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1868년, 1871년 미제의 강도적무력침공과 그 격퇴

 

△ 1868년 미국침략선《쉐난도아》호와 《챠이나》호의 침입을 물리친 조선인민의 투쟁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미제국주의자들은 첫 침략기도에서부터 수치스러운 참패를 당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나라에 대한 침략과 략탈만행을 끊임없이 감행하였으며 조선인민앞에 영원히 씻을수 없는 수많은 죄악들을 저질렀습니다.》

미국침략자들은 1866년에 침략선《셔먼》호를 대동강으로 침입시켰다가 수치스러운 참패를 당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응당한 교훈을 찾을 대신 또다시 우리 나라에 대한 침략행위를 더욱 악랄하게 감행하였다.

 

 

미국침략자들은 《셔먼》호사건을 구실로 1868년에 침략선《쉐난도아》호를 대동강에 침입시켜 평양성을 공격하여 조선봉건정부의 이목을 쏠리게 한 다음 침략선《챠이나》호를 충청도 아산만에 침입시켜 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의 묘를 도굴하여 그 유골을 훔쳐낸 다음 그것을 미끼로 삼아 조선봉건정부와 불평등적인 예속조약을 맺을것을 계획하였다.

- 미국침략자들은 미리 작성된 면밀한 계획에 따라 1868년 3월 18일 《쉐난도아》호를 황해도 풍천부(오늘의 황해남도 과일군)앞바다에 침입시켰다.

미해군중좌 페비거의 지휘밑에 대구경포 1문, 보통대포 8문과 230여명의 인원으로 편성된 《쉐난도아》호는 이때부터 황해도와 청천강이남지방의 연해를 오르내리며 총포탄을 마구 쏘아댔으며 대동강으로 침입할 기회만을 노리고있었다.

미국침략자들의 이러한 침략행위는 조선인민의 민족적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이러한때 열렬한 애국자이신 김응우선생님께서는 나라를 위기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일떠선 평양인민들의 앞장에 나서시였다.

김응우선생님께서는 진지방어전법을 내놓으시고 인민들을 불러일으켜 대동강연안일대를 견고한 요새로 전변시키시였다.

선생님의 발기에 호응하여 만경대인민들이 토성쌓기에 떨쳐나섰으며 3월 말에는 만경대계선에 적들을 막아낼수 있는 견고한 토성이 축성되였다.

김응우선생님께서는 요새축성사업과 함께 의용병들을 조직하기 위한 활동도 정력적으로 벌리시였다.

그리하여 3월 26일 오위장 정원의 인솔밑에 각 읍의 포수 50명이 동진으로 떠났으며 27일에는 평양감영출신의 김응선, 전 별장 천정선이 각각 의용병 20명을 인솔하여 보산과 정이산으로 떠났고 29일에는 강서현에서 의용병 300명이 이안포에 파견되였다.

미국침략자들은 4월 4일에 《쉐난도아》호에 배속된 종선을 동진포대앞까지 침입시켜 수로측량과 정찰을 감행하였다.

미국침략자들은 지형상 중요한 동진포대앞에서 크게 저항을 받지 않게 되자 안심하고 4월 7일 아침에 평양성을 침공할 목적으로 대동강하구로부터 기여들기 시작하였다.

《쉐난도아》호가 동진포대와 철섬사이를 뚫고 대동강을 거슬러 오르려고 하자 동진포대를 지키고있던 의용병과 군인들은 적함에 불의의 집중포화를 들씌워 격퇴하였다.

다음날 미국침략자들은 삼화부앞바다에 있는 비련도에 기여들어 조선봉건정부에 저들의 편지를 전달할것을 강요하고 달아났다.

미국침략자들은 그후에도 조선연해를 싸다니면서 침략목적을 이루어보려고 날뛰였으나 이르는곳마다에서 조선인민의 반침략투쟁앞에 실패를 면치 못하였다.

- 한편 미국침략자들은 미리 짜놓은 행동계획에 따라 침략선《챠이나》호에 발동선 《크레타》호를 달고 4월 16일 충청도 아산만에 침입하였다.

이 해적단은 상해주재 미국총령사관의 이전 통역이였던 젠킨스를 우두머리로 하고 프랑스선교사 페론을 길잡이로 하여 300여명으로 구성되여있었다.

4월 19일 이른새벽 《챠이나》호로부터 《크레타》호와 2척의 고기배에 옮겨탄 100명의 미국해적의 무리들은 밀물을 리용하여 삽교천을 거슬러올라 목적지인 구만포에 기여들었다.

미국해적들은 저들의 정체를 가리우기 위하여 짜리로씨야군대로 가장한후 매국적인 카톨릭교도들의 길안내를 받으면서 남연군묘로 향하였다.

해적들은 도중에 덕산군 지방관청을 불의에 습격하여 무기를 탈취하고 오후 5시경에 덕산군 현내면 가동에 기여들었다.

그리고는 곧 남연군묘를 파헤치기 시작하였다.

 

 

해적들은 밤새워 무덤의 한쪽구석을 파헤치였다.

날이 밝아올 때 가동인민들이 놈들의 략탈행위를 발견하고 용감하게 싸웠다.

당시의 기록에서는 《가동주민들이 죽음으로 항거하였다.》고 전하고있다.

우리 인민의 반격에 질겁한 미국해적들은 도망치지 않을수 없었다.

침략자들은 도망치면서도 덕산군 하평리 후포부락에서 무고한 인민들의 집을 습격하여 재물을 략탈하는 만행을 감행하였다.

그런데 남연군묘도굴책동이 파탄되자 미국침략자들은 저들의 수치스러운 참패와 침략행위를 가리우기 위하여 《…남의 무덤을 파는것은 례의가 없는 행동에 가깝지만 무력을 사용하여 백성들을 도탄속에 빠뜨리기보다는 나으므로 하는수 없이 그렇게 하였다.》고 하면서 회유와 기만, 위협과 공갈로써 영종도첨사를 통하여 조선봉건정부를 굴복시켜보려고 하였다.

그러나 미국침략자들의 교활한 책동은 우리 인민의 강력한 민족적분격을 자아내게 하였을뿐이였다.

그 어떤 방법으로도 조선인민을 굴복시킬수 없게 되자 악에 받친 미국침략자들은 4월 25일 영종도의 민가에 침입하여 방화, 략탈 등 갖은 만행을 감행하다가 이곳 인민들과 군인들의 강력한 타격을 받고 4월 26일 제소굴로 도망치고말았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대동강하구에 침입하여 날뛰던 침략선《쉐난도아》호도 도주하였다.

이처럼 음흉하고 교활한 미국침략자들의 침략기도는 완전히 실패하고말았다.

△ 1871년 미국침략자들의 대규모적인 무력침공을 물리친 조선인민의 투쟁

미국침략자들은 남연군묘도굴책동이 실패한후에도 조선에 대한 침략야망을 버리지 않고 대규모적인 무력침공을 감행하는 길에 들어섰다.

 

 

- 미국은 대규모적인 침략으로 조선봉건정부를 굴복시키려고 하였다.

1869년에 미국정부는 미국본토로부터 4척의 군함을 극동에 파견하여 미국아시아함대에 배속시키고 해외침략에 이골이 난 살인마 로제쓰를 미국아시아함대사령관으로 임명하여 이자의 지휘밑에 조선전쟁을 가상한 전투훈련을 벌렸다.

그리고 미국 켈리포니아주지사였던 로우를 청국주재 미국공사로 임명하고 이자에게 조선침략의 《전권》을 위임하였다.

로우와 로제쓰는 1871년 3월에 일본 나가사끼에 기여들어 이곳에서 5척의 군함과 80문의 대포, 1 230명의 침략군으로 함대를 뭇고 조선침략을 위한 최종적인 무력침공준비를 갖추었다.

 

 

준비를 끝낸 미국침략함대는 로우와 로제쓰의 지휘밑에 1871년 4월 강화도 남쪽 물치도부근에 침입하였다.

미국침략자들이 물치도부근에 기여들자 조선봉건정부는 강화해협과 한강일대의 방어를 강화하는 한편 미국의 침략행위를 추궁하고 당장 물러갈것을 요구하였다.

이에 대하여 미국침략자들은 오히려 침략적인 《항해 및 통상조약》을 체결할것을 강요하면서 오만한 자세로 나왔다.

미국침략자들은 4월 14일 서울로 가는 길목에 있는 손돌목에 침입하였다.

광성진포대, 덕진포대, 덕포진포대의 수비병들은 적함이 사격권안에 기여들자 집중포격을 들이대여 주력함《모노카시》호를 파손시켜 한쪽으로 기울어지게 함으로써 적들이 도망치지 않을수 없게 하였다.

미국침략자들은 4월 23일 다시 강화도에 달려들었으며 그 주력은 함대의 엄호밑에 초지진에 기여들었다.

초지진첨사 리렴이 지휘한 수비병들은 대담한 야간기습전으로 적 100여명을 살상하였다.

불의에 타격에 겨우 살아남은 적들은 도망치고말았다.

4월 24일 미국침략자들은 참패를 만회하여보려고 광성진으로 달려들었다.

이날 이른새벽부터 적들은 함포사격의 엄호를 받으며 두개방향으로 공격해왔다.

진무중군 어재연을 선두로 한 70여명의 광성진수비병들은 근 10배에 달하는 우세한 적들과 맞서 용감히 싸웠다.

 

 

애국심에 불타고있던 수비병들은 적들에게 명중탄을 퍼붓는 동시에 성벽에 올라서서 돌벼락을 안기고 흙을 쥐여뿌리면서 한치한치의 땅을 지켜 용감히 싸웠다.

함포사격으로 성벽이 무너지고 성안으로 미국침략자들이 밀려들자 애국적군인들은 육박전을 벌려 마지막 한사람이 남을 때까지 희생적으로 싸워 적들에게 섬멸적타격을 주었다.

광성진수비병들의 용맹성에 겁을 먹은 미국침략자들은 황급히 배를 타고 물치도부근으로 도망치고말았다.

당시 이곳 수비병들의 용감한 투쟁모습에 대하여 미국인들자신도 조선군대는 《비상한 용기를 가지고 응전해가며 성벽에 올랐다. 그들은 아군을 돌로 내려깠다. 무기가 없는 경우 그들은 침입자들의 눈을 멀게 하려고 손으로 흙을 쥐여 뿌렸다. 그들은 한치한치의 땅을 가지고 싸웠으며 죽기를 각오하고 싸웠다.》라고 썼다.

또한 로우는 자기 나라 정부에 낸 보고서에서 《조선사람들은 결사적으로 싸울것을 결심하였다. 그들의 용감성은 일찌기 볼수 없었던것으로 세계 어느 민족도 조선사람들의 용감성을 따를수 없을것이다.》라고 비명을 질렀다.

대규모적인 무력침공으로써도 침략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미국침략자들은 또다시 위협적인 외교의 방법으로 조선봉건정부를 굴복시켜보려고 꾀하였다.

그러나 조선봉건정부는 적들의 강요에 대하여 《…수천년동안 례의를 숭상해오는 나라로서 어찌 개, 돼지같은 놈들과 화친할수 있겠는가.》고 하면서 단호히 거절하였다.

바로 이러한 시기에 조선인민의 반침략투쟁기세는 더욱 고조되여갔다.

애국적인민들은 서울과 각 도소재지 그리고 중요한 길목마다에 《서양오랑캐들이 침범하니 싸우지 않으면 화친하는것이요, 화친을 주장하는것은 나라를 파는것이다. …우리의 천만년자손들에게 이것을 경고하노라.》라는 반침략내용의 《척화비》들을 세우고 미국침략자들을 완전히 격멸하기 위한 싸움에 떨쳐나섰다.

조선인민의 반침략투쟁기세앞에 어쩔수 없게 된 미국침략자들은 5월 16일 드디여 조선에서 쫓겨나고말았다.

이것을 력사에서 《신미양요》라고 부른다.

1871년 미국침략자들의 대규모적무력침공도 이처럼 수치스러운 참패로 끝났다.

이와같이 19세기 60~70년대 초에 우리 인민은 유미자본주의렬강의 침략을 반대하는 투쟁에서 빛나는 승리를 쟁취하였다.

우리 인민이 이 투쟁에서 승리할수 있었던것은 온 민족이 나라의 독립과 민족의 영예를 지키기 위한 반침략투쟁에 한결같이 떨쳐나섰기때문이다.

조선인민의 반침략투쟁경험은 아무리 근대적기술로 무장한 침략세력도 민족의 단결된 힘앞에서는 무력하며 패배를 면치 못한다는 진리를 확증하여주었다.

- 조선인민의 이 투쟁에서의 빛나는 승리는 거대한 력사적의의를 가지였다.

◦ 유미자본주의에 의한 식민지화의 위험성으로부터 조국을 구원하고 나라의 자주권과 민족적존엄을 지켜냈다는데 있다.

◦ 조선인민의 민족적각성을 크게 높여주었으며 자본주의침략을 반대하여 싸우던 동방의 여러 나라 인민들에게도 고무적인 영향을 주었다는데 있다.

◦ 침략자들에게 커다란 공포를 안겨주었다는데 있다.

◦ 부르죠아개혁운동의 대두와 그 발전에 고무적영향을 주었다는데 있다.

이처럼 유미자본주의침략자들을 쳐물리친 우리 인민의 투쟁의 빛나는 승리는 민족의 존엄을 지켜내고 우리 나라 반침략투쟁사를 장식한 거대한 력사적사변이였다.

 

복습문제

ㅡ미국침략선 《셔먼》호의 침입목적은 무엇인가?  

ㅡ미제가 남연군묘를 도굴하게된 목적은 어디에 있는가? 

내리적재 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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