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경기의 명칭을 북남통일축구경기로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1990년대 전반기 북남통일축구경기를 진행하도록 하시여 민족적화해와 단합의 분위기를 마련해나가게 하시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조국통일을 하루빨리 이룩하는것은 우리 민족최대의 소원이며 우리앞에 나선 절박한 과업입니다.》  

 

※ 조국통일은 본질에 있어서 온 민족의 마음을 하나로 합치는 민족공동의 중대사이다. 따라서 그것은 민족을 이루는 모든 성원들의 가슴속에 맺혀있는 오해와 불신을 가시고 서로의 신뢰감을 두터이 해나갈 때 성과적으로 실현될수 있다.

《통일아리랑》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어버이수령님의 민족대단결사상을 구현하여 해내외동포들속에서 민족적화해와 단합을 실현하기 위한 사업을 현명하게 이끌어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민족적화해와 단합의 분위기를 마련하는데서 북과 남이 체육분야에서 교류와 협력이 가지는 중요성을 깊이 헤아리시고 이 사업을 적극 추진시켜나가도록 하시였다.

 

※ 체육분야는 승부를 다투는것으로 하여 북과 남의 대결관념을 더욱 조장시킬수 있는 첨예한 분야의 하나이다. 그러므로 체육분야에서부터 협력과 교류를 실현하는것은 민족적화해와 단합을 이룩하는데서 중요한 역할을 할수 있다. 더우기 체육경기들이 국제무대들에서 진행되는것으로 하여 민족적공통성에 기초한 리해와 감정적융합을 쉽게 실현할수 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제11차 아시아경기대회에서 북남공동응원의 실현으로 조선은 하나이며 민족도 하나라는것을 잘 보여줌으로써 민족단합의 분위기가 마련된데 맞게 북남통일축구경기를 진행하여 민족의 통일열기를 더욱 높여주도록 하시였다.

 

 

북남통일축구경기를 위해 경기장으로 나오는 선수들

 

※ 1990년 9월에 진행된 제11차 아시아경기대회는 북과 남의 전례없는 공동응원과 선수들사이의 화해와 단합의 열망으로 차넘치였다. 이 과정에 우리 민족은 대결과 분렬을 원치 않으며 우리 민족 자체의 힘으로 하나의 통일조선을 반드시 일떠세울수 있다는것을 온 세상에 힘있게 과시하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주체79(1990)년 10월 평양과 서울에서 북과 남의 축구선수들의 래왕경기를 계기로 하여 민족의 화해와 단합을 도모하고 통일열기를 더욱 높여나갈데 대하여 밝혀주시였다.

 

※ 당시 남측은 북남축구경기의 명칭을 해방전 일제시기 평양과 서울의 축구선수들이 왔다갔다 하면서 경기를 할 때처럼 달자고 하였다. 남측이 제안한 축구경기명칭은 북남 지역의 대립감정이 풍기는것이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반통일분자들의 불순한 기도를 꺾어버리고 북남축구경기가 민족의 화해와 단합을 도모하기 위한 계기가 되도록 이끌어주시였다.

 

※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북남축구경기를 하자고 하는 남측의 제기에 대하여 대범하게 받아들이도록 하시고 축구경기의 명칭은 우리 민족의 세기적인 통일념원을 담아서 북남통일축구경기로 할데 대하여 밝혀주시였다. 그리고 분렬사상 처음으로 평양에 오는 남측체육선수들을 동포애의 정으로 뜨겁게 맞아주어 민족의 통일열기를 더한층 높여주며 경기를 통하여 북과 남사이의 대결을 해소하고 민족의 화합과 단합을 이룩하는 훌륭한 계기로 되도록 하시였다.

 

 1990년 10월 말 평양과 서울에서 온 민족의 커다란 관심속에 북남통일축구경기가 진행되였다.

북남통일축구는 먼저 평양의 풍치수려한 릉라도의 5월 1일경기장에서 우리 인민의 뜨거운 열망속에 진행되였다. 

 

※ 1990년 10월 관중들로 꽉 채운 15만석의 5월 1일 경기장은 민족의 통일열기로 세차게 끓어번지였다. 북남선수들은 색갈만 다를뿐 아무런 표식도 하지 않은 경기복장을 하고 서로의 승부를 가르는 대결의 경기가 아니라 민족의 화해와 단합을 이룩하기 위한 경기를 진행하였다. 쌍방선수들은 평소에 련마한 훌륭한 체육기술을 보여주며 맹렬한 공격을 하면서도 넘어지면 서로 일으켜세워주고 고무하였다. 관중들은 어느 팀이라 할것없이 선수들이 높은 기술과 특기를 보일 때마다 열광적으로 응원하였다.

 

한편 평양의 서산축구경기장에서는 북과 남의 녀자축구선수들이 한데 어울려 공동훈련을 진행하였다.

 

※ 이미 중국에서 녀자축구경기를 진행하여 7:0이라는 압도적인 점수차이로 우리 선수들에게 패한 남측은 평양에 오면서 《이번에 북에서 열댓알쯤 꼴을 넣어 우리를 납작하게 만들려고 계획》하고 있지 않는가하면서 불안해하였다.

 

남측체육관계자들과 선수들의 불안과 고충을 헤아리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북남사이의 대결을 해소하고 민족적화해와 단합의 념원에서 출발하시여 녀자축구경기는 하지 않도록 하시였다.

 

※ 통일축구경기에서 녀자경기는 그만두고 남자경기만 하기로 하자는 우리 측의 제의를 전달받은 남조선의 체육관계자들은 《김정일비서님의 넓으신 도량에 대해 어떻게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김정일비서님이시야말로 과시 위인이십니다.》라고 깊은 감동을 표시하였고 남측의 언론들도 《북측에서 녀자축구경기를 그만두자고 한것은 남북녀자축구선수들의 현격한 실력차이를 고려한 배려》라고 하였다.

 

평양에서의 북남통일축구경기에 이어 남조선의 서울에서 두번째 경기가 진행되였다.

 

※ 남조선인민들은 통일의 념원을 안고 우리 선수단을 열렬히 환영하였다. 남조선의 한 기자는 《오늘처럼 기쁨에 설레인것은 경기장이 생겨 처음이다. 북과 남의 통일열망은 그 무엇으로도 막을수 없다.》고 하였다. 경기장에는 노래 《아리랑》과 《조국통일》의 웨침이 련속 울려나왔고 북과 남의 선수들을 가리지 않고 열광적인 《통일응원》을 하였다.

 

평양과 서울에서 진행된 경기는 남의 나라에서가 아니라 바로 제나라, 제땅에서 통일을 념원하여 진행한 경기로서 조국통일이 념원이 아니라 가까운 앞날에 이룩되리라는 확신을 깊이 새겨주었다.

북남통일축구경기가 진행되는 속에서 우리 기자들은 남조선의 문익환목사를 만나 취재하였다.

 

※ 우리 기자들을 만난 문익환목사는 위대한 수령님들의 은정에 눈물을 흘리면서 김일성주석님의 건강을 축원하였고 삼가 인사를 올려달라고 부탁하였다. 남조선인민들은 축구경기를 보면서 이번 경기는 분렬을 까부시는 경기, 어느쪽이 이기고 지는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이 다 이기는 경기라고 하면서 통일은 《미완료형이 아니라 완료형》이라고 말하였다.

남조선의 신문, 통신, 방송들도 《누가 이긴들 어떠랴, 감격의 응원》, 《이제 통일축구에서 통일조국으로》, 《민족의 통일념원 안고 7천만이 함께 뛰였다.》등의 제목으로 북남통일축구경기에 대하여 널리 보도하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민족대단합사상이 빛나게 구현된 북남통일축구경기는 북남사이의 승패를 겨루는 단순한 축구경기가 아니라 북과 남의 겨레가 마음의 문을 열고 불신과 오해를 가시는 계기로 되였으며 온 겨레의 통일열망을 높이는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 일화: ❖ 새롭게 생겨난 북남축구경기의 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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