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제국주의의 조선침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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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미일제국주의의 조선침략개시와 일제의 조선강점(1866~1905. 11)
제2절 일제의 조선강점과 그를 지원한 미제의 죄행
3. 일제의 조선강점을 적극 지원한 미제의 죄행

19세기 말~20세기 초 미제는 일단 조선을 일본의 먹이로 던져주고 그를 적극 지원하는 대조선정책으로 넘어갔다.

미제가 이러한 정책에 매여달리게 된것은 아직 저들의 침략무력을 충분히 준비하지 못했으며 아시아침략을 위한 군사전략적기지망도 형성하지 못하고있었던 사정과 관련되였다.

미제는 이러한 정책에 따라 일제의 조선침략을 적극 비호하고 부추기였으며 백방으로 지원하였다.

- 미제는 우리 나라에서 갑오농민전쟁이 일어나자 이를 기회로 일제를 무력침공에로 나가도록 부추겼으며 그들의 범죄적만행을 적극 비호하였다.

○ 미제는 조선에서 농민전쟁이 일어나자 제일먼저 무력간섭을 감행함으로써 일제를 조선에 대한 무력침공에로 부추기였다.

미제는 1894년 6월 5일 미국아시아함대사령관의 지휘밑에 《발티모어》호를 비롯한 군함 6척을 조선연해에 침입시켜 농민군의 군사행동을 위협하였으며 뒤이어 해병대를 《거류민보호》의 구실밑에 비법적으로 서울에 침입시켰다.

○ 일제의 대규모적무력침공을 《거류민과 공사관보호》를 위한 《정당한 조치》라고 줴치면서 적극 지지하고 비호하였다.

당시 미제는 일제의 대규모적무력침공에 대하여 《 조선에 있는 일본사람이 현재 서울에 5 000명, 제물포에 4 000명, 원산에 약 1만명이라는 사실을 생각할 때 그것은 전적으로 옳다.》느니, 갑신정변에서 60명, 임오군인폭동에서 40명이상을 《잃었다는 그 사실》로 보아 《거류민과 공사관보호》를 위한 《정당한 조치》로 된다고 떠들어댔다.

○ 청일량군을 철수시키도록 《우의적알선》을 해줄데 대한 조선봉건정부의 요구도 《엄정중립》을 구실로 거절하였다.

미제는 이미 《조미조약》에서 《주선》과 《우의》를 약속해놓고도 조선봉건정부가 청일량군을 철수시키도록 알선해줄것을 요구하자 국무장관 그레샴을 통하여 《조선과 청일 두 나라에 대해 엄격한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면서 그것을 단호히 거절했던것이다.

○ 일본침략군의 농민군교살만행을 극구 찬양하였다.

당시 미국어용신문 《리스 바그》는 《 겨우 4개월간의 원정에서 일본군은 조선의 전 령토를 소탕하였다. 일본군의 동작은 민첩하며 또한 과감한 기상을 풍부히 가지고있다. 일본은 이미 동양의 미래를 좌우한 여러 나라들가운데서 단연 두각을 나타냈다.》라고 전하면서 일제의 군사행동을 극구 찬양하였다.

- 미제는 청일전쟁시기 일제에 대한 군사적 및 정치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 미제는 일제에게 수많은 전쟁물자를 공급해주었다.

1894년 8~9월사이에만도 1 500~3 000t급의 군함들을 일제에게 넘겨준데 이어 10월에는 또다시 1만t급의 군함 6척을 넘겨주었다.

○ 미제는 청일전쟁이 일어난 직후 렬강들의 공동간섭을 거절함으로써 일제로 하여금 침략전쟁을 확대해나가도록 부추기였다.

1894년 10월 영국정부가 미국에 《공동조정》을 제기하자 미국무장관 그레샴은 《미국정부는 다른 나라와 함께 간섭할것을 바라지 않는다.》고 거절하였다.

○ 미제는 특히 청일전쟁을 일제에게 유리하게 끝장내며 강화조약에서 최대의 침략열매를 얻도록 적극적으로 조정하였다.

전쟁이 일제에게 유리하게 종결되여가고있던 때인 1894년 11월에 미국대통령은 교전쌍방에 《평화중재》를 제기하는 한편 일제로 하여금 더 드세찬 공격을 들이대도록 함으로써 일본이 보다 유리한 환경과 지위에서 강화담판을 진행할수 있게 하였다. 그리고 시모노세끼강화담판에서는 친일분자인 데니슨을 일본전권대표의 고문으로, 역시 친일분자인 전 미국무장관 포스터를 청나라전권대표 리홍장의 《개인고문》으로 파견하여 담판이 일본의 요구대로 진행되도록 조종하였다. 강화담판때 포스터는 리홍장에게 《만일 전쟁이 다시 일어나 충돌이 연장되면 만청정부의 통치 및 청제국의 자주권은 극히 위험하게 될것》이라고 하면서 일본이 제기하는 강화조건을 다 접수하도록 위협하는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 미제는 《춘생문사건》을 조작함으로써 조선에서 짜리로씨야세력을 견제하려고 책동하였다. 

 - 미제는 《로일전쟁》을 통하여 일제가 조선에서 짜리로씨야세력을 몰아내고 독점적지배권을 확립하도록 적극 도와주었다.

○ 미제는 일제를 로일전쟁에로 적극 부추기고 뒤받침해주었다.

• 미국대통령 루즈벨트는 로일전쟁이 일어나기 한달전에 《전쟁의 경우》 미국은 《일본에 호의적일것》이라고 하면서 일제를 전쟁에로 부추겼으며 도이췰란드와 프랑스에 대해서는 짜리로씨야의 편에 가담하지 못하도록 경고하였다.

• 미제는 전쟁준비시기와 전쟁시기 막대한 량의 차관과 무기, 군수기자재들을 일제에게 공급해주었다.

이미 1904년 1월에 륙군장관 타프트를 일본에 파견하여 군사적지원을 강화할데 대하여 약속한 미제는 일제가 소비한 총 전쟁비용 17억원중에서 8억원을 영국과 함께 일제에게 보장해주었다. 때문에 미국의 한 어용신문은 《미국의 원조가 없이는 일본의 재정계획이 파탄되였을것이며 전쟁자체도 수행하지 못하였을것》이라고 고백하였던것이다.

○ 미제는 전쟁국면이 일제에게 불리하게 전변될 위험이 조성되자 로일강화담판이 일제의 침략적리익에 맞게 진행되도록 《중재》와 《알선》활동을 적극 벌렸다.

로일전쟁시기 미제는 일본이 조선을 독점적식민지로 만드는데 필요한 《국제적담보》를 확고히 마련할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였다.

미제는 영국이 일본과 제2차《영일동맹조약》을 맺도록 막후활동을 벌리였으며 특히 로일강화담판에서 일본의 요구를 실현시켜주기 위하여 적극 활동하였다. 루즈벨트는 일본의 강화조약초안을 보고 《일본이 강화조건에 조선통치권을 포함시킨것을 나는 진심으로 동의한다.》고 떠벌이였으며 담판이 시작된 다음에는 그것을 관철시켜주기 위하여 막후조종을 강화하였다. 미제가 강화담판에 참가하려고 한 조선봉건정부대표의 제기를 단호히 묵살해버린것도 그러한 행위의 일환이였다.

- 미제는 일제의 조선강점책동을 백방으로 지원하였다.

○ 미제는 일제의 보호권실현을 위한 행동계획을 전적으로 지지하였다.

미제는 일본이 《보호조약》을 날조하는 방법으로 조선에 대한 독점적식민지화를 실현할수 있도록 마지막까지 적극 지원하였다. 미제는 조선에 대한 《보호권》을 《조약의 형식》으로 실현하며 만약 조선봉건정부가 《조약》체결에 응하지 않을 때에는 《조약은 체결되였다고 선포》하는 방법을 적용하겠다는 일본의 《계책》을 《무조건 지지》해주었다. 로일강화담판이 끝난 직후인 9월 9일에 일본측 전권대표 고무라는 주미일본공사 다까히라와 함께 루즈벨트를 방문하고 그러한 《계책》을 건의하여 그로부터 《마음대로》하라는 무조건적인 지지를 받았던것이다.

○ 미제는 강도적인 방법으로 《을사5조약》이 날조되자 누구보다도 그를 인정하고 지지환영하였다.

미제는 《조약》날조직후 제일먼저 공사관을 철수시킴으로써 조선이 일제의 식민지로 된데 대하여 공식적인 지지를 표명하였다. 당시 미국무장관이였던 푸트는 조선국왕이 《조미조약》을 믿고 미국에 《주선》과 《원조》를 요청하려고 파견한 특사를 제때에 만나주지도 않고있다가 나중에 만나서는 이미 《 한국정부가 1904년 2월 23일 조약과 8월 22일 조약》을 통해 《 일본에 많은 특권들을 주었고 자신을 일본정부의 완전한 보호밑에 둔것만큼》 이제 와서 《조미조약의 조항들을 적용한다는것은 완전히 불가능한 일》이라고 하면서 교활하게도 일제의 조선강점을 비호두둔하였다.

이와 같이 미제는 일본의 조선침략을 적극 도와줌으로써 일본제국주의자들과 공모하여 우리 인민을 식민지노예화하려고 책동한 조선인민의 극악한 원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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