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김일성동지는 언제나 남녘동포들에게 뜨거운 사랑과 은정을
베풀어주신 영원한 민족의 어버이이시다

 

 

남조선수재민들에게 보낼 구호물자견본품을 보아주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백두산절세위인들의 유훈을 받들어 조국통일의 전환적국면을 열어나갈데 대한 경애하는 원수님의 애국의 호소에 온 겨레가 화답하여 떨쳐나서고있는 때에 민족의 영원한 주체의 태양이신 위대한 김일성동지께서 탄생하신 민족최대의 경사의 날인 태양절을 맞이하게 된다.

나라가 분렬된 첫날부터 위대한 생애의 마지막순간까지 민족의 분렬을 두고 그 누구보다도 가슴아파하시며 자신의 모든것을 나라의 통일을 위해 바치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언제나 남녘동포들을 자애로운 한품에 안으시고 주실수 있는 사랑과 은정을 다 돌려주신 민족의 영원한 어버이이시다.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품은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을 한품에 안아 운명을 지켜주고 보살펴주는 한없이 넓고 은혜로운 품이였다.》

우리 겨레는 한평생 온 겨레를 한품에 안으시고 주실수 있는 사랑을 다 베풀어주신 어버이수령님의 그 사랑을 돌이켜보며 한없는 그리움에 젖어있다.

민족애는 한 민족에 속하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다. 민족에 대한 사랑을 떠나서 겨레의 생존과 운명에 대하여 생각할수 없듯이 자기 겨레, 자기 동포에 대한 사랑을 떠나서 민족을 위한 위업에 헌신한다고 말할수 없다.

수천년을 헤아리는 인류의 정치사를 더듬어보면 한 민족을 통솔한 지도자들치고 자기 민족, 자기 동포에 대한 사랑에 대해 말하지 않은 정치가는 없다.

그러나 우리 수령님처럼 간고한 항일대전의 나날에나 해방의 환희에 넘쳐있을 때에나 한평생 언제나 민족모두를 한품에 안으시고 뜨거운 사랑과 믿음, 다심한 은정을 베풀어주신 그런 정치가, 지도자는 일찌기 없었다.

어버이수령님께서 지니셨던 남녘겨레에 대한 그 사랑은 세월 아무리 흐고 산천이 변하여도 잊을래야 잊을수 없는 열화와도 같은 진실한 사랑이였으며 한없이 숭고한 사랑이였다.

- 남녘겨레에 대한 어버이수령님의 사랑은 가장 웅심깊고 진실한 사랑이였다.

흔히 사람들은 가장 뜨거운 사랑, 진실한 사랑을 가리켜 말할 때면 어머니의 사랑에 비기군 한다. 그것은 어머니의 사랑은 그 어떤 사심도 보상도 모르는 가장 웅심깊고 진실하며 못난 자식 병든 자식 가림없이 한품에 안아내세워주는 따사로운 사랑이기때문이다.

어버이수령님의 자애로운 품에는 언제나 남녘겨레들이 안겨있었다.

해방직후의 그 복잡다단한 정세속에서도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남연백벌농민들의 물걱정, 전기걱정을 몸소 헤아리시고 구암저수지와 례의저수지의 물을 보내주시였고 전후의 그 어려운 속에서도 남녘겨레들 집걱정, 학비걱정을 두고 가슴아파하시면서 세멘트와 목재, 신발 등 일용품까지 보내주기 위한 수차례의 내각결정을 채택하도록 하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지어 학비난에 시달려 제대로 배우지 못하는 남녘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보내줄데 대한 조치까지 취해주시였다.

남녘겨레들을 위해 베푸신 수령님의 뜨거운 사랑은 전화의 나날에 있었던 사실만 놓고보아도 잘 알수 있다.

주체39(1950)년 8월 5일 서울시민들의 땔나무문제를 풀어줄데 대한 내각협의회를 소집하신 수령님께서는 서울시민들이 해방되여 공화국북반부의 품속에 안긴 오늘에도 이전과 같이 고통을 당하게 할수는 없다고, 하루빨리 안정된 생활을 하도록 여러모로 도와주어야 하며 특히 땔나무문제 같은것도 예견성있게 풀어주어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태백산에서 나무를 하면 헐하게 할수는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그 지역인민들을 동원시켜야 하겠는데 고생하다가 공화국북반부의 품에 안긴 남녘동포들에게 그런 고생을 시킬수 없다고, 힘들더라도 우리의 손으로 나무를 해서 보내주어야 한다고 하시며 몸소 전투임무를 수행해야 할 군인들까지 동원하여 설악산에서 나무를 베도록 은정깊은 배려를 돌려주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서울시민들의 땔나무를 보장하는 사업이 전선에서 싸움을 하는것 못지 않게 중요한 일이라고 하시며 나무베기정형도 수시로 알아보시고 통나무가 도착하면 지체없이 시민들에게 나누어줄수 있게 빈틈없는 조치까지 취해주시였다. 그런데 힘들게 마련해놓은 화목들을 서울시민들에게 공급하지 못하고 일시적후퇴를 하게 되였다.

이때 조성된 정세와 관련하여 통나무들을 몽땅 불태워버리겠다는 한 일군의 대답을 들으신 수령님께서는 그렇게 하면 적들이 그 나무를 쓰지 못하게 할수는 있겠지만 추위가 당장 시작되겠는데 땔나무가 없어 추위에 떨게 될 서울시민들이 걱정된다고 하시며 나무를 토막내여 강물에 띄워 내려보내주면 인민들이 건져쓸수 있을것이니 이런 방법으로라도 그들을 도와주어야겠다고 하시면서 그 처리대책까지 세워주시였다.

돌이켜보면 그 어느 전쟁사에도 우리 수령님처럼 적아간에 누가 누구를 하는 치렬한 격전이 벌어지고있는 때에 전선에서 싸워야 할 군인들까지 동원하여 인민들을 위한 사랑의 조치를 취해주신 례는 그 어디서도 찾아볼수 없다.

남녘겨레에 대한 어버이수령님의 사랑은 그에만 그치지 않았다. 주체73(1984)년 9월 례년에 없던 폭우피해가 온 남녘땅을 휩쓸어 서울에서만도 수많은 남녘동포들이 목숨을 잃고 수십만명의 리재민들이 집과 세간살이를 잃고 한지에 나앉는 혹심한 재난을 당하게 되였다. 이때에도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재난을 당하고 고통을 겪고있는 남녘겨레들을 생각하시며 며칠밤을 휴식도 못하고 심려하시며 세계 인도주의력사에 없는 막대한 량의 구제물자인 쌀 5만석과 세멘트 10만t, 천 50만m 그리고 많은 량의 의약품들을 보내주도록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이런 어버이사랑에 감격하여 수많은 남조선의 각계인사들이 어버이수령님의 품이야말로 진정한 조국의 품이라는것을 온 넋으로 체험하고 애국애족의 길에 나서게 되였다.

그들속에는 려운형, 김구, 김규식, 백남운 등 남조선의 민족주의로정객들, 최덕신, 최홍희, 김성락, 문선명 등 한생을 반공의 길을 걸어오던 해외의 유명인사들도 있었다.

정녕 위대한 김일성동지는 남녁겨레에 대한 웅심깊고 열화와도 같은 혈육의 정을 지니시고 한없이 뜨거운 동포애적사랑을 베풀어주신 영원한 민족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시다.    

- 위대한 수령님께서 지니신 뜨거운 동포애는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는 숭고한 사랑이였다.

세상만물은 세월의 흐름과 함께 변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여도 변하지 않는것이 어버이수령님께서 지니신 남녘겨레에 대한 사랑이였다.

사랑은 의리속에서 더욱 돋보인다. 의리는 인간이 지니고있는 미덕가운데서 가장 훌륭한 미덕의 하나이다. 더우기 생을 마친 사람에 대한 의리를 변함없이 지켜 그 후대들의 삶까지 다 보살펴준다는것은 누구나 할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인류력사에는 의리를 지켜 이름을 남긴 명인들이 적지 않지만 한번 맺은 동지적의리를 한생토록 잊지 않고 그들에게 영생의 삶을 주시고 그 후대들의 운명까지 맡아안으시고 보살펴주신 우리 수령님 같으신분은 이 세상에 없다.

수령님께서는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과 민족적대단합을 위한 길에 나섰던 인사들을 애국인사로, 조국통일렬사로 불러주시며 조국통일상과 같은 높은 국가수훈의 영예도 안겨주시였다. 그리고 조국통일을 위한 성스러운 길에 한몸바친 통일애국투사들이 희생되였을 때에는 온나라 인민들이 그들을 뜨겁게 추모하도록 성대한 추도식도 마련해주시고 친히 자신의 명의로 된 화환까지 보내주시였으며 그들의 영생의 모습을 돌사진으로 묘비에 새겨 애국렬사릉에 안치하도록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시여 그들의 삶과 위훈이 조국과 더불어 영생하도록 보살펴주시였다.

당과 국가사업을 령도하시는 그처럼 바쁘신속에서도 전쟁시기 흩어져 행방을 알수 없는 한 통일애국투사의 자녀들을 찾기 위해 각지에 수소문도 해보시고 수많은 일군들을 전국각지에 파견하시였으며 그들을 찾았을 때에는 몸소 만나주시고 오래동안 건사해두셨던 아버지의 편지를 보여주시면서 아버지의 뜻을 이어나가도록 크나큰 사랑과 은정을 돌려주신 이야기와 준엄한 전쟁의 그 어려운 시기에는 한 통일애국투사의 안해가 혼자몸으로 아이들을 키워야 하는 고생을 헤아리시여 보조금까지 보내주신 이야기, 해방직후에 려운형선생의 자녀들을 저택에서 키우시고 외국류학까지 보내주시여 당과 국가의 중요직책에서 일하도록 따뜻히 손잡아 이끌어주신 이야기를 비롯하여 후대들에게 베풀어주신 그이의 숭고한 사랑과 의리에 대한 이야기는 오늘도 만사람의 심금을 뜨겁게 울리고있다. 

주체80(1991)년 11월중순 회의준비로 바쁜 시간을 보내시던 수령님께서는 서울에서 진행될 《아시아의 평화와 녀성의 역할》에 관한 토론회에 참가할 려운형선생의 자녀를 몸소 만나주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서울에 가는 그를 만나주시고 오래전에 희생된 그의 아버지에 대하여 감회깊이 회고하시면서 이번에 서울에 가면 아버지묘소부터 찾아보라고 말씀하시였다. 그런데 중요한 회의의 중임을 맡고가는데 사사로이 묘소를 찾을 경황이 없을것 같다는 그의 말을 들으신 수령님께서는 그러면 안된다고, 자식이 부모를 먼저 찾는것은 마땅한 도리라고 하시며 자신의 이름으로 화환을 보내줄테니 꼭 가지고 가라고, 묘지기가 있겠는데 자신께서 그들에게 줄 선물을 준비해줄테니 그것도 가져다주라고 크나큰 은정을 돌려주시였다. 

그리하여 온 겨레, 아니 온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어버이수령님의 명의로 된 화환이 분렬의 장벽을 넘어 려운형선생의 묘소앞에 놓이는 희한한 현실이 펼쳐지게 되였다.

당시 려운형추모회 회장은 너무나도 놀라운 현실을 목격하면서 격정에 넘쳐 《묘소에 따님이 온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준비를 하였지만 이렇게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 직접 보내주신 화환이, 그것도 생화가 와닿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하였습니다. 김일성주석님께서 어떻게 50년 가까이 정사를 보시게 되였는가 하는 의문이 단번에 풀립니다.》라고 자기의 심정을 토로하여 모두를 감동시켰던것이다.

참으로 수령님의 뜨거운 사랑은 의리속에 더욱더 돋보이는 가장 숭고한 사랑이며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변함이 없는 사랑중의 사랑이다.

오랜 세월이 지나면 흐르는 세월과 함께 아무리 가까왔던 사이라고 하더라도 그 정이 엷어지고 기억에서 사라지게 되는것이 상례이라고 하지만 근 반세기전에 세상을 떠난 통일애국인사를 그토록 잊지 못해 하시며 그의 후대들을 따뜻이 보살펴주신 어버이수령님은 정녕 사랑과 의리의 최고화신이시며 통일조국의 영원한 태양이시다.

남녘겨레에 대한 어버이수령님의 이처럼 뜨겁고  열렬하며  진실하고  숭고한  사랑이  있어 수많은 동포들이 수령님의 따뜻한 사랑의 품에 안기고 조국통일의 길에 떨쳐나서게 되였다.

우리 겨레는  뜨거운 동포애적 사랑을 지니신 위대한 김일성동지를 민족의 영원한 어버이로 높이 모신 크나큰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에  넘쳐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의 령도따라 이 땅우에 통일강성대국을 일떠세우기 위한 투쟁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서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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