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세의 위인 김정일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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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온 사회의 김일성주의화기치를 더 높이 드시고
제7절 조국통일과 세계의 자주화를 위하여
1. 분렬주의자들의 책동을 짓부시고
민족의 혈맥을 이어주시려

 

 

남조선수재민들에게 구호물자를 보내줄데 대하여 교시하시는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 [주체73 (1984). 9]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1980년대 중엽 안팎의 분렬주의자들의 방해책동을 짓부시고 민족적화해와 단합의 분위기를 마련하기 위한 투쟁을 정력적으로 이끌어주시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조국통일의 주체는 우리 민족이며 그 위력은 민족대단결에 있다.》

 

고려민주련방공화국을 창립하는 방법으로 조국을 통일하자면 무엇보다도 북과 남에 사는 온 겨레가 사상과 리념, 신앙과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한민족, 같은 동포라는 립장에서 서로 신뢰하고 화해와 협력을 도모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호상 불신과 오해, 반목과 대결의식을 해소하고 민족적화해와 단합을 이룩하는것은 통일적인 련방국가를 창립하기 위한 선결조건이였다.

《민족의 단결로 통일을 이루자》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수해를 입은 남조선수재민들에게 뜨거운 혈육의 정이 담긴 구호물자를 보내줄데 대한 동포애적조치를 취하시여 끊어졌던 민족의 혈맥을 다시 잇고 민족적단합의 새 국면을 열도록 하시였다.

 

 

수해를 입은 남조선의 실태를 보여주는 사진과 신문자료

 

1984년 8월 말~9월 초 사이에 남조선에서는 보기드문 무더기비가 내렸다. 서울을 비롯한 남조선의 넓은 지역에 내린 무더기비로 하여 20여만에 달하는 수재민이 발생하고 3만 수천여채의 살립집들이 파괴되는 무서운 참상이 빚어졌다. 피해지역에 거처할데 없이 나앉은 수재민들은 당장 먹을것이 없어 아우성을 치고있었고 수재에 뒤따른 병마가 그들의 생명을 위협하고있었다. 그런데 남조선당국자들은 애타게 구원을 바라는 수재민들을 외면하고 일본행각의 길에 올랐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남조선수재민들이 당한 뜻밖의 재난을 두고 깊이 마음쓰시였다.

 

남녘인민들의 기막힌 참상에 대한 보고를 받으신 그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한지에 나앉은 남조선의 수재민들을 생각하면 밥을 드셔도 목에 걸린다고 하시며 일군들에게 필요한 대책을 연구해보도록 하시였다. 그리고 그 다음날에는 일군들에게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있는데 한피줄을 이은 남녘동포들을 구제하기 위한 대책을 세우자고 하시면서 어버이수령님의 높은 뜻을 받들어 수해를 입은 남조선수재민들에게 뜨거운 혈육의 정이 깃든 구호물자를 보내주자고 간곡히 교시하시고 해당한 조치를 취하도록 하시였다.

 

 

남조선수재민들에게 보내줄 구호물자를 성의껏 마련하는 공화국북반부의 근로자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뜻을 받들고 조선민주주의공화국 적십자회는 1984년 9월 8일 남조선수재민들에게 5만석의 쌀과 50만m의 천, 10만t의 세멘트와 많은 량의 의약품을 보내줄데 대한 결정을 채택하고 결정내용을 방송, 통신으로 발표하였다. 이것은 수해를 입은 남녘동포들과 세계진보적인류의 한결같은 환영을 받았다.

 

당시 남조선수재민들을 구제한다고 요란하게 떠든 미국과 일본이 제공한 구제금은 각각 2만US$, 10만US$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공화국북반부에서 보내준 구호물자는 금액상으로 1 800여만US$에 달하는 막대한 량이였다.

 

그러나 민족의 불행은 안중에 없고 오직 나라의 영구분렬과 저들의 장기집권에만 관심이 있는 남조선당국자들은 우리의 이 동포애적구호조치를 불순한 정치적목적에 리용하려고 하였다.

 

남조선괴뢰들은 《선전적책략》이라느니, 《순수성이 의심》된다느니 하는 역선전으로 우리 공화국의 동포애적조치를 비방해나섰고 그 의의를 흐리게 하려고 파렴치하게 행동하였다. 그리고 내외의 압력에 굴복하여 구호물자제의조치에 응해나서면서도 9월안으로 일괄수송해야 받겠다는 《대한적십자사》의 《성명》이라는것을 발표하였다.

 

구호물자를 주겠다는 우리측에 대고 언제까지 한꺼번에 다 가져와야 받지 그렇지 않으면 안받겠다고 하는 남조선괴뢰들의 이러한 처사는 세상사람들을 경악케 하고 해내외동포들의 분노를 자아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남녘동포들에게 동포애의 정이 담긴 구호물자가 하루속히 가닿도록 하기 위하여 남측의 무성의하고 파렴치한 처사에 동포애적아량으로 대하도록 하시였다. 그리고 구호물자인도장소문제를 놓고 남측이 당치않은 조건을 내걸면서 북남적십자단체들의 실무대표접촉을 파탄시키려고 할때에는 진지한 설복과 아량으로 그들의 불순한 기도를 저지시키도록 하시였다.

 

그리하여 1984년 9월 20일 남측은 우리 공화국의 구호물자제의를 받아들이지 않을수 없었다.

 

 

남조선수재민들에게 보내줄 구호물자를 떠나보내는 근로자들과

구호물자를 실은 렬차와 자동차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남조선동포들에게 보내는 구호물자를 최단기간안에 최상의 질적수준에서 잘 준비하며 구호물자의 수송과 인도인수사업이 사소한 편향도 없이 성과적으로 진행되도록 깊은 관심을 돌리시였다.

 

공화국북반부 인민들의 뜨거운 동포애의 정이 담긴 세멘트를 싣고 인천항을 향해가던 우리의 짐배 《대동강》호가 뜻밖에 좌초되자 남측당국자들은 그 세멘트는 받은셈치고 보충적으로 가져오는것을 받지 않겠다고 하였다. 이때에도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우리의 로동계급과 인민들을 불러일으켜 단 15시간동안에 1만 2 000t이나 되는 세멘트를 대형짐배들인 《순천》호와 《룡남산》호에 실어보냄으로써 구호물자전량이 수해를 입은 남녘동포들에게 정확히 가닿을수 있게 하시였다.

 

 

남조선수재민들에게 보내준 구호물자를 인계받는 자료

 

우리의 성의있는 구호물자제공은 국제적십자구제운동사에서 그 전례를 찾아볼수 없는 인도주의의 빛나는 모범이였다.

 

구호물자인도인수를 통하여 남조선인민들속에 뿌리깊이 남아있던 《반공》, 《반북》대결의식이 해소되고 북남동포들사이에는 신뢰와 화해의 분위기가 마련되여갔으며 북에 살건 남에 살건 우리 민족은 하나이고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것을 보여주었다.

 

하여 구호물자인도인수사업을 계기로 12년만에 중단되였던 북남적십자회담이 다시 열리게 되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예술단 및 고향방문단교환사업을 통하여 끊어졌던 민족의 혈맥을 다시 이어나가도록 하시였다.

 

주체74(1985)년 5월 중순 서울에서 열리게 된 제8차 적십자본회담을 며칠 앞둔 어느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적십자본회담의 실무적문제를 안고 모대기고있는 일군들에게 조국해방 40돐을 계기로 북과 남사이에 예술단교환공연문제를 한번 제기해보아야 하겠다고 하시면서 북과 남이 예술단을 교환하여 민족적내용을 주제로 한 종목들을 가지고 공연하게 되면 민족적단합과 통일의 분위기를 마련하는데도 유리한 작용을 하게 될것이라고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적들의 간계를 미리 꿰뚫어보시고 그에 대처할 방안을 제시해주시였다.

 

새로운 방안을 받아안고 흥분에 휩싸여있는 일군들에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우리가 이번에 예술단교환공연문제를 들고나가면 남측은 고향방문단문제 같은것을 들고나올수 있는데 이러한 경우에 우리는 그 제안을 선뜻 받아들여야 한다고, 우리는 예술단교환문제도 성사시키고 고향방문단문제도 성사시켜야 한다고 하시면서 동포애의 정을 나누고 민족의 혈맥을 잇는 일이라면 그 어떤 일도 서슴없이 해야 한다, 민족을 위하는 애국의 길에서는 조금도 주저할것이 없다, 우리는 언제나 민족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절절하게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뜨거운 동포애, 민족애를 안고 우리 일군들은 1985년 5월에 열린 제8차 적십자본회담과 그후 실무접촉을 주동적으로 이끌고나감으로써 마침내 각각 50명 규모의 예술단과 고향방문단, 기자 30명과 수행원 20명으로 하는 적십자예술단과 고향방문단을 교환할데 대한 합의를 볼수 있게 되였다.

 

이에 대한 보고를 받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우리 예술단과 고향방문단이 서울로 떠나게 된다고 하시면서 통일된 조국땅에서 이런 경사스러운 일이 벌어진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온 겨레가 평양과 서울로 마음대로 오가며 그립던 혈육의 정과 동포애의 마음을 나누고 끊어진 민족의 혈맥을 완전히 잇자면 하루빨리 조국을 통일해야 한다, 오늘은 적십자예술단과 고향방문단이 평양과 서울을 오가지만 온 겨레가 그리운 고향을 찾아가고 찾아올 그날은 반드시 오고야말것이라고 뜨겁게 교시하시면서 예술단 및 고향방문단교환사업과 그 활동에서 틀어쥐고나가야 할 강령적지침을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발기와 조치에 의하여 민족이 갈라져 40년만에 처음으로 예술인들과 고향방문자들이 분렬의 장벽을 넘어 평양과 서울로 오가게 되였다.

1985년 9월 20일부터 진행된 적십자예술단 및 고향방문단의 전과정은 북과 남의 전체 인민들의 막을수 없는 통일의지를 내외에 널리 시위한 뜻깊은 나날이였으며 그것은 북남동포들사이의 오해와 불신을 풀고 민족적화해와 단합의 분위기를 마련하며 끊어진 민족의 혈맥을 잇고 나라의 통일을 앞당기는데서 의의깊은 력사적사변이였다.

 

                            ※ 일화: ❖ 함정에 빠진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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