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절 원시사회의 문화

 

△ 원시사회문화의 특성

우리 나라 원시문화의 발원지, 그 중심지는 평양을 중심으로 한 대동강류역이였다.

그것은 바로 이 지역에서 《조선옛류형사람》이 형성되였고 그들에 의하여 신석기시대문화와 청동기시대문화가 매우 이른시기부터 발생발전되여왔기때문이다.

원시공동체사회의 주민들은 오랜 세월을 거쳐 자연을 정복하기 위한 창조적로동을 벌리면서 인류문화의 싹을 키워나갔다.

원시사회의 문화는 당시 사람들의 의식수준과 생산력발전정도, 사회관계의 성격을 그대로 반영한것으로서 일정한 특성을 가진다.

특성:

- 아무러한 적대관계가 없는 무계급사회였던것으로 하여 계급적성격을 띠지 않았다.

- 사회생활의 범위가 협소하고 객관세계에 대한 지식이 매우 어렸던것으로 하여 유치하고 미숙하였다.

- 원시사회주민들이 각기 일정한 지역을 차지하고 오래동안 생활하는 과정에 자연지리적환경 및 기타 요인에 의하여 생산활동과 풍습에서 얼마간 고유한 특성이 생겼다.

원시시대문화는 비록 유치하고 미숙한것이기는 하나 인류가 창조한 최초의 문화로서 인류문화발전의 시원을 열어놓았으며 그 이후 고대문화발전의 토대로 되였다.

△ 원시인들의 지식과 예술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인민대중은 오랜 세월 간고한 투쟁을 통하여 자연을 정복하는 힘을 키우고 지식을 쌓으며 생산력을 발전시켜왔으며 자신의 사상의식수준, 문화수준을 끊임없이 높여왔습니다.》

- 원시사회에서 사람들은 자연을 정복하기 위한 투쟁과정에 점차 자연에 대한 지식을 쌓아나가면서 그것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리용하였다.

• 원시인들이 얻은 중요한 지식의 하나는 불의 속성과 그것을 리용하는 방법을 알아낸것이다.

사람들은 산불을 비롯하여 자연에서 일어나는 불을 보고 처음에는 무서운것으로만 생각하였으나 점차 불의 속성을 깨닫게 되면서 불로 추위를 막고 음식을 익혀먹었고 맹수들을 물리치는 수단으로 리용하는 등 일상생활서 널리 리용할수 있었으며 마찰과 타격 등의 방법으로 불을 일굴수 있게 되였다.

 

 

 

불의 리용

 

• 원시인들은 돌의 성질에 대하여서도 일정한 지식을 가졌으며 그에 기초하여 여러가지 돌들을 각종 생활도구로 쓸모있게 리용할수 있게 되였다.

• 원시인들은 자연에 대한 관찰과 오랜 생활체험을 통하여 계절의 순환현상, 농작물의 경작시기, 식물의 생태적특성, 천문기상과 관련한 지식을 초보적으로나마 알게 되였다.

• 산짐승을 길들여 집짐승으로 전환시킴으로써 원시목축업의 길을 열어놓았으며 식물과 광천의 약효능에 대한 지식을 가지게 되였고 그것을 병치료에 리용하였다.

이처럼 원시인들의 지식은 그들을 둘러싼 방대하고 복잡하며 다양한 자연에 비해볼 때 매우 단순하고 유치하며 미숙한것이였지만 그것은 몽매하고 무력했던 그들이 장구한 세월에 걸쳐 거치른 자연에 맞서 싸우는 과정에 얻어진 귀중한것이였고 원시사회를 한걸음한걸음 문명에로 떠밀어준 중요한 요인이였다.

- 원시시대사람들속에서는 장구한 기간에 걸쳐 자연에서 벗어나기 위한 투쟁을 벌리는 과정에 예술이 발생하였다.

우리 나라에서 원시예술의 싹은 벌써 구석기시대 중기에 움텄다.

실례로 구석기시대 중기에 해당하는 평양시 상원군 (오늘의 황해북도 상원군)중리의 동굴유적에서 불길을 형상하여 새겼다고 인정되는 뼈쪼각이 나온것을 들수 있다.

• 원시예술은 당시의 사회관계, 생산력발전수준, 사람들의 의식수준 등을 반영하여 일정한 특성을 가진다.

원시예술은 생산활동과 밀접히 련관되여있었다.

원시시대에는 예술이 로동과 직접 결부되여있었다. 음악은 로동의 박자였고 행동통일의 신호였으며 무용은 로동과정에 느낀 감정과 인상을 몸동작으로 재현한것이였다.

원시예술은 예술적시야나 형상적기교가 미숙한것이였다.

그것은 당시 사람들의 지적수준이 매우 어렸고 사회적실천에서 세계를 파악하는 범위자체가 보잘것없었기때문이였다.

원시예술은 무계급적이였다.

무계급사회인 원시시대에는 공동체의 전체 성원이 예술의 창조자였고 향유자였다.

원시예술은 원시적인 신앙 및 종교와 결부되여있었다.

• 원시시대사람들은 오랜기간 자연을 정복하기 위한 투쟁을 벌려오는 과정에 자기들의 생활감정을 담은 음악과 무용을 창작하였다.

 

 

조선옛류형사람들의 정서생활

 

원시시대사람들은 집단적으로 진행하는 큰 사냥이나 씨뿌리기, 가을걷이 또는 싸움에 출전할 때에는 가무로써 의식을 진행하였다.

서포항유적에서 나온 새다리를 잘라 만든 뼈피리가 이것을 실증해준다.

• 원시예술에서 중요한것의 다른 하나는 조형예술이였다.

원시시대사람들은 돌이나 짐승의 뼈, 뿔 등에 새기거나 또는 진흙으로 빚어 구워서 자기들의 생활과 신앙을 반영한 여러가지 주제의 조소품을 만들었다.

 

또한 조형예술의 한 측면을 보여주는것은 질그릇을 비롯하여 여러가지 물건에 새겨진 미술적장식과 바위에 새겨진 벽화들이다.

우리 나라 원시시대사람들은 질그릇뿐아니라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인 물건들인 가락바퀴, 숟가락, 뼈바늘통, 송곳, 삿바늘같은데도 무늬를 새겨 장식적효과를 나타내였다.

이밖에도 원시시대사람들은 바위를 쫗아 바위그림도 그리였다.

원시사회의 문화는 비록 매우 유치하고 단순한것이였으나 우리 민족문화의 맹아였다.

△ 원시신앙과 종교

- 원시사회의 사람들속에서는 사회적의식의 한 형태로서 초자연적인 힘을 믿는 원시적인 종교와 신앙이 발생하였다.

• 원시신앙과 종교관념은 당시 사람들의 창조적능력이 극히 낮고 자연과의 투쟁에서 무력한데로부터 발생하였다.

유치한 로동도구밖에 가지고있지 못했던 원시인들은 자연의 힘앞에 매우 무능력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연의 파괴적인 힘에 대하여 항상 불안과 공포를 가지였으며 자기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자연의 제반 현상들을 사람의 힘으로써는 어찌할수 없는 불가피한것으로 생각하고 숭배하였다.

• 원시신앙과 종교관념은 당시 사람들이 축적한 지식이 매우 미약한데로부터 발생하였다.

원시시대주민들이 가지고있던 빈약한 경험과 지식으로써는 자연계에서 일어나는 복잡하고 다양한 현상들을 명확히 리해할수 없었다.

당시 사람들의 머리에는 자연의 여러가지 현상들이 도무지 알수 없는것, 신비한것으로만 생각되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기의 지식과 경험밖의 현상을 설명하기 위하여 그 어떤 신비하고 초자연적인 힘의 존재를 생각하게 되였으며 그것은 결국 외곡된 표상과 관념을 낳게 하였다.

- 원시신앙의 싹이 움튼것은 구석기시대 중기였으나 신앙행위가 본격적으로 벌어진것은 구석기시대 후기부터였다.

원시인들의 신앙가운데서 대표적인것으로는 령혼숭배, 조상숭배, 동물숭배, 마법 등을 들수 있다.

• 령혼숭배는 원시시대 주민들속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인정되였던 신앙의 하나로서 《물활론》혹은 《아미니즘》이라고도 한다.

령혼숭배 는 만물에 령혼(넋)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를 숭배하는 신앙의 일종이다.

자연앞에 극히 무력하였던 원시시대주민들은 자기들의 생활에 하늘, 땅, 산, 강, 바위, 나무 같은 자연의 요소들에 령혼이 있어 자연현상을 일으키도록 주관한다고 믿었다.

원시시대사람들속에서 생겨난 령혼, 신에 대한 관념은 더 나아가서 자연뿐아니라 사람에게도 령혼이 있으며 그것은 죽은 다음에도 계속 살아남아있는 특수한 존재라는 환상을 낳게 하였다.

령혼에 대한 이러한 환상은 원시인들로 하여금 사람은 죽어 육체는 없어져도 령혼은 남아있어 《저승》에서 생활한다는 령혼불멸관념을 낳게 하였으며 조상의 령혼을 숭배하는 조상숭배관념이 생겨나게 하였다.

• 원시인들의 령혼숭배는 점차 천신(하늘신)숭배로 발전되여갔다.

농업이 주민들의 기본생업으로 확고히 전환되고 부단히 발전함에 따라 농작물의 성장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태양을 가장 중요한 숭배대상으로 삼게 되였다.

그리하여 자연에 대한 무지와 몽매로부터 발생한 자연일반에 대한 숭배는 천신, 태양신숭배로 변천되여갔다.

하늘신숭배는 하늘을 자연그대로가 아니라 인격화하여 떠받드는 미신이였다.

천신, 태양신숭배는 점차 사람들속에서 널리 인정되여 신앙령역에서 확고한 우세를 차지하게 되였다.

우리 나라 고대시기에 전종족적인 행사로 진행된 제천행사인 고조선의 《무천》, 부여의 《영고》등은 그 대표적인 실례이다.

원시공동체의 붕괴기에 씨족, 종족의 우두머리들은 저들의 지배를 합리화하기 위하여 저들의 피줄을 태양신과 결부시켰고 자기들을 《거룩한》존재라고 선전하였다.

고조선의 건국신화가 그 대표적인 실례이다.

• 동물숭배는 원시인들이 자기들의 생활과 관련이 많은 동물을 씨족 또는 종족의 조상으로 떠받들고 숭배한 원시신앙의 한 형태로서 흔히 《토테미즘》이라고 한다.

원시인들은 몽매한 동물적인 상태로부터 인류가 발전해온 과정을 과학적으로 설명할수 없었던데로부터 자기들의 조상은 그 어떤 동물이였으며 그 토템이 자기들을 지켜준다고 생각하고 그를 숭배하였다.

이러한 토템신앙은 원시인들이 자기를 자연과 구별하지 못하였던 무리적의식으로부터 발생하였다.

그들은 저들이 숭배하는 특정한 동물을 공동체의 한 구성부분으로 생각하였고 같이 생활할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숭배동물을 마음대로 죽이지 않고 그의 증식을 위하여 특별한 의식을 거행하기까지 하였다.

고조선의 건국신화인 《단군신화》에서 단군이 곰(녀인)의 몸에서 태여났다고 한것을 통해서 알수 있다.

• 원시신앙의 한 형태인 마법은 그 어떤 초자연적인 힘을 인정하며 그것을 자기들의 생활에 유리하게 리용할수 있다고 믿는 미신이다.

이 신앙은 사람이 어떤 수단과 방법을 쓰면 자기의 의지로써 자연계 혹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줄수 있으며 자기의 념원을 실현하기 위해 신에게 성의를 다하면 신이 자기를 도와주고 혹은 앞으로 있을 일을 예언해준다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자기들의 생활에서 제기되는 모든 문제를 신의 의사에 따라 처리해야 한다고 믿으면서 신의 의사를 미리 알려는 미신행위를 하기 시작하였다.

처음에 사람들은 누구나 마법을 할수 있는것으로 생각하였으나 점차 일이 뜻대로 되지 않자 보다 유효한 마법수단을 찾게 되였다.

이로부터 《신》과 사람과의 《교섭》을 담당한다고 자처하는 마법의 전업자 무당 또는 신주자들이 나타나게 되였다.

초기에 무당들은 하늘에 대한 제사 또는 여러가지 종교의식을 주관하였는데 그들은 점차 사람들의 신앙심을 악용하여 자기 존재를 신비화하면서 사람들을 기만하는 착취자로 변질되여갔다.

당시 사람들의 무지와 몽매로부터 발생한 원시신앙은 사회생활의 변화발전에 따라 그 형식과 내용이 변하면서 점차 체계화되였고 종교적인 색채를 띠였다.

그리하여 원시신앙은 사람들의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활동을 억제하는 해독적인 작용을 놀았다.

이처럼 우리 나라 원시사회의 문화는 비록 매우 유치하고 단순한것이였으나 그것은 우리 민족문화의 맹아로서 그 이후 우리 나라 고대문화발전의 귀중한 밑천으로 되였다.

내리적재 하시겠습니까?
CAPTCHA Image
가+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