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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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편 조선근대사회
제5장 근대문화
2. 과학과 기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로 빛나는 우리 민족은 오랜 옛날부터 과학적창조와 발명으로써 인류문화의 보물고를 풍부히 하는데 크게 기여한 훌륭한 전통을 가지고있습니다.》

조선봉건왕조말기 썩어빠진 봉건통치배들은 술이나 마시고 시나 읊으면서 우리 나라의 과학과 기술을 발전시킬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않았다.

그러나 인민들은 선행시기의 성과에 토대하여 과학기술을 일정하게 발전시켰다.

19세기 후반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우리 나라에서는 의학, 농산기술, 수학, 지리학, 력사학 등 과학과 기술의 여러 분야에서 일정한 발전이 있었다.

△ 의학과 농산기술 

― 이 시기 의학분야에서는 진보적인 의학자들속에서 보수적이며 비과학적인 측면을 비판극복하고 그것을 새롭게 발전시키며 신의학의 좋은 점들을 적극 받아들일데 대한 주장들이 나타났다.

 ◦ 리제마(1837~1900년)는 독특한 4상의학설을 내놓음으로써 고려의학발전에서 새로운 국면을 열어놓았다. 리재마는 1894년에 《동의수세보원》(4권)을 서술하여 새로운 4상의학설을 수립하였다. 그는 사람을 체형과 기질에 따라 4상 즉 태양, 태음, 소양, 소음의 4가지 형으로 나누고 그에 기초한 새로운 림상체계를 세워 치료예방법을 제시함으로써 당시까지의 의학사상 처음으로 되는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였다. 리제마의 4상의학설은 당시 우리 나라에서만 아니라 다른 나라들에까지 널리 보급되였다.

◦ 지석영은 고려의학과 신의학을 결합시키기 위하여 적극적인 활동을 벌렸다. 그는 우선 우두접종법을 널리 보급하여 오래동안 우리 인민들에게 큰 고통과 불행을 가져다준 천연두를 막는데 이바지하였다. 그는 1885년에 우두와 관련된 모든 지식과 기술에 대하여 쓴 《우두신설》(2권)이라는 책을 자체로 인쇄출판하였다. 이 책은 우리 나라 학자가 쓴 첫 신의학책이였다.

또한 지석영은 신의사를 키워내기 위한 교육활동과 인체해부생리와 위생에 대한 과학지식을 보급하고 선전함으로써 신의학기술을 발전시키는데 기여하였다.

― 19세기 후반기부터 20세기 초에 우리 나라에서는 농산기술도 일련의 발전을 보았다.

애국문화운동자들은 선진적인 영농기술과 영농방법을 널리 조사연구하여 소개선전하는 사업을 꾸준히 벌려나갔다. 그들은 근대적인 영농기술을 받아들여 종자와 논밭을 개량하고 비배관리를 개선할것을 주장하였다.

◦ 안종수는 1885년에 《농정신서》라는 농업과 관련한 책을 출판하여 우리 나라 농업을 근대적인 과학기술적토대우에서 체계화하는데 기여하였다. 《농정신서》(4권)에서 그는 토양, 비료 그리고 여러가지 농작물의 재배법과 남새, 과일, 공예작물, 화초의 재배법에 대하여 근대적인 과학기술에 기초하여 상세히 설명하였다.

◦ 리우규는 1885년에 《잠상촬요》를 출판하여 우리 나라에서 력사적으로 전해오는 뽕나무기르기와 누에치기에 관한 기술경험을 널리 수집정리하고 다른 나라에서 들어온 책들까지 참작하여 잠업기술을 리론적으로 체계화하였다.

△ 수학분야에서의 새로운 성과

리명칠은 1908년에 《산학통편》이라는 수학책을 출판하였다. 그는 이 책에서 고등수학인 미적분학을 소개하였고 현대적인 수론의 요소까지 취급하였다. 또한 그는 이 책에서 오늘의 기호와 같은 계산기호, 같기표 등과 m와 g을 기준으로 한 도량형의 단위들, 여러 나라 화페단위들, 양력에서 윤년을 계산하는 방법 등을 취급하였다.

△ 력사, 지리학

― 19세기 후반기부터 20세기 초에 우리 나라 력사를 연구하고 력사책들을 편찬하는 사업에서도 전진이 있었다.

애국문화운동자들은 나라가 독립을 유지하자면 인민들이 자기 나라를 똑똑히 알아야 한다는 립장에서 조선력사를 연구하고 널리 해설선전하는 사업을 활발히 벌렸다.

신채호는 우리 나라 력사에 대한 글을 많이 썼는데 1910년에 《소년》 제8호에 발표한 《국사사론》에서 고대로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우리 나라의 유구한 력사에서 중요한 문제들을 취급하였다. 그는 이 글에서 일본의 어느 왕이 신라를 《정벌》하였다는 설이나 일본이 《미마나 미야께》를 두었다는 설이 모두 망설이라는것을 고증하고 규탄하였다.

박은식은 《한국통사》, 《한국독립운동혈사》를 집필하여 당시 우리 인민을 일제를 반대하는 투쟁에로 고무하는데 적지 않은 기여를 하였다. 특히 그는 당시 복잡한 우리 나라 근대력사와 침락자를 반대하여 피흘리며 싸운 우리 인민의 투쟁에 대하여 씀으로써 우리 인민들에게 일제침략자들의 강도적본성을 인식시키고 애국심을 불러일으키는데 일정하게 기여하였다.

신채호나 박은식은 부르죠아력사가로서 일제침략자들의 포악성과 간교성을 폭로하였으나 력사발전의 동력은 인민대중이라는것을 밝히지 못하였고 자주독립의 진정한 길을 찾지 못하였다.

이 시기 력사연구에서 거둔 중요한 성과는 1908년에 박용대 등이 《증보문헌비고》(250권, 50책)를 편찬출판한것이다. 《증보문헌비고》는 우리 나라의 력사전반에 걸쳐 당시의 모든 책들을 연구 및 발취한것을 정치, 경제, 군사, 천문, 지리, 교육, 문예 등 14개 부문별로 정리한 력사자료분류집이다. 이 책은 2천년동안의 우리 나라 과학과 기술, 문화의 모든 부문들의 력사자료들과 사실들을 체계적으로 분류함으로써 우리 나라 과학문화발전의 력사를 종합적으로 파악할수 있게 해주고있다.

― 지리학분야에서의 성과

이 시기 지리학분야에서는 새로운 형의 지리학교과서, 지리지, 지도 등이 적지 않게 출판되였다.

1895년 이후에 《지문학》, 《조선지리지》, 《세계지리지》 등이 나왔고 세계지리책인 《여재촬요》가 출판되여 우리 나라와 세계 51개 나라들의 정치, 경제, 언어, 풍속, 문화 등에 관한 경제지리적 및 자연지리적지식들이 소개되였다. 이밖에 《조양읍지》와 《호서도》, 《경기도》 등 도별 지도와 읍지들이 만들어졌다.

△ 우리 말과 글

― 애국적인 국문운동자들은 한문으로 된 글말을 없애고 국문을 표기수단으로 쓰기 위한 진지한 노력을 기울였다.

19세기 후반기에 부르죠아민족운동의 한 고리로 국문운동이 널리 벌어지기 시작하면서 애국적인 국문운동자들은 나라가 자본주의적으로 발전하는데 맞게 민족어를 발전시키며 외래침략자들이 침투시키는 외국말로부터 민족어를 지켜내는것을 중요한 투쟁과업으로 제기하고 국문운동을 활발히 벌리였다.

애국적인 국문운동자들은 우리 말과 글을 사랑하는 광범한 인민대중의 사회적요구를 반영하여 한문이나 낡은 한문투의 글말을 배격하고 우리 글자로 글을 쓰며 말과 글을 일치시키기 위하여 투쟁하기 시작하였다.

애국적인 지식인들과 문학가들에 의하여 1869년에 처음으로 우리 말과 글로 쓰인 《규합총서》라는 책이 출판보급되였으며 1886년에는 우리 글자와 한자를 섞어쓴 신문 《한성주보》가 나왔다.

국문운동이 활발히 벌어짐에 따라 우리 말과 글을 쓸데 대한 사회적요구가 더욱 강하게 제기되였다. 이러한 사회적요구에 의하여 봉건정부조차도 1894년에 법률과 명령은 다 국문을 기본으로 하고 한문을 섞어쓸데 대한 법적규정을 공포하는데까지 이르렀다. 이를 계기로 1894년 말경부터 봉건정부가 발행하는 모든 공문서와 신문, 잡지를 비롯하여 여러 분야의 출판물들을 우리 말과 글로 쓰게 되였으며 각급 학교들에서 민족어를 기초과목으로 가르치고 우리 말과 글로 된 교과서를 가지고 교육이 진행되였다.

― 애국적인 국문운동자들은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와서 우리 말과 글을 연구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활동을 본격화하였다.

국문운동자들은 광범한 인민대중속에 우리 말과 글의 우수성에 대하여 선전하면서 우리 말과 글을 사랑하고 널리 쓰도록 장려하였다. 국문운동자들의 활동과 광범한 인민대중의 요구에 의하여 우리 말과 글로 된 《독립신문》, 《제국신문》이 새로 나오고 《황성신문》, 《대한매일신보》, 《조양보》, 《서우》 등과 같은 신문, 잡지들, 과학기술도서들이 국한문으로 출판되여나왔다. 동시에 국문운동자들에 의하여 우리의 문법책과 사전이 씌여지고 우리 말과 글의 맞춤법과 띄여쓰기, 발음법 등이 연구되여 우리 말과 글이 점차 다듬어지면서 완성되여갔다.

 

 

국한문으로 출판된 황성신문

 

그러나 우리 말과 글을 발전시키기 위한 투쟁은 처음부터 여러가지 난관과 우여곡적을 겪지 않으면 안되였다. 우리 말과 글을 발전시키는데서 가장 큰 장애로 된것은 일제침략자들의 악랄한 민족어말살책동이였다.

 

 

 

조선사람들에게 일본어를 강요하는 일제

 

 조선인민은 일제침략자들이 그 어떠한 책동과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일본말과 글의 보급을 완강히 배격하고 우리 말과 글을  지켜내고 발전시키기 위하여 줄기차게 투쟁하였다. 이러한 투쟁의 흐름속에서 애국적인 언어학자들과 문학가들을 비롯한 선진적인 지식인, 문화인들은 우리 말과 글의 오랜 발전력사와 그 우수성을 밝히며 조선말의 문법적구조와 특성 등을 연구하여 발전시키기 위한 활동을 활발히 벌렸다. 그리하여 우리 말의 말소리와 어휘, 문법 및 문체 등에서 일련의 발전이 이룩되였다.

이 시기 우리 말과 글에 대한 연구와 그 발전은 주시경, 리봉운, 최광옥, 지석영 등 애국적인 지식인들의 정력적인 활동에 의하여 이룩되였다.

 

 

주 시 경

 

 19세기 후반기에 언어학연구분야에서 일련의 성과가 있었는데 강위의 《동문자모분해》(1869년)가 대표적이였다. 이 책은 우리 글자에 대한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높여주고 그 보급과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이와 함께 리봉운이 쓴 책인 《국문정리》(1897년)는 우리 말과 글에 대한 근대적연구에서의 첫 성과일뿐아니라 우리 말 문법과 우리 글 서사규범에 대한 근대적연구의 첫 시도로서 적지 않은 의의를 가지였다. 이 책에서는 우리 말과 글의 일치를 실현하였으며 띄여쓰기와 문장부호치기, 맞춤법 등에서 근대적요구를 뚜렷이 반영하였다. 이 책은 또한 술어에 대한 문법적범주를 세우는데서 새로운 연구의 싹을 보여주었다.

우리 말과 글에 대한 연구와 발전에 특히 기여한것은 광범한 사회적요구에 의하여 1907년에 《국문연구소》가 나오고 거기에서 진행된 주시경, 지석영 등을 비롯한 여러 학자들의 연구활동이였다.

이밖에 최광옥의 《대한문전》, 김희상의 《초등국어어전》, 주시경의 《국문전음학》과 《국어문법》, 《말의 소리》를 비롯하여 여러 언어학적저술들이 간행됨으로써 말소리와 어휘, 문법 및 문체에서 발전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일련의 성과들은 일제의 조선강점과 야만적인 식민지폭압정책에 의하여 공고화되지 못하고 광범한 사회적실현을 보지 못하였다.

일제침략자들의 조선강점후 야만적인 식민지통치와 민족문화말살정책밑에서 우리 말과 글은 애국적인민들과 선진적인 교육자, 언어학자, 문학가들을 비롯한 지식인, 문화인들의 줄기찬 투쟁에 의하여 고수되였으며 간고하게나마 자체발전의 길을 따라 한걸음한걸음 발전하였다.

이와 같은 광범한 지식인들과 문화인들의 투쟁은 아직 국문운동이나 계몽운동의 테두리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투쟁은 우리 인민이 자기의 말과 글을 지켜내고 일제의 식민지통치밑에서도 우리의 말과 글을 일정하게 발전시켜나가는데 이바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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