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제국주의의 조선침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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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미일제국주의의 조선침략개시와 일제의 조선강점(1866~1905. 11)
제2절 일제의 조선강점과 그를 지원한 미제의 죄행
2. 일제의 로일전쟁도발과 《을사5조약》의 날조를 통한 조선강점

일제의 《로일전쟁》도발과 조선에 대한 예속화책동

- 일제는 조선에서 친로파세력을 제거하고 짜리로씨야세력을 몰아내기 위하여 책동하였다.

○ 일제는 청일전쟁후 친로파세력을 제거하기 위하여 악랄하게 책동하였다.

• 청일전쟁후 조선과 동북아시아지역에서의 정세는 일본에 불리하게 조성되였다.

전쟁의 결과 일본이 조선에서 독점적지배를 실현할수 있는 유리한 지위를 차지하기는 하였으나 그러한 상태가 오래 가지는 못하였다. 청일전쟁이후 조선인민의 반일감정과 반일투쟁이 장성강화되였으며 짜리로씨야가 동북아시아에로의 진출을 강화함으로써 조선에서 자기의 세력을 뻗치기 시작하였고 그를 계기로 명성황후일당이 《친청파》로부터 《친로파》로 둔갑하였던것이다.

이런 조건에서 일제는 무엇보다도 저들의 침략야망실현에 장애로 되는 친로파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악랄하게 책동하였다.

• 일제는 친로파세력을 제거하기 위하여 1895년 10월 8일 을미사변을 감행하였다.

《을미사변》을 통하여 력사는 일제침략자들야말로 조선을 침략하는데서 어떠한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는 악당들이라는것을 다시 한번 명백히 보여주었다.

○ 일제는 조선에서 짜리로씨야세력을 몰아내기 위한 외교적책동을 적극 벌리였다.

일제는 외교적방법으로 짜리로씨야세력을 약화시키고 저들의 우세를 인정받기 위하여 3차에 걸쳐 《로일회담》을 진행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외교적방법이 실패하게 되자 일제는 전쟁의 방법으로 짜리로씨야세력을 조선에서 몰아내고 독점적지배를 실현하려고 책동하였다.

• 1902년 1월 영국과 제1차《영일동맹조약》을 체결하였다.

이 《조약》에서 일본은 영국으로부터 조선에 대한 저들의 《특권》을 인정받았으며 다른 나라들과의 전쟁에서 서로 원조하고 협조할것을 약속받았다.

• 미제로부터는 군사적지원을 강화할데 대한 약속을 받아냈다.

미제는 군사행동이 시작되기 한달전에 《전쟁의 경우에 우리 정책은 일본에 호의적일것이다》라고 하면서 공식적인 보증을 주었으며 1904년 1월에는 륙군장관 타프트를 일본에 파견하여 도와줄것을 약속하게 하였다.

○ 미영제국주의자들의 지원에 힘을 얻은 일제는 방대한 군비확장계획을 세우고 짜리로씨야와의 전쟁준비를 강행추진하였다.

- 일제는 로일전쟁을 도발하고 조선에 대한 예속화책동을 더욱 강화하였다. 

○ 일제는 1904년 2월 8일 인천항과 려순항에 정박중이던 짜리로씨야군함들을 불의에 공격함으로써 로일전쟁을 도발하였다.

일제가 로일전쟁을 도발한 목적은 조선에서 짜리로씨야세력을 몰아냄으로써 오래전부터 추구해온 조선에 대한 독점적지배를 실현하자는데 있었다.

○ 일제는 전쟁을 구실로 우리 나라를 군사적으로 강점하고 강점지역들에서 《군정》을 실시하였다.

1904년 4월 3일 일제는 서울에 조선강점군사령부를 설치하고 《군정》을 실시하였으며 조선봉건정부에 《한일의정서》《한일협정서》를 강요하여 우리 나라의 자주권을 말살하였다.

결과 조선봉건정부에 대한 일제의 악명높은 《고문정치》가 실시되게 되였다.

 

일제의 《을사5조약》날조를 통한 조선국권의 강탈

- 일제는 군사적강점을 리용하여 조선강점을 정책으로 규정하고 그 준비책동을 다그쳤다.

○ 1904년 5월 말에 원로회의와 내각회의에서 조선에 대한 《보호권장악》을 《대조선방책》으로 규정하였다.

○ 1905년 4월 8일에는 내각회의에서 조선에 대한 《보호》문제를 최종적으로 결정하고 4개 항목의 《보호조약》초안까지 작성하였다.

○ 일제는 조선에 대한 《보호권》실현의 《국제적담보》를 마련하기 위해 책동하였다.

• 일제는 1905년 7월 미국과 가쯔라-타프트《비밀협약》을 체결하였으며 그해 8월 12일에는 런던에서 제2차 《영일동맹조약》을 체결하였다.

• 1905년 9월 5일 《포스머스로일강화조약》을 통하여 짜리로씨야로부터 조선을 저들의 독점적식민지로 만들데 대한 《인정》을 받아냈다.

- 일제는 《을사5조약》날조를 통하여 조선의 국권을 완전히 강탈하고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었다.

○ 일제는 《보호조약》강요를 위한 구체적인 행동계획을 작성하여 《천황》의 승인을 받았다.

1905년 10월 27일 내각회의에서 심의결정하고 《천황》의 승인을 받은 《한국보호권확립실행에 관한 결정》이라는 제목으로 된 이 침략문건에는 《영일동맹 및 로일강화조약의 명문에 비추어》조선이 《일본의 보호국으로 되는것은 피할수 없는 일》이라고 전제하면서 무력적위협의 방법으로 《보호조약》을 맺을데 대한 문제와 만일 조선봉건정부가 이에 응하지 않을 때에는 《일방적으로 보호권을 확립》할데 대한 문제 그리고 실행시일과 조약초안 등이 전면적으로 밝혀져있었다.

○ 일제는 송병준, 리용구를 비롯한 《일진회》의 친일주구들을 사촉하여 《보호청원운동》을 벌리게 하는 한편 이또 히로부미를 조선에 파견하여 《을사5조약》을 날조하도록 하였다.

• 일본《천황》의 《특사》로 조선에 기여든 이또는 강도적인 방법으로 1905년 11월 17일 《을사5조약》을 날조하고 조선을 강점하였다. 

서울에 기여든 이또는 조선주재 일본공사 하야시, 조선주둔군사령관 하세가와와 함께 《을사5조약》날조를 위한 행동계획을 꾸민 후 11월 15일 왕궁에 기여들어 고종왕을 위협하였다. 이또는 으름장을 놓으면서 《보호조약》초안을 내들고 《만일 거절한다면 ···불리한 결과가 있으리라는것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위협하였다. 그리고 17일에는 대신들을 일본공사관과 숙소에 불러다 위협을 가하였으며 저녁에는 대신회의를 열도록 하고 위협과 공갈, 폭행의 방법으로 강압적으로 《을사5조약》의 《체결》을 선포하였다.

 

일제에 의해 허위날조된 《을사5조약》(복사본)

 

일제는 《을사5조약》을 통하여 《금후 조선에 대한 외교관계 및 사무를 감리지휘》할 권한을 빼앗아냈으며 조선봉건정부가 일제의 중개가 없이는 국제적성격을 가진 어떠한 조약을 맺거나 약속도 할수 없게 하였으며 조선에 일본인《통감》을 두어 전적으로 외교와 기타 모든 사항을 관리할 《권한》을 빼앗아냈다.

이처럼 《을사5조약》은 조선의 자주권을 완전히 말살하고 우리 나라를 사실상 저들의 식민지로 만든 강도적인 침략조약이였다. 

 

《을사5조약》의 무효를 선언한 고종의 친서 (1906. 6. 22)

 

《을사5조약》의 날조로 우리 나라는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되였으며 이때부터 우리 나라에 대한 일제의 식민지통치가 시작되였다.

참으로 일본군국주의자들은 력사적으로 우리 나라를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그 어떤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은 우리 인민의 철천지원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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