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제국주의의 조선침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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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미일제국주의의 조선침략개시와 일제의 조선강점(1866~1905. 11)
제1절 미일제국주의의 조선침략개시와 반식민지적예속화책동
2. 미일제국주의의 범죄적공모결탁과 첫 예속적불평등《조약》의 강요

조선침략을 위한 미일제국주의의 범죄적공모결탁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는 일본제국주의자들과 미제국주의자들이 조선을 침략하기 위하여 오래전부터 서로 협력하여왔다는것도 사람들에게 똑똑히 알려주어야 하겠습니다.》  

- 조선침략에 피눈이 된 미일제국주의자들은 1870년대 초부터 서로 공모결탁하게 되였다.

○ 미일제국주의자들이 조선침략에서 서로 공모결탁하게 된 리유는 다같이 조선에 대한 침략야망을 품고있었으나 단독으로는 그 야망을 실현할수 없었기때문이며 조선인민의 높은 반침략투쟁기세에 공포감을 느끼고있었기때문이였다.

○ 공모결탁을 통하여 노린 목적은 일본군국주의자들은 미제를 등에 업고 미제의 군사경제적지원에 의거하여 조선에 대한 침략야망을 실현하려고 하였으며 미국침략자들은 우리 나라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일본군국주의자들을 《돌격대》로 내세워 침략의 길을 열게 하고 그 결과를 가로채는 방법으로 조선에 대한 침략목적을 손쉽게 이루어보려는데 있었다.

1870년대 초에 이루어진 미일공모결탁관계는 1941년 12월에 태평양전쟁이 발발될 때까지 계속되였는데 이것을 미일제국주의의 제1차공모결탁이라고 한다. 

- 이러한 목적으로부터 미국침략자들은 일본군국주의자들을 《돌격대》로 내세워 조선침략의 길을 닦게 한후 그 열매를 가로챌 흉계밑에 일본군국주의자들의 조선침략준비를 적극 도와주었다.

○ 미제는 1871년 10월에 스미스를, 1872년 11월에는 악명높은 리젠드르를 일본외교부 《고문》으로 박아넣고 일본군국주의자들의 조선침략을 적극 돕게 하였다.   

○ 그리고 1873년에는 2척의 군함과 8천여만발의 탄약을 일본에 넘겨주었다.

- 미제의 적극적인 지원에 고무된 일본군국주의자들은 1870년대 중엽부터 《정한외교》로부터 조선에 대한 무력침공에로 넘어가기 시작하였다.

 

일본군국주의자들에 의한 《운양》호사건의 조작과 《강화도조약》의 강요

미제를 등에 업은 일본군국주의자들은 1875년 4월에 무력침공의 방법으로 조선봉건통치배들을 굴복시키고 예속적불평등조약을 강요할데 대한 침략계획을 세웠으며 곧 그 실현에 달라붙었다.

- 일본군국주의자들은 우선 무력침공의 구실을 마련하기 위하여 《운양》호사건을 조작하였다.

- 일본군국주의자들은 계획적인 《운양》호사건을 조작한데 기초하여 《군함의 급수방해》니, 《일본국기 모욕》이니 하고 트집을 걸면서 그 《문죄》를 구실로 1876년 2월에 대규모적인 무력침공을 감행하였으며 《강화도조약》을 강요하였다.

 

               《강화도조약》체결식     《강화도조약》원문         구로다 기요다까

 

일본군국주의자들은 7척의 군함과 800여명의 침략군으로 조선원정함대를 편성하고 전권대사로는 포악한 구로다 기요다까를, 전권부사로는 극히 교활한 이노우에 가오루를 임명하였다.

원정함대가 조선을 향하여 떠날 때 일본주재 미국공사 삥햄은 이노우에에게 테일러가 쓴 《페리의 일본원정소사》를 쥐여주면서 그 책에 씌여져있는대로 행동하도록 부추기였다.

일본침략자들은 곧바로 강화도에 기여들어 조선봉건통치배들에게 《담판》을 강요하였으며 미제가 가르쳐준대로 위협과 공갈의 방법으로 봉건통치배들을 굴복시켰다. 그리하여 2월 27일에 《조일수호조규》(《강화도조약》)이 조작되였다.

- 《강화도조약》은 자본주의침략자들에 의하여 우리 나라에 강요된 첫 침략적이며 예속적인 불평등조약이였다.

일본침략자들은 《조약》을 통하여 부산항을 개항하고 그 구역을 확장하며 앞으로 2개 항구를 더 개항할것을 규정하였으며 개항장거주권과 자유무역권, 조선연해측량권과 해도작성권, 개항장들에서의 령사재판권(치외법권) 등을 빼앗아냈다. 그러면서도 놈들은 《조약》 제1조에 《조선은 자주적이며 일본과 평등한 권리를 보유한다.》는 사기적문구를 박아넣었다. 이것은 저들의 침략적정체를 가리우며 조일관계에 대한 다른 나라들의 간섭을 미리막고 앞으로의 침략을 손쉽게 하려는 교활한 목적을 추구한것이였다.

《강화도조약》에 의하여 우리 나라는 점차 일본의 반식민지로 전락되기 시작하였다.

 

미국침략자들에 의한 《조미조약》의 강요

- 미국침략자들은 일본군국주의자들에 의하여 침략의 길이 열리게 되자 유미렬강들중에서 제일먼저 조선봉건정부에 불평등조약을 강요하려고 미쳐날뛰였다.

○ 미제는 1878년 4월 미국회 하원에서 《일본의 우의적알선》에 의한 침략적조약체결대책을 심의하고 슈펠트를 전권대표로 파견하여 그것을 추진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실현될수 없었다.

○ 그러자 이번에는 교활하게도 《일본의 조선침략》이니, 《조선의 보호》니 하면서 청나라를 발동하여 조선봉건통치배들을 구슬렸다.

그리하여 1882년 5월 22일 《조미조약》이 조작되게 되였다.

 

                 《조미조약》체결식         《조미조약》원문          미국전권대표슈펠트

 

- 《조미조약》은 미국침략자들에게는 많은 특권을 부여하고 조선봉건정부에는 그것을 보장할 의무만을 들씌운 참으로 흉악하고 강도적인 불평등조약이였다.

미제는 이 《조약》을 통하여 미국외교대표의 서울주재권과 령사재판권(치외법권), 개항된 모든 항구들에서의 자유무역권과 각종 영업권 등 정치적예속과 경제적략탈을 강화할수 있는 《권리》들을 빼앗았으며 최혜국대우를 규정함으로써 앞으로 새로운 《권리》들을 끊임없이 빼앗아낼수 있는 《특권》을 강탈하였다.

그러면서도 놈들은 《조약》 제1조에서 조선에 대해 그 무슨 《우의》를 품고있는듯이 가장함으로써 조선봉건통치배들속에서 미국에 대한 환상과 의존심을 조성하고 《원조자》, 《조정자》로 둔갑하여 장차 조선에 대한 강도적침략야망을 손쉽게 이루어보려고 흉책하였다.

《조미조약》은 우리 나라 력사발전에 엄중한 후과를 끼쳤다. 《조미조약》강요후 조선의 반식민지화과정은 더욱 촉진되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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