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본군국주의의 재생재무장의 촉진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일본제국주의는 지난날 근 반세기동안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고 우리 인민에게 헤아릴수 없는 재난과 고통을 들씌운 피맺힌 원쑤입니다. 미제의 적극적인 비호밑에 되살아나고있는 일본군국주의는 오늘 또다시 해외팽창야망을 드러내놓고있습니다. 일본군국주의가 재생되고있는것은 엄연한 현실입니다.》

미제는 조선전쟁이후 우리 나라에서 새 전쟁을 도발하기 위한 준비를 미친듯이 다그치면서 그 《돌격대》로 내세울 일본군국주의의 재생재무장에 광분하였다.

- 미제는 일본경제를 저들에게 철저히 예속시키면서 군국주의의 물질적기초로 되는 일본독점자본을 급속히 부활팽창시키는데 박차를 가하였다.

○ 《미일경제협력》의 간판밑에 일본에 미국의 자본과 기술을 대대적으로 침투시키면서 일본으로 하여금 설비투자를 강행하도록 하였다.

미제는 1954년 3월에 일본반동들과 《미일투자보장협정》을 체결하여 미국독점자본의 일본진출을 장려하였다. 그 예속적성격은 자연재해, 시장변동, 파업, 전쟁 등으로 손해가 있는 경우 일본이 배상한다는것을 협정에서 규제한데서 알수 있다. 1961년 현재 일본에 투자된 미국자본은 8억US$이상으로서 당시 외국자본총액의 80%이상을 차지하였다. 미제는 설비투자강화를 통하여 저들의 설비로 일본독점자본을 무장시켜 일본경제의 대미예속을 더욱 강화하는 동시에 일본독점자본의 부활팽창을 추구하였다. 미국의 부추김밑에 일본반동정부는 1960년이후 3년간에만도 매해 평균 100억US$분의 설비투자를 하였다.

○ 미제는 조선전쟁이후에도 《특수주문》을 계속하여 일본독점자본을 급속히 살찌웠다.

1954~1969년기간 미제의 《특수주문》에 의한 일본의 외화수입은 75억US$이상에 달하였다. 특히 윁남전쟁을 도발한 후 일본독점자본은 년간 30억US$의 규모에 달하는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였다. 이러한 일본독점자본을 가리켜 세계는 《죽음의 장사군》이라고 비난하였다.

○ 미제는 일본경제의 군사화를 다그치게 함으로써 일본독점자본의 부활팽창도 더욱 촉진시켰다.

1950년대에는 주로 일본경제의 군사화에서 골간적역할을 놀게 될 중공업부문에 대한 설비투자를 대대적으로 확대하면서 일본독점재벌들이 군수공업을 발전시키는데 힘을 넣게 함으로써 재무장을 다그칠수 있는 경제적기초를 마련하게 하였다면 그후 1960년대에는 무기의 《국산화》구호를 들고 경제의 군사화를 다그치게 함으로써 독점재벌의 부활팽창을 더욱 촉진시키고 군수산업이 제2차 세계대전전 수준을 몇배로 릉가하게 하였다.

일본에서 경제의 팽창과 독점자본의 비대과정은 생산과 자본의 가일층의 집적과 집중을 동반하였으며 대금융자본의 지배체계를 더욱 강화시켰다. 그리고 이것이 《미일경제협력체계》밑에서 이루어진것으로 하여 미국독점자본에 의한 일본독점자본의 예속성은 더욱 강화되였다.

- 미제는 일본의 군국주의적재무장과 국내체제의 반동화를 촉진시켰다.

○ 미제는 일본에 대한 군사원조를 더욱 강화하면서 일본침략군대를 증강하려고 책동하였다.

• 1954년 3월 미제의 직접적인 지시밑에 요시다반동정부는 《방위청설치법안》과 《자위대법안》을 조작하였다. 이 《법안》들은 일본의 재무장을 다그치기 위한 《내각국방회의》를 설치하고 륙, 해, 공군 3개의 《참모부》를 통합하여 종합적인 《통합막료회의》를 창설할것을 규정하였다. 이에 따라 일본《보안청》은 《방위청》으로 개편하고 《보안대》는 륙상《자위대》, 해상《자위대》, 항공《자위대》로 개편확장되여 실제상 현대적기구와 장비를 가진 륙해공군으로 재생되였다.

• 미제는 1954년 3월에 《일미호상방위원조협정》을 조작하고 일본《자위대》무력을 더욱 강화하였다. 이 《협정》에서는 미제가 일본군국주의자들의 요구에 따라 일본《자위대》의 확장에 필요한 모든 무기를 제공하며 650명의 미제《군사고문단》을 설치한다는것을 규정하였다. 미제《군사고문단》은 일본정부가 실시하는 재무장정형을 감독하며 일본군대를 훈련시킬 책임을 지고 《자위대》의 무기와 탄약의 관리 및 사용, 훈련계획의 작성으로부터 시작하여 군대장교의 선발배치 및 군대안의 사상동향에 이르기까지 철저히 감시하는 무제한한 권한을 행사하였다. 결과 일본《자위대》는 질량적으로 훨씬 늘어났다. 1965년 현재 《황군》출신장교, 장병들을 골간으로 하는 일본《자위대》수는 륙상《자위대》 17만 1 500명, 해상《자위대》 3만 4 900여명, 항공《자위대》 3만 9 000여명으로서 도합 24만 6 000여명에 달하였다.

○ 미제는 일본《자위대》의 무장장비를 현대화하기 위하여 유도무기를 비롯한 많은 무기와 탄약을 해마다 일본에 넘겨주었다.

1962년 6월 일본에 4개의 유도탄기지를 건설하기 시작하였고 9월에는 92개의 《나이크-악젝스》형 유도탄을 미국으로부터 끌어들이였다. 같은 해 8월 중순 륙상《자위대》를 13개의 미국식준원자사단으로 전변시켰으며 8월 1일에는 구레항에서 전후 최초로 잠수함분함대를 조직하였다. 1965년 당시 일본의 군사장비는 제2차 세계대전전에 비하여 4배의 화력과 7배의 기동력을 가졌으며 해군은 총 14만t의 함선을 보유하였다.

○ 미제는 일본군국주의의 재무장을 더욱 다그치기 위하여 1960년 1월 19일에 일본반동들과 《미일호상협조 및 안전보장조약》(《신안보조약》)을 조작하였다.

 

《미일안보조약》체결식

 

○ 미제는 일본반동들로 하여금 국내체제를 급속히 반동화하도록 하였다.

국가정치체제의 반동화는 곧 군국주의정치체제의 형성 및 강화로서 전후 형식적인 《민주주의적정치체제》가 그 허울을 벗은것이였다. 1960년대 중엽에 국가폭력기구로서의 일본경찰수는 패망직전의 5배인 30만명으로 늘어났고 우익반동단체는 500여개로서 12만명이 망라되여있었으며 각종 폭력단에도 18만명이 망라되여있었다.

이와 같이 전후 일본에서는 미제의 직접적인 지지와 협조밑에 일본군국주의가 급속히 재생재무장되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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