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의 손실, 가장 큰 슬픔

 

 

우리 당과 우리 인민의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

 

주체100(2011)년 12월 19일 낮 12시에 기쁨과 행복만을 안고 살아온 우리 군대와 인민은 가슴이 터지고 하늘이 금시 무너져내리는것만 같은 충격을 받게 되였다.

 

※ 주체100(2011)년 12월 17일 오전 8시 30분! 한생을 오로지 조국의 부강번영과 어버이수령님께서 맡기고 가신 인민을 위하여 고난과 시련에 찬 선군혁명의 성스러운 행로를 진두에서 헤치시며 우리 혁명과 세계의 자주화위업을 정력적으로 이끌어오시던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뜻밖에 야전렬차에서 순직하시였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수십성상의 장구한 기간 조선혁명의 진두에서 당과 국가, 군대와 인민을 백승의 한길로 이끄시며 강성국가건설과 조국통일, 세계자주화위업을 위하여 불면불휴의 로고를 바치시던 위대한 장군님을 잃은것은 우리 당과 혁명의 최대의 손실이며 전체 조선민족의 가장 큰 슬픔이였습니다.》  

 

※ 이날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림종을 지켜드리신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절통한 심정을 안으시고 즉시 당중앙위원회 책임일군들을 집무실로 부르시여 위대한 장군님의 서거에 대하여 알려주시였으며 장군님의 서거와 관련한 국가장의일정과 조의방문을 포함한 종합적인 안을 빨리 만들데 대하여 그리고 어버이장군님의 령구를 금수산기념궁전(당시)에 모시기 위한 준비도 다그칠데 대하여 강조하시는 등 해야 할 일들을 하나하나 제시해주시였다.

 

이어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당중앙위원회 정치국비상회의를 소집하시고 정치국성원들에게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서거하시였다는 청천벽력같은 비보를 알려주시고 의학적결론서를 발표하도록 하시였다.

 

※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의 위임에 따라 위대한 장군님의 치료를 담당했던 병원의 원장이 한없이 비통한 심정을 억제하지 못한채 울음섞인 목소리로 장군님의 질병과 서거원인에 대한 의학적결론서를 발표하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심장 및 뇌혈관질병으로 오랜 기간 치료를 받아오시였다. 사회주의강국건설을 위한 초강도강행군의 나날에 겹쌓인 정신육체적과로로 하여 주체100(2011)년 12월 17일 달리는 야전렬차안에서 중증급성심근경색이 발생되고 심한 심장성쇼크가 합병되였다. 발병즉시 모든 구급치료대책을 세웠으나 주체100(2011)년 12월 17일 오전 8시 30분에 서거하시였다.》

 

발표가 끝나자 정치국성원들은 너무나도 억이 막혀 한동안 말을 못하고있다가 정신을 잃고 쓰러질듯이 가슴을 치며 통곡하였다.

 

 심장 및 뇌혈관질병은 계통별질병의 사망률에서 첫자리를 차지하는것으로 하여 림상의학적으로 매우 중요시되고있는 병이며 집중적인 원인치료와 절대안정을 필요로 한다. 오래동안 심장병과 뇌질환치료를 받아오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자신의 병증상과 치료대책에 대하여 모르고계신것이 아니라 알아도 가장 정확히 알고계시였다. 하건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안정한다든가, 병원이나 료양소에 가시여 치료에 전념하는것을 애당초 생각지 않으시였으며 오로지 위대한 수령님께서 맡기고 가신 조국과 인민의 운명과 행복을 위하여 강행군현지지도의 길에 계시였던것이다. 

끝없이 이어가시는 현지지도의 길에서 잠시 만나주시는 일군들과 얼핏 스쳐지나는 병사들의 얼굴색에서 친부모는 물론 본인도 미처 몰랐던 병색을 찾아주시고 어서 치료부터 하라고 간곡히 당부하시며 병원으로, 료양소로 지어는 머나먼 다른 나라의 병원으로까지 보내주시면서도 자신을 위해서는 정상적인 치료나 잠간 동안의 휴식시간조차 내지 않으시고 현지지도의 길에 오르신 분이 바로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이시였다.

 

12월 18일에 진행된 병리해부검사에서는 질병의 진단이 완전히 확정되였다.

 

※ 위대한 장군님의 질병과 서거원인에 대한 의학적결론서는 길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바로 우리의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오래전부터 필경 그 어느때인가는 자신의 신상에 이상이 있을것이라는것을 예감하시고 시계의 초침소리를 가장 바쁘게 들으시며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견인불발의 인내력과 초인간적인 의지로 초강도강행군을 하시였다는것을 온 세상에 전하는 력사적인 증거문건이였다.

 

주체100년대의 자랑스러운 마감을 장식하며 경축분위기로 흘러가던 12월 17일은 세월만이 아니라 지구도 멈춰선 하루, 김일성, 김정일민족의 피눈물로 새겨진 가슴절통한 하루가 되였다.

 

※ 민족최대의 대국상을 당한 때로부터 이틀이 되는 12월 19일, 월요일의 아침이 밝아왔다. 아직은 세상사람들이 청천벽력같은 비보를 모르고있었다. 조국땅에는 여느날과 다름없이 평범한 나날이 흘러가고있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할것없이 며칠후에 맞게 될 위대한 장군님을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높이 모신 20돐과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의 탄생 94돐을 높은 정치적열의와 빛나는 로력적성과로 맞이하려는 일념으로 주간의 첫 사업을 시작하고있었다.

 

주체100(2011)년 12월 19일 오전 10시경부터 텔레비죤과 소리방송에서 낮 12시에 중대보도가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 어버이수령님께서 서거하신 이후 중대보도라는 말만 들어도 우리 군대와 인민은 가슴섬찍하게 생각해왔으나 그후 청류다리와 금릉2동굴을 건설할데 대한 중대보도가 있은 다음부터는 그것을 그 어떤 불상사를 전하는 비통한 소식만이 아니라 가장 사변적인 희소식을 예고하는 서막으로 생각해왔다. 더우기 위대한 장군님의 현명한 선군혁명령도밑에 새로운 선군대고조의 불길높이 김일성민족의 100년사를 승리적으로 마무리하게 될 력사의 봉우리에 올라선 우리 인민은 중대보도란 곧 오직 환희에 넘친 소식만이라고 굳게 확신하고있었다.

 

정각 12시, 텔레비죤화면에 검은 상복차림을 한 낯익은 방송원이 슬픔에 겨운 침통한 표정을 짓고 나와 한마디한마디 눈물겨운 목소리로 청천벽력같은 비보인 《전체 당원들과 인민군장병들과 인민들에게 고함》을 온 세상에 전하였다.

 

 

 

청천벽력과 같은 민족대국상의 비보에 절통함을 금치 못하며 몸부림치는 인민들

 

※ 《우리의 전체 당원들과 인민군장병들과 인민들,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와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내각은 조선로동당 총비서이시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위원장이시며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이신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주체100(2011)년 12월 17일 8시 30분에 현지지도의 길에서 급병으로 서거하시였다는것을 가장 비통한 심정으로 알린다.》

 

순간 사람들은 그만 자기들의 귀를 의심하였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저게 우리 방송이 맞는가,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수 있는가. 그리도 정력적인 초강도강행군으로 우리 인민을 승리와 영광에로 이끌어주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 갑자기 심장의 고동을 멈추시다니…) 사람들은 절통함에 몸부림치기 시작하였다. 그러는 가운데 중대보도는 계속되였다.

 

※ 《주체혁명위업의 계승완성을 위하여 한평생을 바쳐오시였으며 사회주의조국의 강성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나라의 통일과 세계의 자주화를 위하여 불철주야 정력적으로 활동하시던 우리의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너무도 갑자기, 너무도 애석하게 우리곁을 떠나시였다. 사회주의강국건설위업수행에서 전환적국면이 열리고있으며 우리 혁명이 중첩되는 난관과 시련을 뚫고 승승장구하고있는 력사적인 시기에 우리 당과 우리 인민의 위대한 령도자이신 김정일동지께서 뜻밖에 서거하신것은 우리 당과 혁명에 있어서 최대의 손실이며 우리 인민과 온 겨레의 가장 큰 슬픔이다.  

…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심장은 비록 고동을 멈추었으나 장군님의 거룩한 존함과 자애로운 영상은 우리 군대와 인민의 마음속에 영원히 간직되여있을것이며 장군님의 성스러운 혁명실록과 불멸의 혁명업적은 조국청사에 길이 빛날것이다.》

 

이어 국가장의위원회 성원들의 명단과 국가장의위원회 공보가 발표되였다.

 

※ 공보에는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령구를 금수산기념궁전(당시)에 정중히 안치하며 장군님을 추모하여 주체100(2011)년 12월 17일부터 12월 29일까지를 애도기간으로 하며 주체100(2011)년 12월 20일부터 27일사이에 조객들을 맞이하며 어버이장군님의 령구를 바래우는 영결식은 주체100(2011)년 12월 28일에 혁명의 수도 평양에서 엄숙히 거행한다는것이 지적되였다. 이와 함께 장군님을 추모하는 중앙추도대회는 2011년 12월 29일에 진행하며 평양시에서 추도대회가 거행되는 시각에 장군님을 추모하여 평양시와 각 도소재지들에서 조포를 쏘며 온 나라 전체 인민들이 3분동안 묵상을 하며 모든 기관차, 선박들에서 일제히 고동을 울린다는것이 지적되였다. 

그리고 애도기간에 전국의 모든 기관, 기업소들에서 조의행사를 진행하며 평양시에서 추도대회가 진행되는 시각에 각 도, 시, 군들에서 추도식을 진행한다는것과 기관, 기업소들에서 조기를 띄우며 일체 가무와 유희, 오락을 하지 않는다는것 그리고 외국의 조의대표단은 받지 않기로 한다는것이 지적되였다. 이어 조선로동당 총비서이시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위원장이시며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이신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질병과 서거원인에 대한 의학적결론서가 발표되였다.

 

중대보도는 끝났으나 사람들은 통곡하며 실신한듯 쓰러져 움직일줄 몰랐다.

 

 

위대한 장군님의 서거에 대한 비보를 받고 너무도 비통한 심정을 누르지 못하여 오열하는 인민군군인들과 인민들

 

 

주체100(2011)년 12월 19일 낮 12시는 기쁨과 행복만을 안고 살아온 우리 인민의 가슴을 터지게 하고 하늘이 금시 무너져내리는것만 같은 충격을 준 가슴아픈 순간이였다.

우리 당과 인민의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서거하신것은 태양이 꺼지고 지구가 깨여지고 하늘이 무너지는것과 같은 크나큰 충격이고 청천벽력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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