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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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편 원시 및 고대사회
제1장 원시사회
제3절 원시사회의 붕괴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사회력사적운동은 자연의 운동과 구별되는 자체의 고유한 합법칙성을 가집니다.》   

인류사회는 자기의 고유한 발전법칙에 따라 발전한다.

원시공동체사회가 붕괴되고  계급사회로 이행하는것은 인류사회발전의 합법칙적과정이다.

우리 나라에서 원시사회가 무너지고 계급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은 오랜 력사적기간을 포괄하였다.

이미 부계씨족사회의 형성과 함께 허물어지기 시작한 원시사회제도는 부계씨족사회의 발전에 따라 완전히 무너지게 되였다.

원시공동체사회의 붕괴요인

- 당시 사람들의 의식수준, 창조적능력이 좀 더 자라나게 된것

그것은 B.C. 4000년기 후반기에 조선옛류형사람들이 청동기문화를 발전시켜 생산령역전반에서 큰 전진을 이룩한데서 뚜렷이 나타남

ㆍ 청동기가 발전하면서 수공업이 농업에서 분리-사회적대분업

ㆍ 사회적분업이 생기면서 교환관계가 발생

ㆍ 생산활동이 적극화되고 사회적재부가 늘어나 잉여생산물이 생겨남
     ※ 소가족단위로서도 살아나갈수 있는 가능성 조성

- 원시사회제도를 허물것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게 된것

잉여생산물이 나오면서 차츰 공동로동과 균등분배, 공동소비의 원칙에 기초한 원시사회제도를 허물것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게 됨

△ 원시공동체사회붕괴의 전제조건

- 중서부조선일대에서는 청동기시대에 이르러 생산력의 발전에 따르는 잉여생산물의 축적, 사회적분업의 형성 및 교환관계의 발전 등 원시공동체적인 사회관계를 허물게 하는 객관적조건들이 성숙되여있었다.

• 신석기시대 중기부터 갈이농사에 의하여 농사를 지어온 이 지역의 선조들은 청동기시대에 이르러 한층 더 발전된 영농방법으로 생산을 늘이였다.

이 시기 전반적지역에서 보습농사, 특히 부림짐승을 리용하는 갈이농사가 진행되고 여러가지 능률적인 농기구가 사용되여 알곡생산이 부쩍 늘어났으며 집짐승기르기도 널리 진행되여 공동체의 재부가 늘어나고 사람들의 물질생활이 이전시기보다 훨씬 개선되였다.

 

 

 

• 청동야금과 관련한 새로운 수공업분야가 개척되였으며 그것은 당시 생산을 새롭게 확대하고 생산령역전반에 적지않은 영향을 미치였다.

생산활동이 확대되고 사회적생산이 더욱 늘어난 사실에 대한 자료를 전하는 유적으로는 무산군 범의구석유적2기층을 들수 있다.

여기서 나온 4개집자리에는 상당한 량의 식량이 저장되여있었는데 그중 제일 작은 20호집자리바닥에 쌓인 불에 탄 기장가루만도 서너가마니분은 잘 된다.

• 살림이 늘어나고 사람들이 자기 생활을 유지하는데 필요한것보다 더 많은 량의 생산물을 생산할수 있게 되여 잉여생산물이 생겨나게 됨에 따라 교환관계는 더욱 발전하였다.

이와같이 사람들의 창조적능력이 크게 장성함에 따라 종래와 같이 공동체성원모두가 한데 어울려 일하지 않더라도 개별적으로 능히 필요한것을 해결할수 있게 되였다.

이것은 사람들이 공동체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자체로 살아나갈수 있는 능력이 생겨났음을 의미하는것이였다.

- 원시공동체사회제도의 붕괴를 초래한 보다 중요한 요인은 공동으로 물질적부를 생산하여 균등분배하고 공동으로 소비하는 제도를 허물것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나오고 그들이 우세한 세력을 이룬데 있었다.

그것은 사람들이 생산력이 발전한 조건에서 가족단위의 개별로동으로 생활수단을 능히 보장할수 있게 되고 로동생산성에서 개인들의 역할의 차이가 비교적 현저해졌으며 또한 사람들이 공동체의 리익과 구별되는 자기 개인의 리익을 자각하고 개인적인 물질적관심성을 가지게 되였기때문이다.

민속학적자료에 의하면 부계씨족사회형성초기에 사회생활의 기본단위를 이루고있던 세대공동체는 경제활동의 확대와 다양화 및 물물교환의 발전에 따라 점차 생활단위로서의 의의를 상실하였으며 원시사회말기에 이르러 생활단위는 개별적인 가족, 소가족으로 분화되였다.

무산군 범의구석2기층의 마을과 공귀리유적1기층의 마을들은 집집마다 여러쌍의 부부와 그 가족들이 살고있던 가부장적세대공동체의 유지를 보여준다.

가부장적세대공동체는 독립적인 마을형태를 취하고살던 친족적인 소경영단위집단이였다.

지금까지 알려진 자료들은 중서부조선일대에서 가부장적세대공동체로부터 소가족에로의 분화과정은 다른 지역에 비하여 매우 일찍 진행되였을뿐아니라 그것이 청동기시대에는 이미 완성단계에 있었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

가부장적대가족의 소가족에로의 분렬은 단순히 가족형태의 변화만을 의미하는것이 아니라 재산에 대한 공동체적소유가 무너지고 그것이 가족단위로 분활되여 사적소유가 전면에 나서는 심각한 사회경제적변화를 내포하고있는 현상이였다.

사람들은 로동생산성에서 개인들의 역할의 차이가 현저해지고 개인적인 물질적관심성을 가지게 된 조건에서 역할에 따라 분배몫에서 차이를 두는데로 나갈것을 요구하게 되였다.

역할에 따라 차이를 두고 분배가 실현되면서 생산수단에 대한 소유에서의 차이가 나타나게 되였다.

그리하여 소가족은 독자적인 경리활동단위로 되였을뿐아니라 사유재산의 직접적인 소유자로 되였고 소가족의 가장은 재산뿐아니라 처와 자식들의 로동에 대한 지배자로 되였다.

사적소유의 출현은 그에 상반되는 공동소유를 점차 침식해가는 작용을 놀았다.

씨족공동체안에서 생산수단에 대한 공동소유의 원칙이 무너지면서 씨족을 구성하는 기본뉴대로 되여있었던 혈연관계는 그 의의를 점차 상실하게 되였다.

원시사회말기 이웃종족들과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공동체안에는 혈연적으로 관계가 없는 다른 씨족갈래의 가족들도 들어와 섞여사는것이 허용되였다.

이리하여 공동체는 혈연적인 뉴대에 기초한 씨족에 의하여 구성된것이 아니라 지역적인 뉴대에 기초하여 같은 부락에 사는 가족들로 이루어진 부락공동체로 변화되여갔다.

자연경제가 지배하고 지역마다 경제문화발전수준에서의 차이가 있었던 당시의 조건에서 부락공동체의 형성은 모든 지역에서 동시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농업이 다른 지역보다 빨리 발전한 평양을 중심으로 한 중서부지역에서는 부락공동체가 다른 지역보다 더 일찌기 이루어졌다.

대동강류역일대에서 드러나는 커다란 부락유적들이 그것을 잘 실증해준다.

이와같이 청동기문화가 발전함에 따라 생산이 증대되면서 잉여생산물이 늘어나고 사적소유가 출현하였으며 가부장적대가족의 소가족에로의 분렬, 원시공동체사회해체에 대한 사람들의 요구의 발생 등은 원시공동체사회붕괴의 전제조건으로 되였다.

△ 계급의 발생과 국가의 출현

- 원시공동체사회붕괴과정은 사람들사이에 소유에서의 불평등이 생기고 나아가서 계급으로 분화되는것으로 표현되였다.

• 공동체성원들속에서 빈부의 차이가 발생하였다.

사유재산제도의 발전은 사람들사이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부자와 가난한 사람, 착취하고 지배하는자와 착취받고 지배받는 사람과의 관계를 낳게 하였다.

그리하여 같은 씨족성원들속에서 부유한자와 가난한 사람의 차이가 생겨나게 되였다.

씨족의 테두리에서 발생한 부유한자와 가난한 사람의 분화는 씨족의 운명에 반영되지 않을수 없었으며 공동체적인 관계의 붕괴를 초래하였다.

남경유적1기층, 남양리유적1기층, 신흥동유적들을 보면 어떤 집자리에서는 유물들이 수십점 나오지만 어떤 집자리에서는 1점 혹은 2점정도의 유물밖에 나오지 않는다. 이러한 사실은 같은 부락에 살던 사람들사이에 빈부의 차이가 현저하였다는것을 말해준다.

• 소유에서의 불평등과 계급분화의 표현은 공동체안에서 특권층이 출현한것이다.

부락공동체에서의 재부의 축적은 집단의 공동경리와 종교행사 등을 주관한 족장들에게 집중되였으며 족장을 중심으로 한 그의 친족들은 씨족 또는 공동체의 상층, 특권층을 형성하였다.

원시사회말기에 이르러 공동체안에서 인구가 늘어나고 공동체들사이의 관계가 확대되고 생산의 발전, 교환의 발생과 함께 공동체가 다루어야 할 재부가 늘어난것 등은 보다 강력한 지휘권을 요구하였으며 이것은 공동체의 우두머리들에게 종래보다 더 많은 권한이 집중되게 하였다.

특히 공동체들간의 충돌이 빈번해짐에 따라 추장이 군사지휘권도 맡아보게 되였는데 공동체의 우두머리들은 이러한것을 악용하여 종래의 제한된 권한과 림시적이였던 직책을 특권적이고 세습적이며 영구적인 권력으로 확대강화하였다.

그리하여 공동체우두머리들은 특권적인 권력자로, 부자로 되였으며 이것으로하여 공동체안에는 권력과 재부를 독점한 지배층이 생겨나게 되였다.

이러한 사회적관계는 여러곳에 남아있는 고인돌을 통해서도 찾아볼수 있다.

오덕형고인돌 가운데는 뚜껑돌의 무게가 수십t에 달하는 어마어마하게 큰것들이 있다.

사람들의 로력이 유일한 운반수단이였을 당시의 조건에서 이런 큰돌을 날라다가 받침돌우에 올려놓으려면 적어도 수백명의 성인로력을 동원하여야 하였을것이다.

이것은 거기에 묻힌자가 막강한 권세를 가진 우두머리였음을 말하여준다.

• 잉여생산물의 증대와 사유재산의 발생, 개인에게로의 재부와 권력의 집중은 다른 사람들의 로력을 착취할수 있는 전제조건을 조성하였다.

부유하여진 씨족, 종족의 지배층은 전쟁에서 포로하여온 사람들을 노예로 삼아 소나 말같이 잔인하게 부려먹었다.

또한 그들은 자기들의 특권을 리용하여 가난한 공동체성원들을 고리대 또는 기타 방법으로 채무노예로 만들었으며 제놈들에게 반항하는 사람들에게는 《죄》를 들씌워 형벌노예로 만들었다.

그리하여 사회는 마침내 권력과 재부를 독점한 계급, 노예주계급과 그것을 가지지 못한 계급, 무권리하고 빈곤한 계급으로 갈라지게 되였다.

- 계급이 발생하여 계급적대립이 생기게 되면서 지배계급은 저들의 특권적지위를 유지하기 위하여 폭력과 결합된 국가라는 특수한 사회조직을 만들어냈다.

원시사회말기에 사람이 더욱 힘있는 존재로 발전하는 과정에 사회적재부가 늘어나고 사회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 사회관리에서는 농업생산을 비롯한 생산활동의 조직, 어린이의 출생과 성인의 죽음, 청춘남녀의 결혼 등 인간의 생명문제의 처리, 륜리도덕에 기초한 사회질서의 유지와 같은 복잡한 문제들이 제기되였으며 이에 따라 그것을 맡아 처리하는 전문적인 정치조직들이 나오게 되였다.

그런데 계급적대립과 투쟁이 격화됨에 따라 원시적민주주의에 기초한 이러한 정치기구로서는 사회를 유지하고 관리해나갈수 없게 되였다.

이로부터 지배계급은 원시적민주주의에 기초한 정치조직을 저들의 특권적리익을 실현하는데 복무하는 기관으로 전환시키였다.

그리하여 전문적인 정치조직은 폭력과 결합된 국가라는 특수한 사회적조직으로 전환되게 되였다.

국가는 본질에 있어서 정권을 쥔 계급, 사회적집단이 자기의 요구대로 사회를 다스리기 위하여 조직한 권력기관인 동시에 가장 포괄적인 정치조직이다.

사회가 계급으로 갈라지고 국가가 생겨난 다음부터 사람들의 지위와 역할은 국가주권에 의하여 결정되였다.

국가주권은 사람들의 지위와 역할을 규정하는 기본요인이다.

노예소유자국가 에서 노예와 평민들은 국가주권을 쥐지못한 탓으로 사회의 주인으로 되지 못하고 노예주들의 착취와 억압의 대상으로만 되였다.

우리 나라에서 첫 노예소유자국가로 등장한 단군조선과 그에 뒤이어 세워진 부여, 구려, 진국 등 노예소유자국가들은 바로 이러한 원시공동체의 붕괴과정을 거쳐 세워졌던것이다.

이렇게 생산력의 발전에 따르는 잉여생산물의 축적과 사적소유의 출현, 가부장적대가족의 소가족에로의 분렬과 원시공동체사회해체에 대한 사람들의 요구, 계급의 발생 등의 요인들에 의하여 원시공동체사회는 붕괴되게 되였다.

 

 우리 나라 원시사회의 합법칙적발전과정을 외곡한 어용사가들의 반동적견해와 부당성

△ 반동적견해

― 조선에서는 구석기시대에 사람이 살지 않았다는것

― 그러다가 신석기시대이후에 다른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흘러들어와 자리잡고 살게 되였는데 이들이 조선사람의 조상이라는것

― 금속문화도 주변나라 사람들의 영향밑에 알게 되였다고 하면서 금석병용기설을 주장

△ 부당성

우리 나라에서 발굴된 원시유적들이 보여준다.

ㅡ 사람의 발전단계를 보여주는 유적, 화석들

원인 ... 고인 ... 신인 ... 조선옛류형사람

ㅡ 문화의 계승관계가 뚜렷하다.

구석기(전기, 중기, 후기) ... 신석기(전기, 중기, 후기) ... 청동기

ㅡ 문화의 독자성이 뚜렷하다.

• 신석기시대 질그릇 ― 갈색새김무늬

• 농사위주의 생업

 

 

 

복습문제

- 원시사회가 붕괴되게 된 중요한 요인은 무엇인가? 

 

- 조선옛류형사람들의 인류학적특징에 대하여 설명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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