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김응우선생님을 선두로 한 평양인민들에 의한 미국침략선
《셔먼》호의 격침, 1866년 프랑스침략선격퇴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지구상에는 미제국주의의 침략의 마수가 미치지 않는 곳이 없으며 미제국주의의 침략위협을 받고있지 않는 나라가 없습니다.》

△ 김응우선생님을 선두로 한 평양인민들에 의한 미국침략선 《셔먼》호의 격침

ㅡ 미국침략자들은 우리 나라에 《셔먼》호를 침입시키고 강도적만행을 감행하였다.

1860년대에 이르러 자본주의렬강들은 제국주의에로의 이행을 앞두고 조선을 식민지로 강점하려는 침략행위를 본격적으로 감행하였다.

이 시기에 자본주의렬강들가운데서 우리 나라에 대한 무력침략에 앞장선것은 조선인민의 철천지원쑤 미국침략자들이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미제국주의는 《셔먼》호의 침입으로부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100여년동안이나 우리 나라를 침략하여온 조선인민의 철천지원쑤이라고 교시하시였다.

미국침략자들은 《셔먼》호의 조선침략계획을 면밀히 세운데 기초하여 침략을 단행하였다.

미국침략자들은 남북전쟁(1861~1865년)후 조선침략을 더는 미룰수 없는 절박한 문제로 보고 우리 나라를 주되는 침략대상으로 삼았다.

미국침략자들은 조선침략을 실현하기 위해 완전무장을 갖춘 침략선《셔먼》호를 조선침략의 척후대로 내세웠다.

원래 《셔먼》호는 1861년에 미국남부군에 소속된 군함으로 건조되여 《프린쎄스 로이얼》(제일공주)호라는 이름을 달고 남북전쟁에 참가하였다가 북부군에 나포되였다.

1863년에 북부군에 의하여 수리개조된후 살인장군으로 악명떨친 북부군 미씨씨피방면군 사령관 셔먼의 작전수행에 참가하였다.

남북전쟁이 끝나자 미국통치배들은 《프린쎄스 로이얼》호의 이름을 《제너럴 셔먼》(셔먼장군)호라고 고쳤다.

 

 

침략선 《셔먼》호

 

《셔먼》호의 길이는 60.085m, 너비는 8.235m, 높이는 9m이며 배에는 2개의 보이라와 1개의 굴뚝, 2개의 돛대와 4개의 돛, 4문의 포를 가지고있었다. 전투성원은 90명이였다.

《셔먼》호는 순수 상선이 아니라 증기기관과 돛을 리용하고 추진기까지 달린 당시로서는 가장 발전된 무장함선이였다.

미국침략자들은 조선침략에 앞서 《셔먼》호를 테네씨주 륙군후방부에 이관하고 그 배를 악명높은 미국장교인 프레스톤의 개인《무역선》으로 위장시키고는 그가 개인의 건강때문에 《산천구경》을 떠났고 중국의 《리권보호》로 천진으로 항행하는듯이 꾸며댔다.

1865년 말 미국으로부터 태평양을 건너 다음해 여름 중국천진에 도착한 《셔먼》호는 《메도우스상사》와의 그 무슨 《계약》이요 뭐요 하면서 순수 상업적목적을 위해 조선으로 가는듯이 꾸며 침략선을 평화적인 상선으로 위장하였다.

준비를 끝낸 《셔먼》호의 침략무리들은 1866년 6월 18일 중국 천진을 떠나 6월 28일 산동반도 지부를 거쳐 7월 7일에 대동강하구에 침입하였다.

1866년 미국침략선 《셔먼》호의 침입은 군함과 대포소리로 조선봉건왕조를 위협하여 불평등조약을 맺음으로써 략탈적인 조선침략의 길을 열어놓으며 평양부근의 고대왕릉들에 묻혀있는 금은보화를 략탈하려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미국침략자들은 선교사로서 카톨릭교탄압때 간신히 살아 도망친 토마스놈을 길잡이로 내세워 대동강을 거슬러 내륙깊이 기여들었다.

이리하여 조선에 대한 미제의 군사적침략의 첫 력사가 시작되였다.

ㅡ 김응우선생님을 선두로 하는 평양일대인민들은 미국침략선《셔먼》호를 격멸하고 나라의 자주권과 민족의 존엄을 영예롭게 지켜냈다.

당시 우리 나라의 군사적형편은 적의 배를 공격할만한 무기하나 변변한것이 없었다.

정체모를 《이양선》이 대동강을 따라 기여오르자 평안도 룡강현과 황해도 황주목의 관리들이 그들의 국적과 대동강에 기여든 목적을 물었으나 그들은 국적도 똑바로 대지 않고 《통상》이요,《무역》이요 하면서 침략적정체를 가리워보려고 책동하면서 위협공갈까지 하였다.

미국침략자들은 1866년 7월 13일 두루섬앞까지 침입하여 정탐행위를 감행하면서 륙지에 기여올라 부녀자들을 릉욕하고 재물을 략탈하였다.

7월 18일에는 대동강에서 경계근무중에 있던 평양감영의 중군을 랍치하여 억류하는 만행을 감행하였다.

7월 19일 미국침략자들은 평양감영의 대표들과의 회담에서 파렴치하게도 저들이 물러가는 조건으로 쌀 1 000석과 많은 량의 금, 은, 인삼 등을 낼것을 요구하였다.

이러한 강도행위에 격분한 평양성안팎의 인민들은 불타는 적개심을 품고 미국침략자들과 싸우기 위하여 대동강기슭으로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이 투쟁의 앞장에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증조할아버님이신 김응우선생님께서 서계시였다.

김응우선생님께서는 만경대와 평양일대의 애국적인민들과 군인들을 조국방위의 성전에로 힘있게 불러일으키시였다.

7월 19일 애국적인민들과 군인들은 적들에게 활과 화승총으로 집중사격을 퍼부었으며 퇴역군인 박춘권은 혼자서 《셔먼》호에 뛰여들어 중군을 구원해냈다.

김응우선생님께서는 인민들의 불타는 애국심과 썰물과 밀물의 차이가 심한 대동강흐름의 특성, 강폭이 좁고 얕은 양각도여울목에 기여든 《셔먼》호의 상태 그리고 지난날 우리 선조들이 외적을 물리친 싸움에서 이룩한 경험 등을 헤아리시고 《화공전술》로 침략자들을 소멸해버릴데 대한 창발적인 발기를 하시였다.

 

 

미제무장침략선 《셔먼》호를 쳐부시는 투쟁의 앞장에 서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증조할아버님이신 김응우선생님

 

1866년 7월 24일에 미국침략선《셔먼》호를 완전히 격멸소탕하는 총공격이 시작되였다.

만단의 전투준비를 갖춘 결사대원들은 김응우선생님의 지휘밑에 화공전을 전개하였다.

결사대원들은 썰물을 리용하여 불배를 상류로부터 《셔먼》호쪽으로 떠내려보냈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평양감영의 군인들이 일제히 화승총과 활로 맹렬한 사격을 퍼부었다.

불배가 가증스러운 《셔먼》호에 부딪치면서 삼단같은 불길이 《셔먼》호를 단숨에 삼켜버렸으며 마침내 화약고가 폭발하였다.

요란한 폭음과 함께 침략선《셔먼》호는 대동강물속에 기울어져 들어갔다.

전투과정에 13명이 즉사하고 4명은 불에 타죽고 나머지는 강물에 뛰여들어 도망치다가 붙들려 처단되였다.

김응우선생님을 선두로 한 평양인민들이 침략선《셔먼》호를 격멸한 투쟁은 우리 나라를 침략하려고 미쳐날뛰던 미국침략자들을 반대하는 애국적이며 정의로운 첫 반미투쟁이였다.

김응우선생님을 선두로 하는 평양일대인민들은 미국침략선《셔먼》호를 격멸하고 빛나는 승리를 이룩함으로써 나라의 자주권과 민족의 존엄을 지켜내고 우리 인민들에게 승리의 신심을 안겨주었으며 이후시기의 반침략투쟁을 앙양시키는 중요한 계기를 열어놓았다. 

△ 1886년 프랑스침략선의 격퇴

미국침략선《셔먼》호를 격침시킨후 주되는 침략세력으로 등장한것은 프랑스침략자들이였다.

오래전부터 우리 나라에 대한 침략야망을 품고 선교사들을 침입시켜 침략준비를 해오던 프랑스침략자들은 1866년 초에 조선봉건정부가 정탐활동을 하던 프랑스선교사 9명을 처단한것을 구실로 무력침공을 감행하였다.

 ㅡ 프랑스침략자들의 제1차침입격퇴

윁남과 청나라침략에서 이른바《명성》을 떨친 극동파견 프랑스함대 사령관 로즈는 몇방의 총포소리만 울리면 조선인민을 쉽게 굴복시킬수 있다고 얕보고 1866년 8월 12일에 3척의 군함을 이끌고 강화도 남쪽 물치도부근에 침입하였다. 8월 18일 놈들은 강화해협을 지나 서울의 관문인 양화진과 서강까지 침입하여 위협사격을 감행하였다.

프랑스침략자들이 침입하였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각지 인민들은 조국과 민족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하여 투쟁에 떨쳐나섰다. 조선봉건정부는 군대를 동원하여 서울과 한강연안의 방비를 강화하는 한편 서울의 각 성문들에 원쑤격멸에로 일떠설것을 호소하는 글들을 써붙이였다.

조선봉건왕조도 군대를 동원하여 서울과 한강연안의 방비를 강화하는 한편 서울의 각 성문들에 원쑤격멸에로 일떠설것을 호소하는 글들을 써붙이였다.

조선인민의 충천한 사기와 항전태세앞에 질겁한 프랑스침략자들은 8월 23일에 황급히 도망쳤다. 그러나 프랑스침략자들은 조선에 대한 침략기도를 포기하지 않았다.

ㅡ 제2차침입격퇴

조선에 대한 침략기도를 포기하지 않은 프랑스침략자들은 7척의 군함과 2 500여명의 병력을 끌고 1866년 9월 5일 또다시 침입하였다.

프랑스침략자들은 먼저 강화도와 강화해협연안의 요새들을 제압한후 서울로 침입할 기도밑에 9월 6일에 강화해협을 따라 기여오르면서 무력시위를 하는 한편 함포사격의 엄호밑에 강화도의 갑곶진과 제물진으로 상륙하였다.

9월 8일 적들은 강화성에 대한 공격을 단행하였다. 이때 겁을 먹은 강화류수를 비롯한 봉건관리들은 미리 도망쳐버렸고 노비인 정수한, 정응원을 비롯한 인민들만이 적들과 용감히 싸웠다.

강화부를 점령한 프랑스침략자들은 성안의 귀중한 문화유산들을 파괴략탈하는 만행을 감행하였다. 또한 프랑스침략군 우두머리놈은 조선봉건정부가 프랑스선교사 9명을 죽인 대신에 조선사람 9 000명을 살해하겠다고 위협하는 한편 조선봉건정부에 프랑스선교사 처단에 직접 관계한 관리들을 제놈들에게 넘기라느니, 《배상금》을 내라느니, 불평등조약에 응하라느니 하는 등의 파렴치한 침략적요구를 강요하였다.

프랑스침략자들의 강도적인 침략만행에 대한 소식은 곧 온 나라에 알려졌다. 온 나라 인민들은 프랑스침략자들에 대한 민족적분노로 들끓었고 원쑤격멸에 한결같이 떨쳐나섰다.

나라의 여러곳에서 애국적인민들은 의용군을 조직하고 투쟁에 떨쳐나섰다. 한강류역일대에서만도 며칠사이에 4 000여명이나 되였다. 인민들은 쇠붙이를 모아 밤낮으로 칼과 창을 벼리고 활과 화살을 만들었으며 화승총들을 수리하였고 무기와 군량을 실어날랐다. 또한 적들이 서울로 침입하지 못하도록 한강에 여러가지 장애물들을 설치하였고 경기, 충청도, 평안도의 해안일대에 방어시설들을 갖추었다. 이러한 인민들의 높은 반침략기세에 고무된 애국적유생들은 왕에게 상소문을 내여 서양오랑캐들을 쳐물리치고 나라를 지킬것을 주장하였으며 봉건정부도 나라를 지킬 대책을 세우고 정규군을 동원하여 침략자들과 맞서싸우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경기, 부평으로부터 황해도 연백에 이르는 서해안일대에는 침략자들을 물리칠수 있는 준비가 갖추어졌다.

◦ 우리 인민들은 문수산성전투에서 프랑스침략군에게 첫 타격을 안기였다.

프랑스침략자들은 9월 18일 한강방비가 강화되자 륙로를 통하여 서울로 침입할 기도밑에 강화도대안의 통진으로부터 서울로 직통하는 길의 첫 대목에 자리잡고있는 중요한 요새인 문수산성으로 달려들었다. 이때 문수산성에는 불과 50여명의 방어군이 배치되여있었다.

이날 오전 10시경에 100여명의 침략군이 산성의 남문으로 기여들기 시작하자 초관 한성근의 지휘밑에 방어군은 적들을 맏받아나가 50~60명이나 쓸어눕혔다. 이리하여 문수산성의 용감한 방어군은 륙로를 통하여 서울로 침입하려던 침략자들의 기도를 좌절시켰다.

◦ 프랑스침략군에 대한 우리 인민의 두번째타격은 정족산성전투에서 벌어졌다.

문수산성전투에서 참패를 당한 적들은 서울침공기도를 버리고 강화도의 주요한 요새인 정족산성에로 달려들었다.

1866년 10월 1일 량헌수의 지휘밑에 500명의 방어군은 정족산성으로 기여드는 적들을 모조리 소탕하기 위하여 방어태세를 튼튼히 갖추는 한편 산성의 동문앞에 은밀히 매복진을 펴고 적들이 달려들기를 기다렸다. 침략군이 매복권안에 기여들자 우리 군사들은 원쑤들에게 복수의 명중탄을 퍼부었다. 불의의 타격을 받은 적들은 혼란에 빠져 뿔뿔이 도망치고 말았다.

첫 타격을 받은 침략자들은 10월 4일에 160여명의 병력으로 또다시 돌격해왔다.

우리 군대의 맹렬한 반격으로 순식간에 수십명이 쓰러지자 적들은 퇴각하기 시작하였다.

이때 량헌수의 지휘밑에 우리 군대는 성문을 열고 나와 패주하는 적들을 추격하여 심대한 타격을 주었다.

정족산성전투에서 섬멸적타격을 받은 프랑스침략군은 강화성안에서 파괴와 방화, 략탈만행을 감행한후 갑곶나루를 거쳐 황급히 도망치기 시작하였다.

10월 8일 덕포진 손돌목을 지키던 수비병들은 적함선에 련속 포격을 가하였다.

그후 프랑스침략자들은 우리 나라 연해를 빙빙 돌다가 다시는 기여들지 못하고 10월 12일 완전히 쫓겨나고 말았다.

이처럼 우리 나라 력사에서 《병인양요》(丙寅洋擾)라고 불리운 프랑스침략자들의 무력침공은 적들의 수치스러운 참패로, 조선인민의 빛나는 승리로 끝났다.

1866년 미국, 프랑스침략자들의 무력침공을 격퇴한 조선인민의 투쟁은 아메리카, 유럽자본주의침략자들에게 커다란 타격을 주고 조선인민의 민족적각성을 더욱 높여주었을뿐아니라 우리 인민모두가 떨쳐나서 애국적헌신성을 발휘하여 싸운다면 그 어떤 침략자도 쳐물리치고 승리할수 있다는 신심을 안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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