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의 부강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해 깡그리 바쳐진 절세의 애국자의 고귀한 한생

  

과일군을 현지지도하시는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

 

오늘 우리 겨레모두는 가슴속에 피눈물로 력력히 아로새긴 12월 17일을 맞이하면서 날이가고 해가 바뀔수록 더해만 가는 절통함과 그리움을 안고 위대한 김정일동지의 불멸의 한생을 다시금 돌이켜보고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한평생은 걸출한 사상리론가, 희세의 정치원로, 불세출의 선군령장으로서 조국의 부강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해 자신을 초불처럼 깡그리 불태우신 절세의 애국자의 고귀한 한평생이였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김정일동지는 누구보다도 조국과 인민을 열렬히 사랑하시였으며 조국의 부강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한 길에 한생을 깡그리 바치시여 조국청사에 영원히 빛날 불멸의 업적을 이룩하신 절세의 애국자이십니다. 

절세의 위인을 모신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심장에 새기고 조국의 통일과 부강번영을 념원하고있는 우리 겨레에게 있어서 애국헌신으로 빛나는 위대한 김정일동지의 고귀한 한생의 자욱자욱은 더없이 귀중한 자양분으로 될것이다.

위대한 김정일동지의 한생은 조국의 부강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한 불면불휴의 강행군으로 일관된 절세의 애국자의 고귀한 한생이다.

조국과 민족, 인민에 대한 사랑과 헌신은 위대한 장군님의 천품이고 생의 전부였다.

일찌기 10대에 백두산에로의 답사길을 개척하시면서 백두의 혁명정신으로 어버이수령님께서 찾아주시고 이끌어오신 조선을 온 누리에 빛내이실  큰뜻을 품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한생토록 주체의 붉은기 높이 력사의 모진 광풍을 헤치시며 조국의 부강발전과 인민의 행복을 위해 한생을 깡그리 바치시였다.

위대한 김정일동지의 혁명령도는 헌신의 강행군으로 이어져오시였다.

선군령도의 첫 자욱을 떼신 1960년대에 어버이수령님의 혁명령도를 보좌해드리시는 그 바쁘신 속에서도 선행한 로동계급의 100년사상사를 총화하시고 수령님의 혁명사상을 김일성주의로 정식화하기 위한 거창한 력사적위업을 실현하기 위한 정력적인 사상리론활동을 벌리시던 위대한 김정일동지의 불면불휴의 헌신은 온 사회의 김일성주의화를 실현하기 위한 벅찬 1970년대와 주체사상탑과 개선문, 인민대학습당과 창광원을 비롯한 기념비적건축물을 일떠세워 주체조선의 위용을 과시하던 1980년대의 불철주야의 헌신으로 이어졌다.

 그 력사적년대들에 계속된 위대한 장군님의 헌신은 그야말로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것이였다.

하기에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주체63(1974)년 어느날 일군들에게 장군님을 열정의 화신이라고 칭송만 하지 말고 그의 사업부담을 덜어주어야 한다고, 그가 오늘은 충혈된 눈을 가리우기 위해 색안경을 끼고 나타났다고 하시면서 심려를 거듭하시였다. 특히 력사적인 조선로동당 제6차대회 주석단에 어버이수령님과 함께 계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너무나도 수척해지신 영상을 뵈옵게 된 온 나라 당원들은 격정을 참을수 없어 당중앙위원회에 장군님의  안녕을 념원하는 수백통의 편지를 올리였다.

돌이켜보면 위대한 장군님께서 그때에 끼신 색안경을 생의 마지막시기까지 벗지 못하시였으니 장군님의 헌신의 강행군은 혁명령도의 전기간 계속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나날 꺼질줄 모르는 장군님의 집무실불빛을 우러러 우리 인민이 부르던 노래 《당중앙의 불빛》은 오늘도 장군님의 헌신의 모습을 되새겨주며 계속 불리워지고있다.

이처럼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혁명령도의 전기간을 헌신의 강행군으로 줄기차게 이어오시였다.

위대한 김정일동지의 강행군은 1990년대부터 애국헌신의  초강도강행군으로 이어졌다.

시작도 끝도 헌신의 강행군으로 일관된 한생이 다름아닌  위대한 장군님의 한생이다.

민족이 대국상을 입은후 통일된 삼천리강산에 행복의 락원을 일떠세우시려던 어버이수령님의 구상과 념원을 기어이 실현하시려는것은 위대한 장군님의 철석의 의지였다.

그런데 너무나도 엄혹한 시련과 난관이 앞을 가로막았다. 미제를 괴수로 하는 제국주의련합의 악착스러운 고립압살책동, 련이어 들이닥치는 자연재해… 그야말로 형언할수 없는 참혹한 현실이 펼쳐졌다. 세계는 우리 조국의 운명을 커다란 우려속에 지켜보았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결연히 사회주의를 수호하고 우리 인민의 고난의 행군, 강행군을 락원의 행군으로 결속하기 위한 선군장정의 길에  오르시였다.

동해에서 서해에로, 조국의 최북단에서 분계연선으로, 초소와 초소에로, 공장에서 농촌과 어촌으로, 위대한 장군님의 선군장정의 걸음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다.

주체84(1995)년 1월 1일 다박솔초소를 찾으신 때로부터 생의 마지막시기까지 인민무력부문을 시찰하신것만도 2 490여개 단위에 달한다는 이 한가지 사실만으로도 위대한 장군님께서 그야말로 초강도강행군을 단행하시였다는것을 잘 알수 있다.

이 시기 위대한 장군님의 초강도강행군이 얼마나 헌신적이였는가는 자강도에 대한 현지지도실록이 그대로 보여주고있다.

가장 어려운 시련을 겪고있는 자강도인민들의 자력갱생, 간고분투의 정신을 본보기로 하여 고난의 행군을 승리적으로 결속하실것을 결심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평양에서 멀고도 먼 자강땅에 오시여 빨찌산식강행군을 이어가시였다.  주체87(1998)년 1월 대한절기의 강추위를 무릅쓰시며 진행하신 자강도에 대한 현지지도만 보아도 잘 알수 있다. 1월 15일 깊은 밤 렬차로 평양을 떠나 다음날 이른아침 령하 30℃를 오르내리는 강계에 도착하신 김정일동지께서는 대한을 앞둔 혹한의 추운 날씨며 험한 산골지형 그리고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도로상태에 대하여 설명해드리면서 긴장한 현지지도일정에 대하여 걱정하는 도당책임일군에게 강행군시기가 아닌가, 내가 앞장서 나가야 인민이 따라서고 최후승리를 이룩할수 있다고 하시며 결연히 나서시였다.

순간의 휴식도 없이 진행되신 장군님의 현지지도는 말그대로 상상을 초월하는 초인간적인 활동으로 이어진 분과 초의 련속이였다. 1월 16일 하루동안에만 하여도 김정일동지께서는 아침 7시에 렬차안에서 도당책임일군으로부터 도의 형편을 료해하시고 사업일정을 토론하시는것으로 시작하시여 오후 4시까지 강계시에 있는 북천띄우개식발전소를 비롯한 일곱개단위를 돌아보시였으며 《렬차숙소》에서 15분동안에 검소한 식사를 하신후 휴식도 없이 일군들과 담화를 하시였다. 그러신후 또다시 어느 한 공장을 오랜 시간 현지지도하신 다음 강계시 북천3호발전소를 돌아보시고 저녁늦게야 《렬차숙소》에 돌아오시여서는 도당책임일군에게 방금 돌아보신 공장에 대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한밤중에 돌아오신 《렬차숙소》에서 얼음물에 발을 잠그시고 언독을 빼지 않으면 안되였다는 가슴저미는 이야기도 바로 자강땅에서 있은 일이였다. 1월 16일부터 21일까지의 현지지도기간에 그이께서 걸으신 자강땅의 현지지도로정은 연 6 000여리에 달하였고 돌아보신 대상은 근 20개단위를 헤아렸다.

위대한 장군님의 줄기찬 초강도강행군은 해가 바뀔수록 더욱 다그쳐졌다. 주체98(2009)년 1월 5일 찬바람을 맞으시며 원산청년발전소를 찾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해에만도  함주군의 동봉과 흥남지구에 비약의 나래를 달아주신데 이어 흥남에서 천수백리를 달려 락원을 현지지도하시고 또다시 원산을 거쳐 함경북도의 김철과 라남, 무산을 련이어 찾으시며 온 나라에 자력갱생의 불길이 세차게 타오르게 하시였다. 압록강기슭의 만포시에서 백두산기슭으로, 또다시 황철, 덕천, 재령, 희천, 안주, 구성으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빨찌산식현지지도강행군길을 이어가시였다.

초인간적인 정력의 소모를 전제로 하는 《눈보라강행군》, 《삼복철강행군》, 《심야강행군》과 같은 시대어들은 오직 위대한 장군님의 활동과만 결부시켜 부를수 있는 표현들이다.

혁명생애의 전기간 위대한 장군님께서 걷고 걸으신 현지지도강행군길은 지구둘레를 근 17바퀴나 돈것과 맞먹는 연 167만  4 610여리이며 찾으신 단위는 1만 4 290여개에 달한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특히 2012년에 강성국가건설위업수행에서 전환적국면을 마련하기 위하여 주체97(2008)년 12월호소로 새로운 혁명적대고조의 봉화를 지펴주신 때로부터 혁명생애의 마지막순간까지 초인간적인 정력으로 전인민적인 대진군을 앞장에서 이끄시였으며 이 나날에 근 190일간의 명절날과 휴식일을 바쳐가시면서 끝없는 헌신의 자욱을 새기시였다.

그야말로 위대한 장군님의 그 헌신의 모습은 돌격앞으로가 아니라 나를 따라 앞으로였다.

주체98(2009)년 2월 17일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자신께서는 지난해말부터 두달동안 집에도 가지 못하고 렬차에서 생활하면서 강행군으로 인민경제 여러 부문사업을 현지지도하고있다고 하시면서 이제는 렬차에서 생활하면서 강행군을 하는것이 습관된것 같다고, 강행군으로 낮과 밤을 이어온 지난 두달동안에는 설명절을 비롯하여 명절들도 많았다고, 명절날에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명절을 즐기면서 휴식을 하고싶은 생각이 없지 않았지만 그렇게 할수가 없었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현지지도의 길에서 위대한 장군님을 만나뵈온 일군들과 근로자들은 누구나 다 생각밖으로 수척하시고 피로가 가득 실린 존안을 뵈옵고 그이의 건강과 안녕만을 바라고 또 바라면서 다문 한순간이라도 편히 쉬실것을 간절히 아뢰였다. 온 나라 천만군민은어디에 계십니까 그리운 장군님, 《장군님 찬눈길 걷지 마시라》, 《축원》등의 노래를 목메여 부르면서 장군님의 안녕을 바라고 또 념원했지만 장군님께서는 자신께서 한시라도 걸음을 멈추면 조국의 부강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한 조국의 걸음이 그만큼 더디여 진다고 하시면서 강행군길을 더욱 다그치시였으며 위대한 생애의 마지막날에도 울면서 막아나서는 일군들을 만류하시고 또다시 렬차행군길에 오르시였던것이다.

이처럼 위대한 김정일동지께서는 조국의 부강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해 선군혁명령도의 전 과정을 줄기찬 헌신의 강행군으로 이어오신 절세의 애국자이시다.

위대한 김정일동지의 한생은 조국의 부강발전과 인민의 행복을 위해 견인불발의 의지와 초인간적인 정력으로 순간순간을 바쳐오신 절세의 애국자의 고귀한 한생이였다.

위대한 김정일동지의 혁명생애는 조국과 민족의 찬란한 미래를 위하여 사생결단의 각오로 부닥치는 난국을 헤쳐온 가장 적극적이고 희생적인 헌신의 한생이다.

위대한 김정일동지의 강행군길은 걸음걸음 위험을 동반하는 사생결단의 길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조국수호, 우리 식 사회주의수호를 위한 길에서 그 어떤 위험도 마다하지 않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얼마나 위험천만한 사생결단의 길을 걸으시였는가는 주체85(1996)년 한해에 단행하신 전선시찰만 보아도 잘 알수 있다. 주체85(1996)년 2월 27일 전선동부의 최전방초소인 351고지를 찾으시였고 3월 18일에는 전선서부의 최전방초소인 대덕산초소를 찾으신데 이어 이틀후인 20일에는 전선중부의 오성산일대로부터 철령을 넘어 전선동부의 최전연에 이르기까지의 력사적인 시찰을 단행하시였다. 그리고 그해의 11월  23일에는 풍랑사나운 파도를 헤치시고 초도방어대를 찾으시였고 그 다음날에는  조국의 최전방초소인 판문점을 시찰하시였다. 걸음걸음 사생결단의  의지가 없이는 결코 걸으실수 없었다. 장군님께서 몸소 운전대를 잡으시고 시간을 앞당겨 질풍같이 톱아오르신 철령길은 전쟁시기부터 너무나도 고개가 많고 가파로워 운전수들이 《1단고개》라고 하던 위험천만한 길이였고 초도방어대에로의 길은 장군님께서 타신 배가 언제 파도에 휘말려들지 모르는 위험한 항해길이였다. 적의 총구가 도사리고있는 판문점역시 그 누구도 예측할수 없는 정황이 수시로 발생할수 있는 곳이였다. 백쉰여굽이의 오성산칼벼랑길은 차가 지치여 장군님께서 몸소 차를 미시면서 올라가지 않으면 안되는 그런 험한 길이였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주체101(2012)년 7월 26일 위대한 장군님의 애국헌신의 자욱을 감회깊이 돌이켜보시면서 장군님께서 어버이수령님을 잃고 고난의 행군을 하실 때부터 생애의 마지막시기까지 입고계신 얇아질대로 얇아진 솜옷은 선군혁명의 상징이라고 절절히 말씀하시였다.

사랑하는 조국과 인민의 운명을 지켜 자신을 깡그리 바치시려는 숭고한 사명감을 흘러가는 세월과 더불어 더욱 소중히 간직하시였기에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사회주의조국을 수호하기 위한 선군장정의 길, 조국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한 길을 순간의 멈춤도 없이 초인간적인 정력으로 줄기차게 이어나가시였다.

위대한 김정일동지께서는 선군장정의 그 험난한 길을 때로는 피눈물을 삼키시면서 걸으시였다.

고난의 행군시기 김정일동지께서 진행하신 현지시찰의 대부분은 최전연부대들이였다.

숨죽은 공장들과 생활난을 겪고있는 인민들의 정상을 보시면서 공장이나 농촌이 아니라 군인들을 찾아 전선시찰의 길을 이어가시는 장군님의 가슴은 형언할수 없이 쓰리고 아프시였다. 그때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지금은 그 어떤 값비싼 대가를 치르더라도 사회주의를 지키고 봐야 한다, 우리가 이제 승리의 통장훈을 부르게 될 때 인민들은 내가 왜 끊임없이 전선시찰의 길을 이어나갔는가 하는것을 리해하게 될것이라고 하시면서 마음을 다잡고 분연히 길을 떠나군 하시였다. 더우기 식량이 모자라 고생하는 인민들을 뒤에 두고 나라에 있던 돈의 전부라고도 할수 있는 귀중한 자금을  CNC화에 돌리실 때 장군님께서는  마음속으로 눈물이 아니라 피눈물을 흘리시였다.

이 나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 누가 내 마음 몰라줘도 몰라준대도 희망안고 이 길을 가고 가리라의 노래구절을 마음속으로 부르며 가슴속 아픔도 눈물도 오직 자신의 가슴속에 묻어두시고 인민앞에서는 언제나 환하신 태양의 웃음만을 남기시였다.

인민을 위해서는 이 세상에 한번도 주저하신 령, 못넘으신 험산이 없고 못다주신 사랑이 없으셨건만 자신을 위해서는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온갖 고생을 락으로 여기시며 누구나 넘은 인생의 낮은 70고개마저 넘지 못하신 위대한 장군님이시다.

위대한 장군님의 그 애국헌신에 의해 우리 조국은 사상의 강국, 군사의 강국으로 위용떨치고 경제강국건설의 만년토대가 튼튼히 마련되였으며  6.15자주통일시대가 펼쳐지고 대외관계가 보다 유리하게 전변되게 되였다.

위대한 장군님과 같이 령도자로서, 혁명가로서, 인간으로서 겪을수 있는 온갖 고생을 다 겪으시며 오로지 조국의 부강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모든것을 바치시여 불멸의 업적을 이룩하신 불세출의 위인은 이 세상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수 없다.

참으로 조국의 천만년 미래를 위해 바쳐진 위대한 김정일동지의 불같은 애국의 한생은 력사에 전무후무한 영웅적헌신의 대서사시이다.

위대한 김정일동지의 애국헌신의 한생과 불멸의 업적은 오늘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에 의하여 찬연한 빛을 뿌리고있다.

수령의 영생은 그 위업의 영생이다. 수령의 영생은 수령이 생전에 개척하고 전진시켜온 혁명위업의 계속, 수령이 바라고 념원하던 모든 구상을 현실로 구현하는 실천의 련속으로 담보된다.

김정일애국주의를 부강조국건설의 기치로 추켜드시고 무엇을 하나해도 장군님께 보고드리고 장군님께 기쁨과 만족을 드리시는것으로 간주하시며 날에 날마다 희환한 현실만을 펼쳐가시는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숭고한 도덕의리와 탁월한 령도에 의해 위대한 장군님의 선군혁명령도사는 오늘도 계속 흐르고있다.

대를 이어 절세위인들을 높이 모시고 힘차게 전진하는 우리 조국과 선군혁명, 인민의 미래는 끝없이 창창하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 계시여 새로운 주체100년대는 백두산위인들의 한생의 념원이 전면적으로 실현되는 영광스러운 년대로 수놓아질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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