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세의 위인 김정일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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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온 사회의 김일성주의화기치를 더 높이 드시고
제7절 조국통일과 세계의 자주화를 위하여
1. 분렬주의자들의 책동을 짓부시고
과거불문에 붙이시고​

 

 

국제태권도련맹 총재인 최홍희선생을 만나주시는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 [주체81(1992). 4]

 

1980년대 조국통일을 위한 우리 인민의 투쟁은 미제와 일본반동들, 남조선분렬주의자들을 비롯한 련합된 반통일세력과의 힘의 대결이였다. 그러므로 북과 남, 해외에 있는 모든 조선동포들이 사상과 제도, 당파와 정견의 차이를 가리지 말고 하나로 굳게 뭉쳐진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투쟁을 벌려야 민족의 숙원인 조국통일을 이룩할수 있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는 지난날 민족앞에 죄를 지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잘못을 뉘우치고 민족의 편에 돌아선다면 과거를 백지화하고 관용으로 대하며 그와 단결할것이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조국통일의 기치아래 온 민족을 하나의 민족대통일전선에 굳게 결속하기 위한 첫 걸음으로 해외동포들과의 단합을 실현하도록 하시였다.

《통일아리랑》

 

남조선반동들의 악랄한 분렬주의책동으로 북남사이의 단합이 당장 실현될수 없는 실정에서 해외동포들과의 단합을 실현하는것은 련방제방식의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였다. 해방직후 약 200만명이던 해외동포가 1980년대 중엽이후에 와서는 500여만명에 이르게 되였으며 통일의 주체적력량에서 그들은 하나의 독자적인 지위를 차지하게 되였다.

 

조국통일운동을 거족적으로 벌려나가는데서 해외교포력량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 해외교포들속에서 급속히 고조되고있는 통일열의와 민족단합의 지향을 깊이 헤아리신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북과 해외의 련대를 실현하는것을 민족대통일전선형성의 기틀을 마련하는 중대사로 내세우시고 해외교포들과의 사업을 강화하는데 커다란 심혈을 기울이시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해외교포들에게 평양방문의 넓은 길을 열어주시고 평양을 찾아오는 해외동포인사들이 북과 해외의 련대를 실현하는데서 선구자적역할을 하도록 통일애국의 길로 손잡아 이끌어주시였다.

 

평양방문의사를 표명한 해외인사들은 사회적지위와 처지, 지나온 경력이 하나같지 않았다. 미국당국으로부터 국록을 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남조선정계와 군부의 요직에 있던 사람도 있었고 자산가가 있는가 하면 교직자도 있고 명망있는 교육자, 과학자도 있었다. 그리고 남조선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투신해온 오랜 재야인사가 있는가 하면 한생 반공의 길을 걸어온 사람, 민족앞에 죄를 지은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거의나 다 사상과 정견에서 이제껏 반공, 반북을 하던 사람들이였다. 하지만 한없이 넓은 도량을 지니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들이 조국통일을 지향한다면 과거를 불문에 붙이고 사상과 정견의 차이를 초월하여 흔연히 손잡아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공화국북반부를 방문하려는 그들의 의사를 기꺼이 받아들이시고 조국동포들과 마주앉아 허심탄회하게 통일론의를 할수있는 온갖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열어주신 통일애국의 길을 따라 카나다에 있는 국제태권도련맹 최홍희총재가 1980년에 이어 다음해에 공화국북반부를 방문하였고 그 뒤를 이어 1981년 여름에는 미국에 있는 《조국통일촉진회》 회장이며 《한국인교회련합회》 고문이였던 김성락목사와 《배달민족회》 의장이였던 최덕신이 평양을 방문하였다. 그리고 서부도이췰란드에 있는 작곡가 윤이상을 비롯하여 유럽과 미국교포사회계의 이름있는 여러 인사들이 속속 평양으로 찾아왔다. 불미스러운 과거경력을 가진 해외인사들의 인생전환은 모든 해외동포들속에서 커다란 충격적인 파문을 일으켰으며 련공애국의 대오를 늘이는데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해외동포인사들에게 크나큰 믿음을 주시고 그들의 조국방문을 세심히 보살펴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국제태권도련맹 최홍희총재가 조국을 방문한 기회에 나서자란 고향을 찾아보고싶어한다는것을 헤아리시고 그가 고향마을을 방문하도록 해주시였다.

 

 

조국의 여러곳을 참관하는 최홍희선생

 

위대한 장군님의 은정으로 최홍희총재가 직승기를 타고 함경북도 화대군에 있는 어느한 마을의 상공에 이르렀을 때 함께 가던 일군이 여기가 최선생의 고향마을이라고 하면서 옛날에 살던 집을 찾아보라고 하였다. 최홍희는 이 부근에서 최씨댁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만치 지난날 자기집이 제일 크고 으리으리한 기와집이였다고 하면서 유심히 시창박을 내다 보더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여기는 자기가 살던 고향마을이 아니라고 하였다. 비행기가 마을상공을 세바퀴나 서서히 선회하는 사이에도 그는 자기집을 찾지 못하다가 일군의 도움을 받아서야 다층문화주택들속에 작고 초라한 모습으로 묻혀있는 옛날의 자기집을 겨우 찾아낼수 있었다.

 

그는 문화농촌으로 변모된 고향마을을 놀라운 눈길로 바라보면서 《내가 남으로 떠날 때 이 부근에서 제일 크던 우리 집이 오늘은 제일 작은집으로 되였습니다. 이 하나를 통해서도 김일성주석님의 주체사상과 김정일선생님의 령도의 위대한 활력과 고도성장하는 공화국의 괄목할만한 발전상을 똑똑히 알수 있습니다.》라고 격정에 넘쳐 말하였다. 고향방문에서 큰 충격을 받은 그는 그후 위대한 장군님의 보살피심속에 공화국의 여러곳들을 돌아보면서 어버이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위대성을 깊이 깨닫게 되였으며 락원으로 전변된 사회주의조국의 참모습도 더 잘 알게 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조국통일이라는 민족사적과제앞에서 속죄도 하면서 통일위업에 적은 힘이나마 이바지하려는 그들의 소망과 지향을 깊이 헤아리시고 그들이 어버이수령님의 접견을 받는 최상의 영광까지 지니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최홍희가 평양방문의 나날을 보내고있던 어느날 어버이수령님을 끝없이 경모하고 우러르며 뵙고싶어하는 그의 간절한 소원을 헤아리시여 수령님의 접견을 받게 해주시였다. 오랜 시간에 걸쳐 어버이수령님을 만나뵙고 귀중한 가르치심을 받아안은 그는 자기에게 이처럼 최고행운과 재생의 활로를 열어주신분이 위대한 장군님이심을 알고 눈물을 머금으며 말하였다. 《친애하는 김정일선생님은 매우 탁월하고 현명하신 령도자이실뿐아니라 하해같은 아량과 포옹력, 비길데 없는 덕망을 겸비하신분이시라는것을 더욱 절감하게 됩니다.》

 

불미스러운 과거경력을 가진 최홍희를 비롯한 해외인사들의 인생전환은 재미교포들과 모든 해외동포들속에서 충격적인 파문을 일으켰으며 련공애국의 대오를 늘이는데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민족의 얼이 살아있고 민족번영의 기상이 약동하는 공화국북반부를 방문하고 돌아간 해외인사들은 자기들이 직접 보고 느낀바를 그대로 책과 글들에 옮기기도 하고 교포군중속에 직접 해설선전하기도 하였다. 그들이 쓴 《민족과 나》, 《내가 만난 북녘사람들》을 비롯한 수많은 책자들과 글들은 해외동포들속에서 사회주의조국을 방문하려는 열망을 높이고 민족의 통일열기를 더욱 고조시키였다.

 

공화국북반부를 방문한 해외동포인사들은 원쑤들의 온갖 방해책동을 물리치고 교포들속에서 어버이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위인상과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의 정당성에 대하여 널리 선전하면서 자주통일과 민족대단결을 위한 투쟁에로 동포들을 힘있게 불러일으켰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해외동포들과의 대화와 협상을 확대해나가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해외민주인사들속에서 련공, 련북기운이 높아지자 해외동포들과의 대화와 협상을 확대해나가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먼저 북과 해외동포그리스도교신자간의 대화를 진행하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조국평화통일위원회를 비롯한 해당한 기관, 단체들이 해외민주인사들과 종교단체들에 편지를 보내여 다각적인 접촉과 대화, 협상을 진행할것을 제기하고 그것을 성사시키기 위하여 적극적인 활동을 벌리도록 하시였으며 1981년 6월 서부도이췰란드에 있는 《조국통일해외기독자회》 회장일행의 평양방문때에 조국통일을 위한 북과 해외동포그리스도교신자간의 대화를 마련할데 대한 합의를 보도록 세심한 지도를 주시였다.

 

그리하여 1981년 11월 북과 해외동포그리스도교신자들과의 대화가 마련되게 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정치인, 그리스도교인, 학자, 교수, 언론인들로 무어진 대표단과 이름있는 예술단을 파견해주시면서 이번 대화에 참가하는 해외동포그리스도교신자들이 비록 반공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하더라도 그들을 동포애의 정으로 아량있게 대해주고 그들에게 진정한 애국자, 참다운 혁명가들의 고상한 풍모를 잘 보여줄데 대하여 교시하시였으며 대화기간에 우리 예술인들과 해외동포들이 함께 출연하는《문화의 밤》과 해내외 태권도사범들의 공동출연도 조직하고 우리 나라 예술영화도 상영하게 하시였다. 그리고 대화를 파탄시키려는 분렬주의자들의 방해책동을 철저히 짓부셔버릴수 있는 적극적인 조치들도 취해주시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깊은 관심속에 1981년 11월 초 오스트리아의 수도 윈에서는 나라가 분렬된 후 처음으로 조국통일을 위한 북과 해외동포 그리스도교신자들간의 제1차대화가 성과적으로 진행되였으며 이것은 해내외동포들의 화해와 련합을 도모하며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촉진시키는데서 중요한 계기로 되였다.

 

 

통일을 위한 북과 해외동포 그리스도교신자들간의 대화 (1981.11.3~6)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이러한 성과에 기초하여 북과 해외동포 그리스도교신자들간의 대화를 계속 진행하며 범동포적인 대화로 발전시켜나가도록 하시였다.

 

1982년 12월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에서 북과 해외동포 그리스도교신자들간의 제2차대화가 진행되였으며 앞으로의 대화는 그리스도교신자들간의 범위를 벗어나 통일을 념원하는 각계각층의 동포들을 망라한 폭넓은 범동포대화로 발전시켜나갈것을 합의하였다. 그리고 1984년 12월 오스트리아의 수도 윈에서 북과 해외동포간의 범동포대화가 진행되고 비상설협의체로서 《조국통일을 위한 민족련합》이 결성되였다.

 

《조국통일을 위한 민족련합》의 결성은 민족대통일전선을 형성하기 위한 투쟁에서 이룩된 커다란 승리였다.

 

이처럼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어버이수령님께서 제시하신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을 실현하기 위한 민족대통일전선형성사업에 커다란 의의를 부여하시고 그 실현을 위한 투쟁을 현명하게 이끌어주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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