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제국주의의 조선침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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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조선에 대한 일제의 식민지통치와 미제의 침략책동(1905. 11~1945. 8)
제2절 일제강점시기 조선에 대한 미제의 침략책동
1. 일제의 식민지통치에 대한 미제의 지원책동

일제강점시기 조선에 대한 미제의 침략은 저들의 전략적인 대조선정책으로부터 일제의 식민지통치를 지원하고 조선침략의 지반을 닦기 위해 악랄하게 날뛴것으로 특징지어진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미제국주의자들은 해방전에는 일제의 조선강점과 그 식민지통치를 부추겨주었으며 해방후에는 일제를 대신하여 남조선을 직접 강점하고 새로운 식민지통치자로 군림하였습니다.》

일제의 조선강점을 적극 도와준 미제는 일제가 조선을 강점한 후에도 조선에 대한 일제의 식민지통치를 적극 부추겨주었다.

미제의 이러한 책동은 일제로 하여금 조선인민의 혁명력량을 말살하고 조선을 계속 식민지로 틀어쥐게 함으로써 저들의 대아시아침략정책실현의 《돌격대》로 효과있게 써먹으려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 미제는 일제의 식민지통치를 적극 찬양하였으며 그를 반대하는 조선인민의 투쟁을 가로막으려고 교활하게 책동하였다.

○ 미제는 일제의 《통감정치》와 《무단통치》를 적극 찬양하고 부추기였다.

• 미제는 일제의 《통감정치》를 찬양하여 1908년에 《조선시찰담》이라는것을 발표했는데 거기에서 《오늘의 조선은 3년전의 조선이 아니라 비상히 진보개선되였다.》고 하면서 일제의 《통감정치》를 찬미했으며 1907년에는 미국무장관 타프트와 일본수상 사이온지와의 비밀합의를 통하여 조선의 국호마저 없애버리려는 일제의 정책에 전적인 지지와 고무를 주었다.

• 일제의 《무단통치》가 조선에서 일찌기 볼수 없었던 《평화》와 《번영》을 가져다주었다고 하면서 일제로 하여금 야만적폭압정치를 더욱 강화하도록 부추기였다.

미국인 필리프 데일리는 신문 《포스트 헬트》지에 낸 글에서 《∙∙∙일본은 조선을 위하여 중국과 싸워 완전한 독립을 주었다. 그런데 궁중의 과격파는 각종 음모를 하고 일방으로 교활한 로씨야가 조선을 엿보게 된 결과 일본은 조선을 병합하지 않으면 일본의 안전을 도모할수 없다고 각오하고 드디여 이것을 병합하였다.》라고 썼으며 《무단통치》가 조선에 《문명한 제도를 가져다주었고 그것이 볼만한 점이 적지 않다.》고 일제의 식민지통치를 적극 찬양하였다.

한편 미국어용출판물 《뉴욕 이글》지는 《일본은 병합에 앞서서 ∙∙∙지식, 재능, 돈을 주어서 조선의 독립에 힘썼다. 그런데 조선정부는 이러한 원조에 대하여 아무런 기쁨의 기색도 없었고 또 일본의 지도에 순종하지도 않고 일본의 노력도 수포로 돌아갔다. 여기에 있어서 일본은 조선사람을 원조하며 또한 동양의 평화를 영원히 유지하기 위하여 가장 좋은 수단으로서 조선반도를 일본령토의 일부로 만들었다. ∙∙∙조선에서 현재 상태를 보면 그 당시 이러한 가장 좋은 정책을 실행한 일본정치가의 현명함을 증명하고도 남음이 있다.》라고 지껄이였다.

○ 미제는 일제의 《무단통치》에 항거해나선 우리 인민의 거족적인 3.1인민봉기를 적대적으로 대하면서 그에 대한 일제의 가혹한 탄압책동을 지지하고 은페하려고 책동하였다.

• 3.1인민봉기가 일어나자 미제는 극도의 증오와 적의를 가지고 발광적으로 날뛰였다.

3.1운동에 대한 보도에 접한 미국무성은 《조선문제는 순전한 일본의 내부문제인것만큼 우리 필리핀에서 폭동이 일어난 경우와 동일하다. 폭동진압을 위하여 일본정부가 취한 태도에 관하여 여러가지 아름답지 못한 보도가 있으나 이는 극히 의심스럽다. ∙∙∙일본이 특히 가혹하고 잔인한 조치를 취하였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라는 흑백을 바꾼 공개적인 성명을 발표하였다.

• 미제는 어용출판물들을 통하여 일제의 범죄적행위를 적극 비호하였다.

○ 미제는 윌슨의 《민족자결론》을 내들고 조선의 부르죠아민족주의자들을 기만우롱하였으며 우리 인민의 독립념원을 모독하였다.

• 미제는 《민족자결론》의 간판을 들고 조선의 부르죠아민족주의자들을 기만우롱하였다.

1918년 미국대통령의 특사로 크레인이 상해에 기여들었는데 이자는 조선의 부르죠아민족주의자들이 준비한 《환영회》에 나타나 숭미사대주의를 설교하는 한편 빠리에서 열리는 강화회의에 대표를 파견할것과 《독립원조탄원서》를 제출할것을 설교하였다. 여기에 속아 《탄원서》를 들고간 대표들은 도꾜와 서울에서 일제에게 체포되였으며 크레인의 거짓약속에 속아 《조선독립에 관한 요망서》를 작성하여 강화회의에 전달해줄것을 미국사람에게 부탁하였지만 문건을 도중에서 잃어버렸다는 구실로 전달조차 하지 않았다.

• 《동양시찰단》의 우리 인민에 대한 모독은 더욱 악랄하였다.

1920년 8월 이른바 《동양시찰단》의 간판을 든 미국회 의원들이 조선에 기여들었다. 미제의 《독립원조》에 환상을 가진 민족주의자들이 《환영회》라는것을 차려놓고 기다렸으나 이자들은 자기들이 《일본의 손님이라  <환영회>에 참가할수 없》으며 《독립운동》보다도 학습과 공업 등에 모든 힘을 다하라고 우리 인민의 독립념원을 모독하였다. 

○ 미제는 3.1인민봉기이후 일제침략자들이 실시한 보다 교활하고 간악한 《문화통치》에 대해서도 적극 지지하고 극구 찬양하였다.

흉악한 미제는 일제의 《문화통치》가 《조선을 위하여 새롭고 훌륭한 날이 왔다는것을 의미》한다고 하면서 그에 의하여 조선인민들의 정치적상태가 《현저히 개선》되였다고 지껄이였다.

- 미제는 1930년대 이후 우리 인민의 영광스러운 항일무장투쟁을 교살하기 위해 미쳐날뛴 일제의 책동을 비호하고 부추기였으며 물질적으로 적극 뒤받침해주었다.

미제는 1930년대 이후 우리 인민의 항일혁명투쟁을 말살하기 위하여 더욱 악랄하게 책동하였다.

그것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조직령도하신 우리 인민의 항일혁명투쟁이 일제의 식민지통치를 그 밑뿌리로부터 뒤흔들어놓았으며 아시아와 세계인민들의 식민지민족해방투쟁을 힘있게 고무추동함으로써 미제의 아시아침략정책수행에도 치명적인 타격으로 되였기때문이였다.

○ 미제는 일제의 중국 동북지방에 대한 침략을 적극 도와주면서 그들로 하여금 조선인민의 혁명투쟁을 류혈적으로 탄압하도록 사촉하였다.

당시 미제는 일본이 《중국의 질서회복》을 위하여 만주에서 《공세》를 취한다면 미국은 그것을 적극 지지할것이라고 줴쳤으며 《만주사변》이 일어난후에는 《국제련맹조사단》을 조종하여 일제를 항일무장투쟁을 탄압하는데로 부추기였다.

《9.18》사변 이후 만주문제를 《조사》한다는 구실밑에 이른바 《국제련맹조사단》이라는것이 조작되자 미제는 양그라는 자를 미국측 최고고문의 자격으로 이 《조사단》의 성원으로 집어넣고 《조사단》으로 하여금 일제의 만주침략을 지지하고 항일혁명투쟁에 대한 탄압을 부추기도록 교활하게 책동하였다.

○ 미제는 침략전쟁을 확대하고 우리 인민의 항일혁명투쟁을 교살하기 위해 미쳐날뛰고있던 일제침략자들에게 석유와 파철을 비롯한 막대한 량의 군사전략물자를 공급해주었으며 현대적군수공장들도 건설해주었다.

• 미제는 일제가 중일전쟁을 일으키고 대륙침략을 확대하던 때인 1938년에는 3 500만bbl의 석유를 일본에 공급하였으며 이밖에도 알루미니움과 연, 동, 파철을 비롯한 전략물자들과 엔진, 자동차, 비행기 등 수많은 군수물자들을 일본에 대주었다. 미제가 1931년부터 1939년사이에 일본에 공급한 파철만 하여도 무려 1 200만t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1937년도에 미제의 대일수출에서 전략물자의 비중은 58.8%에 달하였으며 1939년에 와서 미제의 대일 전략물자, 전략설비 수출액은 무려 2억 3 200만US$를 넘었다.

• 미제는 일제에게 전략물자뿐아니라 현대적인 군수공장들도 넘겨주었는데 1939년에 새로운 설비와 기계로 가와사끼비행기공장을 지어준것은 그 대표적실례로 된다.

미제의 이러한 지원은 태평양전쟁도발직전까지 계속되였으며 그것은 군사전략물자의 부족을 크게 느끼고있었던 일제로 하여금 침략전쟁을 장기적으로 진행할수 있게 한 중요한 조건으로 되였다.

이와 같이 미제는 지난날 조선에 대한 일제의 식민지통치를 적극 부추겨주고 우리 인민의 혁명투쟁과 반일독립운동을 악랄하게 방해한 극악한 범죄자이며 우리 인민의 불구대천의 원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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