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태평양전쟁시기 조선에 대한 식민지화실현책동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미제국주의자들은 벌써 19세기중엽부터 우리 나라를 침략하기 위하여 온갖 책동을 다하였습니다.》

아시아에서 식민지재분할을 목적으로 발생한 태평양전쟁은 이 지역에서 제국주의렬강들이 유지해온 식민지리권에 대한 소유관계를 파탄시켰으며 국제관계전반에 새로운 국면을 조성하였다.

- 미제는 새로운 정세하에서 조선을 일본의 식민지로부터 저들의 식민지로 만들기 위한 대조선정책을 수립하였다.

○ 미일관계가 공모결탁관계로부터 교전관계로 변화된 정세하에서 미제는 오래전부터 꿈꾸어오던 조선침략의 야망을 실현하기 위하여 《국제적신탁통치안》을 들고나왔다.

미제는 1942년부터 조선의 《점차적독립》과 《국제적신탁통치》에 대하여 떠들기 시작하였다.

《국제적신탁통치》란 한마디로 일제가 패망한 후에도 조선사람들이 자체로 독립국가를 창설하고 운영할수 있는 《능력》을 갖출 때까지 미국이 주도하는 다른 나라들의 통치를 받아야 한다는것이다. 1942년 8월 미독점자본을 대변하는 잡지 《포츈》은 《조선인들이 자기 나라를 통치할 능력이 없다.》, 《 이 나라를 위해서는 미국의 참가하에 국제적인 <방조>를 줄수 있는 과도기를 설정하는것이 합리적일것이다.》라고 떠벌이였다.

1943년 미제어용평론가 아벤드는 조선이 《자립적으로 자기 역할을 할수 있을 때까지》 그를 《교양》하기 전에는 《독립》을 주어서는 안된다고 떠벌이였다.

○ 미제는 《국제적신탁통치안》을 국제적으로 공인받기 위하여 교활하게 책동하였다.

제2차대전후 일제가 강점하였던 식민지들에 대한 처리문제는 매우 복잡한 모순점들을 안고있었다.

미제는 조선문제에 끼여들 하등의 명분도 없었지만 오래전부터 품어온 조선침략야망을 실현하기 위하여 조선문제를 점차 《국제화》하고 《국제적신탁통치안》을 렬강들에게 공인시키기 위하여 교활하게 책동하였다.

 

※ 《워싱톤회담》(1943. 2.27. 루즈벨트 이든, 헐)

미국을 포함한 1개 또는 2개 나라가 참가하는 《국제적신탁통치》를 실현하는것이 바람직하다는데 대하여 《합의》

《까히라회담》(1943. 11.22.~27. 쓰딸린, 루즈벨트, 장개석)

미제는 까히라선언을 작성하면서 조선을 《적절한 절차》를 밟아서 《독립》시킨다는 교활한 문구를 집어넣고 3대국의 이름으로 발표하였다. 여기에서 미제가 노린 목적은 마치도 미국이 조선의 독립에 큰 《관심》이나 있고 큰 《은혜》를 베푼다는 인상을 주는척하면서 《신탁통치》의 본질을 은페하려는데 있었다.

테헤란회담(1943. 11.28.~12.1. 쓰딸린, 쳐칠, 루즈벨트)

루즈벨트는 조선사람이 독립을 얻으려면 약 40년간의 준비기간이 필요하다고 지껄임

얄따회담(1945. 2.4.~11. 쓰딸린, 쳐칠, 루즈벨트)

2월 8일 루즈벨트는 쓰딸린과의 비공식회담에서 《미국은 조선을 다수 렬강에 의한 후견통치를 실시하는 나라로 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와 류사한것을 실현할것이다.》라고 떠벌이면서 그 기간은 《20|30년으로 끝날것으로 생각한다.》라고 줴쳤다.

 

이처럼 미제는 태평양전쟁시기에 벌써 《국제적신탁통치》의 구호를 들고 우리 나라를 저들의 식민지로 만들기 위하여 책동하였다.

- 미제는 태평양전쟁말기에 조선에 대한 군사적강점을 실현하기 위한 준비책동까지 감행하였다.

1945년 7월 미륙군성은 우리 나라를 미국, 영국, 이전 쏘련, 중국(장개석)이 분할점령하는 안을 작성하였다. 그 내용을 보면 이전 쏘련은 함경도지방, 중국은 평안도지방, 영국은 충청도지방, 미국은 나머지 대부분지역을 차지하되 서울은 공동으로 점령하며 모든 점령지역에서 《군정》을 실시하고 그후 《련합군정》을 실시하며 다음으로 《신탁통치》로 넘어가게 되여있었다. 여기에서 미제는 주도적역할을 수행할것을 타산하였다.

이와 같이 미제는 태평양전쟁시기에 벌써 우리 나라를 식민지화하기 위한 대조선정책을 수립하고 그를 실현하기 위하여 교활하게 책동한 조선인민의 철천지원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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