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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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편 조선봉건사회
제3장 고려
제5절 13세기 후반기-14세기 봉건적착취의 강화와 인민들의 투쟁
2. 봉건지배계급을 반대한 인민들의 투쟁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자주성을 생명으로 하는 사람이 자기의 자주성이 침해당하는것을 반대하여 투쟁하는것은 응당한것입니다.》

13세기 말 고려인민들은 날로 가혹해만지는 봉건적착취와 억압을 반대하여 투쟁에 일떠섰다.

- 1286년 2월 녕월(강원도)지방 인민들이 강윤명의 지휘밑에 폭동을 일으켰다.

그들은 현령과 악질관리들을 처단하고 역리들을 투쟁에 인입하여 역마를 타고 활동하였다. 당시 이 폭동군은 투쟁을 충청도지방에로 넓히려다가 봉건통치배들에게 진압당하고말았다.

이들의 투쟁은 인차 진압되였으나 삼별초항전 이후 두드러지게 나타난 첫 투쟁으로서 이 시기 인민들의 완강한 투쟁기세를 잘 보여주었다.

- 14세기에 들어와서도 인민들의 투쟁은 계속되였다.

1318년 제주도인민들은 그곳 지방관들을 반대하여 봉기를 일으키고 인민수탈에 날뛰던 섬우두머리들을 내쫓았으며 1323년에는 제주만호 림숙의 탐욕스러운 행위를 폭로하는 글을 써붙이는 괘서투쟁을 진행하였다.

1329년 양광도인민들은 재물을 닥치는대로 배앗아내며 소간을 먹기 위해 자주 소를 잡게 하는 안렴사 마계량을 《말이 소를 잡아먹는다》고 풍자야유하면서 단죄하였다.

이 시기 산에 자리잡고 싸우는 농민폭동군들이 곳곳에서 량반지주들과 토호량반들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

1352년 5월 서울 관악산농민군의 투쟁으로 질겁한 통치배들은 왕궁의 방비대책까지 세우지 않으면 안되였다.

- 14세기 후반기 인민들의 투쟁은 1361년 4월 서북면일대인민들의 봉기로부터 시작되였다.

언제나 힘든 군사적부담을 지고있던 서북지방인민들은 가혹한 봉건적수탈과 그로 인한 기근이 휩쓸게 되자 싸움에 일떠섰다. 국경방위의 제1선인 이 지방에서 일어난 폭동은 봉건통치배들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

그후 2년이 지난 1363년 6월 개경부근에 주둔하였던 군인들이 폭동을 일으켰다. 이때 봉건정부는 원나라의 침공을 막기 위하여 수많은 군인들을 징발하여 서북면으로 보냈는데 수도 가까이에 주둔했던 평택지방의 군인들은 어량대의 지휘밑에 봉건통치배들을 반대하는 폭동을 일으켰다. 폭동군인들은 개경을 공격하기 위하여 성문으로 돌입하였다. 그러나 투쟁준비가 부족하고 시기선택을 바로 하지 못한것으로 하여 개경을 점령하지 못하고 8명의 핵심이 희생되는것으로 끝났다.

이 무렵에 봉주(봉산), 니성(창성) 등지에서도 군인폭동이 있었다.

1375년 가을 니성(창성)을 지키던 군인 200여명이 폭동을 일으켜 놈들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

군인들의 이와 같은 폭동은 사실상 착취받고 억압받던 농민들의 투쟁의 한 형태였다.

1380년대에 이르러 노비를 비롯한 천대받던 인민들의 투쟁이 더욱 활발하게 벌어졌다. 1382년 5월 경상도 합주(합천)지방의 사노는 검대장군이라고 자칭하면서 동료들을 모아 상전과 고을원들을 처단하는 대규모의 폭동을 일으키려고 준비를 하다가 실패하였다.

이와 거의 같은 시기에 노비이하의 천대와 멸시를 받던 양수척들이 투쟁에 떨쳐나섰다.

양수척들은 대오를 편성하고 녕월군(강원도 남부에 있는 군)에 쳐들어가 억압과 착취의 소굴인 관청을 불태워버리면서 봉건통치배들을 놀래웠다. 양수척들의 투쟁은 이밖에 서해도를 비롯한 여러곳에서 벌어졌다.

이와 같이 13세기 말~14세기 고려인민들은 여러가지 형태로 투쟁을 벌려 봉건통치배들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

 

복습문제

-신돈이 진행한 개혁의 내용에 대하여 

-13세기 말~14세기 초 봉건통치를 반대한 고려인민들의 대표적인 항전군들에는 어떤것들이 있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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