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과학과 기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조선인민은 과학과 문화를 발전시키는데서도 빛나는 전통을 창조한 재능있고 지혜로운 문명한 민족입니다.》   

발해와 후기신라에서는 그 이전 삼국시기에 비해 과학과 기술이 훨씬 발전하였다.

특히 천문학과 기상학, 수학과 의학, 야금기술, 배무이기술과 항해술, 건축술, 도자기제작기술, 인쇄기술 등 분야에서 큰 발전이 이룩되였다.

그중 세계적으로 자랑할수 있는 과학과 기술분야가 적지않다.

△ 발해의 과학과 기술

발해의 과학기술은 세나라시기에 비하여 훨씬 발전하였다.

• 발해의 교육기관인 국학에서는 주로 유교경전을 가르치면서 수학과 다른 과목도 교수한것으로 보고있다.

• 발해에서는 천문학과 기상학이 발전하여 천문기상관측사업이 체계적으로 진행되였다. 발해학자 오효신은 859년에 《장경선명력》이라는 천문력서를 가지고 일본에 건너가 리용방법을 가르쳐주었다.

• 발해에서는 력사학, 법률학 등 학문분야들도 상당히 발전하였다.

• 발해시기 배무이와 항해술, 건축술이 높은 수준에 있었다.

732년 발해수군이 당나라의 등주를 공격한 사실과 786년에 사신단 65명이 한척의 배에 타고 많은 짐까지 싣고 일본으로 간 사실 그리고 발해가 일본과 정상적인 대외관계를 가지고있었다는 사실 등으로 보아 큰 배들을 훌륭하게 무어냈으며 항해술도 발전하였다는것을 알수 있다.

• 발해의 건축술의 발전은 유적들을 통하여 잘 알수 있다.

ㆍ 발해의 건축유적으로서 중국 동북지방의 녕안현에 《동경성터》, 길림성 돈화시에 《오동성터》, 훈춘현에 《반탑성터》, 화룡현에 《서고성터》 등이 있다.

여기서 보다 대표적인것으로 동경성유적을 들수 있다. 동경성유적은 753년경에 서고성자에서 옮겨온 발해의 세번째 수도가 자리잡고있던 곳인 흑룡강성 녕안현의 경박호근처에 있다. 동경성은 발해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거점으로서 동서길이 4 650m, 남북의 길이 3 530m이고 성안은 외성, 궁성, 황성으로 구분되여있다. 외성은 일반주민들이 살던 구역이고 황성은 봉건국가의 중앙관청이 있던 구역이며 궁성은 왕궁이 있던 구역이다. 동경성은 도성으로서 도시구획이 정연하였다. 동경성안의 북쪽중앙에 위치한 궁성을 중심으로 북문과 남문을 통과하는 대도로(주작대로)가 직선으로 뻗어있는데 폭이 110m에 달한다. 이 도로를 경계로 동경성은 동서 두 부분으로 크게 나뉘여져있었다.

동경성의 성곽건축이나 도시구획은 안학궁의것과 비슷한데 이것은 고구려문화를 이은 발해문화의 전통을 잘 말하여준다.

동경성의 궁성안에는 6개의 궁성터가 남북으로 줄지어있으며 이 6개의 궁전을 련결하는 회랑이 있었다. 6개의 궁전가운데서 제일 규모가 크고 웅장한것은 2궁전인데 정면 11간(동서길이 60m), 측면 4간(남북길이 25m)이나 된다. 건물의 지붕은 고구려의것과 같이 련꽃과 초롱무늬를 비롯한 여러가지 무늬로 장식한 암기와, 수기와, 괴면기와, 치미, 막새 등으로 이었는데 건물의 웅장화려함과 아름다움을 돋구어준다.

ㆍ 발해의 무덤유적으로는 정혜공주무덤이 잘 알려져있다.

이 무덤은 발해의 3대왕인 문왕의 둘째 딸의 무덤(돌칸흙무덤)으로서 돈화현 륙정산에 있다. 무덤내부는 주검칸(길이와 너비 각각 2. 7m~2. 9m, 벽의 높이 1. 5m, 천정 3각고임)과 안길로 되여있고 비석과 돌사자 2개가 있다. 이 무덤역시 고구려의 무덤건축을 계승한 발해의 무덤건축술의 일단을 보여준다.

ㆍ 발해의 돌등건축유적으로서는 상경룡천부 제2절터에서 나온것이 있다.

 

 

발해돌등

 

돌등은 우아하고 아름다운 조형미를 나타내고있다. 돌등은 높이가 6. 3m이고 8각평면의 받침대, 배부른 기둥, 8각정자의 불집, 머리치레 등으로 이루어져있는데 균형이 잘 잡히고 모양이 아름다우면서도 웅장한감을 주는 등으로 높은 건축술을 반영하고있다.

발해의 유적은 당시 봉건통치배들을 위해 건설한것이는 하지만 발해의 발전된 문화수준을 보여주며 여기에는 인민들의 창조적지혜와 지능이 담겨져있다.

△ 후기신라의 과학과 기술

ㅡ 후기신라에서 과학과 기술의 발전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것은 천문학이였다.

후기신라에서는 천문학술기관인 천문박사가 있었고 물시계로 시간을 측정하는 루각박사가 있었다. 그리고 국학에서는 천문기상분야에서 일할 기술자들을 키워냈다.

후기신라에서는 천문기상관측을 높은 수준에서 체계적으로 진행하였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살별에 대한 기록이 19건이나 있는데 그중 9건은 주변나라 기록들에도 없는것들이다.

ㅡ 후기신라에서는 수학과 의학도 발전하였다.

행성의 운동에 관한 계산법을 비롯하여 2차뿌리, 3차뿌리구하기, 다면체의 체적계산, 련립1차방정식풀이법 등 등비수렬의 개념들이 천문학, 건축 등에 적용되였다.

또한 692년에 의학교를 설치하고 박사 2명을 배치하여 갑을경(의학기초리론), 소문경(내과리론과 치료방법), 명당경(와과치료), 침경(침구학), 본초경(약학) 등을 배워주었다. 이 시기에 《신라법사방》이라는 의학책이 편찬되였다.

ㅡ 후기신라에서는 력사와 지리학분야의 서적들도 편찬하였다.

《고기》, 《해동기》, 《삼한고기》, 《신라고기》 등 력사서적과 려행기로 《왕오천축국전》을 편찬하였다.

《왕오천축국전》은 8세기에 중 혜초가 동남아시아와 인디아, 중근동을 답사하면서 쓴 려행기이다.

 

 

 

혜초의 세계려행

 

혜초는 근 10년동안 10만여리를 려행하면서 보고 들은것을 모두 기록하였다. 이 책은 8세기 초의 력사지리연구에서 귀중한 자료로 인류문화의 보물고에 큰 자리를 차지하는 유산이다.

ㅡ 후기신라시기에 전시기에 비하여 기술이 훨신 발전하였다. 특히 인쇄, 야금, 무기제작기술이 훨씬 개선되였다.

• 인쇄기술은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수준이였다. 그것은 불국사의 석가탑에서 나온 불경책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만으로도 말할수 있다.

 

 

이 책은 길이 52.5cm, 너비 8cm 되는 닥종이 여러장을 붙여 7m 길이의 책을 만든 목판인쇄물이다. 이 책은 세계에서 가장 오랜 목판인쇄본이다.

• 후기신라에서는 야금기술도 매우 높은 수준에 올랐다.

 

 

771년에 주조한 봉덕사종은 아구리직경 2. 47m, 둘레 7. 12m, 두께 26cm, 높이 3. 33m, 그 무게는 12만근이나 된다. 이 종은 단번에 단일체로 부어 만든것이였다. 봉덕사의 종소리는 100리밖에서도 들리였다고 한다.

754년에 주조한 황룡사종은 그 무게가 봉덕사종의 4배가 넘는 49만 7 581근으로서 이 시기 주조기술발전상을 잘 보여준다.

• 후기신라에서는 무기제작기술도 발전하였다.

특히 유명한것은 7세기 중엽 구진천이 창안한 화살이 1 000보 나간다는 천보노와 수레에 여러가지 기계활을 장치한 차노였다. 여기에는 풍부한 무기제작경험과 력학적타산이 안받침되여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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