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제국주의의 조선침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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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미제의 남조선강점과 조선전쟁도발, #공화국을 교살하기 위한 미제의 책동과 #일본군국주의의 조선전쟁가담책동(1945. 8~1953. 7)
제2절 조선전쟁시기 우리 공화국을 교살하기 위한 미제의 책동
1. 미제의 군사정치적교살책동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미제는 조선전쟁에 현대적무기와 최신군사기술로 장비된 저들의 방대한 륙해공군무력을 동원하고도 15개추종국가군대까지 끌어들였으며 가장 잔인하고 야수적인 전쟁방법을 다 적용하였습니다.》

미제는 조선전쟁에서 저들의 흉악한 침략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당시 동원할수 있는 모든 력량을 총동원하였으며 전쟁력사상 류례없는 가장 야만적인 전쟁방법과 수단들을 다 썼다.

 

침략력량의 총동원

- 미제는 밀도상으로 볼 때 전쟁력사상 전례없는 대병력을 조선전쟁에 투입하였다. 

○ 미제침략군무력을 대대적으로 동원하였다. 

미제가 축소하여 발표한 자료에 의하더라도 조선전쟁기간 전투에 참가한 미제침략군 수는 연 400여만명이나 되였다.

○ 반동적련합세력인 《유엔군》을 조작하여 조선전쟁에 투입하였다. 


 

《유엔군》파견을 비법결정하는 유엔안보리사회 《유엔기》를 받는 맥아더 15개 추종국가기발들

 

미제는 1950년 7월 7일에 《유엔안전보장리사회》를 비법적으로 소집하고 이른바 우리 공화국의 《침략》에 대처하여 《유엔군》을 조작한다는것을 결정하도록 하였다. 미제는 이 비법적인 결정을 리용하여 악명높은 전쟁미치광이 맥아더를 《유엔군사령관》으로 임명하고 1950년 7월 24일 일본에 《유엔군사령부》를 설치하였다. 《유엔군》구성에서 절대다수를 차지한것은 미제침략군이였다. 미제는 저들의 침략군과 함께 15개 추종국들의 고용병들을 《유엔군》의 간판을 씌워 조선침략전쟁에 끌어들이였다. 《유엔군》의 사명은 미제의 침략정책을 실현하는데 있었다. 미제의 이른바 《유엔군》조작책동은 저들의 침략적정체를 가리우는 동시에 추종국가들까지 조선전쟁에 대대적으로 끌어들여 저들의 흉악한 침략목적을 이루어보려는 교활하고도 간악한 침략책동이였다.

○ 지어 일본군국주의침략무력까지 동원하였다.  

미제의 제24보병사단 선견부대인 스미스《특공대》가 수원, 오산일대에서 인민군대에 의해 소멸되였을 때 그속에 30여구의 일본장교들의 시체가 발견된것은 전쟁초기에 벌써 미제가 일본침략군을 조선전쟁에 동원하였다는것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로 된다. 미제는 일본전범자들을 조선전쟁에서 작전계획작성과 미제침략군 함선들의 수로안내, 기뢰소해작전을 비롯한 여러 작전들에 참가시켜 저들의 침략적목적달성에 복무하게 하였다. 1950년 7월 27일 당시 로이터통신에 의하더라도 조선전쟁에 참가한 일본침략군 수는 이 시기에 벌써 2만 5천명이나 되였다.

- 미제는 조선전쟁에 현대적인 무기와 전투기술기재들을 최대한으로 동원하였다.

○ 미제는 당시 《공중요새》라고 불리우던 《B-29》를 비롯한 각종 최신형비행기들을 수많이 동원하였다.

미제는 전쟁초기부터 중폭격기 《B-29》를 동원시켜 전략폭격과 전술폭격을 비롯한 각종 전투에 참가시켰다. 특히 미제는 저들의 이른바 《공중우세》를 리용하여 전투기의 엄호비행이 없이 중폭격기인 《B-29》를 수백대씩 단독비행으로 전술폭격까지 감행하게 하였다. 1950년 8월 16일 오끼나와와 일본본토에서 날아온 《B-29》 99대가 왜관일대에 전투기의 엄호없이 단독으로 전술폭격을 감행한것이 그 대표적실례이다. 미제가 조선전쟁에 동원한 비행기를 보면 폭격기로서 《B-29》, 《B-26》, 《B-47》 등이였고 전투기로서는 《F-51》, 《F-82》, 《F-86》 등과 각종 함재기들이였다. 비행기동원수는 전쟁초기에만 하여도 벌써 월평균 1 500여대에 달하였으며 전쟁마지막시기에는 1만대이상이나 되였다.

○ 또한 각종 전투함선들을 동원하고 나중에는 핵무기사용까지 기도하였다.

- 미제는 조선전쟁에 가장 호전적인 살인장군들과 침략기구들을 다 동원하였다.

○ 미제는 조선전쟁에 침략전쟁경험이 풍부한 살인호전광들을 모조리 끌어들이였다.

전쟁3년간에 미제는 《유엔군사령관》으로서 맥아더, 릿치웨이, 클라크를, 8군사령관으로서 워커, 밴플리트, 테일러, 제24보병사단장 띤, 제25보병사단장 윌리암 킨, 1기병사단장 로보트 알 케이 등과 같이 침략전쟁경험이 많고 악독하기 그지없는 살인호전광들을 조선침략전쟁에 끌어들이였다.

○ 미제는 《국무성》과 《국방성》, 《합동참모본부》를 비롯한 방대한 침략기구들을 총동원하여 조선침략전쟁에 복무하게 하였으며 마샬과 브레들리와 같은 최고군사우두머리들로 하여금 침략전쟁을 현지지휘하게 하였다.

○ 미제는 조선전쟁시기 대통령까지 갈아대면서 최후발악을 다하였다. 

- 미제는 조선전쟁에 방대한 후방력량과 물적자원을 총동원하였다.

미제는 1950년 5월에 이미 미국에서 《비상사태》와 《비상동원》을 선포할 계획을 세우고있다가 전쟁도발후 즉시 《비상사태》를 선포하였으며 일본의 방대한 군사경제적잠재력까지 총동원하였다. 조선전쟁기간 미제가 탕진한 군사비는 200억US$이상, 군사물자는 태평양전쟁시기의 11배인 7 300만t에 달하였다.

 

가장 강도적이며 야수적인 전쟁방법의 적용

- 미제는 전쟁초시기 불의의 침공으로 우리 공화국을 단숨에 집어삼키려는 강도적인 침략수법을 적용하였다.

미제는 불의의 침공으로 평양-원산계선을 점령한 후 급속히 압록강, 두만강일대에로 진출함으로써 우리 공화국을 단숨에 먹어보려고 망상하였다.

- 미제는 그것이 실패하자 1950년 9월 중순 지상에서의 대공세에 배합한 대규모상륙작전을 감행하였다.

 

모험적《인천상륙작전》을 지휘하는 맥아더 미제침략군 전함 《미주리》호의 함포사격

 

바로 그것이 락동강계선에서의 지상군의 대공세에 배합한 인천상륙작전이였다. 이때 미제는 태평양방면의 륙해공군을 총동원하였으며 지중해함대의 일부와 영국, 프랑스, 필리핀, 뛰르끼예 등 추종국가군대들까지 조선전선에 대대적으로 끌어들이였다. 당시 미제는 이 작전을 가리켜 최신군사과학기술과 륙해공군을 종합적으로 동원리용함으로써 그 위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할수 있게 하는 《가장 우월한 현대전법》이라고 떠벌이였다. 그러나 우리의 인민군용사들은 달려드는 5만여명의 병력과 300여척의 함선, 1천여대의 비행기들을 단 4문의 포와 한개 중대의 력량으로 결사적으로 맞서 월미도를 3일동안이나 고수함으로써 인민군대의 전략적인 일시적후퇴를 성과적으로 보장하였다. 

- 미제는 해상에서의 새로운 상륙작전을 배합한 지상의 전략적요충지역에서의 장기간에 걸치는 대규모적집중공세전법에 매여달렸다.

미제는 통천, 원산앞바다에서의 상륙작전기도에 배합한 1211고지일대에서의 발악적인 대규모공세를 감행하였다. 그러나 미제는 우리 인민군대의 영웅적투쟁에 의하여 여기에서도 수치스러운 참패만을 거듭하였다.

- 미제는 대량살륙무기를 대대적으로 사용하는 야수적인 현대판《초토화전법》도 적용하였다.

○ 당시 《유엔군》사령관이였던 클라크는 1952년 8월에 공화국북반부의 78개 도시를 《지도우에서 없애버리겠다.》고 떠벌이면서 전지역에 걸쳐 무차별적인 폭격과 포격을 들씌웠다. 

미제는 평양시에만도 무려 42만 7 800여개의 폭탄과 나팜탄을 떨구어 평화적주민들을 살해하고 산업시설들과 학교, 병원, 기타 문화시설들을 닥치는대로 파괴하였다.

○ 미제는 조선전쟁에서 국제적으로도 그 사용이 금지되여있는 세균무기와 화학무기까지 사용하는 범죄행위를 감행하였다. 

미제살인귀들은 범죄적인 전면적세균전을 벌리기 시작한 1952년 1월 초순부터 3월에 이르는 기간에만도 공화국북반부의 169개소의 지역에 연 804차에 걸쳐 고원지대, 해안지대, 벌판, 산간지대, 고립지대, 크고작은 부락들과 도시들을 가리지 않고 각종 세균탄을 마구 떨구는 천인공노할 반인륜적범죄를 감행하였다.

 

정치적모략과 군사외교책동

- 미제는 조선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유엔을 리용하는 흉악한 정치적모략책동을 감행하였다.

○ 미제는 조선전쟁도발직후 이미 준비한 각본에 따라 1950년 6월 25일 《유엔안보리사회》에서 저들의 추종국가들을 사촉하여 전쟁의 책임을 우리에게 넘겨씌우는 비법적인 《결정》을 조작하였으며 27일에는 저들이 주도하는 이른바《유엔군》의 조선에 대한 무력간섭을 《허용》하는 침략적《결정》을 련이어 조작하였다.

○ 미제는 1950년 10월 이후 유엔총회에서 계속 우리 공화국을 반대하는 도발적인 결정들을 조작하였다.

미제는 1950년 8월 1일부터 이전 쏘련이 《유엔안보리사회》에 다시 참가하기 시작하였으므로 거부권행사가 두려워 조선문제를 다수가결의 방법으로 결정을 채택하는 유엔총회에로 끌고갔다. 유엔총회 1950년 10월 7일 결정이 바로 그 대표적인 실례이다. 이 결정은 미제침략군의 38˚선이북지역에 대한 점령을 승인하는것이였는데 미제침략군은 이미 10월 1일 전선동부지역에서 38˚선을 넘어 공화국북반부지역을 점령하였다.

- 미제는 전선에서 이루지 못한 침략야망을 담판의 방법으로 실현해보려는 망상밑에 파렴치한 군사외교책동을 벌리였다.

전선에서 패전에 패전을 거듭한 미제는 《강대국》의 체면도 다 집어던지고 1951년 6월 정전담판을 우리측에 제기해왔다.

교활한 미제는 날로 강대하여지는 우리의 력량에 압도되여 할수 없이 정전담판을 제의하면서도 계속 음흉한 목적을 추구하였다. 

1951년 7월 10일부터 시작된 정전담판에서 미제는 담판시작부터 강도적이고 파렴치한 요구를 들고나왔다. 우선 군사분계선설정문제에서 저들의 《해공군우세에 대한 대가》라는 당치 않은 구실을 붙이면서 공화국북반부의 넓은 지역을 떼내려고 하였다. 또한 포로송환문제에서 《자원송환》의 간판밑에 수많은 우리측 포로들을 억류시키려고 하였다.

- 미제는 《담판》에서 실패하게 되자 원자탄공갈과 최후발악적대규모공세를 감행하면서 극히 모험적으로 책동하였다.

미제는 《교섭보다 행동이 제일》이라고 떠벌이면서 모험적인 《신공세》로 기울어져가는 전쟁국면을 전변시켜보려고 악랄하게 발악하였지만 위대한 수령님의 두리에 굳게 뭉친 우리 군대와 인민의 영웅적투쟁에 의하여 그 첫걸음부터 수치스러운 참패만을 당하고말았다. 

이렇게 되자 미제는 할수 없이 1953년 7월 27일 우리 인민앞에 무릎을 끓고 정전협정에 조인하였다.

이와 같이 미제는 우리 공화국을 반대하는 침략전쟁을 도발하고 력사상 전례없는 야만적인 전쟁방법과 수단들을 다 동원하여 우리 공화국을 요람기에 교살하려고 미쳐날뛴 우리 인민의 철천지원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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