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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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편 조선근대사회
제4장 1910년대 일제의《무단통치》를 반대한 조선인민의 투쟁, 1920년대 부르죠아민족운동의 쇠퇴몰락, 대중운동의 장성과 초기공산주의운동
제2절 부르죠아민족운동의 쇠퇴몰락, 대중운동의 장성과 초기공산주의운동
1. 부르죠아민족운동의 쇠퇴몰락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민족주의운동은 인민대중을 떠나 상층운동에 머물러있었기때문에 튼튼한 지반을 가질수 없었으며 인민들의 지지도 받을수 없었다.》

우리 나라에서 부르죠아민족운동은 1919년 3.1인민봉기를 계기로하여 전면적인 쇠퇴몰락의 길에 들어섰다.

일제는 1919년 8월부터 《무단통치》대신 《문화통치》를 실시하면서 식민지폭압을 계속 강화하였다.

일제는 《관제개혁》의 이름밑에 악질군벌들을 총독으로 임명하였으며 중추원, 지방의 평의회에 친일분자들을 들여앉혔다. 

또한 헌병경찰제도를 보통경찰제도로 개편하고 《치안유지법》을 실시하여 수많은 혁명가들을 대대적으로 검거, 투옥, 학살하였다.

특히 1920년 10월 《경신년토벌》에서 3만여명의 무고한 인민들을학살하였다.

일제는 우리 나라에 대한 경제적략탈도 한층 강화하였다.

1920년 4월 《회사령》을페지하고 미쯔이, 미쯔비시, 노구찌 등 재벌들을 본격적으로 침투시켰다.

 

 

문화통치기간 일제는 금 1억 9 415만원분과 석탄 81만t, 식량은 해마다 평균 434만석씩 략탈해갔다.

이러한 시기 자산계급출신의 민족주의자들은 3.1인민봉기이후 그 대부분이 겉으로는 나라의 독립에 대하여 관심이 있는듯이 떠들었으나 실제로는 민족개량주의자로 전락되고말았다.

그러나 일부 민족적량심을 가지고있던 애국적인 민족주의자들은 의연히 여러가지 형태와 방법으로 독립운동을 계속하였다.

△ 3.1인민봉기후 벌어진 독립군부대와 독립운동단체들의 투쟁

 

 

만주지방에서 조직된 중소독립운동단체들

 

량심적인 민족주의자들은 중국 동북지방을 비롯한 해외의 여러지역들에서 《조선독립군》, 《대한국민회군》, 《군무도독부》, 《북로군정서》등의 독립군부대들과 《한족회》, 《독립단》, 《대한광복단》등 여러 독립운동단체들을 조직하고 반일독립운동을 벌렸다.

- 1919년 4월 국내에서는 조선군대출신인 최시홍이 평안북도 천마산에서 《천마산대》를 조직하여 무장활동을 벌렸다.

1919년 7월 《천마산대》는 구성군 천마면사무소를 습격파괴하고 친일면장을 처단하였으며 8월 초에는 30여명으로 창성군 대유동경찰서와 미국인이 경영하는 금광사무소 및 영림창을 습격하여 수많은 군수품을 로획하였다.

그후 《천마산대》는 여러 전투들에서 일제에게 타격을 주고 남만으로 이동하여 투쟁을 벌렸다.

- 독립운동은 중국 동북지방과 로씨야의 연해주지방에서도 활발히 벌어졌다.

홍범도(1868-1943년)가 거느린 《조선독립군》은 1919년 8월 갑산, 혜산 등지의 일본군《수비대》를 습격소탕하고 10월에는 강계, 만포, 자성 등을 기습하여 적지 않은 일제침략군을 살상하였다.

1920년 3월에는 최진동이 거느린 독립군부대가 온성과 무산 등지에 8차례나 진출하여 일제에게 타격을 주었다.

또한 홍범도의 독립군부대는 왕청현 봉오골전투와 화룡현 청산리전투에서 수많은 일제침략군을 격멸소탕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 이 시기 남만지방에서는 20여개의 민족운동단체들이 조직되였으며 동만과 북만, 상해, 연해주지방에도 수많은 민족운동단체들이 조직되였다.

△ 독립운동내부에서 대립과 반목의 격화

독립군운동과 독립운동단체들의 활동은 처음부터 심중한 결함들을 가지고있었으며 그것은 날이 감에 따라 한층 더 심각화되였다.

- 독립군의 활동은 《경신년대토벌》 (《간도대토벌》)과 청산리전투이후에 일제의 야수적인 탄압만행으로 유명무실하게 되였고 자기의 계급적제한성을 전면적으로 드러내놓으면서 호상간의 권력싸움으로 심히 약화되였다.

독립군운동은 날이 감에 따라 부대들사이의 반목과 대립이 심해졌으며 그것은 《흑하사변》을 계기로 절정에 이르렀다.

당시 중국 동북지방과 로씨야의 국경지대인 흑하시일대에는 청산리전투이후에 일제의 야수적인 《토벌》에 겁을 먹고 북만으로 이동한 독립군부대들과 로씨야의 연해주 등지에서 조직된 독립군부대들이 집결되여있었다.

원래부터 서로 질시하여오던 독립군부대의 우두머리들은 세력권문제를 둘러싸고 싸움질을 해오다가 종파분자들의 배후조종으로 1921년에 흑하시에서 끝내 류혈적인 무장충돌의 참극을 빚어냈다.

《흑하사변》을 계기로 독립군운동은 전면적인 와해과정에 들어갔다.

독립군운동이 이처럼 급속히 와해되기 시작한것은 독립군이 자산계급에 의거하고 부르죠아민족주의를 사상적바탕으로 하는 군대였으며 조직과 활동에서 분산성과 산만성을 가지고 자기파를 중심으로 서로 배척하고 질시한데 있었다.

- 독립운동단체들속에서도 대립과 반목이 격화되고 치렬한 파벌싸움이 벌어졌다.

1923년 8월 남만에서는 《한족회》가 주동이 되고 《독립단》을 비롯한 여러 독립운동단체들이 련합하여 《통의부》가 조직되였다.

그러나 《통의부》가 출현한후 그 내부에서는 서로 자기파계렬이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파벌싸움이 계속되였다.

그리하여 나중에는 《통의부》안에서 일부 완고한 민족주의자들에 의하여 《의군부》가 나왔고 1923년 8월에는 《참의부》가 따로 조직되였다.

그해 10월에는 《통의부》를 모체로 하여 《의성단》을 비롯한 여러 단체들의 련합으로 《정의부》가 새로 조직되였다.

또한 1925년 3월에 북만에서는 《대한독립군단》, 《북로군정서》를 비롯한 여러 단체들의 련합으로 《신민부》가 조직되였다.

《참의부》와 《정의부》,《신민부》의 3부가 조직된후 중국 동북지방의 여러 지역에 있던 독립운동자들은 대체로 이 단체들의 어느 하나에 망라되게 되였다.

 

 

《참의부》, 《정의부》,《신민부》가 차지한 지역도

 

이때부터 중국 동북지방에서는 세력권을 넓히기 위한 민족주의자들의 싸움이 주로 이 3부사이에서 벌어졌으며 이러한 독립군운동과 독립운동단체에서의 호상 반목과 질시, 세력싸움은 부르죠아민족운동의 전면적인 쇠퇴몰락을 촉진시켰다.

△ 부르죠아민족운동상층분자들의 매국배족적책동

3.1인민봉기후 자산계급출신의 민족운동자들은 그 대부분이 반일애국운동을 포기하고 투항변절하여 일제의 앞잡이로 굴러떨어졌다.

이리하여 우리 나라 부르죠아민족운동은 3.1인민봉기후 전면적인 조락과정을 걷게 되였다.

- 부르죠아민족운동의 조락과정은 민족개량주의가 대두한데서 표현되였다.

일제침략자들은 이 시기 조선사람이 나라의 《독립》을 이룩하려면 일제의 통치를 반대하여나설것이 아니라 그에 협력하여야 하며 일본의 식민지통치밑에서의 자치권을 얻기 위해 힘써야 하고 문화를 향상시키고 경제를 발전시키며 민족성을 개량해야 한다고 설교하였다.

이 설교를 통채로 받아문 민족개량주의자들은 《민족개량》과 《실력양성》의 보자기를 쓰고 교육과 산업의 《진흥》을 떠들었고 각 개인의 《자아수양》을 떠들었으며 《계급협조》와 《대동단결》, 《민족자치》를 떠들었다.

1922년 말 서울에서는 민족개량주의자 리광수의 배후조종밑에 《자작회》라는 개량주의단체가 조작되였으며 1923년 1월에는 《조선물산장려회》가 조작되였다.

《민족자치》와 《민족성의 개량》, 《실력양성》 등을 기본내용으로 벌린 민족개량주의자들의 책동은 우리 인민의 반제혁명의식을 마비시키며 반제민족해방운동의 발전을 가로막기 위한 극악한 매국배족적책동이였다.

- 부르죠아민족운동의 조락과정은 해외에 있던 부패타락한 부르죠아민족운동상층분자들의 매국배족적책동에서도 표현되였다.

1919년 4월 중순 상해에서 조직된 《상해림시정부》는 파벌싸움을 일삼으면서 나라의 독립을 《청원》하러 다니는 구걸행각놀음으로 민족적존엄을 훼손시키는 매국배족적책동을 감행하였다.

그들은 1919년 빠리강화회의때 미국대통령 윌슨의 기만적인 《민족자결주의》에 환상을 가지고 《조선독립청원서》를 제출하였다.

이러한 《독립청원운동》은 조선인민의 애국적지향에 역행하며 우리 인민의 민족적존엄을 훼손시키는 매국배족적책동이였다.

민족개량주의자들의 매국배족책동의 주요측면의 다른 하나는 인민수탈책동이였다.

《상해림시정부》는 조직되기가 바쁘게 《인두세》의 징수에 관한 《정부명령》이니, 《국무원》의 《시정방침》이니 하는것들을 련이어 발포하였다.

다른 한편 《공채》도 발행하였는데 1919년 7월에만 하여도 그것은 2 000만원에 달하였다.

《림시정부》가 여러가지 방법으로 거두어들인 《운동자금》은 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쓰이지 않고 《징수원》들의 《교제비》로, 《림시정부요인》들의 부패타락한 생활자금으로, 《청원운동》자금 등으로 망탕 쓰이였을뿐이였다.

이와 같이 부르죠아민족운동의 전면적인 파산몰락과정은 3.1운동을 계기로하여 우리 나라에서 부르죠아민족운동시기가 종말을 고하였다는것을 다시한번 확증하여준다.

1920년대에 들어서면서 로동계급은 대중의 반일운동을 민족개량주의의 영향에서 해방하며 애국적반일력량을 자기주위에 묶어세우기 위한 투쟁을 벌려나갔다.

이리하여 3.1운동이후 우리 나라에서는 로동계급을 선두로 하는 민족해방운동의 새로운 시기가 시작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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