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5세기의 문화

 

△ 15세기 우리 나라의 고유한 민족문자 훈민정음의 창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이미 삼국시기부터 리두문자를 사용하여오던 우리 인민은 1444년에 가장 발전된 문자인 훈민정음을 창제함으로써 문화발전에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우리 민족은 단군조선시기부터 고유한 신지글자를 써왔으며 삼국시기부터는 한자를 빌어 우리 말을 적어오던 독특한 표기방식인 리두문자를 써왔다.

그후 1444년에는 드디여 한자와는 완전히 다른 고유한 민족글자로서 훈민정음을 만들어 문화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새로운 문자의 창제는 서사생활에 대한 우리 인민의 요구와 지향으로부터 제기되였다.

그때까지 써오던 리두서사체계는 원래 우리 말에 맞지 않으며 글씨자체가 어려운 한자에 기초하고있었으므로 우리 말을 쉽게 적어낼수 없었다.

그러므로 인민들은 우리 말을 자유롭게 적을수 있고 누구나 쉽게 배울수 있는 글자를 절실히 요구하여왔다.

그리하여 봉건국가는 새 문자를 만드는것을 중요한 국가적사업으로 내세우고 밀고나갔다.

당시 왕이였던 세종은 집현전의 학자들인 정린지, 최항, 박팽년, 신숙주, 성삼문, 강희안, 리개, 리선로 등을 동원하여 연구사업을 진행하도록 하였다.

이리하여 1444년 1월(양력)에 드디여 고유한 민족문자인 훈민정음이 창제되게 되였다.

 

 

《훈민정음》이라는 이름에서 《훈민》은 《백성을 가르친다》는 뜻이며 《정음》은 《바른소리를 적은 글자》라는 뜻으로서 새 글자의 특성을 표현하고있다.

훈민정음이 세상에 나온이후 1446년 9월에 우리 문자에 대한 과학리론적인 해설서인 《훈민정음해례》가 편찬되였다.

 

 

훈민정음은 오랜 문화전통을 자랑하는 우리 인민의 뛰여난 재능과 지혜를 보여준 창조물로서 가장 우수한 문자이다.

세계의 수많은 문자들가운데서도 가장 앞선 표음문자이며 자모문자인 훈민정음은 우선 우리 말을 그대로 자유롭게 표기할수 있을뿐아니라 그 어떤 말소리든지 다 적을수 있다.

 

 

훈민정음을 만든 원리와 방법 및 체계

 

초성 17자, 중성 11자로 이루어진 훈민정음 28자는 우리 말의 음운체계를 정확히 반영하여 매개 문자가 다 하나의 말소리를 나타내게 되여있다.

그 우수성은 또한 그것을 만든 원리가 과학적이며 매개 문자가 일정한 체계를 이루고있는것이다.

초성자가운데서 기본자로 되는 《ㄱ》, 《ㄴ》, 《ㅁ》, 《ㅅ》, 《ㅇ》은 각각 그 소리를 낼 때의 발음기관의 모양을 특징적으로 상징한것이다.

그리고 이 기본자에 획을 더하는 방법으로 같은 부류의 문자가 만들어졌다.

그 우수성은 또한 글자의 수가 적고 모양이 간결하여 누구나 배우기 쉽고 쓰기 쉬운것이다.

훈민정음은 28자라는 적은 수의 문자를 가지고 우리 말을 마음대로 표기할수 있을뿐아니라 그 문자가 체계정연하게 호상 련관되여있기때문에 누구나 쉽게 배울수 있고 자유롭게 쓸수 있다. 그러므로 훈민정음은 만들어지자 곧 인민들속에 널리 퍼져나갔고 민족문자로 씌여진 여러가지 책들이 많이 나오게 되였다. 그리고 훈민정음은 동서양의 어느 나라 말이든지 다 표현할수 있는 매우 발전된 글자이다.

훈민정음이 창제됨으로써 우리 인민은 투쟁과 창조의 힘있는 무기의 하나를 가지게 되였으며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더깊이 간직할수 있게 되였다.

고유한 민족문자가 나옴으로써 우리 말은 입말형태로뿐아니라 새로운 글말에 의하여 더욱 폭넓게 그리고 빨리 발전할수 있게 되였다.
훈민정음의 창제는 또한 민족문화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민족문자가 창제된이후 민족문자사용이 더욱 활발해지고 국문책들이 편찬되게 되였으며 언어문화유산도 풍부화됨으로써 민족문화가 더욱 발전하게 되였다.

△ 15세기 과학과 기술의 발전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민족은 인류문화의 려명기부터 이땅에서 살면서 고유한 민족문화를 창조하였으며 인류의 과학과 문화발전에 이바지하였습니다.》

- 15세기에 천문학분야에서 획기적인 전진이 이룩되였다.

 

 

1432년 경복궁안에 그 규모가 매우 크고 기구설비가 잘 갖추어진 천문대인 [file 《간의대》를 세우고 천체의 변화를 체계적으로 관측하였다.

 

 

그리고 1442년에는 내외의 력서를 다시 검토하고 당시의 관측자료들에 립각하여 만든 종합적인 천문리론책인 《칠정산》을 내놓았다.

또한 1443년에는 별의 위치 특히 적도자리표를 재는 각도측정기구인 《혼천의》를 제작하였다.

이 시기 재능있는 학자와 기술자들은 해시계인 《앙부일구》, 해시계와 별시계를 겸한 《일성정시의》, 자동물시계인 《자격루》 등을 만들었다.

 

 

 

일반적으로 물시계는 한 그릇에서 다른 그릇으로 물이 시간에 비례하여 일정하게 흘러내리게 하고 물이 고이는 그릇에 띄워놓은 부표가 물면과 함께 떠오르면서 시간을 표시한 눈금을 지적하게 되여있다.

그러나 자격루는 이 부표의 떠오름운동을 동력으로 하여 거기에 종을 치는 장치들을 결합시켜 저절로 움직이면서 자동적으로 시간을 알려주게 되여있는 물시계의 발전된 형태였다.

1434년에 장영실을 비롯한 여러 전문가들이 만들어서 서울 경복궁 경회루남쪽 보루각에 설치하였던 자격루의 구조와 작용원리는 다음과 같다.

높은 곳에 두개의 물단지를 놓고 거기에서 단위시간내에 일정한 량으로 떨어지는 물을 받기 위한 다른 단지 하나를 그밑에 놓았다. 낮은 곳에 있는 단지속에는 물에 뜨게 엷은 동으로 만든 거부기를 넣었다. 아래단지에 물이 고이는데 따라 그속에 든 거부기가 떠오르면서 일정한 자리에 설치한 동으로 만든 구(알)를 밀친다. 구는 굴러서 그밑에 장치한 철판에 떨어지면서 철판의 한쪽을 누른다. 이때 철판의 다른 한쪽이 들리면서 사점이라는 인형의 팔을 밀치면 사점은 앞에 걸린 징을 쳐서 점을 알린다. 1점은 24분이므로 24분에 한번씩 점을 알린다. 이와 꼭같은 방법으로 낮에는 사시라는 인형들이 종을 치고 밤에는 사경이라는 인형들이 북을 쳐서 2시간에 한번씩 《시》로서의 경을 알린다.

자격루에서는 또한 매 시간에 따라 해당한 동물모조품들이 나타나고 동, 서, 남, 북에 자리잡고있는 인형(옥녀)은 맡은 시간에 방울을 울린다.

이와 같이 자격루는 정밀한 전동장치에 의하여 움직였다.

기록에 의하면 전동장치는 주로 지레대장치였으며 그 수는 150~200개였고 여기에 쓰인 동으로 만든 구는 작은것과 큰것이 각각 37개였다. 그리고 높은 곳의 단지에서 떨어지는 물의 량은 1시간에 14.8L정도였다.

자격루는 15세기 초까지 우리 나라 기술분야에서 도달한 성과에 기초하여 만들어진것이였으며 우리 인민의 우수한 문화전통을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1438년에 완공된 흠경각이라는 건물안에는 자격루보다 더 복잡하고 정밀한 자동물시계인 옥루기륜(수차)이 설치되였다.

또한 1441년에 우리 선조들은 세계에서 맨 처음으로 철제《측우기》를 만들었다.

 

 

이것은 1639년에 유럽에서 처음으로 만든 측우기보다 근 200년이나 앞선것이였다.

- 15세기에는 의학도 발전하였다.

이 시기에 향약에 기초한 고려의학의 모든 성과들이 집대성되고 일련의 전문분과들이 높은 수준으로 발전하였다.

1433년에 《향약집성방》(85권)이 로중례, 박윤덕, 유효통 등에 의하여 편찬되였다.

 

 

《향약집성방》은 우리 나라 약재로 병을 고치는 조선의 고유한 치료예방법을 한데 묶어놓은것인데 여기에는 959종의 질병에 대한 치료예방법 1만 706가지와 침구법 1 479가지가 들어있다.

1445년에 로중례 등에 의하여 《의방류취》(365권)가 완성되였다.

 

 

농학도 일정한 발전을 이룩하여 1429년에 정초 등에 의하여 편찬된 《농사직설》은 우리 나라 각지 인민들의 농사경험들을 널리 조사참작하여 만든 농산기술경험집이였다.

이밖에도 강희맹 등에 의하여 경기지방의 농사경험을 중심으로 하여 《금양잡록》이라는 농학책이 편찬되였다.

- 15세기에 지리학도 상당히 발전하였다.

15세기 지리학에서는 자연지리와 경제지리, 력사지리에 대한 과학적인 분석과 함께 우리 나라에서 알려진 모든 지리지식과 리론들을 종합적으로 개괄하였다.

그리하여 《세종실록지리지》(8권,1454년), 《조선팔도도》(1434년시작), 《동국여지승람》(1478~1481) 등의 지리책과 《본국지도》(1402년), 《동국지도》 (1463년)등의 지도들이 제작되였다.

- 15세기에는 력사학이 발전하였다.

력사편찬사업은 예문춘추관을 중심으로 진행되였는데 그 가운데서도 가장 큰 사업은 력대왕들의 실록편찬사업이였다.

15세기 전기간에 조선봉건왕조의 각 왕대의 실록은 9대왕까지의것이 편찬되였다.

《조선봉건왕조실록》은 봉건정부의 자세한 일지로서 조선봉건왕조 500년간의 력사를 왕대별로 매일매일 체계적으로 기록해놓은 력사책이다.

 

 

15세기에는 또한 《고려사》와 《고려사절요》등 고려시기의 력사책들이 편찬되였다.

 

 

이밖에도 통사류의 력사책으로서 하륜, 권근 등이 《동국사략》(1403년)을 편찬하였으며 1450년에는 지난날의 전쟁경험을 개괄서술한 《동국병감》이 편찬되였다.

- 15세기 과학기술의 발전면모는 출판인쇄기술이 크게 발전한데서 찾아볼수 있다.

1403년에는 활자제작 및 출판인쇄기관으로서 주자소가 설치되여 동활자, 연활자, 철활자 등 여러가지 재질의 금속활자들을 새로 만들어냈다.

 

 

주자소에서 출판한 책들

 

그중에서 연활자는 1436년에 창안하였는데 이것은 세계인쇄기술사에서 맨 처음의 일로 된다.

이 시기 조판공정도 훨씬 개선되였다.

1420년에 리천은 동판우에 밀 (황랍)을 녹여 붓고 활자를 박아 조판하던 방법대신에 동판에 활자를 세운다음 그 사이에 대나무쪼각이나 파지를 끼워 활자들을 고정시킨후 인쇄하는 방법을 연구해냈다.

△ 15세기에 문학과 예술의 발전

- 15세기의 문학은 여러 문학사조들사이의 날카로운 대립과 투쟁속에서 발전하였다.

▫ 15세기 진보적인 시가문학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것은 반침략애국투쟁주제의 작품들이였다.

김종서의 《삭풍은 나무끝에 불고…》와 남이의 《변강을 지키며》가 그 대표적작품들이다

이 시들은 반침략애국주의감정을 힘있게 반영한것으로 하여 사람들속에서 널리 읊어졌다.

▫ 15세기에 반봉건주제의 작품들도 적지않게 창작되였다.

《늙은이의 노래》(성간), 《영치기 노래》(리석형), 《사변》(김시습), 《산골농민의 고생》(김시습) 등의 작품들은 봉건적착취와 억압으로 힘겹게 살아가는 농민들의 처지를 잘 보여주고있다.

▫ 패설문학이 새로운 발전을 이룩하고 그 성과에 기초하여 소설들이 창작되였다.

이 시기에 창작된 패설문학으로 《용재총화》(성현), 《동인시화》(서거정) 등을 대표적으로 들수 있다.

15세기에 김시습의 소설집《금오신화》에 실린 소설들의 창작을 계기로 소설이 발전하였다.

 

 

《금오신화》에는 《리생의 사랑》, 《만복사의 윷놀이》, 《룡궁의 상량잔치》 등 5편의 소설작품들이 수록되여있다.

- 15세기에 예술의 여러 분야가 더욱 발전하였다.

▫ 15세기에 회화미술이 한걸음 더 발전하였다.

조선화는 우리 민족의 유구한 력사와 함께 발전하여온 전통적인 화법으로서 우리 미술의 민족적형식이다.

15세기 화가 안견은 조선화의 이 고유한 특징을 잘살려 생활을 진실하게 반영하면서 필치가 힘있고 아름다운 그림들을 그렸다.

대표적작품 -《꿈에 본 동산》, 《어부의 얼굴》 등을 들수 있다.

▫ 15세기에는 우수한 공예품도 많이 창작되였다.

특히 사기공예가 대중성을 띠고 발전하였는데 그 가운데서도 분칠사기와 흰사기가 더욱 대중적인 성격을 띠고 발전하였다. 분칠사기는 곱지못한 색갈과 거칠은 바탕흙을 이러저러한 방법으로 가리운 사기인데 그 장식수법에 따라 무늬박이분칠사기와 백토분칠사기로 나눈다. 흰사기는 결백한 색조와 아름다운 광택, 형태의 다양성으로 이름이 높은 사기이다. 특히 흰자기물색은 그릇의 모양과 쓰임에 따라 재빛, 젖빛. 순 흰색, 청백색 등을 띠는데 아름답고도 포근하고 부드러운 맛을 돋구고있다.

▫ 15세기에는 건축예술에서도 새로운 발전이 있었다.

우리 인민들은 살림집을 비롯한 성곽, 궁전, 루정, 유교건물, 절간 등을 지으면서도 우리 나라의 전통적인 고유한 건축양식과 수법, 건축미를 구현하기에 힘썼다.

대표적건축물로서 경복궁, 평양의 보통문, 서울의 남대문, 서울 원각사의 대리석다층탑 등을 들수 있다.

▫ 15세기에 음악, 무용분야에서도 큰 성과가 이룩되였다.

15세기에 60여종의 민족악기들이 개량되거나 제작되였다.

이와 함께 박연을 비롯한 평민출신의 연주가들이 많이 나왔다.

이 시기 음악분야에서 이룩된 성과의 하나는 1493년에 성현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의 집체적힘에 의하여 음악리론서적 《악학궤범》이 편찬된것이다.

이처럼 15세기의 우리 인민들이 창조한 문화는 봉건지배계급의 사치와 향락을 위해 만들어졌지만 여기에는 인민들의 창조적지혜와 재능, 피와 땀이 깃들어있는것으로 하여 우리 민족의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되고있다.
참으로 조선인민은 일찍부터 자기의 고유한 민족문자를 가지고 과학과 기술, 문학과 예술 등 여러 문화분야를 적극 발전시켜온 슬기롭고 문명한 민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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