우다가 희생된 동지의 유가족들을 돌봐주는것은 우리의 응당한 도리이다, 우리의 혁명동지들이 사랑하는 부모와 처자들을 남겨놓고 눈을 감을 때 누구를 믿었겠는가, 내가 못먹고 못입더라도 유가족들을 먹이고 입혀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김정숙동지의 숭고한 의리는 항일의 나날 동지들이 희생될 때마다 그들이 희생된 장소와 이름, 고향, 가족들과 친척들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수첩에 하나하나 적어놓군 하시였다가 조국이 해방되였을 때에는  국내외에서 혁명가유가족들을 찾아내여 유자녀들을 위한 학원을 세우고 그 관리운영을 잘할데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높은 뜻을 충직하게 받들어나가신데서 잘 알수 있다. 뿐아니라 오태희로인일가와 장길부녀사 그리고 리제순동지의 가족을 비롯한 수많은 혁명가유가족들이 위대한 수령님의 품속에서 생활상 아무런 불편도 없이 생활하도록 세심히 보살펴주시였다.

혁명동지들에 대한 숭고한 혁명적의리와 동지애에 기초한 김정숙동지의 보살피심속에서 수많은 혁명가유자녀들과 유가족들이 긍지높고 보람찬 생활을 누리며 위대한 수령님께 충직한 혁명전사로, 우리 당의 핵심으로 자라나게 되였으며 주체혁명위업수행을 위한 영광의 한길에서 한생을 빛내여 나갈수 있게 되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또한 혁명적원칙성에 기초한 혁명적동지애를 높이 발휘하시였다.

혁명적원칙에 기초하여 동지관계를 맺고 우정을 두터이 하는것이 김정숙동지의 혁명적동지관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주체24(1935)년 11월초 부대와 함께 내도산방면으로 진출하던 도중 진행된 전투때 한 신입대원이 전장에 총을 두고 온 사실을 아시고 비발치듯 하는 탄우속을 뚫고 들어가시여 총을 찾아다 주시였다. 그리고 이 사실을 지휘관에게 보고하지 말아달라고 간청하는 그 대원에게 잘못은 숨길것이 아니라 다 털어놓고 동무들의 비판을 받고 그 비판을 접수하여야 다시는 과오를 범하지 않을수 있다고 원칙적인 충고를 주시였다. 그리하여 그 대원은 동무들앞에서 자진하여 잘못을 털어놓고 비판하였으며 훌륭한 혁명군대원이 될것을 결의다지였다. 김정숙동지께서 보여주신 동지에 대한 원칙적사랑은 혁명대오안에 동지애의 화원이 더욱 만발하게 하고 원칙적이며 혁명적인 단합을 이룩하는데서 커다란 추동력으로 되였다.

이처럼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께서는 혁명의 길에 나서신 때로부터 생애의 마지막순간까지 수령에 대한 혁명전사의 혁명적동지애와 의리의 가장 빛나는 모범을 창조하시였으며 혁명동지들에 대한 가장 뜨겁고도 원칙적이며 변함없는 사랑과 의리로 자신의 한생을 수놓으신 위대한 혁명가이시였다.

하기에 항일의 한 녀투사는 김정숙동지를 회고할 때마다  《…김정숙동지께서 보여주신 동지들에 대한 사랑은 죽음도 이겨내게 하는 불사신의 사랑이였으며 기적을 낳게 하는 참사랑이였다.》라고 뜨겁게 말하군 하였다.

참되고 고결한 인간이 남긴 자욱은 세월의 풍화속에서도, 사람들의 마음속에서도 결코 지워지지 않는 법이다.

최후순간에도 최고사령관동지의 안녕을 먼저 생각하며 자기의 생명도 서슴없이 바친 영웅들이며 부모없는 아이들의 친어머니가 되여 그들을 따뜻이 돌봐주는 선군시대의 녀인들, 사경에 처한 환자를 위해 자기의 피와 살점도 아낌없이 바친 우리 시대 참인간들, 군사복무의 나날 뜻하지 않는 사고로 하여 불구가 된 한 영예군인을 위해 일생을 같이 할 영원한 길동무가 된 우리 시대 청년들이 발휘하고있는 동지애와 의리의 근저에는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께서 보여주신 숭고한 혁명적동지애와 의리심이 놓여있다. 

북과 남 해외의 온 겨레는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께서 보여주신 혁명적동지애와 의리를 숭고한 귀감으로 삼고 민족적대단합실현에 적극 이바지하여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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