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세의 위인 김정일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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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장 수령영생위업의 빛나는 실현, 고난의 행군, 강행군을 승리에로
제1절 수령영생위업의 빛나는 실현을 위하여
1. 피눈물의 언덕에서
청천벽력과도 같은 급보를 받으시고

 

 

어버이수령님의 령전에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시하시는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 [주체83(1994). 7. 11]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어버이수령님을 천만뜻밖에 잃고 온 나라 천만군민이 비분에 몸부림치며 흘리는 눈물에서 수령님의 영생을 바라는 인민들의 절절한 마음을 헤아리시였다.

 

주체83(1994)년 7월 8일, 우리의 사회주의위업이 중첩되는 난관과 시련을 뚫고 승승장구하고 우리 혁명과 조국통일의 앞길에 바야흐로 새로운 국면이 열려지고있던 력사적인 시기에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총비서이시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주석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서거하시였다. 이것은 우리 당과 혁명의 최대의 손실이였으며 온 민족의 가장 큰 슬픔이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비상회의를 소집하시고 어버이수령님의 서거와 관련하여 제기되는 긴급과제들을 제시하시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어버이수령님께서 서거하시였다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급보를 받으시고 도저히 믿을수가 없으시였다.

 

7월 5일과 6일에만 하여도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당의 혁명적경제전략을 관철하기 위한 경제부문책임일군협의회를 지도하시였고 이어 7일에는 아침 산책시간까지 바쳐가시며 조국통일의 대문을 활짝 열어제낄 력사적인 문건을 하나하나 검토완성하여 비준해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귀전에는 7월 6일 어버이수령님께서 당의 의견을 받자고 한다고 하시면서 북남관계에서 제기되는 문제에 대하여 교시하시고 수령님께서 결심하시면 당에서는 그대로 할것이라고 말씀드리자 그러면 당에서 승인한것으로 보고 활동하겠다고 하시던 수령님의 교시가 생생히 들려오는듯 하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7월 7일 저녁에도 일군들에게 인민들을 위해 할 일이 얼마나 많은가, 내가 일손을 놓으면 동무네 최고사령관에게 그만큼 부담을 더 주게 될것이다, 김정일동지가 나라의 크고작은 모든 일을 혼자 걸머지고 얼마나 많은 일을 하고있는가, 나는 김정일동지가 인민을 위하여 밤새워 일하는걸 보면 잠시도 쉴수가 없다고 교시하시며 서거하시기 전까지도 집무실에서 문건을 검토하시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쏟아지는 폭우를 뚫고 한달음에 어버이수령님께서 계시는 곳으로 달려가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한생의 피로를 푸시는듯 조용히 누워계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아직도 따뜻한 체온이 그대로 어려있는 수령님의 손목을 잡으시고 목메여부르시였다. 심장이 천갈래 만갈래로 찢어지는것만 같으시였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뒤집힌다 하여도 그토록 상심하지는 않으시였을것이였다.

 

가장 큰 상실의 아픔을 안으시고 피눈물을 삼키시며 어버이수령님의 령전을 지켜 밤을 지새우신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날이 밝아올 무렵 정원으로 나오시였다.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이 따뜻한 불빛이 어리여 금시 책장번지는 소리와 함께 고르로운 숨소리마저 들려올상싶은 어버이수령님의 집무실창문을 바라보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눈가에는 다시금 뜨거운 눈물이 고여올랐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지금 이 시간이 어버이수령님의 아침산책시간이라고, 이제라도 수령님께서 저 집무실창가의 불을 끄시고 정원으로 나오시여 산책하실것만 같다고 하시며 손수건으로 눈굽을 찍으시였다. 정원수들에 추연한 고요가 깃든 새벽 어버이수령님의 안녕과 건강을 위해서는 할수 있는 모든것을 다하시고 맡아안을수 있는 모든 일을 다 맡아안으신 위대한 장군님이시였지만 그래도 수령님의 사업부담을 덜어드리지 못하신것만 같아 못내 가슴이 아프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치밀어오르는 비애를 참아내기 어려우시여 물기어린 눈길로 대성산 주작봉마루쪽을 점도록 바라보시다가 김정숙어머님생각이 간절하신듯 갈리신 음성으로 이런 때 우리 어머님께서 계시면 얼마나 좋겠는가고 하시며 좀처럼 걸음을 옮겨놓지 못하시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비상회의를 소집하시였다.

 

금수산의사당의 어느한 방에서는 어버이수령님께서 참가하시지 못한, 우리 당 력사에 일찌기 있어본적없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비상회의가 열리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오늘 회의에서는 어버이수령님의 건강문제에 대하여 토의하겠다고 하시고는 차마 수령님께서 세상을 떠나셨다는 말씀을 하지 못하시고 주치의사에게 일임하시였다. 주치의사가 눈물을 삼키며 위대한 수령님께서 오래전부터 심장병을 앓고계시였으나 우리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불면불휴의 로고를 바치시며 자신의 건강에 대해서는 전혀 돌보지 않으시였고 그 과정에 병세는 더 악화되여 지난밤에 수령님의 심장이 고동을 멈추었다고 이야기하였다.

 

회의참가자들모두가 태양이 꺼졌다는것과 같은 비보를 전혀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어버이수령님의 집무실로 정치국성원들과 비서들을 안내하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조용히 누워계시는 방안에는 비애의 정적이 무겁게 드리워있었다. 어버이수령님을 받들어 혁명의 천만리길을 걸어온 그들은 수령님의 령구앞에서 민족의 어버이를 잃은것이 너무도 절통하여 몸부림치며 오열을 터뜨렸다.

 

시간이 퍼그나 흘러서야 정치국비상회의는 다시 계속되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먼저 어버이수령님의 령구를 어디에 모시겠는가 하는 문제를 토의에 붙이시였다.

 

회의참가자들은 어버이수령님의 령구를 4. 25문화회관이나 인민문화궁전에 안치하고 인민들이 조의를 표시하게 하자는 의견을 내놓았다. 지금까지의 국제적관례에 따르는 의견이였다. 그들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자신께서는 생각을 달리한다고 하시면서 자신의 생각에는 어버이수령님을 금수산의사당(당시)에 안치하고 인민들이 금수산의사당에 와서 조의를 표시하도록 하는것이 좋겠다고, 금수산의사당은 수령님께서 근 20년간 집무를 보시던곳이므로 여기에 수령님을 모셔야 의의가 있다고 하시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이어 어버이수령님의 서거에 대한 비보를 발표하는 문제로부터 국가장의위원회의 조직, 조의식과 영결식, 추도대회를 진행하는 문제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인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정치국비상회의가 있은 다음날인 7월 9일 낮 12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서거에 대한 비보 《전체 당원들과 인민들에게 고함》이 세상에 공포되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어버이수령님의 영생을 바라는 인민들의 절절한 념원을 헤아리시고 수령영생의 구호를 제시하시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서거하시였다는 청천벽력같은 비보가 전해지자 온 나라 인민들이 누구나 할것없이 모두다 상제가 되여 수령님을 그리워하며 낮이나 밤이나 수령님의 동상과 현지교시판, 사적비와 유화로 형상하여 모신 수령님의 영상을 끊임없이 찾아 땅을 치고 가슴을 치면서 오열을 터뜨리고 피눈물을 뿌렸습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인민들과 슬픔을 함께 나누시면서 자기 수령에 대한 도덕의리를 지킬줄 아는 숭고한 도덕관을 지닌 우리 인민을 보시고 커다란 충격을 받으시였다.

 

뜻밖의 비보에 접한 온 나라 인민들 모두가 땅을 치고 가슴을 치며 곡성을 터뜨렸고 수많은 사람들이 실신하여 쓰러졌다. 평양시민들을 비롯한 전체 인민들이 전국도처에 모셔진 어버이수령님의 동상과 현지교시판, 사적비와 유화로 형상하여 모신 수령님의 영상을 찾아 몸부림치며 대성통곡하였다. 온 나라가 눈물의 바다를 이루었고 피눈물로 날이 저물고 밤이 새군 하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어버이수령님의 령전을 뜨시려 하지 않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국가장의위원회의 공보에 따라 조객을 맞이하기 시작하는 첫날인 7월 11일 당과 군대, 국가의 지도일군들과 함께 조의식장에 나오시여 수령님의 령전에 묵상하시고 령구를 돌아보신 다음 국가장의위원회성원들과 함께 호상을 서시였다. 일군들이 위대한 장군님께 국가장의위원회 성원들에게 잠시라도 호상을 맡기고 자리를 뜨실것을 간청하였지만 그이께서는 어버이수령님의 령구앞을 뜨지 않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령구앞에 주저앉아 오열을 터뜨리며 일어나지 못하는 항일투사들에게 어버이수령님을 생전시기보다 더 잘 받들어모시자고 하시였고 이국에서 불원천리 달려온 수령님과 깊은 연고관계를 맺고있던 해외동포들을 위로도 하시였다.

 

우리 인민들은 누구나 어버이수령님의 령구가 안치되여있는 금수산의사당에 찾아가 단 한번만이라도 수령님의 모습을 직접 뵈옵게 해줄것을 간절히 소망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인민들의 절절한 심정을 헤아리시고 조의기간을 7월 18일까지 더 연장하도록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자기 수령에 대한 도덕의리를 지킬줄 아는 우리 인민의 모습을 직접 보시고 커다란 충격을 받으시였다.

《수령님계시는 만수대》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어버이수령님께서 서거하신지 며칠째 되는 어느날 시내를 돌아보시면서 만수대동상쪽에 가시였다. 교양마당의 계단아래쪽에는 많은 사람들이 서서 자기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고있었다. 그들가운데는 어버이수령님의 동상에 화환을 드리려고 차례를 기다리는 댓명의 청년학생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온몸이 비에 흠뻑 젖으면서도 웃옷을 벗어 화환에 씌워 비에 젖지 않게 하려고 애쓰고있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 광경을 한참동안 보시면서 청년대학생들의 소행이 너무도 기특하여 눈물을 흘리시였다. 그때로부터 여러해가 지난 어느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들에 대하여 다시금 회고하시면서 수령님께서 서거하시였을 때 만수대언덕에서 화환이 젖을가봐 그우에 옷을 펴들고있던 대학생들도 이제는 어른이 되여 아이가 있는 아버지, 어머니가 되였을것이라고 감회깊이 교시하시였다.

 

애도기간 온 겨레와 진보적인류가 민족의 위대한 태양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를 경건한 마음으로 추모하였다.

 

남조선의 각계각층 인민들은 파쑈폭압을 물리치고 서울을 비롯한 곳곳에 분향소를 설치하고 여러가지 추모모임과 애도행사를 벌렸으며 조문단을 무어 판문점으로 보냈다. 총련을 비롯한 해외교포조직들과 동포들은 민족사에 일찌기 없었던 크나큰 슬픔을 당한 비통함을 이기지 못하여 목놓아 울면서 조전과 화환들을 보내왔으며 곳곳에 조의장을 꾸리고 조의행사를 가지였다.

 

애도기간 60여명의 국가 및 정부수반들과 170여명의 정당지도자들을 비롯하여 2 000여명의 외교대표들이 우리 나라 대표부를 조의방문하였으며 166개 나라에서 3 480여건의 조전과 3 300여개의 화환을 보내왔다. 그리고 120여개 나라 700여개의 출판보도물이 위대한 수령님을 추모하여 특집을 하였으며 160여개 나라들에서 조의행사가 진행되고 수십억에 달하는 사람들이 조의를 표시하였다. 각국 수뇌자들과 세계명인들의 서거와 관련한 일화수집에 한생을 바친 한 기자는 《지금까지 인류는 거인을 잃을 때마다 많은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김일성주석님을 잃었을 때처럼 그렇게 많은 눈물을 흘리지는 못하였다. 50여억이 김일성주석님을 추모하여 흘리는 비애의 눈물소나기로 하여 지구는 흠뻑 젖었다.》라고 말하였다.

 

애도기간 우리 군대와 인민이 흘린 그 눈물은 어버이수령님을 너무도 애석하게 잃은 가장 절통하고 비통한 피눈물이였으며 수령님을 천세만세 영원히 높이 받들어모시고 수령님께서 개척하신 혁명위업을 끝까지 계승완성해나가려는 신념과 의지의 눈물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인민들이 흘리는 눈물에서 수령영생을 바라는 절절한 심정을 뜨겁게 읽으시였으며 우리 당과 인민의 한결같은 념원과 지향, 시대의 요구를 반영하여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혁명사상으로 더욱 철저히 무장하자!》라는 수령영생의 구호를 제시하시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비범한 령도에 의하여 인류력사상 처음으로 참다운 수령영생위업실현의 위대한 기치가 마련되게 되였다.

 

                    ※ 일화: ❖ 수령님 키우신 인민​

                               영원히 있어서는 안될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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