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조선에서 침략적지반을 닦기 위한 미제의 책동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미제국주의자들은 벌써 19세기중엽부터 우리 나라를 침략하기 위하여 온갖 책동을 다하였습니다. 지난날 미제국주의자들은 무력으로 우리 나라를 정복하려고 책동하는 한편 종교를 리용하여 우리 인민을 노예로 만들려고 시도하였습니다.》

교활한 미제는 일제강점시기 조선에 대한 일제의 식민지통치를 적극 부추기는 한편 장차 조선을 제놈들의 손아귀에 거머쥐기 위한 준비책동을 음흉하게 감행하였다.  

미제의 종교침략과 친미주구육성책동

- 미제는 조선에 대한 종교침략을 계속 강화함으로써 저들의 사상정치적지반을 닦으려고 교활하게 책동하였다.

○ 이 시기 미제는 조선에 대한 그리스도교침투를 조선에서 미국의 사상정치적지반을 닦기 위한 주되는 형태로 규정하였다.

미제는 일제의 조선강점직후에 벌써 《일본이 조선의 정권을 쥐였다면 미국은 조선사람의 심장을 틀어잡을것이다.》라고 줴치면서 종교침략을 고취하였다.

○ 미제는 《100만을 그리스도교신자로!》라는 구호밑에 수많은 미국선교사들을 침투시키는 한편 교회당과 교직자를 대대적으로 확장하였다.

미제의 지시에 따라 1910년 봄에 서울에서 열린 《선교사대회》에서는 선교활동을 강화할 행동강령을 채택하고 조선그리스도교신자를 100만명까지 확대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미국선교사들을 그 목표달성에로 내몰았다. 조선에 기여든 미국선교사수는 1910년에 306명이였다면 1920년에는 366명으로 늘어났으며 그들이 전국각지에 설치해놓은 교회당과 기도실, 《주일학교》, 교리강습소를 비롯한 포교거점수는 1920년현재 2 300여개소에 달하였다.

미국선교사들은 《조선인에 의한 선교》를 떠들면서 평양신학교를 비롯한 각지의 신학교들에서 조선인교직자들을 대대적으로 양성하여 1920년대부터는 거의 모든 교회목사를 조선인으로 채용하였다.

○ 미국선교사들은 조선사람들속에서 숭미사대주의와 무저항주의, 미국에 대한 노예굴종사상을 부식시키기 위하여 온갖 방법과 수단을 다하였다.

• 각지에 있는 포교거점들을 리용하여 《박애》《인도주의》를 설교하며 무저항주의와 노예굴종사상을 고취하였다.

선교사들은 일제의 가혹한 탄압과 수탈에 의하여 살길을 잃고 앞날에 대한 희망을 포기한 많은 불쌍한 조선사람들의 심리를 리용하여 그리스도교의 《교리》로 그들을 유혹하였다. 그러므로 적지 않은 조선사람들이 여기에 귀를 기울이고 신자로 되였다. 선교사들은 《원쑤가 왼뺨을 치거든 오른뺨을 돌려대라.》, 《너의 원쑤를 사랑하라》등을 부르짖으면서 무저항주의와 노예굴종사상을 고취하기 위하여 미쳐날뛰였다.

• 《교육》의 미명하에 각지에 선교사들이 운영하는 학교들을 세우고 우리 인민들속에 숭미사대주의사상을 주입시키려고 책동하였다.

일제의 가혹한 민족말살정책에 의하여 당시 우리 나라에는 현대문명을 습득할수 있는 학교가 거의 없었다. 이러한 조건을 리용하여 선교사들은 신자들의 주머니에서 털어낸 돈을 가지고 교회당이 운영하는 학교를 각지에 세워 운영함으로써 마치도 미국이 조선의 근대적《교육》발전에 관심이 있는듯이 책동하였다. 서울의 연희전문학교(부속간호원학교 포함), 평양의 숭실학교(숭실중학교, 숭의녀학교 후에 숭실대학), 각지의 《주일학교》를 비롯한 그리스도교학교들이 바로 그러한것들이였다. 미국선교사들이 세운 이러한 학교들이 철두철미 숭미사대주의사상을 심어주기 위한 장소였다는것은 기본과목들부터가 그리스도교성경(신학), 영어, 미국의 력사로 되여있는것을 보고도 알수 있다.

• 《자선》의 간판밑에 병원들을 차려놓고 미국에 대한 환상과 숭배사상을 고취하였다.

당시 우리 인민들이 현대적인 의료상방조를 전혀 받을수 없었던 조건에서 미제는 평양의 《자혜병원》, 은률의 《제중병원》, 서울의 《세브란스병원》, 선천의 《미동병원》을 비롯한 그리스도교계통의 《병원》들을 통하여 미국에 대한 그 무슨 《은혜》와 《감사》를 느끼도록 책동하였다. 그러나 미제는 그 막뒤에서 조선사람들을 실험대상으로 수많이 학살하였다. 1925년 순안 《안식병원》원장이였던 미국선교사 페스머가 어린 소년 김명섭의 이마에 청강수로 《도적》이라고 새긴 악독한 만행은 《하느님》의 천사로 자처하는 미국선교사들의 정체를 똑똑히 보여주는 산 증거로 된다. 

- 미제는 조선사람들속에서 친미주구들과 고용간첩들을 키워냄으로써 장차 조선침략의 정치적지반을 닦으려고 교활하게 책동하였다.

○ 미제는 개인의 안락과 부귀영화, 출세를 위해서는 그 어떤 매국행위도 가리지 않는 부르죠아사대주의자들을 매수하거나 미국류학을 시키는 방법으로 친미주구들을 길러내였다.

미제는 리승만역도를 극악한 친미주구로 길들이는데 오랜 품을 들이였다. 리승만역도의 출세욕과 반역적기질을 간파한 미국선교사들은 19세기 말부터 역도를 길들이였으며 1904년부터는 미국류학을 시키고 《박사》의 감투까지 씌워주었다. 그리고 일제가 패망할 때까지 미국에 체류시키면서 장차 미국의 대조선정책을 집행할 하수인으로 길들이였다.

이외에도 미제는 선교사들에 의하여 숭미사상으로 길들여지고 미국류학물을 먹은자들을 선발하여 친미주구로 육성하는데 많은 자금을 투자하였다.

○ 미제는 우리 나라 로동운동과 민족해방운동에 대한 정탐, 매수행위를 통하여 저들의 대조선침략정책에 복무할 고용간첩들도 키워냈다.

 

경제적침략과 지반을 닦기 위한 미제의 책동

- 미제는 일제식민지통치시기에도 조선에 대한 경제적침략과 략탈을 계속 강화하였다.

○ 미제는 우리 나라에 대한 략탈적무역과 자본투하를 계속 강화하였다.

• 미제는 조선에 대한 상품수출을 계속 늘이였다.

미제의 조선에 대한 상품수출액은 해마다 늘어나 1910년의 32만여원으로부터 1937년에는 2 771만여원으로서 80여배나 불어났다.

• 1924년에는 일본의 《동양척식회사》에 대한 개인채무의 형식으로 근 2 000만원을 투자하여 조선농민들에 대한 식민지적착취와 략탈에 미쳐날뛰였다. 

○ 미제는 금, 은을 비롯한 지하자원을 대량적으로 략탈하였다.

1889년 당시 미국공사 알렌의 주선으로 20만원의 헐값으로 운산금광리권을 강탈하였으며 일제의 조선강점이후 일본의 《재펜 마이닝》회사와 결탁하여 조선의 4대금광인 운산, 수안, 창성, 직산광산의 금채취권을 독점하였다. 1939년까지 미제는 조선에서 80여t에 달하는 막대한 금을 략탈하였다. 당시 미국이 경영하는 광산들에서는 조선인로동자들을 노예와 같이 혹사하였는데 《노다지》라는 말도 이때 나온것이였다.

- 미제는 태평양전쟁시기 장차 조선에서 경제적침략을 강화하기 위한 준비사업을 감행하였다.

○ 미제는 태평양전쟁말기 과거의 경제적《리권》을 되찾기 위하여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하였다.

1944년에 미제는 《조미회사》를 조작하고 조선의 자연부원을 략탈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하였다. 이를 통하여 미제는 주로 운산광산리권과 비단원료, 투자와 무역에 대한 독점권을 확립하기 위해 날뛰였다.

○ 미제는 친미역적들을 사촉하여 우리 나라의 경제리권을 략탈하기 위한 책동에 매여달리였다.

미국 《오리엔탈 콘슬리데이티드 마이닝회사》와 리승만역도와의 관계만 놓고보아도 이 회사의 사장 돌베르는 리승만에게 100만US$를 줄것을 계약하였고 그 대가로 리승만으로부터 광산리권을 넘겨줄것을 약속받았다.

이처럼 미제는 지난날 일제의 식민지통치를 부추겨주면서 장차 조선을 저들의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갖은 책동을 다한 우리 인민의 흉악한 원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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