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문학과 예술

 

△ 근대문학

우리 인민들은 근대시기에 와서도 이름난 작품들을 수많이 창작하여 인류문화의 보물를 풍부히 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19세기 후반기 문학은 매우 어려운 조건에서도 진보적이며 애국적인 성격을 띠면서 발전하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문학예술은 시대의 반영이며 시대를 떠나 문학예술의 발전에 대하여 생각할수 없습니다. 당대의 생활을 폭넓고 깊이있게 반영한 작품이라야 걸작이라고 할수 있으며 그러한 작품이 결국 후세에 남는것입니다.》

ㅡ 19세기 말~20세기 초에 반침략반봉건적애국주의사상과 현실주의적인 시가문학이 수많이 창작되였다.

◦ 이 시기 문학의 새로운 발전을 보여주는 중요한 특징의 하나는 반침략애국투쟁주제의 작품들이 왕성하게 창작된것이다.

19세기 중엽에 유미자본주의렬강의 침략을 반대하는 인민들의 투쟁과 침략자들에 대한 적개심이 반영된 작품들이 나왔다.

대표적인 작품들로서는 신재효의 가사 《괘씸한 양국되놈》, 류린석의 시《양포》, 《강화도양요》 등을 들수 있다.

일본침략자들의 강도적본성을 폭로하고 놈들을 반대하는 우리 인민의 투쟁을 반영한 작품들이 적지 않다.

 

할미령 꼭대기 진을 치고

왜병정 오기만 기다린다

 

19세기 후반기 인민들속에서 창작되고 널리 불리운 이 민요는 우리 인민의 앙양된 투쟁기세와 반일애국감정을 그대로 보여주고있다.

◦ 19세기 후반기에 반침략애국투쟁주제의 작품들과 함께 반봉건투쟁을 주제로 한 작품들도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였다.

봉건통치배들의 악정을 반대하는 농민들의 투쟁을 반영한 문학작품들이 많이 창작되여 인민들속에 널리 보급되였다.

대표적인 작품들로서 민요 《경복궁타령》, 《병정가》, 참요 《가보세》, 동요 《녹두새》 등이 있다. 민요 《병정가》는 당시 우리 인민들의 반침략반봉건투쟁모습을 생동하게 보여주고있는 작품의 하나이다.

민요는 일본침략군과 그와 결탁한 봉건통치배들을 통쾌하게 무찌르는 농민봉기군의 충천한 투쟁기세를 생동하게 보여주고있다.

◦ 19세기 후반기에 우리 나라에서 자라나고있던 자본주의적관계의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들도 적지 않게 창작되였다. 

리용식의 가사 《동점별곡》은 그 실례의 하나로 된다.

19세기 말~20세기 초에 반일의병투쟁을 반영한 문학작품들이 많이 나왔다.

의병가요로서 대표적인 작품은 홍범도의병대를 찬양한 《의병대가》와 의병대오의 씩씩한 투쟁모습을 형상적으로 노래한 《군바바》이다.

가요 《의병대가》에서는 의병들의 활동과 멸적의 기상을 전통적인 민요조로 형상하였다.

가요는 두개 련에 5구체로 씌여졌는데 매련의 전반부분의 2개 구에서는 의병대의 용감무쌍한 군사활동을 《화승대》, 《5련발탄환》과 같은 군사장비와 승리의 행군모습을 통하여 노래하였다.

가요의 후반부분 3개 구에서는 조흥구를 리용하면서 의병대의 멸적의 기상을 통쾌하게 노래하였다.

 

에헤야 에헤 에헤야 에헤

에헤 에헤 에헤야 

왜적의 군대가 막 쓰러진다

 

가요는 의병대의 멸적의 투지와 용맹을 왜놈들의 멸망의 몰골과의 대조속에서 보여주면서 의병대에 대한 인민들의 지지성원을 반영하였다.

《의병대가》는 농민청년들의 생활감정을 알기 쉽고 친근하게 전통적인 민요형식에 담아 노래함으로써 농민들을 기본으로 한 의병대원들속에서 널리 불리워졌다.

반일의병들과 인민들의 투쟁정신과 애국적위훈을 반영한 구전설화작품으로서 《평산의병설화》, 《백명굴전설》, 《개구리포》, 《애국부인》 등이 있다.

류린석, 최익현, 저해산 등 반일의병장들과 황현, 김택영 등 애국적시인들에 의하여 문학작품들이 창작보급되였다.

의병장 류린석은 《세상을 걱정하여》, 《국내인민들에게》, 《의병들에게》, 《매국노를 저주한다》, 《5적7적놈들에게》, 《노래읊기를 그만 두리라》를 비롯하여 수많은 시작품들을 썼다.

그는 시작품들에서 높은 애국적격정과 일제침략자들과 매국역적들에 대한 중오심을 강하게 표현하였다.

의병장 최익현은 시 《이 몸을 일으켜서》에서 희생되는 순간까지 적들에게 굽히지 않는 도도한 민족적기상과 애국적절개를 형상하였으며 의병장 전해산은 시 《옥중에서 읊노라》에서 일제침략자와 끝까지 싸우지 못하게 된 통분한 심정을 조국에 대한 사랑의 감정과 결부하여 절절하게 노래하였다.

류린석, 최익현, 전해산의 시작품들에서 흐르고있는 조국에 대한 사랑의 감정은 봉건적인 충군사상에 기초한 사상적제한성이 있으나 높은 애국적열정과 매국역적들에 대한 치솟는 분노, 불굴의 투쟁정신과 민족적기개를 힘있게 노래한것으로 하여 당시 인민들을 각성시켜 반침략애국투쟁에로 불러일으키는데 이바지할수 있었다.

ㅡ 19세기 말~20세기 초에 시문학과 함께 산문문학에서도 커다란 발전이 이룩되였다. 이 시기 전기소설, 우화소설 등 소설작품들이 많이 창작발표되였다.

◦ 지난날 애국명장들의 투쟁업적을 서술한 《을지문덕전》, 《리충무공전》, 《강감찬전》, 《최도통전》, 《양만춘전》 등을 비롯한 수많은 전기작품들이 나왔다.

이러한 전기문학작품들은 외래침략자들을 쳐물리치고 민족의 존엄과 나라의 독립을 수호하는 싸움에서 애국적헌신성과 용맹과 지략을 떨친 애국명장들의 투쟁실기를 통하여 인민들속에서 반침략애국사상을 고취하고 그들을 나라의 자주독립을 위한 성스러운 투쟁에로 고무하였다.

◦ 이 시기 인민들속에서 반침략애국사상을 고취하는데 도움을 준것은 풍자적인 우화소설이였다. 대표적인 우화작품으로서는 안국선이 쓴 《금수회의록》과 장지연이 쓴 《호랑이를 등에 업은 여우》, 《교활한 원숭이》 등이 있다.

이와 같은 우화소설작품들에서는 일제의 침략적본성과 봉건통치배들의 반인민적행위, 친일매국역적들의 매국배족행위, 반동관료배들과 량반들의 비굴성 등을 풍자해학적인 수법으로 폭로규탄하고있다.

작품들에서는 부르죠아민족주의사상과 봉건적륜리도덕관념, 종교사상 등을 담고있음으로 적지 않은 제한성을 가지고있다. 그러나 이러한 소설작품들은 당시 우리 나라 우화소설발전에 긍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 19세기 말~20세기 초에 산문분야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것은 신소설의 출현이였다.

신소설이란 말은 고대소설에 비하여 새로운 시대적특성을 가진 근대소설이란 뜻을 의미한다.

선행시기의 실학파문학, 평민음악에서 이룩된 창작경험과 형상수법을 더욱 발전시키면서 19세기 말~20세기 초의 신소설에 이르러 중세기적환상이 결정적으로 극복되고 진실한 형상창조의 귀중한 경험이 이룩되였다.

신소설은 일련의 새로운 특징을 가지고있다. 그것은 당대 현실생활의 이러저러한 측면을 소재로 하여 《재수외학》, 《독립자주》, 《민권옹호》 등 근대사상을 고취하고있는것이다. 또한 고대소설의 도식적인 틀에서 벗어나 자기 시대의 인물과 사건들에 기초한 생활을 주제로 하고있으며 고사람용, 한문식표현의 피해가 적지 않게 가셔지고 언문일치의 근대적문체에로 접근하는 새로운 발전을 가져온것이다.

신소설작가로서 대표적인 사람은 리인직과 리해조였다. 신소설이란 말을 처음으로 사용한 리인직은 《혈의루》, 《치악산》, 《귀의성》, 《은세계》 등 많은 신소설들을 창작하였으며 극단인 《원각사》를 조직하고 신극운동을 벌린 근대적소설의 대표자, 근대적연극운동의 발기자였다.

리해조는 일생을 작품창작활동에 바쳐 《자유종》, 《빈상설》, 《구마검》을 비롯하여 수많은 소설을 썼으며 《춘향전》, 《심청전》, 《흥부전》, 《토끼전》을 신소설문체로 개작하였고 외국작품인 《철세계》를 번역소개하였다.

리해조는 많은 소설작품을 통하여 당대의 현실생활을 사실주의적으로 반영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그러나 그는 시대와 인민이 제기하는 초미의 문제를 전면적으로 다루지 못하고 많은 경우 가정륜리적주제의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였다.

신소설은 자본주의적관계의 장성에 따라 허물어져가는 봉건사회의 부패상과 몰락과정을 사실주의적화폭으로 그리고 나라의 독립과 문명개화, 민권옹호. 미신타파 등 사상을 고취함으로써 당시 인민들을 반봉건애국사상으로 교양하고 계몽시키는데서 적지 않은 역할을 하였다.

신소설은 작가들의 계급적세계관적제한성으로 말미암아 봉건사회제도에 대한 비판이 철저하지 못하고 그것을 근본적으로 변혁하기 위한 과학적방도를 제시하지 못하였으며 일부 작품들에서는 인민들의 정당한 투쟁에 대하여 부정적인 태도를 표시하는 치명적인 약점도 가지고있었다.

ㅡ 1920년대에 들어서면서 변천된 현실과 새로운 시대적요구에 따라 프로레타리아문학이 발전하였다.

1922년에 우리 나라에서 첫 프로레타리아문학단체인 《염군사》가 조직되고 그에 뒤이어 1923년에 《파스큐타》가 조직되였다. 이러한 진보적인 문학단체들과 작가들을 하나의 통일적인 조직에 묶어세워야 할 요구로부터 1925년 8월에 《조선프로레타리아예술동맹》(카프)이 결성되였다.

《카프》는 반동적인 부르죠아문학예술을 반대하고 로동자들을 비롯한 무산대중의 리익을 옹호하는 진보적인 예술단체였다.

《카프》의 결성을 계기로 프로레타리아문학을 창조하기 위한 투쟁이 활발히 벌어졌다.

프로레타리아작가들은 일제의 비호조종밑에 대두한 부르죠아문학죠류를 반대하는 날카로운 투쟁을 벌리면서 로동자, 농민을 비롯한 근로인민대중의 비참한 생활과 자주성을 위한 그들의 투쟁을 반영한 문학작품들을 창작하였다. 이 시기 대표적인 프로레타리아작가들로서는 리기영, 조명희, 최서해, 송영, 기상좌, 류완희, 김창술 등이다.

이들의 대표적작품들로서 단편소설들인 《민촌》, 《농촌사람들》, 《탈출기》, 《늘어가는 무리》, 시작품들인 《폭풍우를 기다리는 마음》,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녀직공》, 《대도행》 등을 들수 있다.

그러나 이 시기 프로레타리아문학은 일련의 제한성을 가지고있다. 그것은 억압자, 착취자들에 대한 반항이 자연발생적인 형태로 개인적인 울분의 폭발로 그려지고있으며 작품의 사상성을 강조하면서 예술성을 응당한 높이에서 옳게 결합시키지 못한데 있다.

1920년대 전반기 프로레타리아문학은 착취사회의 계급적모순과 그 근원을 밝혀낸 주제의 적극성과 심각성, 착취사회에 항거해나선 긍정적주인공의 성격창조, 사실주의적묘사의 필치와 랑만주의적수법의 적극적인 도입 등 일련의 특성으로 하여 조선문학발전에 기여하였다.

△ 음악과 예술

19세기 말~20세기 초에 음악예술이 당대의 시대적특성을 반영하면서 발전하였다.

이 시기 음악예술에서 나타난 주요한 특징은 봉건적이며 중세기적인 음악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내용과 형식의 여러 분야에서 근대적인 새로운 발전이 이룩된것이다.

이 시기에 민요들이 수많이 창작보급되였고 군중가요인 창가와 창극을 비롯하여 계몽기가요들과 새로운 음악종류들이 발생발전하였으며 민간기악음악에서도 새로운 발전이 이룩되였다.

ㅡ 민간기악음악에서 새로운 발전이 이룩되였다.

◦  가야금병창양식이 이룩되였으며 《산조》와 같은 기악독주곡도 발전하였다. 가야금이 민간에 널리 보급됨에 따라 민간에서 가야금명수들도 나오게 되였으며 가야금독주곡도 발전하게 되였다. 가야금명수로 알려진 김창조에 의하여 1894~1895년경에 새로운 기악음악형식인 가야금산조가 완성되였다. 그리하여 산조는 우리 나라 기악음악의 우수한 유산의 하나로 되였다.

◦ 이 시기 양악대도 또한 새롭게 조직되였다.

우리 나라에서 최초의 양악대의 발전은 1900년에 50명으로 조직된 군악대로부터 시작되였다. 그후 몇년동안에 100명의 인원으로 늘어난 군악대는 우리 나라를 비롯한 여러 나라의 국가, 군민가, 무곡, 행진곡 등은 물론 서곡, 환상곡과 같은 큰 형식의 작품들로 구성된 곡목을 연주하였다.

◦ 이 시기 음악예술가육성사업에서도 새로운 발전이 이룩되였다.

민주주의적경향성을 가진 음악가들과 애국적문화계몽활동가들에 의하여 1900년 9월에 조양구락부라는 민간음악교육기관이 조직되였고 우수한 음악가들이 양성되였다.

조선을 강점한 일제는 민족음악의 발전을 가로막기 위하여 1915년에 리왕직양악대를 강제해산시키고 리왕직아악부의 활동을 방해하였으며 사립학교들에서의 창가수업을 엄격히 감시하고 탄압하였다. 그러나 일제의 탄압속에서도 민족음악을 고수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애국적인민들의 투쟁은 힘차게 벌어졌다.

1919년에 경성악대를 새로 조직하고 확대하였으며 1922년에는 《연악회》를 비롯한 진보적인 음악단체들을 조직하여 음악의 창작과 연주, 음악계몽활동으로 음악예술을 발전시켰다. 또 량심적인 교원들은 애국적인 내용이 담겨져있는 창가들을 묶은 가곡집을 출판하여 청년학생들속에 비밀리에 보급하였다.

◦ 1910년대 이후시기에 인민창작가요들도 많이 창작되였다.

대표적인 노래들은 《국치일가》, 《사발가》, 《신고산타령》, 《닐리리야》, 《아리랑》, 《독립운동가》, 《3.1운동가》, 《3.1만세가》, 《압록강의 노래》, 《망향가》 등을 들수 있다.

이밖에 이 시기 다른 나라에 망명해간 애국자들과 인민들속에서 《조국생각가》, 《조국사상가》, 《잘 있거라 고국산천》 등과 같은 애국적인 노래들도 수많이 창작보급되였다.

이와 같은 노래들은 창작가들의 계급적 및 세계관적제한성으로 하여 그 내용에서 옳바른 투쟁방도를 밝히지 못하였으나 망국의 운명에 처한 우리 인민들의 비통한 생활감정과 나라의 독립을 이룩하려는 투쟁결의가 담겨져있는것으로 하여 인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 1920년대에 량심적음악가들인 홍란파, 안기영, 리상준 등에 의하여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계몽기가요작품들이 수많이 창작되였다.

홍란파는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바이올린을 전공한 사람이며 음악의 창작, 연주, 지휘, 교육과 음악잡지와 악보출판 등 나라의 음악발전을 위하여 다방면적으로 활동한 재능있는 음악가였다. 그는 100여편의 동요곡밖에도 서정가요, 합창곡, 기악곡 등 수십편을 창작하였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으로서 《봉선화》, 《그리움》, 《옛 동산에 올라》, 《성불사의 밤》, 《입 다문 꽃봉오리》, 동요곡 《고향의 봄》과 기악곡 《애수의 노래》, 《하야의 성군》, 《여름밤의 별무리》 등이 있다.

홍란파의 노래들은 인민대중의 선진적인 지향과 당대사회의 시대적요구를 옳게 반영하지 못하였고 나라의 독립을 위한 투쟁방도를 제기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의 노래들은 일제놈들에게 빼앗긴 조국에 대한 열렬한 사랑과 인민들의 비참한 운명에 대한 생각을 민족적바탕이 진한 선률에 담아 진실하게 노래하였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

1920년대 홍란파와 함께 우리 나라 민족음악발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음악가로서 리상준을 들수 있다.

리상준은 음악교육가이며 작곡가이며 음악계몽활동가였다. 그는 교육을 목적으로 한 《최신창가집》, 《풍금독습중등창가집》, 《보통악전개요》 등 많은 음악책을 출판하였다. 특히 우리 나라 민족음악발전에 크게 기여한것은 그가 오랜세월 입으로 전해오던 인민음악들을 처음으로 채보하고 5선악보로 수집정리하여 출판한것이다. 그 대표적인 책으로서 《조선속곡집》, 《신선속곡집》, 《조선신구잡가집》 등이 있다.

이와 같이 애국적인 인민들과 량심적인 음악가들은 일제의 온갖 박해속에서도 민족음악을 지켜낼뿐아니라 그 발전을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렸다.

이리하여 우리 나라 음악예술의 근대적발전이 힘있게 추진되고 현대음악에로의 길이 개척되게 되였다.

◦ 근대시기에 우리 인민은 일제의 민족문화말살책동으로부터 민족무용을 지키고 발전시키기 위하여 줄기찬 투쟁을 벌리였다.

조선봉건왕조가 쇠퇴하는데 따라 궁중무용은 점차 민간무용으로 개작되기 시작하였고 인민들속에서 창작된 민속무용들이 널리 퍼지였다. 특히 1910년을 전후한 시기에는 일제침략자들을 반대하는 인민들의 투쟁모습을 형상한 무용들이 많이 창작보급되면서 발전하였다.

이 시기 인민들의 생활을 반영한 민속무용들이 많이 창작보급되였다.

당시 인민들속에서 널리 추어진 춤가운데서 대표적인 춤으로서는 《물장구춤》, 《박판춤》, 《시절윷놀이》, 《홰불놀이》, 《지경놀이》 등을 들수 있다. 그리고 예로부터 전해오던 《농악무》, 《탈춤》, 《마당놀이》, 《방천놀이》 등 여러가지 춤들이 인민들속에서 사랑을 받으며 널리 보급되였다. 이 시기 민속무용들은 대부분 낡은 봉건세력에 항거하며 외래침략을 반대하는 인민들의 투쟁기세를 아름답고 힘찬 민족적률동으로 진실하게 형상함으로써 민속무용발전에 긍정적영향을 주었다.

이 시기 지난날 봉건통치배들의 취미를 맞추던 궁중무용이 점차 인민대중의 정서와 취미에 맞는 무용으로 개작되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 또한 일제침략자들을 반대하는 애국적의병들의 투쟁모습을 형상한 새로운 무용작품들이 많이 창작보급되였다. 《군바바춤》, 《무사의 춤》, 《의병춤》, 《강계포수춤》 등은 그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이 춤들은 모두 원쑤를 무찌르는 인민들의 투쟁기세와 전투적인 생활을 반영한것으로 하여 민족무용발전에서 의의가 있다.

ㅡ 19세기 말~20세기 초에 미술도 발전하였다.

이 시기 대표적인 화가는 장승업, 조석진, 안중식, 리도영 등이였다. 이들에 의하여 동물그림, 꽃과 새그림들에서 근대적인 새로운 수법과 민족적인 색조의 발전이 이루어졌다.

장승업은 19세기 후반기에 조선화를 발전시킨 우수한 사실주의화가의 한사람이였다.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남의 집 종살이를 하면서 자란 그는 자기의 뛰여난 회화적재능으로 하여 동물, 새, 꽃, 인물그림분야에서 당시의 대표적인 화가로 되였다.

그의 작품으로서 《매화》, 《련못가의 물촉새》, 《게》,  《목동》, 《매》, 《가을》, 《꽃병》, 《말떼》, 《달리는 말》, 《미인도》 등을 대표적으로 들수 있다.

조석진의 《잉어》, 《참새》, 《잉어와 송사리》, 《국화와 닭》, 리도영의 《소나무와 사슴》, 《가을밤》, 《목련과 새》, 《꽃과 까치》, 《달밤의 기러기》, 《달 보고 짖는 개》, 안중식의 《산수도》 등은 이 시기 창작된 조선화작품가운데서 잘된 작품들이다.

이 시기 화가들은 봉건통치배들과 일제의 박해와 천시로 말미암아 자유로운 창작활동을 할수 없었다. 그리하여 이 시기 우리 나라의 미술은 크게 전진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복잡하고 혼란된 사회력사적환경속에서도 민족적량심을 진보적인 화가들은 조선화의 우수한 사실주의적화풍을 계속 고수하였다.

 

복습문제

ㅡ 대표적인 위정척사론자들과 그들의 견해에 대하여 

ㅡ 리제마의 4상의학설에 대하여 

ㅡ 《조선프로레타리아예술동맹》(카프)의 조직경위와 대표적인 동맹원들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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